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좋아! 그렇게 하지! 내가 누군지 보여 주겠네!
하지만 그러려면 우리가 협력해야 해.
난 차를 마시지 않으니 담배를 피우겠네!
― 로버트 브라우닝
문인이란 기질적으로 숙명적이고 기묘한 사람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문학계는 돈독한 우정 때문이든 상찬할 만한 진가 때문이든 두말할 나위 없이 온당한 요구에도 다시는 서문을 쓰지 않겠다는 나의 진솔한 결정을 잊지 않았을 것이며, 앞으로도 기억할 것이다. 한데 이 소크라테스 같은 ‘딱새’는 불가항력이었음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고약한 사람 같으니라고! 함박웃음으로 나를 무력화하더니 내 글발의 효과가 대단하다고 했다. 전염성 강한 웃음을 터트리며 오랜 친분도 있으니 자기 책에 서문을 써 달라고 집요하게 설득했다.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나는 ‘마지못해’ 미지의 푸름으로 떠날 때마다 동료이자 무언의 친구가 되어 준 레밍턴 타자기 앞에 앉기로 했다.
최근 은행과 증권거래소와 경마장으로부터 압박을 받고 있긴 해도 내가 벤츠 풀만의 편안한 좌석에 앉아 있든 회의적인 생각을 하면서 카지노 온천에서 진흙 목욕을 하는 고객으로 있든 간담을 서늘케 하는 잔혹한 탐정 소설에 찬사를 보내는 데 문제가 되진 않는다. 다만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는 유행의 노예가 아니다. 나는 기지 넘치는 셜록 홈스를 뒤로 미룬 채 침실에서 홀로 며칠 밤을 라에르테스의 아들이자 제우스의 씨를 물려받은 방랑자 율리시스의 생동감 넘치는 모험에 몰두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근엄한 지중해풍 서사시를 예찬할 줄 아는 자는 모든 정원의 꿀을 빨 줄도 아는 법이니, 나는 탐정 르코크 덕에 기운을 차리고 먼지투성이 서류를 파고들면서 가상의 거대한 호텔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괴도 신사의 은밀한 행적을 좇기도 했고, 영국의 안개에 휩싸인 다트무어 황무지의 공포 속에서 번들거리는 덩치 큰 마스티프한테 뜯어 먹히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쓰다 보면 최악의 글이 될 듯싶다. 독자 여러분은 내가 믿을 만한 사람임을 알 것이다. 나도 보이오티아에 있어 봤다.
이 작품집의 기본 요소를 본격적으로 분석하기에 앞서 독자 여러분이 허락해 준다면 나는 온갖 것이 뒤섞인 범죄 문학의 그레뱅 박물관에서 마침내 온전히 아르헨티나를 배경으로 한 아르헨티나식 영웅이 탄생했음을 축하하고 싶다. 거부할 수 없는 제I제국 시대의 코냑을 곁에 두고 향 좋은 담배를 두어 모금 곁들여 가면서 앵글로색슨계 출판 시장이라는 외국의 견고한 척도에 휩쓸리지 않는 탐정 소설을 맛본다는 것, 그리고 내가 그 탐정 소설을 이를 데 없이 강고한 추리 소설 클럽이 런던의 훌륭한 애호가들에게 권하는 걸출한 작가들과 주저 없이 비견할 수 있다는 것은 다시 없을 즐거움이 아닌가! 또한 부에노스아이레스사람으로서 느끼는 나의 만족감도 조금이나마 얘기하고 싶다. 우리의 연재 소설가는 지방 사람이면서 도 편협한 지역주의의 부름을 거부하고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자기만의 독특한 작품을 그려 내는 기본 틀로 선택했다. 또한 로사리오의 ‘배불뚝이’라는 방탕하고 칙칙한 인물형을 지워 버린 우리의 평판 좋은 ‘딱새’의 용기와 고상한 취향에도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앞으로 다룰 작품에 대해 말하건대 이 대도시적 색체에는 두 가지가 빠져 있다. 하나는 탐욕의 눈 같은 진열창 앞으로 수많은 사람이 지나다니는 비단결 같고 여성스러운 플로리다 거리이고, 다른 하나는 마지막으로 문을 닫는 카페가 금속 눈꺼풀을 감고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아코디언 소리가 어느덧 창백해진 별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밤에 부두를 곁에 두고 잠드는 우수에 찬 보카 지구가 그것이다.
이제 「이시드로 파로디에게 주어진 여섯 가지 사건」을 쓴 작가의 가장 두드러지고 중요한 특징을 살펴보기로 하자. 그의 작품이 ‘신속한 전개’의 기술을 드러낸다는, 즉 간결하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부스토스 토메크는 늘 대중의 취향을 살피는 사람이었다. 그가 쓴 단편에는 쓸데없는 내용이 없고 시간적으로 혼동할 일도 없다. 그는 우리가 맞닥뜨릴 수 있는 난관을 모두 제거해 버린다. 비애에 젖은 에드거 앨런 포, 왕자 같은 매슈 핍스 실, 남작 부인 에마 오르치의 전통에서 움튼 새로운 배아로서 그의 작품은 수수께끼 같은 사건 제시와 명쾌한 해결을 작품 구성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경찰 수사의 압박과 무관하게 호기심의 꼭두각시가 된 인물들이 복작거리며 그 유명한 273호 감방에 모여든다. 그들은 첫 만남에서 자신들을 질겁하게 한 미스터리를 털어놓는다. 그리고 두 번째 만남에서 그들은 아이건 노인이건 놀라지 않을 수 없는 해결책을 듣게 된다. 저자는 예술적이라고 할 만큼 응축적인 기교로 다면적 현실을 단순화하고 사건의 모든 영예를 오직 파로디에게 안겨 준다. 직관력이 부족한 독자라도 몇몇 지루한 조사에서 적절히 생략된 내용과 어느 신사가 ― 여기에서 그의 정체를 구체적으로 밝히기는 적절하지 않다. ― 제시한 기막힌 통찰을 비롯해 의 도치 않게 누락된 내용을 풀어 가면서 흐뭇해할 것이다.
작품을 세심히 살펴보자. 이 작품은 여섯 편으로 구성되었다. 솔직히 나는 그중에서 슬라브 스타일의 「타데오리마르도의 희생자」를 좋아한다. 이 작품은 오싹한 내용의 줄거리와 병 적인 도스토옙스키식 심리학 등에 대한 진지한 탐색이 결합되어 있으며, 우리에게 익숙한 유럽식 겉치레나 고상한 에고이즘을 벗어나 독자적인 세계를 드러내는 방식이 아주 매력적이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숨겨진 대상에 대한 고전적 전개를 나름대로 일신한 「타이안의 기나긴 추적」도 뇌리에 남는 작품이다. 포의 「도둑맞은 편지」가 그런 전개의 시작이라면 린 브로크의 「다이아몬드2」는 파리 스타일로 변주된 걸출한 작품이지만 박제된 개가 등장하는 바람에 격이 떨어지며, 카터 딕슨은 난방용 라디에이터에 의지하나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하다. 「산자코모의 예견」도 빼놓을 수 없을 터인데, 이 작품에서 제시된 수수께끼가 완벽히 해결된 것은 신사적으로 말하건대 제아무리 통찰력이 뛰어난 독자라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일류 작가의 기질을 판단하는 방법 중 하나는 작가가 작중 인물들을 노련하고 기품 있게 차별화할 줄 아느냐에 있다. 어린 시절 일요일마다 우리를 즐겁게 해 주던 나폴리의 단순한 인형놀음사는 어설픈 임시방편으로 그 문제를 해결했다. 풀치넬라를 꼽추로 만들거나 피에로의 목깃에 풀을 먹이거나 콜롬비나를 세상에서 가장 요란하게 웃는 하녀로 만들거나 아를레키노에게 특유의 다이아몬드 무늬 의상을 입히는 식이었다.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오노리오 부스토스 토메크도 필요한 부분을 수정한다. 예컨대 풍자 화가가 쓰는 과장된 표현법을 활용한다. 물론 그의 유쾌한 글쓰기에서는 장르의 특성에 따라 발생하는 변형이 꼭두각시의 신체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작가가 잔인하리만치 즐겁게 파고든 인물들의 말투에 있다. 전통 요리에 좋은 소금을 남용하기도 하지만 기운 넘치는 풍자가가 우리에게 보여 준 파노라마는 이 시대를 담은 화랑과 같다. 그 화랑에는 감수성이 풍부한 독실하고 훌륭한 여인, 뾰족한 연필로 ― 평이하게 쓴 만큼 유려하지는 않은 ― 수많은 기사를 송고하는 기자, 부유한 집안 출신에 그지없이 친절하며 밤 문화를 즐기고 번지르르한 머리에 폴로 경기마를 소유한 정신없는 한량,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수사修辭로 짜깁기한 인물로서 옛 문학에서 정형화된 부드러운 목소리의 예의 바른 중국인, 정신적, 육체적 즐거움을 알기에 자키 클럽 도서관의 서적은 물론이고 이 클럽에서 열리는 경마 경기에 열심을 다하는 예술가이자 정열이 넘치는 신사가 등장한다. 이를 통해 그의 작품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드러낸다. ‘아르헨티나의 현재’라고 부를 만한 이 프레스코화에는 말 탄 가우초의 모습이 제거되고 유대인, 이스라엘인이 등장하는데 이는 이 사회의 혐오스러운 무자비함을 고발하려는 것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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