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70년이 더 지난 스페인에서…
이 그래픽 노블의 목적은 프랑시스코 부아와 그 동료들의 특별한 이야기를 들려주려는 것만이 아니라 스페인 홀로코스트와 생존자들의 운명을 알리는 것이다.
이상하게도, 스페인 홀로코스트는 스페인 역사학에서 거의 논의되지 않았고 대중문화에서 도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므로 다른 나라에서 이 역사를 잘 모르는 것이 놀랍지 않다. 사람들은 쇼아*를 이야기하고 집시와 동성애자와 정치범에 대한 홀로코스트에 관해 이야기하지만, 스페인 홀로코스트에 관해서는 거의 말하지 않으며 스페인에서조차 그러하다.
*쇼아Shoah는 홀로코스트의 히브리어 표현이다. 홀로코스트Holocaust는 그리스어 hólos전체 + kaustós타다에서 유래한 말로 제2차 세계대전 중 아돌프 히틀러가 이끈 나치 당이 독일제국과 독일군 점령지 전반에 걸쳐 계획적으로 유대인과 슬라브족, 집시, 동성애자, 장애인, 정치범 등 약 1100만 명의 민간인과 전쟁포로를 학살한 사건을 가리킨다. 사망자 중 유대 인은 약 600만 명으로, 그 당시 유럽에 거주하던 900만 명의 유대인 중 약 3분의 2에 해당한다. 홀로코스트의 사망자들은 독일 전역과 독일 점령지의 4만여 개의 시설에 집단 수용되고구금되어 여러 수단과 방식으로 죽임을 당했다.
이 상황이 더욱 기이한 것은 홀로코스트가 전쟁 중에만 또는 강제수용소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파시즘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수만 명의 스페인 사람을 죽였을 뿐만 아니라 전쟁 전과 후에도 그러했다. 현재까지 추정으로는, 스페인 내전 때와 전쟁 후 프랑코 독재의 길고 끔찍한 세월 동안 5만에서 40만 명이 사망했다.
사람들은 그동안의 고통을 보상하고 역사의 이 어두운 페이지를 만인에게 밝히는 데 스페인 정부가 권한 내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기를 바랄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2017년 현재까지도, 1977년 법은 전쟁과 프랑코 정권 때 학대와 고문과 집단학살을 저지른 사람들에 대한 재판을 금지하고 있다.
오늘날까지 불법적으로 처형된 약 13만 6000명의 유해가 유족들에게 돌아가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그들에게 알맞은 묘지조차 제공되지 못했는데, 살인자들은 반인도적범죄反人道的犯罪를 저지르고도 법정에 출두한 적이 없다. 스페인은, 캄보디아 다음으로, 전세계에서 두 번째 최다 실종자를 기록한 나라인데도, 실종자 신원확인이나 사체발굴을 하지 않았다.
2007년, 스페인 정부가 프랑코 정권 때 희생된 사람들의 신원을 확인하고 사체발굴을 하고 가족과 수감자들을 위한 단체에 재정적 지원을 하도록 법이 통과되었다. 그러나 2013년, 정부는 이 법을 적용하는 데 단 한 푼도 주지 않았고 사실상 법을 폐지한다. 그런 식으로, 범죄인과 마찬가지로, 스페인은 자국의 법을 위반하고 만다. 같은 해, 카탈루냐 정부 대표단이 히틀러 군대 편에서 싸웠던 푸른 사단División Azul이 참석한 추모식에 출석한 것을 대 체 어떻게 보아야 하나?
국제앰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 휴먼 라이츠 워치 Human Rights Watch, 유럽 평의회 le Conseil de l'Europe, 국제연합UN과 같은 단체들은 스페인 정부에 이들 범죄 행위에 대해 조사를 하고 사면법을 폐기할 것을 강하게 요구했으나 헛된 일이었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스페인은 1978년 민주주의 국가가 되었지만 그 조건은 자국의 과거를 잊는 것이었다. 그런 방식으로 처신한다면, 스페인이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라 할 수 있는가? 오늘날까지도, 우리나라의 정치인들, 기업인들, 사제들, 판사들, 왕가의 많은 이들이 프랑코에게 복종하는 법의 혈연적 또는 정신적 계승자들이다. 즉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고 그것도 단단히 결속되어 있다.” 그렇지 않다면, 한편으로는 반인도적범죄에 대해 관용을 베풀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 범죄의 희생자와 그 가족들을 무시하는 처사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과도기의 세대는 잊어버리자고 약속했을지라도, 다음 세대는 그런 약속을 하지 않았다. 우리 세대는 침묵하기를 거부하고 말하고 증언하기를 약속하는 세대다. 그렇기 때문에 정상적인 나라에서는 우리 이야기의 중심인물이자 뉘른베르크 법정에서 증언한 유일한 스페인 사람인 프랑시스코 부아가 영웅으로 평가된다. 용기와 저항과 자유의 상징으로 말이다. 부아나 수만 명의 공화파 사람들과 마우트하우젠 수감자들과 망명자들이 겪은 일을 아는 사람들은 실제로는 별로 없다.
따라서 우리의 의도는 그들이 하던 일을 계속하는 데 있다. 즉 마우트하우젠의 이야기를 모두가 알 수 있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생존자들과 그 후손들은 “s”가 새겨진 파란색 삼각 표식이 보여주는 것처럼 스페인 사람이면서 동시에 무국적자였던 수감자들과 같은 운명을 겪게 될 것이다. 다른 국적의 생존자들이 자유인으로서 본국으로 되돌아갈 때, 스페인 사람들은 자국의 지도자들에게 버림받아 갈 곳이 없었고,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를 옹호한 사람으로서 응당 가질 영예나 재정적 보상을 받지 못한 채 망명살이를 해야 했다.
그들의 이야기는 그것을 증언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결코 망각 속으로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2017년 3월, 살바 루비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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