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는 글
법조계의 대명사인 서초동은 ‘하수 종말 처리장’에 곧잘 비유된다.
법조인들이 자주 쓰는 이 말엔 자조의 정서가 스며 있다. 타협과 화해, 양보와 용서로 끝맺지 못한 모든 갈등과 쟁투가 쓰고 버린 물 마냥 이곳으로 모여든다. 그리고 이런저런 절차와 단계를 거쳐 나름의 ‘최후’를 맞는다. 상서로운 풀이라는 동네 이름과 달리, 서초동은 ‘욕망의 종말 처리장’에 가깝다.
그렇다고 늘 시끄러운 건 아니다. 대개 99.9%의 사건은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처리된다. 이 동네가 언론에 오르내린다면 틀림없이 0.1%에 해당하는 사건을 처리하느라 요란할 때다. 그 0.1%에는 거의 예외 없이 짙은 정치색이 배어 있다. 재벌 총수가 관련된 사건, 성추문일지라도 정치적 함의가 없는 사건은 거의 없다.
0.1% 사건은 주로 권력이나 정치인이 만들어낸다. 그들은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거나 치유하는 데 품을 들이는 대신 손쉬운 고소·고발을 남발한다. ‘정치 과정’을 종종 생략한 채 ‘서초동’으로 보내버리는 것이다. 정치적 갈등이 법적 판단의 영역으로 전이되는 이 불행한 현상을 학자들은 ‘정치의 사법화’라고 이름 붙였다.
검찰이 알아서 먼저 달려들기도 한다. 고소·고발이 없는 데도 검사가 범죄의 단서를 찾아 수사를 개시하는 ‘인지’ 수사, 직접 수사를 통해서다. 주로 집권 세력의 반대편인 야권을 겨냥하지만, 요즘은 여야의 최소 균형을 맞추려 애쓴다. 그럼에도 2019년 여름의 끝에 시작된 ‘조국 수사’는 통상의 문법과 달리 ‘살아 있는 권력’, 그것도 최고 실세를 겨눈 희귀한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이렇게 0.1%의 사건을 놓고 검찰은 부단히 정치와 결부된다. 물론 ‘선출된 권력’이 ‘선출 안 된 권력’을 통제하는 건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그러나 그 절차 어디쯤에 집권 세력의 불순한 이해관계가 침투하면 과정이 왜곡되고 결과도 정의와 멀어진다. 검찰이 ‘오염’되었다면, ‘원죄’는 정치권에 있다.
검찰은 외양상 행정부에 속한 법무부의 외청外廳에 불과하다. 하지만 하는 일의 상당 부분이 법원의 재판과 연결되어 있다. 수사는 형사 재판을 위한 준비 절차이고 예비 단계다. 경찰이 송치한 사건도 마찬가지다. 기소를 하면 3심이 끝날 때까지 형사재판의 당사자로서 공소유지를 맡는다. 법관들은 싫어하는 표현이지만, 검찰 스스로 ‘준 사법기관’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우리나라 검찰은 수사와 기소를 도맡아 한다. 최초의 범죄 인지부터 수사의 전개는 물론 기소 여부 결정기소 독점, 재판 관여까지가 모두 검사의 권한이다. 수사의 착수자와 종결자가 구분되어 있지 않은 독점적 일관공정이다. 당연히 오류와 오판의 가능성이 있지만, 검증과 견제의 장치는 법원을 제외하고는 전무하다. 검찰의 막강한 ‘힘’은 수사권과 기소권의 결합에서 나온다.
이런 검찰을 집권 세력은 ‘통치의 도구’로 써먹었다. 야당을 비롯한 반대 세력을 제압하고, 정파적 목적과 이익을 달성하기 위해서다. 역대 정권에서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라는 검찰청법의 문구는 허언에 불과했다. 국가정보원, 국군기무사현 국군안보지원사령부, 경찰, 국민권익위원회, 감사원, 공정거래위원회 또는 청와대에 접수된 각종 ‘첩보’를 내려 보내 수사하게 했다. 이른바 ‘하명下命 수사’는 당연히 야권 인사가 주 타깃에 되었다. 선거법 고소·고발이 난무하는 선거철엔 야당 후보를 죽이는 수사, 여당 후보는 유야무야하는 수사를 은밀히 지시했다. 어차피 들어온 고소·고발이라도 즉시 압수수색을 하고 않고는 천지 차이인데, 칼자루는 물론 검찰이 쥐고 있다.
눈치 빤한 검찰은 주로 야권을 겨눈 표적 수사, 별건 수사, 먼지떨이 수사로 집권 세력에 충성을 다했다. “혐의가 있어서 수사하는 게 아니라 혐의를 찾기 위해 수사한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반면 여권 수사는 야권 수사와 판이했다. 수사를 하지 않고 뭉개거나 봐주기를 서슴지 않았다. 도저히 피해갈 수 없는 경우는 ‘저울추’를 맞출 야권 인사가 나타날 때까지 캐비닛에 넣어뒀다 꺼내어 수사하기도 했다. 검찰이 ‘정치검찰’, 더 나아가 ‘정권의 충견’이란 오명을 얻게 된 연유다.
그때마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 수사 독립성은 크게 흔들리고 의심받았다. 하지만 정파적 이익 달성이 유일한 목표인 집권 세력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정권 교체는 검찰의 ‘목줄’을 잡은 주인이 바뀌었다는 뜻이다. 검찰 내 ‘주류’도 일대 전변이 이뤄진다. 어제의 주인이 이젠 공격의 대상이다. 검찰의 별명에 ‘하이에나’가 추가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략 노태우 정권부터 시작된 이런 패턴은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정치권력이 검찰을 선호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거칠고 보안 유지가 어려운 경찰, 교도소 담장 위를 걸어야 하는 정보기관과 달리 검찰을 동원하면 사법적 외양으로 세련된 포장이 가능하다. ‘총성 없는 사회적 매장’에 범죄의 낙인만큼 강력하고 효과적인 방편은 없다.
그러나 검찰에 허용된 ‘임계선’은 명확하다. 집권 세력, 그 구성원, 주변의 우호 세력이 다쳐서는 안 된다. 역대 어느 정권도 예외를 용납하지 않았다. ‘레드라인’을 벗어나면 어김없이 징치와 보복이 따랐다. 검사들의 아킬레스건, 인사를 통해서다.
검사도 공무원이다. 인사와 승진에 대한 희망과 욕구에선 여느 직장인과 차이가 없다. 검사들이 선망하는 자리와 경로는 대략 정해져 있다. 평검사 때는 법무부와 대검, 서울중앙지검 가운데 두 곳만 근무해도 잘 나간다는 소리를 듣는다. 대검이나 법무부의 과장을 거쳐 15년 차 내외에 달게 되는 부장검사 때는 서울중앙지검 부장 입성 여부가 관건이다.
그 뒤 대검, 법무부의 기획관급차장검사을 거치고, 서울중앙지검 차장 혹은 서울시내 4개 지청의 차장, 수도권 주요 지청장까지 하면 ‘검사의 별’이라는 검사장 자리를 바라보게 된다. 그러나 ‘당첨’ 확률은 혹독하다. 한 기수에서 8~9명, 정권의 부침 등 여러 변수에 따라 오락가락하지만 대략 9~10대 1의 경쟁을 뚫어야 검사장이 될 수 있다.
서초동엔 업무 능력과 별 상관없이 늘 ‘양지’를 골라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처가를 잘 둔 ‘서랑壻郞, 사위족’, 아버지가 법조인인 ‘자제족’은 이른바 ‘귀족 검사’의 기본이다. 여기에 각종 인연이 추가된다. 경기고·경북고·광주일고 등 전통의 명문고로부터 최근 주목받는 대원외고까지 특정 고등학교 학맥, 끈끈하다고 소문 난 고대나 성대 등 그 밖의 학연이 있다. 근무연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특정 시점, 특정 검찰청에서 각별해진 ‘○○○ 사단’, 법무부 검찰국이나 대검 기획조정부를 거친 ‘기획통’,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와 대검 반부패부과거 중앙수사부를 거친 ‘특수통’, 공안 전공의 ‘공안통’ 등 각종 ‘통’들까지 나름의 무리가 있어 밀어주고 당겨주며 좋은 보직을 차지한다.
하지만 강력한 변수가 있다. 5년마다 정권이 바뀌면 검사들 경력과 인사도 요동친다. 반대 진영으로 정권이 넘어가면 파장은 더 커진다. 가령 최초로 정권 교체가 이뤄진 김대중 정부에선 과거 경력을 불문하고 호남 출신이 대약진하는 천지개벽이 일어났다. 박근혜, 이명박 정부에서 성골, 진골은 대구경북TK 출신이 차지했다. 능력은 다음이다.
총장 기수의 변동 폭에 따라서도 인사가 춤을 춘다. 흥한 기수, 망한 기수가 나오고, 같은 기수 안에서도 선두가 중간으로 처지는가 하면 꼴찌가 치고 나가기도 한다. 대통령 임기 5년의 영향은 직급이 높을수록 커진다. 5년은 생각보다 길다.
정권은 검사들을 인사로 길들였다. 검찰청법엔 장관이 총장의 “의견을 들어” 인사안을 만든 뒤 대통령의 재가를 받게 되어 있다. “검사의 임용, 전보, 그 밖의 인사에 관한 중요 사항을 심의”검찰청법 제35조하는 기구로 검찰 인사위원회라는 걸 만들기도 했다. 모두 듣고 보기 좋은 말일 뿐 현실은 다르게 움직인다. ‘법외 실력자’인 대통령 민정수석 인사의 방향을 정하고, 어느 자리에 누구를 앉힐지를 정하기도 한다. 심지어 인사안을 갈아엎는 수도 있다. 대통령의 권력을 등에 업고 음지에서 벌이는 이 모든 일의 목표는 단 하나의 지점, 정권 보위와 정파적 이익 도모로 모아진다.
검찰 속담처럼, 개별 검사에겐 “배당이 결재보다 중요하다.” ‘사건 운’은 그만큼 결정적이다. 0.1%의 사건이 검사의 직업적 운명을 좌우한다. 출세욕과 공명심이 남다른 검사에겐 인생 역전의 발판이 되기도 한다. 광우병 보도로 알려진 MBC 〈PD수첩〉 사건 수사 팀장은 ‘윗선’의 지시를 뭉갠 ‘죄’로 결국 옷을 벗었다. 반면에 그 사건을 이어 맡아 무리하게 기소 ―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되었다 ― 한 수사팀장은 이명박 정부에서 승진 가도를 달렸다. MB에게 ‘면죄부’를 줬던 ‘BBK 특검’ 사건 파견 검사들도 이명박 정부 내내 보직 관리를 받았다. 숙이면 출세하고, 개기면 위태롭다.
극적인 사례는 2013년 채동욱 검찰총장의 강제 퇴임이다. 댓글수사로 박근혜 정권의 역린을 건드린 그는 용서받지 못했다. 수사팀장 윤석열의 좌천, 수사팀 검사들의 인사 불이익도 같은 맥락 안에 있다.
보수 정권만 그런 것도 아니다. 멀리 가지 않아도 된다. 문재인 정부 들어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을 수사한 서울동부지검은 2019년 여름 인사에서 초토가 되었다. 암울한 미래를 미리 읽은 지검장은 일찌감치 사직했지만, 차장검사와 주임검사는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운 한직으로 날아갔다. 정권의 의도를 읽은 그들은 “인사는 메시지”라며 검사 옷을 벗었다.
수사를 해도, 반대로 뭉개도 대상과 타이밍이 관건이다. ‘충성하면 보상하고, 항명하면 응징한다’는 검찰 인사의 원칙은 어느 정권에서도 ― 심지어 문재인 정부까지도 ― 예외가 없다. 물론 영리한 검사들은 환경 변화를 잘 읽으며 꼭 해야 할 수사를 성공시키지만, 그런 검사는 극소수다.
검찰을 통제하는 정권의 1번 카드는 검찰총장 인사다. 총장은 검찰의 수사와 사무를 총괄한다. 총장에게 보고되지 않는 주요 사건이 없고, 총장 모르게 처리되는 주요 사건도 없다. ‘검사 동일체 원칙’이 폐기되었다는 주장은 일부의 오해에 불과하다.
그 때문에 정권은 어떻게든 ‘자기 사람’을 앉히려 무진 애를 쓴다. 새로 출범한 정권은 이전 정권이 임명한 총장을 신뢰하지 않는다. 불신임 의사 표시, 은근한 위협, 신상의 꼬투리 잡기 등 다양한 방법으로 기어이 그만두게 만든다. 집권당은 그대로인데 대통령만 김대중에서 노무현으로 바뀐 2003년, 김각영 검찰총장은 취임 4개월 만에 사실상 해임되었다.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엔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았던 김수남 검찰총장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물러났다. 박 전 대통령을 구속한 총장이지만, 예외가 되지 못했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기 위해 1988년 12월 검찰총장 2년 임기제가 도입된 뒤 2019년 7월 취임한 윤석열 총장까지 각 정권이 임명한 검찰총장만 벌써 22명째다. 임기가 지켜졌다면 있을 수 없는 숫자다. 겨우 8명만이 무사히 임기를 마쳤다. 서초동에 불어닥친 ‘정치적 외풍’은 늘 차갑고 매서웠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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