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대구의 희망을 보듬다
코로나가 만들어준 새로운 경험, 온라인 독서토론
김남이 | 독서동아리 ‘책 읽는 사람들’ 회원
흔들린 봄이었지만 목련도 개나리도 벚꽃도 피어났고, 이제 또 차례로 지고 있다. 중학교 입학이라는 기대를 부풀리던 조카는 4월이 와도 아직 상급학교 교문을 들어서지 못했고, 아들의 대학 합격과 기숙사 당첨 소식에 거금을 납부하고도 홀가분해 하던 친구는 여전히 타지의 아들 기다리는 일을 못 해보고 있다. 새 얼굴들과 합세하여 봄학기 교정의 꿈과 생동감을 지켜주던 꽃들이 올해는 정다운 소란도 없이 저희끼리 고요히 피고 진다.
군복무 중인 아들의 3월 초에 예정된 휴가가 취소되어 안타까웠지만, 코로나-19의 와중에도 일상사는 평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개학을 기다리는 아이도 없고, 도보로 이삼 분 거리인 나와 남편의 일터도 조금 한가해졌다는 것 말고는 그대로였다. 새삼 자각하는 일이지만, 이전에도 나의 일상은 거의 격리자 수준으로 단조로웠다. 살림과 밥벌이의 후줄근함으로 채워지는 하루를 달래기 위해 짬짬이 책을 보고 산책을 하는 생활의 반복이었다.
그러나 이런 내게도 코로나-19의 타격은 비껴가지 않았다. 지난해에 집안의 중대사가 많았고, 그리하여 올해는 조용한 일 년이 될 것이란 예상과 함께 책을 좀 더 집중적으로 봐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터였다. 마침 고전 읽기 모임에서 2월의 책으로 『모비딕』을 선정했고, 두꺼운 책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2개월에 걸쳐 3월까지 절반씩 나누어 읽고 두 번의 토론을 갖기로 했는데, 여기에 코로나-19가 일말의 개입을 한 것이다.
시립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한 것은 2월 2일이었는데, 빌리고 보니 900여 쪽의 목침 같은 책이었다. 절반이라도 450쪽, 몰입을 잘 하는 누군가에겐 별일 아닐 수도 있지만 나는 보름 동안 읽어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숙제가 아니면 손에 잡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하루에 30쪽씩 읽어내면 되는 일이다. 피치 못한 날도 있을 것이므로 매일 35쪽씩 읽기로 했다.
포경선 선원들이 거대한 고래인 모비딕과 싸우듯이, 나는 이런 책을 쓰는 사람도 있는데 읽는 것조차 못 하냐고 자신을 닦달하며 보름 동안 매일 밤 이 책과 싸웠다. 두 번의 주말 낮까지 할애하여 간신히 450쪽을 읽었다.
2월 17일, 그때까지는 대구가 청정 지역이라 토론 모임은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올해는 『모비딕』을 다 읽는 것만으로도 할 말이 있겠다고 스스로 의기양양해서 토론에 참석했다. 돌아와 그대로 보내기엔 아쉬운 책 속 문장들을 발췌, 타이핑해놓고 19일에 책을 반납했다. 대출 기한 때문에 3월 초에 다시 빌리리란 생각이었다. 18일 뉴스에 대구 확진자 소식이 있었지만, 앞으로의 파장을 예측하지 못한 채였다.
20일 도서관에서 문자가 왔다. 3월 4일까지 휴관이라는 공지다. 3월 5일에 빌려서 11일 동안 좀 더 고강도로 읽으면 되겠기에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그동안 쌓인 시집과 문예지들을 봐야 했다. 그런데 자꾸 뉴스 기사와 TV 화면으로 향하는 눈 때문에 책들이 제자리인 상태로 시간이 흘렀다. 그사이, 무소식이 희소식이겠거니 하며 서로 바쁜 상대를 이해해주던 옛 직장 친구와 다 커서 일가를 이룬 조카들로부터 몇 통의 안부 문자와 전화가 왔다.
그리고 3월 3일에 도서관에서 다시 문자가 왔다. 무기한 휴관을 알려 주었다. 한 종교단체에서 시작된 불씨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상황에서 3월 토론 모임은 이미 불가한 일이었지만, 토론과 무관하게 계획대로 책을 보려던 마음이 그 문자에 사그라지고 말았다. 의료 현장에서 사투를 벌이는 환자와 의료진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 일임이 분명한데, 호사스런 처지라 생각하면서도, 팽팽한 줄이 끊어진 것 같은 무기력감이 밀려왔다.
소소한 기분 전환을 위해 걸어서 한 시간가량의 거리들을 찾아다녔다. 딱히 용무도 없었지만, 모두를 위해 대중교통 이용을 삼가야 했다. 서문시장과 반월당과 이십 년 전에 살던 동네까지 걸어 가보고 그냥 돌아오곤 했다. 그러면서 3월 토론일인 16일을 맞았다. 회원들은 꺾이지 않았고, 처음으로 온라인 토론이 진행되었다. 우리는 선원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선장에 대해 얘기했고, 보편적 모비딕과 각자의 모비딕에 대해서 의견을 주고 받았다.
이렇게 3월의 토론이 지나갔고 계속 새로운 책이 몰려오고 있으니, 올해 『모비딕』에 대한 나의 작은 포부는 이미 틀어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어떤 방향으로 생각을 몰고 갈 수는 있다. 지금 우리 모두의 모비딕은 코로나-19일 것이라는, 우리의 선장은 에이해브처럼 무모하지 않고 스타벅처럼 냉철한 이성을 가졌을 것이라는, 그래서 다 같이 파국으로 치닫는 우매를 범하지 않고 장기적인 국익과 국민의 건강을 지혜롭게 도모할 것이라는. 이것은 거의 믿음에 가깝다.
이 환란 앞에서 사회 구성원들 모두의 각성도 필요할 것이다. 이 책의 작가가 “인간은 누구나 포경 밧줄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모든 인간은 목에 밧줄을 두른 채 태어났다. 하지만 인간들이 조용하고 포착하기 힘들지만 늘 존재하는 삶의 위험들을 깨닫는 것은 삶이 갑자기 죽음으로 급선회할 때뿐이다.”라고 설파한 것처럼, 꼭 이 감염병이 아니라 해도 먹고 누리는 것에 대한 우리의 끝없는 욕구와 쾌락 추구는 언제든 인류를 무너지게 할 수 있으므로.
쑥떡 싸서 봄소풍 가자던 중학교 때 단짝 친구와의 약속도, 꽃필 때 만나자던 선후배와의 기약도 물거품이 되었지만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은 겁쟁이보다 훨씬 위험한 동료”라는 책 속 구절을 우리 모두 알고 있는 까닭이다. 허먼 멜빌이 너새니얼 호손의 격려로 힘든 집필 과정을 견뎌내고 이 소설을 완성했듯이,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에게 건네는 응원도 뜻밖의 재난에 끝까지 마음을 모은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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