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한 철학자의 사상이 그의 삶 전체와 일치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어느 누구든 삶에는 우여곡절이 있을 것이요, 어느 한 인간의 사상일지라도 나름의 편력이 있을 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유를 부르짖던 한 청년이 나이가 들어 전혀 정반대의 사상을 피력한다는 것도 매우 드문 일이다. 적어도 그가 역사에 남는 철학자라면 말이다.
헤겔은 바로 이렇게 매우 드물고 기이한 평가에 시달린 철학자들 중에 속한다. 더욱이 그는 사회 정치적 격변기에 자기 신변의 안전을 위해 현존 권력에 순응한 철학자라 평가되곤 했기에 그렇다. 그래서 헤겔 연구자들은 당시의 시대 상황과 헤겔의 구체적 삶으로부터 눈길을 돌려 순수 철학적 내용만 추출하는 연구를 하거나, 아예 시대 상황을 말하는 그의 철학을 헤겔 철학의 정수精髓가 아니라고 치부해 버리는 길을 택하곤 했다. 적어도 1980년대 말까지 국내외 헤겔 연구의 시각은 그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에 문제가 되었던 것은 바로 헤겔의 『법철학 개요』이하 『개요』로 약칭이다. 이와 관련된 오해를 몇 마디로 요약하자면 이렇다. 국가란 “구체적인 자유의 현실”이다. 그러니 지금 여기 프로이센 국가에 만족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이요,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기 때문이다. 이성적인 것은 이미 현실화되어 있으며, 현실적인 것에는 어떻게든 이성적인 것이 있기 마련이다. 프로이센 현실 국가 또한 그렇다.
일찍이 계몽 군주 프리드리히 대왕의 치적을 통해 강국으로 부상했던 프로이센은 헤겔이 『개요』를 출판하던 당시에는 오히려 반시대적 복고 정치를 추구하는 억압적인 국가로 변모하고 있었다. 프로이센 또한 나폴레옹의 몰락 이후 유럽 전역에 퍼진 구舊 봉건세력들의 권력 회복 움직임에 발맞추었던 것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왕정복고 시기 프로이센의 수도 베를린이 『개요』의 탄생 장소였다. 이 때문에 동시대 독자들은 『개요』를 정치 이념들이 첨예화된 시대의 진단으로 또는 미래 지침적인 실천 이론으로 읽고자 했다. 그 평가들마저 너무 순응적이라고 또는 너무 개혁적이라고 극단적으로 갈리긴 했어도 그렇다. 동시대인들에게서부터 『개요』는 저마다의 정치 이념의 관점에서 자기 편한 식으로 해석되었던 것이다.
(…)
아울러 이 책에서 자세히 다루지 못했지만 꼭 교정하고 싶은 시각이 세 가지 있다. 첫째는 무엇보다 체계와 관련된 것이다. 『정신현상학』에서 헤겔은 이렇게 말한다. “참된 것은 오직 체계로서만 현실적이다”. 이에 대해 사람들은 보통 참된 것의 현실성을 체계의 폐쇄된 완결성에서 기대하곤 한다. 독일 고전 철학에서 철학을 체계로 구상하고 이를 실제로 처음 전개하려 한 자는 주지하다시피 칸트이다. 그러나 일흔넷의 나이에 『도덕 형이상학』1797을 출간함으로써 비로소 자신의 체계를 완결했다고 자부할 수 있었던 칸트와 달리, 젊은 시절부터 체계로서의 철학을 추구했던 피히테나 셸링 그리고 헤겔이 자신들의 체계를 완성했다고 주장할 만한 근거는 매우 희박하다. 이들은 저마다 체계의 부분들을 끊임없이 개조하고 증축하는 데에 일생을 보냈기 때문이다. 헤겔 철학의 체계를 드러내는 것으로 여겨지는 그의 『철학백과요강』은 사실 『개요』와 마찬가지로 강의용 학생 참고서로 저술된 것이다. 헤겔 또한 자신의 철학 체계를 본격적으로 전개한 전문 저서를 남기지 못한 것이다. 오히려 주목해야 할 것은 『정신현상학』의 또 다른 문장이다. “참된 것은 전체이다. 그러나 전체는 오직 자신의 발전을 통해서만 완성해가는 본질이다”. 전체로서의 체계는 늘 반전 중에 있기에 스스로를 완성시켜 나가는 활동성으로만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헤겔에게 체계란 결코 폐쇄된 완결성을 지니지 않는다. 오히려 완결로서의 체계는 이념으로 설정되는 것이며, 더 중요한 것은 이에 도달해가는 체계 내적 발전 과정이다. 『철학백과요강』의 세 판본들을 비교만 해보아도, 말년에 저술된 『논리의 학』 존재론1832과 이전 판본의 목차만 비교해 보아도 헤겔이 얼마나 개정에 개정을 거듭했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헤겔의 체계는 학문과 세계의 발전에 발맞추어 끊임없이 개선되는 열린 체계라 할 수 있다. 인륜적이어야 할 국가에 대해서도 헤겔은 이렇게 말한다. “자유로운 주체성의 원리를 자기 안에서 인내하지 못하고 도야된 이성에 상응할 줄도 모르는” 국가는 “일면적인 것”이다. 그렇기에 헤겔 법철학 또한 열린 인륜성의 체계로 이해되어야 한다.
둘째로 교정하고 싶은 시각은 자유주의=진보주의 시각 틀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겉으로 자유주의적인 주장을 표방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정말 꼭 진보적이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로수르도D. Losurdo는 얼마 전 『헤겔과 근대인의 자유』2000를 통해 자유주의의 이념적 굴절이 진보와 보수 양 진영에 걸쳐 얼마나 복잡하게 착종되어 있었는지를 매우 섬세한 시대사적 상황과 함께 보여준 바 있다. 헤겔을 그렇게 악의적으로 묘사했던 하임은 사실 ‘민족자유주의nationalliberal’ 성향의 인물이었으며, 그래서 비스마르크의 철권 정치를 열렬히 추종하기도 했다. 본문에서 밝혀지겠지만 헤겔은 비슷한 성향을 지닌 프리스의 반유대주의적 배타성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그런데 자유주의는 더 나아가 복고적인 귀족 세력의 논거로 주장되기도 했다. 전통적으로 군주와 신하 간에 체결했던 계약을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파기해서는 안 되며, 봉건적 계약 질서는 지속되어야 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예를 들어 할러는 평등한 당사자들 간의 사회계약을 전면 부정하며, 오히려 신이 부여한 자연적인 불평등에 기초해 수직적 위계질서에 놓여 있는 자들 간의 사법적私法的 계약 관계를 국가의 근거로 간주하고자 한다. 이러한 관점은 경제적 불평등이 만연한 시민사회 내 개인들 간의 자유로운 사적인 계약에까지 쉽게 이어질 수 있다. 헤겔이 「1815년과 1816년에 이루어진 뷔르템베르크 왕국 신분의회 심의들」1817에서 귀족 집단을 비판한 것도, 이들의 사법私法=국법의 자유주의적 국가관을 겨냥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일찍이 근대 국가 창출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사회계약 이론의 자유주의가 왕정복고 시기엔 구舊 세력들의 정당화 이데올로기로 악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헤겔이 틈만 나면 사회계약 이론을 비판하는 것은 이 이론이 함유하는 이러한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의 한계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이 책에서 다루어질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제안하고 싶은 것은 아직 나의 고민거리로 남아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오늘날 현대 철학, 특히 영미 철학에서 관용어처럼 되어버린 자유주의-공동체주의의 대립적인 시각 틀이 과연 독일 고전 철학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인지 하는 의문이다. 사람들은 흔히 칸트를 로크 전통을 이어받은 자유주의 철학자로, 헤겔을 아리스토텔레스 전통의 공동체주의 철학자로 도식화하곤 한다. 그러나 실제 원문을 읽다 보면 이러한 시각 틀은 자주 깨지기 십상이다. 이를테면 칸트 또한 ‘최고 명령권자’에게 ‘사적인 사용을 위한 어떠한 국유지’도 허용하고 있지 않으며, 빈민이나 고아의 보호제도 및 그 과세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기 때문이다. 칸트가 적극적인 시민저항권을 불허한 것도 어찌 보면 국가 공동체의 안정성을 중요시한 그의 공동체주의적 성향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헤겔에게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그의 인륜적 국가는 결코 개인의 자유를 희생하고서라도 존립해야 하는 공동체가 아니다. 오히려 헤겔은 개별 인간의 ‘주관적 자유’가 누구나 보편적으로 향유할 수 있는 “객관적 자유”와 통일된 “실체적 의지의 현실”로서 국가를 구상했다. 스스로를 “보편성에로 고양”시킬 줄 아는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한다면, 국가시민 또한 위기가 닥친 나라를 위해 기꺼이 희생하려는 “애국심”을 자발적으로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헤겔의 생각이다. 따라서 독일 고전 철학과 관련해 자유주의-공동체주의의 대립된 시각 틀은 교정되어야 한다. 나는 이에 대한 대안을 아직 모색 중이다. 현명한 독자의 혜안을 부탁드리고 싶다.
사족처럼 한 가지만 덧붙이자. 그러면 독재 권력과 타협한 철학자의 사상은 송두리째 폐기되어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적어도 실제 상황과 무관한 그의 탁월한 철학 영역이 있다면, 더욱 그렇지 않다. 오히려 우리는 그 철학자의 순수 이론을 통해 세상을 그와는 또 다르게 볼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존재와 시간은 언제나 지금 여기를 넘어선다. 일찍이 훔볼트는 한 철학자의 저작을 하나든 전부든 평가하면서 ‘언제나 동시에 그 전체 인간 자체까지 비평하려는’ 자세를 ‘악의적인 방식’이라 비난한 적이 있다. 그 철학자의 인간 됨됨이 자체를 보려면 그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의 실천 철학이 그의 시대를 넘어 오늘날까지 음미될 만한 보편적 의미를 전해준다면 금상첨화이겠다. 헤겔이 말하는 자유의지의 현존이 인간의 영원한 본질이라면, 이러한 사상을 통해 포착된 우리의 시대 또한 새롭게 조망될 수 있을 것이다. “철학은 사상 속에 포착된 그의 시대Die Philosophie ist ihre Zeit in Gedanken erfaßt”이기 때문이다.
(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