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인공존재!
이경수 선생님,
신우정 박사님 장례식장에서 선생님을 뵈었습니다. 인사를 드릴까 했지만 슬퍼하시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워서 뒤에서 지켜만 봤습니다. 언제 한번 직접 만나 뵙고 인사를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는데요, 마침 선생님께 전해드릴 물건이 있어서 이렇게 연락드립니다.
신우정 박사님께서 선생님께 남기신 물건이 있습니다. 신 박사님 물건을 정리하다가 발견했는데요, 회사에서는 이 물건을 선생님께 전해드려도 될지를 놓고 며칠간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회사 프로젝트와 관련된 물건이었거든요. 결국은 전해드리는 편이 낫다는 결론이 났습니다. 신 박사님 뜻이 그렇다면 전하는 게 옳다는 게 회사 분들 생각입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바쁘신 줄은 알지만 언제 한번 시간 내셔서 회사에 들러주시기 바랍니다. 언제쯤 가능하실지 미리 연락주시면, 제가 전해드릴 물건이나 출입절차 등을 모두 준비해놓고 기다리겠습니다. 아무쪼록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백선영 드림
발사가 무기한 연기되었다. 발사체 에네르기야*에서 결정적인 결함이 발견되었다. 핵심부품을 러시아 공장으로 돌려보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나는 대기상태에 들어갔다가 결국 훈련을 잠정 중단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소련에서 개발한 우주왕복선 ‘에네르기야-부란’의 발사체 부분. 부란은 우주왕복선 본체 부분의 명칭이다. 미국 우주왕복선의 액체연료탱크와 고체연료추진체에 해당한다.
그사이에 신우정이 죽었다. 자살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좀더 깨끗하게 목숨을 끊을 수 있었을 텐데, 목을 매고 치열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허공에 매달린 신우정의 시신이 이따금 꿈에 보였다. 존재감 가득한 죽음이었다.
장례식날은 날씨가 화창했다. 약간 더웠지만, 습기 없는 바람이 불어서 쾌적한 날이었다. 그늘에 기대서서 아는 얼굴들이 지나쳐가는 것을 보다가 옛 기억이 떠올랐다. 선크림을 허옇게 바르고 소리를 지르며 함께 뛰쳐나갔던 바닷가. 저녁에는 빨갛게 익어버린 그녀의 어깨에 오이를 썰어 붙였다. 둘이서 떠난 첫 여행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돌아온 뒤에도 내색을 하지 못했다. 같은 주말에 둘 다 얼굴이 까매져서 나타나면 모두가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아서 한동안 친구들도 만나지 않았다.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소중했기 때문에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장례식에 찾아온 사람들을 보니 자꾸 그 시절이 떠올랐다. 첫사랑이었다. 얼마 안 갔지만.
장례식에는 사람이 많았다. 신우정이 알고 지내는 사람이 이렇게 많았나 싶었다. 신우정이 살아 있었다면 어떤 이유로든 경조사에 이렇게 많은 사람을 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혼식에도 겨우 열 명 정도만 불렀으니까. 나는 초대를 받고도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결국 연기되기는 했지만 생애 첫 궤도비행을 위한 대기상태였기 때문이다. 나중에 신우정이 전화를 걸어왔다.
“안 온 거야, 못 온 거야? 너 때문에 신부측 하객 십 퍼센트가 줄었잖아.”
“축의금 보냈잖아. 그럼 됐지.”
“말 잘했다, 축의금. 니가 나한테 달랑 십만 원으로 돼? 백만 원은 냈어야지. 완전 실망이었어.”
“뻔뻔하기는. 다음 결혼식 때 백만 원 줄게.”
“미친놈.”
신우정의 남편은 착한 사람이었다. 아내의 가장 절친한 친구가 첫사랑이었다는 사실을 알고도 아무 소리 하지 않았다. 미국 사람이어서 그런가 보다 했다. 그때는 미국 사람이면 다 그런 줄 알았다.
그날 앤디는 정신이 반쯤 나간 사람 같았다. 아내가 왜 목숨을 끊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나에게 혹시 짚이는 게 없느냐고 물었다. 네가 모르는데 내가 알 리가 있겠냐고 반문했다.
“그렇겠지.”
그가 힘없이 대답했다. 한국말이었다. 그는 한국말을 꽤 잘했지만, 조사(弔詞)는 미리 준비해온 것을 읽었다. 하지만 끝을 맺지 못했다. 눈물을 참지 못해서였다. 나는 울지 않았다. 그가 대신 울었다. 물론 대신 울었다는 건 내 생각일 뿐이다. 그는 울 자격이 있었다. 나는 그 사람보다 더 많이 울 자격은 없었다.
장례식이 끝날 무렵에 나는 그가 쓴 조사 원고를 주웠다. 나중에 돌려줄 생각이었지만 그럴 경황이 없었다.
…… 완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내도 그랬습니다. 아내는 제멋대로이고, 까탈스럽고, 게을렀습니다. 세상이 옳지 않은 일을 강요하면 타협하기도 했습니다. 솔직히 그런 모습을 본 게 한두 번이 아닙니다. 하지만 아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아내가 타협했다면, 그것은 아내가 비굴해서가 아니라 세상이 그만큼 말도 안 되게 잘못됐기 때문이라고 믿었습니다.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아내는 그런 사람이었으니까요.
아내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아내가 최근에 이상한 행동을 하지 않았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는 아내에게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아내가 외로워했다면 그건 그 사람 잘못이 아니라 우리 잘못입니다. 제 잘못입니다. 아내는 무조건 옳았습니다. 세상이 다 틀렸습니다. 저에게 아내는 그런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이제 아내가 없습니다.
아내 차를 빌려 타고 신우정이 다니던 회사 연구소로 갔다. 보안이 너무 철저해서 평소에는 가기가 꺼려지던 곳이었다.
“번거로우셨죠? 요즘 출입절차가 좀 까다로워졌어요.”
“전에 와본 적 있어요. 그때도 벌써 출입절차가 우주센터만큼 까다로웠던 것 같은데요.”
“네에. 근데 최근에 사고가 있어서 더 심해졌어요. 먼 길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어요. 저희가 가서 찾아봬야 하는데, 민감한 사안이라서 바쁘신 분을 오라 가라하게 됐어요.”
백선영 씨는 진심으로 미안해하며 말했다.
“너무 어려워 마세요.”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갔다.
“반출절차는 다 해놨어요. 몇 군데 사인만 하시면 되고요. 서약서 같은 게 있는데요. 잘 아시겠지만……”
“딴 데 가서 팔아먹지 말라는 거죠? 뭘 가져가게 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네.”
나에게 신우정은, 어디 가서 팔아먹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백선영 씨도 물론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신 박사님 프로젝트 시제품이에요.”
“그렇군요. 역시 유작이군요.”
“네, 유작이죠.”
“그런데요, 그걸 왜 저한테 주라고 했을까요? 그 친구 남편한테는?”
“글쎄요. 두 분 일이니 저희는 알 길이 없죠. 신 박사님이 이런 메모를 남기셨어요.”
선영 씨. 나 이거 드디어 완성했잖아. 확실히 제대로 만들었거든. 근데 증명하기가 까다롭네. 품질검사가 어려울 거야. 항공우주국 이경수 씨한테 부탁하세요. 경수 씨 누군지 알지? 내 세컨드.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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