1
집을 떠나기 2년 전,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내가 매우 못생겼다고 했다. 신혼 시절 장만한 리오네 알토 구역 산 지아코모 데이 카프리가 꼭대기에 있는 집에서 아버지는 속삭이듯 그렇게 말했다.
그 순간 모든 것이 멈췄다. 나폴리의 모든 공간도, 얼어붙을 듯 차가운 2월의 창백한 햇살도, 아버지가 내뱉은 문장까지도. 나만 혼자 그곳에서 살며시 빠져나왔다. 그리고 지금, 나는 여전히 문장과 문장 사이에 빠져 헤매고 있다. 내게 완성된 이야기를 만들어주려는 문장들 사이에. 실은 무의미한 문장들일 뿐인데, 진정 나의 것은 아무것도 담지 못했는데.
나는 이야기를 제대로 시작하지도 완결 짓지도 못했다. 내 글은 혼란일 뿐, 이야기가 제대로 전개되고 있는지, 그저 구원 없이 일그러진 고통의 나열일 뿐인지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지금 글을 써 내려가고 있는 이마저도.
2
나는 아버지를 매우 사랑했다. 아버지는 언제나 상냥했다. 아버지는 입고 있는 옷이 한 치수 커 보일 정도로 호리호리했다. 그런 몸매는 아버지의 고상한 태도에 어울렸고 나는 그런 아버지에게서 남다른 기품을 느꼈다.
아버지는 이목구비가 섬세했다. 아버지의 깊은 눈매와 긴 속눈썹, 조각한 듯한 코, 도톰한 입술은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아버지는 자기 기분이나 내 기분에 상관없이 나를 항상 밝게 대해주었다. 뭔가를 공부하느라 언제나 바빴지만 내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기 전에는 절대로 서재에 들어가는 법이 없었다.
아버지는 특히 내 머릿결을 좋아했다. 아버지가 언제부터 내 머릿결을 칭찬하기 시작했는지 이제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내가 두세 살 때부터 그랬던 것 같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이런 대화를 나눴던 건 확실히 기억난다.
“우리 딸 머릿결 좀 봐. 어쩜 이렇게 좋을까. 눈이 부실 지경이로구나. 아빠한테 네 머리카락을 선물해주지 않을래?”
“싫어요. 제 것이에요.”
“그러지 말고 아빠한테 양보해주렴.”
“정 그러면 잠깐 빌려줄게요.”
“그래, 좋아. 돌려주지 않으면 그만이니까.”
“아빠 머리카락은 어떻게 하고요?”
“사실은 지금 내 머리카락도 네게서 빼앗은 것이란다.”
“아니에요, 거짓말하지 마세요.”
“못 믿겠으면 한번 보렴. 너무 예뻐서 아빠가 우리 딸 몰래 훔쳐온 거야.”
나는 아버지가 내 머리카락을 훔칠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장난으로 아버지의 머리카락을 살펴보곤 했다. 아버지는 언제나 나를 웃게 했다. 어머니보다 아버지와 있을 때가 더 즐거웠다. 아버지는 항상 내게서 뭔가를 가져가려 했다. 내 귀와 코와 턱이 완벽하다면서 갖고 싶어 죽겠다고 했다. 나는 그럴 때의 아버지 말투가 좋았다. 아버지는 끊임없이 내가 자신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물론 아버지가 아무한테나 그러는 건 아니었다. 가끔 어떤 일에 몰두할 때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흥분한 말투로 수준 높은 문장을 쏟아내곤 했다. 상대방의 말을 매우 정확하고 간결하고 농축된 문장으로 끊어버리고 반박할 기회조차 주지도 않았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은 내가 사랑하는 아버지와는 너무나 달랐다. 아버지에게 그런 면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은 것은 내가 일고여덟 살 정도 됐을 때였다. 아버지는 가끔 집에 찾아오는 친구들이나 아는 사람들과 나로서는 들어도 이해할 수 없는 문제들을 두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나는 사람들이 바로 옆방에서 싸우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어머니와 함께 부엌에 머무르곤 했다. 하지만 어머니가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자기 방에 들어가 버리면 나 혼자 복도에 남아서 놀거나 책을 읽었다. 사실 다독가인 아버지와 어머니를 닮고 싶은 마음에 놀 때보다는 책을 읽을 때가 많았다. 어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별 신경을 쓰지 않다가도 불현 듯 적막이 흐르고 아버지의 입에서 평소와는 다른 목소리가 터져 나오면 나는 하던 일을 멈췄다. 그때부터 아버지는 강압적으로 변했고 나는 모임이 빨리 끝나서 아버지가 예의 그 상냥하고 다정한 목소리를 되찾기를 기다렸다.
그날 저녁 아버지는 내 학교 성적이 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그 말을 했다. 그때까지 나는 성적 때문에 걱정한 적이 없었다. 나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우등생이었고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한 건 불과 두 달 전이었지만 공부에 민감했던 우리 부모님, 특히 어머니는 성적이 떨어지자 곧바로 긴장했다.
“대체 어찌 된 일이니?”
“모르겠어요.”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구나.”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성적이 왜 이래?”
“공부해도 어떤 것은 기억이 나고 어떤 것은 기억이 나지 않아요.”
“그런 것까지 기억이 날 때까지 공부해야지.”
이를 악물고 노력해봐도 결과는 여전히 만족스럽지 못했다. 문제의 그날 오후 어머니는 선생님들과 상담을 하러 학교에 갔다가 마음이 몹시 상해서 돌아왔지만 나를 야단치지는 않았다. 우리 부모님은 나를 절대로 야단치지 않았다. 그날도 “수학 선생님이 제일 실망하셨더구나. 하지만 그분도 노력하면 나아질 거라고 하셨어”라고 말했을 뿐이었다. 어머니는 저녁 준비를 하러 부엌으로 들어가 버렸고 그새 아버지가 집에 오셨다.
내 방에 있는데 어머니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는 별다른 말 없이 선생님들의 불만 사항을 아버지에게 요약해서 들려주었다. 어머니는 내 변화를 사춘기 탓으로 돌리려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어머니의 말을 가로막더니 평소 내게는 절대로 쓰지 않는 말투로, 심지어는 우리 집에서 금기시하는 사투리까지 섞어서 뒷날 크게 후회할 말을 내뱉고 말았다.
“사춘기 문제가 아니야. 조반나가 빅토리아를 닮아가.”
내가 듣고 있는 걸 알았다면 아버지는 결코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의 말투는 평소처럼 가볍고 장난스럽지 않았다. 부모님은 내 방문이 닫혀 있는 줄 알았을 것이다. 내가 방문을 항상 닫아놓으니까 누군가가 방문을 열어놓았다는 걸 몰랐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내 나이 열두 살 때 나는 숨죽인 아버지의 목소리를 통해 내가 아버지의 누이와 닮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추함과 사악함의 대명사인 아버지의 누이와 말이다. 내가 기억하는 한 아버지는 항상 빅토리아 고모에 대해 그런 식으로 말했다.
내가 과장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정확히 “조반나는 못생겼어”라고 말한 건 아닐 수도 있다. 그렇다. 아버지는 그렇게 모진 말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 나는 몸과 마음이 심약한 상태였다. 1년 전쯤에 생리를 시작했고 가슴이 너무 커진 것 같아 창피했다. 내 몸에서 불쾌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아서 틈만 나면 씻었다.
나는 무기력한 상태로 잠자리에 들고 잠들기 전과 똑같이 무기력한 상태로 잠에서 깼다. 그 시절 나의 유일한 위안이자 유일한 확신은 나에 대한 아버지의 절대적인 사랑이었다. 그렇기에 아버지가 나를 빅토리아 고모 수준으로 끌어내렸을 때 내 기분은 최악이었다. 차라리 “조반나는 어렸을 때는 참 예뻤는데 지금은 못나졌어”라는 말을 듣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우리 집에서 빅토리아라는 이름은 몸에 닿는 모든 것을 더럽히고 부패시키는 괴물 같은 존재였다. 나는 빅토리아 고모를 잘 모른다. 만난 적도 별로 없었고 그나마도 얼마 안 되는 만남에 대해서 기억나는 것은 혐오와 두려움뿐이었다. 빅토리아 고모에 대한 혐오감과 두려움은 아니었다. 고모가 어떻게 생겼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으니까.
내가 무서웠던 건 고모를 향한 아버지와 어머니의 혐오감과 두려움이었다. 아버지는 항상 자기 누이를 욕했다. 빅토리아 고모와 어울리는 것만으로도 평판에 금이 갈 정도로 고모가 수치스러운 짓을 하고 다닌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시누이 이름을 아예 입에 담지도 않았다. 아버지가 불만을 터뜨릴 때면 고모가 당장 들이닥치기라도 할 것처럼 아버지를 진정시키려 했다. 어머니는 고모가 어디서든 자기들 말을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고모가 집 근처 병원을 지나면서 질병이란 질병은 모조리 꽁무니에 매단 채 산 지아코모 데이 카프리의 길고 가파른 길을 성큼성큼 걸어서 우리 집이 있는 6층 건물까지 펄쩍 뛰어올라, 술에 취한 두 눈에서 시꺼먼 광선을 내뿜으며 가구를 망가뜨리고 반항하려는 어머니의 뺨을 갈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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