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코로나19, 대구에서
(중략)
‘그림자 노동’ 덕분에
사람들은 코로나19 최전선에 선 의사나 간호사를 ‘영웅’이라 불렀다.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환자들 곁을 지키는 모습에서 감동한 듯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림자 노동’으로 수고한 고마운 분들이 있었기에 의료진이 박수를 받을 수 있었다. 폐기물 처리 노동자, 병원 청소 노동자, 병원 전기실의 노동자, 방역업체 노동자 등 수많은 ‘그림자 노동’ 전사들이 흘린 굵은 땀방울 덕분에 의료진이 안심하고 진료에 전념할 수 있었다.
코로나19 감염증 환자가 사용한 모든 물건은 ‘격리 의료 폐기물’로 조심스럽게 다루어져야 한다. 바이러스 확산 방지를 위해 전용 봉투에 담은 후 합성수지 전용 용기로 이중 밀폐까지 한다. 이 용기의 뚜껑은 한번 닫히면 다시는 열리지 않는다.
매일 오전 11시경이면 방호복을 입은 폐기물 처리 노동자 두 분이 병동에 도착한다. 병실마다 다니며 환자들이 내놓은 환자복, 침대 시트, 이불 등을 전용 봉투에 담는다. 그 과정에서 바이러스가 공기 중에 날릴 수 있기 때문에 바짝 긴장한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에 대비해 전용 용기도 아껴야 하기에 온 힘을 다해 터질 듯 폐기물을 밀어 넣고 겨우 뚜껑을 닫는다. 고글 위로 굵은 땀방울이 떨어진다.
감염의 우려가 있는 의료폐기물은 ‘당일 배출, 당일 수거, 당일 소각’이 원칙이었다. 그래서 코로나19 격리병동에서 나온 무거운 폐기물 용기를 하루에도 여러 번 수거 트럭에 실어야 했다. 입원 환자가 많을 때는 30리터 용기가 600개 넘게 나오는 날도 있었다.
어느 날 병원 지하에 임시로 마련된 외부용역업체 직원휴게실을 지나는데 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차가운 바닥 위에 스티로폼만 깐 채 한 분이 누워서 쉬고 계셨다. 마음이 아팠다. 편한 소파에 앉아 준비된 간식을 먹던 내가 너무나 부끄러웠다.
코로나19 전담 병원의 교대 시간은 그야말로 전쟁터다. 병동으로 들어가는 의료진과 근무를 마치고 나오는 의료진이 바쁘게 교차한다. 방호복을 벗은 의료진은 샤워를 위해 탈의실에 줄을 선다. 이 행렬이 어느 정도 끝이 나면 땀에 젖은 수술복이 산을 이룬다. 이럴 때면 어김없이 머리띠를 단단히 두르고 마스크를 한 채 나타나는 분들이 있다. ‘여사님’이라 불리는 청소 노동자들이다. 의료진의 아침 교대 시간은 7시 30분이지만 이분들은 새벽 6시부터 나와서 일을 한다.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자, 닦고 쓸고 치워야 하는 일이 더 많아져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탈의실을 정리하고 빨랫감을 거두고 의료진 숙소를 청소하고 부족한 물품을 채우다 보면 어느덧 교대 시간인 오후 3시가 된다.
하루는 병원 2층 청소 노동자들의 휴게실에 가볼 일이 있었다. 학생들 실습실을 개조한 너무나 좁은 방에 십여 명이 훨씬 넘는 분들이 다닥다닥 어깨를 붙이고 앉아 계셨다. 그곳에서 작업복도 갈아입고 쉬기도 하고 너무 힘들 때면 짬짬이 눈을 붙이기도 한다고 귀띔해 주셨다. 방금 청소를 마치고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채 들어오던 한 분은 반창고를 붙인 간호사들 얼굴이 상할까 봐 걱정이라며 안타까워하셨다. 그 마음이 참 고마웠다.
병원의 청소 노동자들은 대부분 적은 시급을 받는 용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다. 코로나19 전담 병원에서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고 일하지만, 감염 예방 교육을 제대로 받은 분은 거의 없었다. 그래도 요즘 같은 때 하루 한 개 지급받는 마스크도 감사하다며 웃으셨다.
선별진료소가 코로나19 바이러스에 오염되었을지 모른다며 허술한 방호 장비를 한 채 독한 소독약으로 닦고 또 닦던 노동자들, 병동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지하 2층 전기실에서 주야로 애써주던 노동자들, 방호복을 입고 무거운 약통을 짊어진 채 병원 안팎을 소독하던 방역업체 노동자들, 이런 분들이 없었다면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어려웠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그분들을 병원에서 가끔 마주쳤다. 그러나 고맙다는 인사를 제대로 한 적이 거의 없었다. 의사, 간호사들의 감염 우려에 대해서는 크게 외치면서 그들의 부실한 보호 장구와 열악한 근무 환경에 대해서는 마음을 쓰지 못했다. 부끄러웠다.
대구에 코로나19 첫 확진 환자가 나온 지 52일 만인 지난 4월 10일, 드디어 신규 확진 환자가 0명을 기록했다. 신종 감염병의 확산세가 다소 진정되자 외양간을 미리 튼튼하게 고치지 않아 소를 잃게 만든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자화자찬하기에 바빴다. 그 시간에도 수많은 노동자는 코로나19 최전선에서 묵묵히 ‘그림자 노동’을 하며 땀을 흘리고 있었다.
머지않아 우리가 코로나19를 극복한다면, 그들의 ‘그림자 노동’ 덕분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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