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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새들은 어디에 가서 죽는가?
그녀는 묘지에서 나무처럼 살았다. 새벽이면 까마귀들을 배웅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박쥐들을 맞이했다. 해질녘엔 반대로 했다. 새벽과 저녁 사이엔 그녀의 높은 가지들에 흐릿한 형체로 앉아 있는 유령 독수리들과 교류했다. 가지들을 살며시 감아쥔 독수리 발톱이 절단된 사지의 통증과도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녀는 독수리들이 이곳을 떠나 이야기에서 퇴장한 것에 대해 슬퍼하지만은 않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처음 이곳으로 왔을 때, 그녀는 수개월 동안의 무심한 학대를 마치 한 그루의 나무처럼 ― 꿈쩍도 않고 ― 견뎌냈다. 어떤 꼬마가 돌을 던졌는지 돌아보지도 않았고, 자신의 나무껍질에 새겨진 욕을 읽으려고 목을 길게 빼지도 않았다. 사람들이 그녀를 서커스 없는 광대, 궁전 없는 여왕이라고 헐뜯을 때에도 그 상처가 그녀의 가지들 사이로 산들바람처럼 불어가게 했고, 살랑거리는 잎사귀들의 음악을 고통을 달래주는 진통제로 삼았다.
한때 파테푸리 마스지드올드델리에 있는 17세기 이슬람교 사원에서 기도를 이끌었던 장님 이맘이슬람교의 예배를 인도하는 성직자 지아우딘이 그녀의 친구가 되어 그녀를 찾아오기 시작한 후에야 동네 사람들은 그녀를 조용히 놔둘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오래전에 영어를 아는 어떤 남자가 그녀 이름을 (영어로) 거꾸로 쓰면 마즈누Majnu가 된다고 말해주었다. 그러면서 영어에도 라일라와 마즈누 이야기마즈누와 라일라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그린 인도 설화가 있는데 거기서 마즈누는 로미오, 라일라는 줄리엣이라고 했다. 그녀는 정말 재미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물었다. “그러니까 내가 그들의 이야기를 키츠디‘뒤범벅’ ‘뒤죽박죽’이라는 뜻로 만들어놓았다는 건가요? 라일라가 실제로는 마즈누이고 로미가 진짜로 줄리일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면 그들은 어떻게 할까요?” 다음에 다시 만났을 때, ‘영어를 아는 남자’는 자신이 착각했다고 말했다. 그녀 이름을 거꾸로 쓰면 무즈나Mujna가 되고, 그건 이름이 아니며 아무 뜻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이렇게 대꾸했다. “상관없어요. 난 다 되니까요. 난 로미와 줄리이고, 라일라와 마즈누죠. 그리고 무즈나도 돼요. 안 될 게 뭐예요? 내 이름이 안줌이라고 누가 그래요? 난 안줌이 아니라 안주만‘모임’ ‘집합’이라는 뜻이에요. 난 메필음악과 춤이 있는 소규모 연회이에요. 모든 사람과 아무도 아닌 사람. 모든 것과 아무것도 아닌 것의 모임. 초대하고 싶은 사람이 더 있나요? 모두가 초대되었어요.”
‘영어를 아는 남자’는 그런 생각을 해낸 그녀가 똑똑하다고 말했다. 자신은 절대로 그런 생각을 해낼 수 없었으리란 것이었다. 그녀가 말했다. “우르두어를 기준으로 생각한다면 어떻게 그런 걸 떠올릴 수 있었겠어요? 어때요? 영어가 우리를 자동으로 똑똑하게 만들어주지 않나요?”
그가 웃었다. 그걸 보고 그녀도 웃었다. 그들은 필터 담배를 나눠 피웠다. 그가 윌스 네이비 커트 담배는 짧고 뭉툭하고 돈값을 못한다고 불평했다. 그녀는 그래도 포 스퀘어나 너무 남성적인 레드&화이트보다는 윌스 네이비 커트가 낫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제 그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어쩌면 처음부터 몰랐는지도 모른다. ‘영어를 아는 남자’는 자신이 가야 할 곳으로 떠난 지 오래였다. 그리고 그녀는 국립병원 뒤 묘지에서 살고 있었다. 벗이라곤 고르데지사社 제품인 철제 옷장뿐이었는데 거기 그녀의 음악 ― 긁힌 레코드판과 테이프 ― 낡은 하모니움, 옷가지, 장신구, 아버지의 시집들, 사진 앨범들, 콰브가에서 그녀가 불태우지 않은 신문 스크랩 몇 개가 들어 있었다. 그녀는 옷장 열쇠를 구부러진 은제 이쑤시개와 함께 검은 실에 매달아 목에 걸고 있었다. 잠은 너덜너덜한 페르시아산 양탄자에서 잤는데, 낮에는 양탄자를 옷장에 넣고 밤에는 무덤 두 개 사이에 펼쳤다자신만의 우스갯거리로, 그녀는 절대 연이어 같은 무덤 사이에서 자지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담배를 피웠다. 여전히 네이비 커트로.
어느 날 아침, 그녀가 늙은 이맘에게 신문을 읽어주고 있는데, 분명 그걸 듣고 있지 않던 이맘이 ― 짐짓 무관심한 태도로 ― 물었다. “당신네 사람들은 힌두교인조차 화장을 안 하고 매장한다는 게 진실인가?”
그녀는 문제가 생길 것임을 짐작하고 어물쩍 넘어갔다. “진실? 무엇이 진실인가요? 진실이 뭐죠?”
이맘은 자신이 던진 질문 밖으로 벗어나고 싶지 않아서 기계적으로 웅얼거렸다. “사츠 쿠다 하이. 쿠다 히 사츠 하이.” 진실은 신이다. 신은 진실이다. 굉음을 내며 고속도로를 달리는, 알록달록 색을 칠한 트럭 뒷면에서 볼 수 있을 법한 경구였다. 그가 시력을 잃은 초록색 눈을 가늘게 뜨며 교활한 초록빛 목소리로 속삭였다. “말해보게. 당신네 사람들은 죽으면 어디에 묻히지? 시체는 누가 목욕시키지? 기도는 누가 올리지?”
안줌은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이맘에게로 몸을 내밀고 나무답지 않게 속삭였다. “이맘님, 사람들이 색깔에 대해 말할 때 ― 빨간색, 파란색, 오렌지색 같은 말로 황혼의 하늘이나 라마단 기간의 월출을 묘사할 때 ― 당신 마음속엔 무엇이 떠오르나요?”
그렇게 서로에게 깊은, 거의 치명적이기까지 한 상처를 낸 후, 두 사람은 누군가의 양지바른 무덤 위에 나란히 앉아 조용히 피를 흘렸다. 마침내 침묵을 깬 건 안줌이었다.
“말씀해주세요.” 그녀가 말했다. “당신이 이맘님이잖아요. 제가 아니라요. 늙은 새들은 어디에 가서 죽나요? 하늘에서 우리 머리 위로 돌처럼 떨어지나요? 길거리에서 새들의 시체가 우리 발부리에 걸리나요? 우리를 이 지구에 보낸 전지전능한 존재가 우리를 데려갈 적당한 방도를 마련해놓았을까요?”
그날 이맘의 방문은 여느 때보다 일찍 끝났다. 안줌은 그가 무덤들 사이로 탁-탁-탁 지팡이를 짚으며 떠나는 걸 지켜보았다. 그의 눈이 되어주는 지팡이가 그의 앞길에 나뒹구는 빈 술병, 버려진 주사기와 만나 음악을 만들었다. 안줌은 그를 붙잡지 않았다. 그가 다시 오리란 걸 알기 때문이었다. 제아무리 교묘하게 감춰져 있어도, 그녀는 외로움을 알아보았다. 자신에게 그의 그늘이 필요하듯 그에게도 자신의 그늘이 필요하다는 것을, 둘이 그렇게 묘한 접선을 이루고 있음을 감지했다. 그리고 그녀는 ‘필요’가 상당량의 잔혹함을 수용할 수 있는 창고임을 경험을 통해 배워왔다.
안줌이 좋은 마음으로 콰브가를 떠나온 건 아니었지만, 그곳의 꿈과 비밀들은 그녀만의 것이 아니기에 함부로 누설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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