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핸들을 잡을 때
엄마의 집은 끓는 냄비에서 피어오른 열기와 이국의 향신료 냄새로 가득했다. 엄마는 나의 갑작스런 등장에도 놀라지 않았다. 그저 연락도 없이 어쩐 일이냐고 무심하게 한마디 던지고는 묵묵히 하던 일을 했다. 뜨거운 냄비 속으로 숙주를 넣는 일. 곧 숙주 말고도 배추며 청경채며 어묵이며 무 같은 것들이 냄비로 들어갔다.
엄마는 손이 컸다. 형제가 많은 집의 맏이로 요리를 배운 탓도 있었고, 오래도록 식당을 운영하며 새겨진 감각 때문이기도 했다. 양파 두 개보다는 양파 이 킬로그램, 쇠고기 일인분보다는 쇠고기 두 근에 맞춰진 엄마의 계량은 식당을 그만두고 식구가 하나둘 줄어가는 동안에도 좀처럼 바뀌질 않았다.
뭘 그렇게 많이도 끓이고 있느냐고 물으니 생각하지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마라탕”
엄마가 붉은 기름이 담긴 유리병을 보여주었다. 낯선 손글씨로 ‘마라탕 소스’라고 적혀 있었다. 엄마는 추어탕에 산초도 넣지 않고 카레 냄새도 싫어하는 사람인데. 한번은 베트남 쌀국수를 먹자는 내 말에 같이 식당에 들어갔다가 고수 냄새가 너무 괴롭다며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나온 적도 있었다. 그런 엄마에게 마라탕 레시피를 전수해준 사람은 엄마의 새 친구 금자씨였다.
엄마는 일주일에 서너 번씩 인력사무소의 연락을 받아 입주청소를 하러 다녔다. 일솜씨가 좋아서 남들보다 일당을 더 받는다고 했다. 엄마에게 일을 배우라며 인력사무소에서 초보자를 보조로 붙여 보낼 정도였다. 금자씨는 엄마가 지난달에 일하러 간 오피스텔에서 만난 보조였다. 엄마는 처음엔 유난히 말수가 적은 금자씨가 불편했다. 짧으면 다섯 시간, 길면 여덟 시간을 같은 공간에서 손발 맞춰 일해야 하는 사람이 낯을 심하게 가리는 성격인 줄 알고 피곤하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 금자씨의 속사정을 알게 되었다.
“아직 우리말이 서툴러서 그랬던 거야. 괜히 트집 잡힐까봐.”
엄마는 손이 빠르고 눈이 밝은 금자씨가 마음에 들었다. 만약의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는 점도 똑똑하다고 생각했다. 인력사무소에 연락해서 이왕 보조를 보낼 거면 계속 금자씨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그렇게 한 세 번쯤 같이 일하니까 그때부터 자꾸 나한테 뭘 주더라고. 이게 그 관시인가, 그건가. 너 관시 알아? 중국인들은 관시를 엄청 챙긴대.”
“그냥 선물이겠지 뭘 바라고 주는 거면 엄마 말고 인력사무소에 주지 않겠어?”
“그런가.”
엄마는 그릇을 들어 마라탕 국물을 후룩 소리를 내며 마셨다. 밥상을 물리고는 엄마와 나란히 거실 바닥에 앉아 소파에 둥을 기대고 텔레비전을 보았다. 역시 금자씨가 주었다는 젠빙을 후식으로 씹으면서. 젠빙은 곡물 가루로 부쳐낸 전병이었는데, 먹는다기보다는 씹는다는 표현이 어울렸다. 겹쳐 있을 때는 둥글넓적한 반죽 덩어리 같더니 한 장씩 떼어내자 종잇장처럼 얇았다. 별맛이랄 것은 없이 은은한 곡물 냄새만 났다. 그 심심함이 묘하게 자꾸 당겨서 누가 계속 입에 넣어주면 하염없이 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토끼나 염소가 된 것 같은 기분으로 젠빙을 씹으며 엄마에게 일일 드라마의 지난 줄거리를 듣고 있을 때만 해도 나는 내가 곧 금자씨를 만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금자씨와 만난 건 운전학원 접수처에서였다. 엄마도 함께였다. 우리 셋은 ‘도로주행 완전정복 운전연수 속성 코스’를 공동 등록하기로 했던 것이다. 엄마의 제안이었다. 엄마네 집에서 지낸 지 사흘이 되었을 때 엄마가 물었다.
“너 요즘 일은 없니?”
“여기저기 이력서는 넣고 있는데 딱히 소식이 없네.”
“전에 일했던 곳에 한번 연락해보지.”
“아무래도 서울에서 일하기는 좀 그렇지. 왔다갔다하기가.”
“너 상미랑 싸웠니?”
“아닌데?”
“그럼 왜 너희 집에 안 가는데?”
“그냥, 좀 그런 일이 있었어.”
굳이 말하자면, 비보호좌회전 때문이었다. 시작은 그랬다.
상미는 일주일에 하루 일요일에만 쉬었다. 하루만이라도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다며 일요일에는 밖으로 나가기를 꺼려했다. 그런 상미를 겨우 설득해 나선 길이었다. 목적지는 인터넷을 검색해서 알아낸 카페였다. 커다란 유리온실 같은 건물을 식물원처럼 꾸며두었다고 했다. 서울에서 데이트할 때 지주 먹었던 아인슈페너와 카눌레도 팔고 있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운주시 부근에서 그런 디저트를 파는 카페는 그곳뿐이었다. 게다가 상미는 꽃을 좋아하니까, 나가는 건 귀찮아도 막상 가면 기분이 좋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실은 무엇보다도 나에게 기분전환이 필요했다.
서울에 살 때는 성인들을 대상으로 취미 미술 수업을 했다. 백화점 문화센터나 지역 주민센터에서 그룹 수업을 하기도 하고, 직장인들을 위해 퇴근시간에 맞춰 회사 근처 카페에서 개인 수업도 했다. 오랜만에 연필을 잡으니 설렌다는 말, 여러 색의 색연필을 쓰면서 기분이 좋았다는 말을 들으면 뿌듯했다. 하지만 상미를 따라 운주시로 온 뒤로는 수업을 하지 못했다.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는 운주시 사람들에게는 퇴근 후의 취미생활’이나 ‘주말의 여가활동’에 대한 수요가 없었다. 지역 주민센터에 강의 제안서와 이력서를 보내봤지만 회신이 오지 않았다. SNS에 올린 수업 안내문도 반웅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상미가 출근하고 나면 아직 가구를 다 들여놓지 못한 낯선 집에서 하루종일 인터넷 서핑을 하거나 동영상을 보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의 전부였다.
카페가 근처에 있는 게 분명한데 내비게이션의 GPS 신호가 잘 잡히지 않았다. 갈림길을 지나친 뒤에야 핸들을 꺾었어야 할 방향을 알려주는 안내음 때문에 계속 같은 길을 돌았다. “경로를 재탐색합니다.” 안내음이 나올 때마다 상미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피곤해 보였다. 나는 상미의 눈치를 살피며 내비게이션을 노려보았다. 카페에 가고 싶은 마음 같은 건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하지만 이제 와서 집으로 돌아가자고 할 수도 없었다. 그러기엔 너무 오래 헤맸다. 겨우 카페 간판을 발견했을 때 나는 제발 카페가 상미의 마음에 들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카페 주차장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비보호좌회전을 해야 했다. 상미는 깜빡이를 켜고 정지선에 맞춰 선 채 반대편 차선에서 오는 차들을 한참 바라보았다. 내비게이션이 “좌회전 후 목적지 부근입니다”라고 세 번이나 안내하는 동안에도 상미는 핸들을 꺾지 않았다.
“왜 안가?”
“계속 차가 오잖아.”
“지금 가면 될 거 같은데.”
“아직 아니야.”
“지금은?”
“아니야.”
“지금은 괜찮은 거 같은데.”
상미는 더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상미는 운전을 할 때면 종종 말을 붙이기 어려울 정도로 예민해졌다. 그런 상미의 옆자리에 타고 있으면 함께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로 운반되는 기분이었다. 왜 그렇게 심각하냐고 물으면 긴장을 해서 그렇다고 했다. 면허증을 갱신할 정도로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운전을 해왔는데도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고 핸들을 잡을 때마다 두려운 마음이 든다고 했다. 아무리 조심해도 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에 긴장을 놓을 수가 없다며 그렇게 힘이 들면 내가 운전을 하겠다고 했지만 상미는 절대 나에게 핸들을 내주지 않았다. 면허 시험 이후로 한 번도 도로에 나가본 적이 없으니 위험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래도 해봐야 늘지 않겠느냐고 대꾸하면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을 잘랐다. “내가 하면 되지. 너까지 위험할 게 뭐가 있어.” 서울에서는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부득이한 경우에만 운전을 했던 상미는 운주시로 인사발령을 받고 나서는 매일 운전해서 출퇴근을 했다. 지하철이 없고 버스 배차간격은 삼십 분이 보통인 소도시에서 운전을 하지 않고 보낸 첫 일주일이 상미를 충분히 질리게 했기 때문이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버스 정류장은 천川을 건너야 있었고, 상미의 직장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 노선은 없었다. 어느 퇴근길에는 돌다리 옆에서 쥐떼가 물을 참방참방 튀기며 놀고 있었다고 했다. 상미는 돌다리를 건너지 못하고 멀리 육교를 지나 집으로 왔다. 한여름이었다. 상미의 감색 블라우스에 하얗게 소금기가 올라와 있었다. 비가 많이 내리던 어느 날에는 우산을 쓰지 않은 남자가 버스 정류장 건너편에서 상미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고 했다. 상미는 직장 동료의 소개로 중고차를 샀다. 왕복 두 시간이었던 출퇴근 시간이 사십 분으로 단축되었다.
“대체 언제 가려고 그래? 지금 가도 되잖아.”
상미는 여전히 앞만 보았다. 반대편 차선에서 직진해 오는 차들 사이에는 충분한 간격이 있었다. 내가 보기엔 그랬다. 하지만 상미는 양쪽 차선 모두에 정지신호가 켜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통행량이 많은 도로가 아니어서인지 신호는 한참동안 바뀌지 않았다.
(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