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아모리 유니베르스타
_ 이은희
“너는 전파망원경의 자식이야.”
나는 미국 뉴멕시코주에 있는 어느 전파망원경 아래에서 잉태되었다. 엄마와 아빠는 전파천문학자였다. 페르세우스자리 유성우가 한창이던 밤이었다. 일 년 뒤 뉴멕시코주 소코로에 있는 오래된 진흙집에서 내가 태어났다. 페르세우스자리 유성우가 찾아오는 8월 12일이 되면 우리 가족은 여행을 떠나곤 했다. 주로 뉴멕시코의 전파천문대를 찾아갔다. 푸에르토리코나 네덜란드의 베스터보르크 또는 중국 귀주에 있는 전파천문대가 우리들의 방문지였다.
“난 죽기 싫어.”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면서 속삭이듯 외쳤는데 내 목소리가 너무 컸나 보다. 나란히 누워서 페르세우스자리 유성우를 즐기고 있던 엄마와 아빠가 몸을 일으켰다. 뉴멕시코주의 바로 그 전파망원경 아래였던 것 같다. 엄마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고, 아빠는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사실 죽음이 무엇인지 깨닫기에는 내가 살아온 세월이 너무 짧았다. 나는 고작 여섯 살이었으니까. 돌이켜 생각하면 죽음이라는 것을 눈앞에서 뭔가 갑자기 사라지는 것으로 인식했던 것 같다.
나는 아빠에게 물었다.
“죽으면 어떻게 돼?”
“안타깝지만 사람은 모두 죽어. 사람들은 죽으면 자신이 흩어져서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지. 그래서 죽으면 다른 세상으로 간다고 믿는 거야. 그래야 위안이 되거든. 하지만 그건 좋은 태도가 아니야. 자신을 속이는 거잖아. 다른 사람도 속이는 거고.”
간헐적으로 떨어지는 별똥별을 바라보면서 엄마와 아빠와의 긴 이야기가 이어졌다. 당시에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지만 모든 이야기가 그럴듯하게 들렸다.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원소들은 별 안에서 만들어졌어. 별이 빛을 내면서 산소나 탄소 같은 원소를 만들어 낸 거야. 별은 일생을 살고 죽으면서 이런 원소들을 성운에 흩뿌려. 시간이 지나면 성운이 뭉쳐서 다시 별이 되지. 그 별은 또 원소를 만들고 죽고.”
“그럼 우리는 별에서 온 거야?”
“그렇지. 그렇게 만들어진 원소들이 가득한 성운 속에서 태양도 생기고 지구도 생긴 거야. 그 지구 속에서 생명이 태어났어. 그러니 당연히 우리 몸속의 원소는 머나먼 별에서부터 온 거지.”
“그럼 저 전파망원경도 별에서 온 거야?”
엄마가 끼어들었다.
“크게 보면 그렇게 말할 수 있어. 사실 수소는 우주 공간에서 생겨났지. 별 안에서 만들어지지 않는 건 또 별이 죽으면서 생겨나기도 해.”
생각해 보면 엄마와 아빠는 그날 어린 딸을 눕혀 놓고 빅뱅 우주론부터 별의 탄생과 원소의 생성 그리고 별의 최후에 이르기까지 정말 많은 이야기를 들려줬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엄마와 아빠는 언제나 딸에게 더 많은 말을 하고 싶어서 경쟁하곤 했다. 이 모든 것의 의미를 깨닫기까지는 한참의 시간이 더 필요했지만 그날 내 마음에는 큰 떨림과 울림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별에서 온 먼지야. 생각하는 별 먼지.”
별 먼지라니. 생각하는 별 먼지라니. 두 사람에게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이 단어는 내 삶의 등대가 되었고 북극성이 되었다.
내 눈은 거의 감겼고 엄마와 아빠의 목소리가 아련하게 꿈속으로 타고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죽으면 우주로 갈 거야. 양자 얽힘 현상을 응용해서 유전자 정보와 의식 정보를 다른 행성으로 보내는 연구가 꽤나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잖아. 난 캡슐에 담겨서 우주로 가기는 싫거든. 연구가 빨리 진척되면 좋겠어.”
“나도! 우리, 늦게 죽는 사람이 챙겨 주기로 하자.”
*
앤 아주머니가 페르세우스자리 유성우 기간을 우리와 같이 보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나는 열 살이었고 샘은 열두 살이었다. 엄마와 아빠와 나는 한 달째 베스터보르크 전파천문대에서 지내고 있었다. 엄마와 아빠는 비가 오는 와중에도 전파 관측을 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8월 12일이 다가오는데 며칠째 계속 비가 내렸다. 가끔씩 페르세우스자리 유성우가 진행되는 기간 내내 비가 오거나 구름이 많이 끼어서 유성우를 전혀 못 보고 지나가는 경우도 있었다. 그때도 그랬다. 비는 그칠 것 같지 않았고 일기 예보에서도 며칠은 더 비가 올 것이라고 했다. 앤은 비가 오는데도 차를 몰고 샘과 함께 전파천문대로 왔다. 페르세우스자리 유성우를 보겠다는 것은 핑계였는지도 모른다.
앤 아주머니와 칼 아저씨와 샘은 집에도 몇 번 놀러 왔다. 같이 오기도 했고 앤 따로 칼 따로 오기도 했다. 우리는 밖에서 같이 영화를 보기도 했고 함께 식사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열흘이 넘도록 같이 지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샘과 나는 숲속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전력을 다해서 놀았다. 샘은 나보다 나이는 두 살 많았지만 전혀 오빠처럼 굴지 않았다. 오빠는 마냥 귀찮고 자신들을 괴롭히는 존재라고 친구들한테 너무 자주 들었기 때문에 사실 샘을 처음 봤을 때 약간 경계했었다. 우리는 하루 종일 숲속을 돌아다니다가 숙소로 돌아와서 저녁을 먹고는 곧바로 쓰러져서 잠에 드는 나날을 반복하고 있었다.
하루는 잠깐 잠에서 깼는데 문틈으로 거실 불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숲속의 풀 냄새도 나는 것 같았다. 타들어 가는 숲의 냄새랄까. 나는 살며시 문을 열었다.
“사랑해.”
“앤, 나도 사랑해.”
앤 아주머니와 엄마가 서로 꼭 껴안고 키스를 하고 있었다. 아빠는 다른 쪽에서 흔들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꿈인가 했다. 문틈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나를 보고 아빠는 이리 오라고 손짓했다. 나는 뭐가 뭔지 몰라서 어리둥절한 채로 아빠에게로 갔다. 마리화나 연기 속에서 앤 아주머니와 엄마는 나를 보고 한번 웃어 주더니 계속 서로를 만지고 키스를 이어 갔다. 아빠한테로 걸어가는 그 짧은 시간이 무한대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뭔가 심상치 않다고는 느끼고 있었다. 아빠는 나를 무릎 위에 앉히고는 꼭 껴안아 주었다.
“앤 아주머니와 엄마는 서로 사랑하고 있어. 엄마와 아빠가 서로 사랑하는 것처럼 말이야. 앤 아주머니와 아빠도 서로 사랑하는 사이야. 우리는 모두 각자 서로를 사랑해. 아직 너는 어려서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을 거야. 하지만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 아름다운 거야.”
아빠는 내 뺨에 뽀뽀를 해 주었다. 마리화나 냄새가 스쳤다. 아빠는 나를 안고 방으로 데리고 가 잠이 들 때까지 이런저런 우주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렸을 때부터 아빠는 내가 잠들 때까지 별과 우주와 우주 여행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아빠가 지어 낸 그 숱한 이야기들을 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너무 아쉬울 따름이다. 그날 아빠는 우주 여행을 떠난 두 가족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린 소녀와 소년 그리고 남자 어른 두 명과 여자 어른 두 명이 다른 행성에 살고 있는 친구들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모험 이야기였다. 그곳에서도 어른들은 각자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는 사이였다. 앤 아주머니와 엄마와 아빠처럼. 이해하기는 힘들었지만 아빠가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해 주어서 마음은 한껏 편해졌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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