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이란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만이 갖는 특권. 동네 도서관에서 조카와 나는 사람들의 환대를 받으며 질문의 답을 찾는 길을 안내받았다.(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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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대한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길
미국에 있는 동생 집에 놀러 갔을 때의 일이다. 언젠가부터 집 뒤뜰에 있는 식물에 노란 열매가 달렸단다. 그것의 정체는 무엇일까? 먹어도 되는 걸까? 혼자 죽기는 싫어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조카와 함께 먹어보았다. 살짝 시면서도 달큰했다. 하지만 계속 남는 의문. 이건 대체 무슨 열매일까?
갑론을박하는 식구들 사이에서 조카는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도서관에 가서 물어보면 돼요!”
다음 날, 조카와 나는 열매를 몇 알 따 들고 동네 도서관에 가서 물었다.
“이거 이름이 뭐예요?”
한 사서 선생님께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다른 선생님들까지 주위로 몰려들었다. 여기서도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한 사서 선생님이 외관으로 봐선 노란 방울토마토 같다 하시더니 사무실에서 조그만 칼과 장갑, 지퍼백을 들고 나오셨다.
“이 열매 잘라 봐도 되니?”
“예. 그런데 토마토처럼 안에 씨가 많지 않아요.”
선생님은 마치 집도에 들어간 외과 의사처럼 장갑을 끼고 열매를 잘라 내부를 살펴본 뒤 재빨리 지퍼백에 열매를 밀어 넣고서 씩 웃으셨다.
“혹시 독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조카가 그럴 리 없다는 듯 큰소리로 대답했다.
“이미 다 먹어 봤어요. 우리는 안 죽었고, 게다가 맛있다고요!”
열매 가운데 딱딱한 씨앗이 하나 들어 있는 것으로 봐서 토마토는 아닌 걸로 판명됐다. 도서관 이용자들까지 가세해 살구파와 자두파로 나뉘어 논박이 이어졌다. 사서 선생님은 우선 어린이용 식물 백과사전을 찾아 대출을 권하셨고, 동네의 화원 연락처와 약도를 복사해 주시면서 도서관에서 보냈다고 이야기한 뒤 직접 질문해보라고 하셨다. 가능하면 열매뿐만 아니라 식물의 사진도 찍어 가라는 조언도 덧붙이셨다. 혹시나 거기서도 정체를 알 수 없다면 식물 사진을 보며 함께 인터넷 검색을 해 보자는 약속도 하셨다. 우리는 해부된 열매가 든 지퍼백과 화원 연락처 및 약도가 적힌 종이 한 장, 그리고 책 한 권을 들고 도서관을 나왔다. 열매의 정체를 알 순 없었지만, 그 정체를 파악하는 방법은 배우고 돌아온 것이다.
갓 학교에 들어간 조카는 궁금한 것이 있을 때면 도서관을 떠올렸다. 그럴 때 편히 물어볼 수 있는 곳이 있다니! 북미 도서관의 참고봉사 데스크reference desk, 도서관의 일반적인 정보를 소개해 주는 안내 데스크information desk와는 별도로 이용자들이 필요로 하는 전문적 정보를 제공해 주는 데스크에는 ‘물음표’가 상징처럼 붙어 있는 경우가 많다. 거기에는 세상의 모든 질문에 길을 찾아 주려고 대기 중인 사서 선생님들이 앉아 계신다. 질문이란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만이 갖는 특권. 동네 도서관에서 조카와 나는 사람들의 환대를 받으며 질문의 답을 찾는 길을 안내받았다.
1992년 미국에서 제작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로렌조 오일』은 희귀병에 걸린 아이를 둔 부모가 신약을 발견해 내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병에 걸린 환자 수가 너무 적은 탓에 제약 회사는 신약 개발에 관심이 없다. 스스로 아이를 살릴 방법을 찾아야 했던 부모는 고민 끝에 도서관을 찾아간다. 의약품에 대한 아무런 지식도 없었던 이들을 사서는 책 속의 길로 인도한다. ‘로렌조 오일’은 바로 그들의 아이 이름을 따서 지은, 부모가 만들어 낸 신약 이름이다. 이들에게 도서관이 없었다면 과연 희귀병에 걸린 아이를 살릴 수 있는 이 약을 만들 수 있었을까?
동생 집 뒤뜰에 열린 열매의 정체는 야생 살구로 밝혀졌다. 종종 살구를 볼 때마다 생각한다. 지금 우리 동네 도서관은 조카의 질문 같은 것들을 진지하게 받아 주는 곳일까? 잘 모르겠다. 또 다른 생각도 한다. 나는 쭈뼛하지 않고 세상에 질문을 던질 용기가 있는 사람일까? 이 역시 잘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건 내 질문을 진지하게 듣고 함께 길을 찾는 도서관이 동네에 하나쯤 있다면 신약 개발까지 할 깜냥은 못 되더라도 질문을 더 잘 꺼낼 수는 있으리라는 점이다.
“인터넷에 아무리 믿을 수 없을 만큼 방대한 정보가 있다 해도 나는 도서관에서 시작하는 방식을 고집하며,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애틀랜틱 먼슬리』의 기자 에릭 슐로서가 자신의 저서 『식품 주식회사』에서 밝힌 이야기다. 물론 지금은 인터넷 검색이 모든 질문을 해결해 준다는 시대다. 어쩌면 동생 집 뒤뜰에 있는 나무에 대한 정보는 식물 검색 앱이 더 잘 찾아 줄지도 모른다.
나는 에릭 슐로서처럼 완고하게 도서관을 고집하지는 않는다. 인공지능 시대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하지만 질문의 답을 찾는 방법이 인터넷 단 하나만 있는 세상이 오진 않았으면 좋겠다. 답을 찾는 다채로운 과정이 우리에게 더 많은 가능성을 열어 줄지 모르니까. 사람과 마주하면서 눈을 맞추고 말을 주고받으며 얻게 되는 배움의 기쁨을 포기하고 싶지 않으니까. 어쩌면 도서관은 이 가느다란 가능성을 일상에서 품을 수 있게 해주는 보루일지 모른다. 그런 공간으로서의 도서관이 바로 내가 꿈꾸는 곳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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