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부의 창출에 대한 이야기들
1975년에서 2015년 사이에 미국의 실질 국내 총생산인플레이션을 반영해 조정한 경제 규모은 5.49조 달러에서 17.29조 달러로 대략 세 배가 되었다. 이 기간에 생산성도 60%가량 성장했다. 그런데 1979년 이래 미국 노동자 대다수의 시간당 실질 임금은 제자리걸음이거나 오히려 하락했다. 거의 40년 동안 경제 성장의 이득을 소수의 상류층이 다 가져갔다는 의미다. 그들이 우리 사회에서 유달리 생산성이 높은 사람들이어서였을까?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 세상을 지배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의 위대한 저술 『국가』는 그가 이상적이라 생각한 통치자인 ‘수호자guardian’를 위한 일종의 교육서였다. 이 책 『가치의 모든 것』에서 나는 현대 자본주의 경제에서 누가 부를 창출하는가에 대해, 어떤 활동이 생산적이고 어떤 활동이 비생산적인지에 대해, 한마디로 말하면 부의 창출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해 오늘날 우리가 노상 듣고 있는 이야기들에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또한 그런 이야기들이 ‘부를 창출한다’는 명목으로 소수의 사람들이 우리 경제에서 더 많은 것을 뽑아갈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어떻게 기여했는지도 지적하고자 한다.
우리는 도처에서 부의 창출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맥락은 다양하지만금융업계일 수도, 거대 제약사일 수도, 소규모 스타트업일 수도 있다. ‘부의 창출자’들이 하는 자기 묘사 방식은 대개 비슷하다. “나는 이 경제에서 특히나 생산적인 구성원이다. 나의 활동은 부를 창출한다. 나는 커다란 ‘리스크’를 감수한다. 따라서 이런 활동에서 파생되는 이득을 그저 가져갈 뿐인 여타의 사람들보다 높은 보수를 받을 자격이 있다.” 그런데 이 묘사가 사실이 아니라 그저 ‘이야기’일 뿐이라면 어떻게 되는가? 부와 소득의 불평등을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서사에 불과하다면, 즉 자신이 엄청나게 높은 보수를 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정부와 사회가 믿게 만들었던 소수가 보상을 크게 가져가고 우리 대부분은 그 나머지만 가지고 근근이 살게 된 것을 정당화하는 이야기에 불과하다면 어떻게 되는가? 이런 이야기 중 몇 가지를 잠시 짚어보기로 하자.
먼저 살펴볼 곳은 금융 분야다. 2009년에 투자 은행 골드만삭스의 CEO 로이드 블랭크파인Lloyd Blankfein은 골드만삭스 직원들이 “세상에서 제일 생산적인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골드만삭스는 바로 전 해에 1930년대 이래 최악의 금융, 경제 위기를 일으킨 장본인 중 하나였다. 미국 납세자들은 골드만삭스를 구제하기 위해 1250억 달러를 써야 했다. 불과 1년 전에 끔찍한 성과를 냈다는 점을 생각하면 골드만삭스의 CEO가 내뱉은 초긍정적인 발언은 참으로 기이하다. 골드만삭스는 2007년 11월부터 2009년 12월까지 직원 3000명을 해고했고 수익은 급전직하했다. 골드만삭스를 비롯한 몇몇 투자 은행은 벌금도 선고받았다.(골드만삭스 5억 5000만 달러, JP모건 2억 9700억 달러 등으로 벌금의 액수는 위기에서 회복된 뒤 올린 수익에 비하면 미미하긴 했다.) 그러고서도 골드만삭스는 (그 밖의 투자 은행과 해지 펀드들도) 자신이 만든, 그리고 엄청난 혼란을 가져온 복잡한 금융 도구들의 반대 방향으로즉 그것들이 역기능을 일으키리라는 쪽에 도박을 거는 일을 계속했다.
위기에 책임이 있는 은행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많이 나왔지만 어느 은행가도 감옥에 가지 않았다. 그리고 위기 이후 도입된 여러 조치도 은행이 투기로 돈을 벌 수 있는 역량을 거의 위축시키지 않았다. 2009년에서 2016년 사이에 골드만은 매출 2500억 달러, 순익 630억 달러를 올렸고, 2009년에만 134억 달러라는 기록적인 수익을 냈다. 미국 정부는 납세자의 돈으로 은행 시스템을 살렸지만, 지나치게 위험한 활동을 한 은행들에 부담금을 물릴 배짱이 없었고, 그저 빌려준 돈을 돌려받는는 것에 만족했다.
금융 위기는 물론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블랭크파인이 골드만삭스에 대해 드러낸 놀랍도록 긍정적인 자신감은 반세기 전이었다면 찾아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금융은 경제에서 ‘생산적인’ 부분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금융의 중요성은 새로운 부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부를 ‘이전하는’ 용도에 있다고 여겨졌다. 경제학자들은 금융이 순전히 촉매의 역할만 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한 나라의 경제가 산출한 재화와 서비스의 양을 추계할 때 은행서비스예금, 대출 등의 대부분을 포함시키지 않았다. 금융은 국내 총생산GDP에 중간 투입intermediate input 항목으로만 들어갔다. 진짜로 가치를 창조하는 여타 영역들이 잘 돌아가도록 도움을 주는 서비스로 여겨진 것이다.
그런데 1970년 즈음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국민계정한 나라 경제의 규모, 구성, 방향성에 대해 통계적인 그림을 보여주는 국가 전체의 회계 시스템의 GDP 추계에 금융 부문이 ‘생산’ 활동으로 포함되기 시작한 것이다. 국민계정에서의 이런 변화는 금융 부문의 규제 완화와 나란히 이루어졌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은행이 얼마나 많이 빌려줄 수 있는지, 어느 정도까지 금리를 매길 수 있는지, 어떤 상품을 팔 수 있는지 등에 대한 규제가 대거 풀렸다. 종합적으로 이런 변화는 금융 분야가 행동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았다. 또한 금융이 ‘실물’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막대하게 커졌다. 더 이상 금융업은 전처럼 지루하고 밋밋한 직업으로 여겨지지 않았고, 똑똑한 사람들이 많은 돈을 빠르게 벌 수 있는 길로 각광받았다. 실제로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동유럽 출신의 뛰어난 과학자들이 월가에서 자리를 잡기도 했다. 금융 산업은 팽창했고 자신만만해졌다. 그리고 금융이야말로 부의 창출에 핵심적인 분야라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대놓고 로비를 했다.
금융 부문은 비금융 부문예를 들어 제조업을 압도적으로 능가하는 속도로 팽창했다. 하지만 오늘날 문제는 금융 부문 자체의 규모가 커졌다는 사실에만 관련되지는 않는다. 금융이 여타 경제 부문의 행동 방식에 미치는 영향도 막대해졌다. 비금융 부문의 많은 측면도 ‘금융화’되어 버린 것이다. 금융적인 사고와 행동 방식은 산업 부문에까지 깊이 스며들었다. 기업 경영자들이 수익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업에 재투자하기보다 단기적인 주가 부양을 위해 자사주를 매입하는 데 더 많이 쓰기로 결정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자사주 매입으로 주가가 올라가면 스톡옵션의 가치와 경영자가 받는 보수도 높아진다. 이들은 이것을 ‘가치 창조’라고 부르지만 현실은 (금융 분야 자체에서도 그렇듯이) 종종 그 반대다. 가치의 창조가 아니라 착취인 것이다.
가치 창조에 대한 미심쩍은 이야기는 금융 활동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2014년에 거대 제약 기업 길리어드Gilead는 C형 간염생명에 매우 치명적인 질병이다. 치료약 하보니Harvoni의 가격을 3개월치에 무려 9만 4500달러로 매겼다. 길리어드는 이 가격이 하보니가 의료 시스템에 창조해 주는 막대한 ‘가치’를 반영하는 것이라며 정당화했다. 화이자Pfizer의 글로벌 R&D 담당 사장을 지낸 존 라마티나John Lamattina도 특수 의약품의 높은 가격은 그 약품이 환자와 사회 전체에 가져다주는 이득으로 정당화된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약품의 가격을 그 약품이 없어서 해당 질병이 치료되지 못했거나 그보다 못한 차선의 약품으로 치료해야 했을 때 사회에 야기되는 비용과 연계된다. 제약업계는 이를 ‘가치 기반 가격 설정value-based pricing’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 주장은 여러 연구자에 의해 반박됐다. 이를테면 많은 연구에서 암 치료제의 가격과 그 치료제가 제공하는 이득 사이에 상관관계가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피터 백Peter Bach은 각각의 암 치료제가 가져다줄 수 있는 가치환자의 수명을 얼마나 연장시켜 주는지, 부작용은 얼마나 적은지 등에 따라 가격을 설정할 경우 ‘정확한’ 가격이 얼마여야 하는지 알아볼 수 있는 온라인 계산기를 만들었는데, 이렇게 가치에 기반해 가격을 매겨보면 대부분의 약이 현재의 가격보다 낮게 나온다.
그렇지만 약값은 낮아지고 있지 않다. 제약업계가 주장하는 가치창조설이 비판자들의 반박을 누르기에 충분할 만큼 위력적이었던 것 같다. 실제로 서구 세계에서 의료비 지출의 상당 부분은 환자의 건강을 돌보는 것과 관련이 없다. 그것은 제약업계가 ‘착취’해 가는 가치일 뿐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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