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나는 여섯 살에
철조망에 걸려 찢어진 뺨을 가졌다
철을 왜 바다 가까이 두었을까?
눈을 감고 바다를 들으려고
바람을 따라갔다
피가 나는 뺨을 받아왔다
아무도 나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
잠을 갔다 할머니 무릎을 베고
지린내가 심장까지 따라왔다
철을 왜 바다 가까이 둘까?
그 둔중한 말을 왜
그땐 왜 눈을 감지 않았을까?
무얼 가지려고
갈라지는 물
다시 아무는 물
꿰매지 못한 뺨
철을 바다 가까이 두는 게 더는 이상하지 않았다
철2
주머니 속에는 뒤집혀진 세상과
아직 터지지 않은 수류탄이 담겨 있다
환호성이 터질 것이다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을
테이블 앞에 두고
포크로 죽은 고기를 찍어 먹는다
뭔가를 버리고 돌아온 얼굴로
천천히 버려질 얼굴과
이 어리숙한 계절을
본 적 없는 사람처럼 마주 본다
대관람차 안에서는 구름의 속도를 배우기 좋고
굴레를 깨닫고도 벗어나지 않는 건
세상을 조금씩 위나 아래로 옮겨 놓고 싶은 것
그러나 올라탄 자리는 강제로 문이 열리는 자리
너도 나처럼 끄집어내질 거야
새의 발자국을 따라 서늘한 해골이 발굴되는 일을
유적이라 부르며 택시를 잡아탄다
백미러에 매달린 십자가가 흔들린다
종교란 언제나 흔들리는 곳에 임하지
신이 불쌍해진다면
손쓸 수 없는 곳에 가지 않을 핑계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말이 되기도 전에 부서져버린 목소리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평화를 이야기하지?”
유람선이 떠다니는 해변에서
포는 지겹도록 표적을 겨누고 있지만 발포되지 않는다
철3
들판에 쭈그리고 앉아 똥을 싸는 또래의 항문을 본 적이 있다
허물을 벗듯 똥이 그 애를 벗어나는 것 같았다
그 애는 힘을 주었다
얼굴이 붉어졌다
내게도 접어놓은 항문이 있어
얼굴이 붉어졌다
침대 위에 벗어놓은 바지가 있다
허물없이 말하는 사람도 있다
“너는 좋겠다. 얼굴이 하얘서”
수빅에서 만난 Jay는 그 애가 다 자란 모습 같고
나는 자꾸만 그 애의 지옥을 착취한다
그 애가 내게서 좋은 점만을 발라 내 접시 위에 올린다
땅속에서 발라진 철을 보듯
삽자루 끝에 달린 철을 본다
모든 생각은 철이 퍼낸 것이다
철이 빠져나온다
생각이 떠난다
Silence
벽으로부터 깨닫는
Silence
다른, 모든 가능성을 억누르고 살아남은
나는 알지 못한다
죽어간다
Jay를 말하면 Jay가
거짓말 한가운데 깃발이 출렁인다 우리는
오로지 의지만으로 더럽혀질 수 있다
(본문 중 일부)
#문학나눔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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