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어거스트August
그 아이가 나의 요람으로 왔을 때
숙명이 미소를 지었고,
운명이 웃음을 터뜨렸다…….
- 나탈리 머천트, 〈기적Wonder〉 중에서
평범한
나는 내가 평범한 열 살 소년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물론, 나는 평범한 일들을 한다. 나는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자전거를 탄다. 야구를 한다. 엑스박스도 있다. 그런 것들은 나를 평범한 아이로 만들어 준다. 그렇다. 나는 평범하다고 느낀다. 마음속으로는. 그렇지만 평범한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다른 평범한 아이들이 꺄악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게 만들지 않는다. 어딜 가나 뚫어지게 쳐다보는 시선을 받지도 않는다.
만일 요술 램프를 찾아서 한 가지 소원을 빌 기회가 생긴다면,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평범한 얼굴을 갖게 해 달라고 빌겠다. 길거리에서 나를 보자마자 얼굴을 휙 돌려 버리는 사람들이 없게 해 달라고. 내 생각은 이렇다. 내가 평범하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 아무도 나를 평범하게 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내 모습에 단련이 됐다. 사람들이 어떤 표정을 지어도 모르는 척하는 데 도가 텄다. 우리는 모두 선수가 다 됐다. 나, 엄마와 아빠, 그리고 비아 누나. 앗, 취소다. 누나는 아직 멀었다. 누나는 사람들이 기분 나쁘게 굴면 불같이 화를 낸다. 이를테면, 한번은 놀이터에서 좀 큰 아이들 몇몇이 뭐라고 떠들어 댔다. 내 귀로 직접 들은 말이 아니라서 정확히 무슨 말인 줄도 몰랐는데, 누나가 알아듣고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누나는 항상 그런 식이다. 나와는 딴판이다.
누나는 나를 평범한 아이로 여기지 않는다. 말은 아니라고 하지만, 정말 나를 평범하게 여긴다면 그렇게 유난스럽게 나를 보호할 필요가 있을까. 엄마 아빠도 나를 평범하게 보지 않는다. 반대로 나를 대단히 특별하게 여긴다. 이 세상에서 내가 얼마나 평범한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다. 내 이름은 어거스트, 내 생김새를 설명하지는 않겠다. 무엇을 상상하더라도 상상 그 이상일 테니까.
학교에 다니지 않은 이유
다음 주부터 5학년이 시작된다. 여태껏 한 번도 학교에 다녀본 적이 없어서 상당히, 대단히, 지극히 두렵다. 사람들은 내가 지금껏 학교에 다니지 않은 게 내 외모 때문인 줄 알지만 이유는 따로 있다. 사실은 그동안 계속된 온갖 수술 탓이 컸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스물일곱 차례. 몇 번의 대수술은 채 네 살이 되기도 전에 받아서 기억조차 없다. 네 살 이후로도 해마다 두세 차례씩 수술을 받았고, (큰 수술도 있고 작은 수술도 있다.) 나이에 비해 몸집이 작은데다, 의사 선생님들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몇 가지 의학적 미스터리들을 지닌 터라 늘 많이 아팠다. 그래서 부모님은 학교에 가지 않는 편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도 지금은 많이 튼튼해졌다. 마지막으로 수술을 받은 게 8개월 전이고, 앞으로 이삼 년 동안은 수술실 신세를 질 일이 없을 것 같다.
엄마는 집에서 나를 가르친다. 엄마는 원래 어린이 책 삽화가였다. 엄마는 요정이나 인어를 아주 예쁘게 잘 그린다. 하지만 남자아이들용 그림은 시원찮다. 언젠가 나한테 〈스타워즈〉에 나오는 ‘다스 베이더’를 그려 준다고 했는데, 그려 놓고 보니 괴상한 버섯 모양 로봇이 되어 버렸다. 엄마가 그림 그리는 모습을 본 게 언제인지 모르겠다. 나와 누나를 돌보느라 너무 바빠서 그럴 거다.
솔직히 학교에 다니는 게 소원이었다고 말하면 거짓말이다. 학교에 다니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았지만, 그건 내가 다른 애들처럼 될 수 있을 때나 생각해 볼만한 얘기다. 이를테면, 친구도 많고 학교 끝나면 끼리끼리 놀러 다니고, 뭐 그런 일들.
몇 안 되긴 해도, 지금도 좋은 친구들이 있긴 하다. 제일 친한 친구는 크리스토퍼. 다음으로 재커리와 알렉스도 있다. 걸음마를 뗄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들이다. 애초부터 내 생김새를 잘 알아서 나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 어렸을 때는 자주 만나서 놀았지만, 크리스토퍼는 코네티컷 주에 있는 브리지포트 시로 이사를 갔다. 맨해튼 끝자락에 있는 우리 동네인 노스 리버 하이츠에서 한 시간 이상 떨어진 도시다. 그리고 재커리와 알렉스는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런데 참 우습다. 멀리 이사 간 사람은 크리스토퍼인데, 재커리나 알렉스보다 오히려 더 자주 만난다. 재커리와 알렉스는 새로운 친구들이 생겼다. 그래도 어쩌다 길에서 만나면 반가워한다. 잘 지내냐며 인사를 잊지 않는다.
다른 친구들도 있긴 하지만 크리스토퍼나 재커리, 알렉스만큼 친하지는 않다. 어렸을 때 재커리와 알렉스는 생일 파티를 할 때마다 나를 초대했지만, 조엘과 이먼, 개이브는 한 번도 나를 초대하지 않았다. 엠마는 딱 한 번 초대해 줬지만 만난 지 오래다. 당연히 크리스토퍼 생일에는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다. 괜히 생일 파티 하나 가지고 내가 너무 유난스럽게 구는 건지도 모르겠다.
죽다가 살아난 사연
엄마가 그 얘기를 해 주면 즐겁다. 너무너무 웃기니까. 웃기려고 하는 말도 아닌데, 엄마가 그 이야기를 하면 누나와 나는 왠지 모르게 깔깔 웃음이 터진다.
엄마 배 속에 있을 때는 내가 이런 모습으로 세상에 나올 줄 아무도 몰랐다. 나를 갖기 4년 전에 누나를 낳았는데 (엄마의 표현대로라면) 완전히 ‘식은 죽 먹기’여서 나 땐 특별한 검사를 받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 출산 두 달 전쯤, 의사들이 내 얼굴에 이상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들은 내가 구개열이 있으며, 그밖에 몇 가지 다른 증상들이 함께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그들은 그것을 ‘작은 이상’이라고 불렀다.
내가 태어나던 날 밤, 분만실에는 간호사가 둘이었다. 한 사람은 매우 친절하고 상냥했다. 다른 한 명은 친절이나 상냥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 같았다고 엄마가 말했다. 그 간호사는 왕팔뚝에다(여기부터 웃긴 부분이 나온다.) 시도 때도 없이 방귀를 뿡뿡 뀌어 댔다. 얼음 조각을 가져다주면서 뿡, 혈압을 확인하고 또 뿡, 그러면서 “미안합니다!”라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며 엄마는 정말 못 말리는 여자라고 혀를 내둘렀다. 한편, 그날 밤엔 엄마의 주치의가 쉬는 날이라서 새파랗게 젊고 괴팍한 의사가 분만을 맡았는데, 엄마와 아빠는 그 의사에게 옛날 텔레비전 드라마에 나온 주인공의 이름을 따서 ‘천재소년 두기’라는 별명을 붙였다. (사실 대놓고 그렇게 부르지는 못했다.) 엄마 말로는 분만실 사람들은 죄다 무뚝뚝했지만 아빠 덕분에 밤새도록 웃었다고 했다.
내가 엄마 배 속에서 나왔을 때, 분만실은 일순 고요에 휩싸였다. 엄마는 아예 내 얼굴을 보지도 못했다. 친절한 간호사가 곧바로 나를 안고 나가 버렸으니까. 아빠는 허둥지둥 뒤따라 가다가 비디오카메라를 떨어뜨렸고, 와장창 산산조각이 났다. 엄마는 너무 화가 나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는데, 방귀쟁이 간호사가 왕팔뚝으로 엄마를 꽉 붙잡고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었다. 엄마는 흥분해서 이성을 잃었고, 방귀쟁이 간호사는 가만히 있으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대다가 결국 두 사람 모두 의사를 찾아 고함을 질렀다. 그런데 결과는? 의사는 이미 기절한 뒤였다! 그것도 분만실 바닥에서! 방귀쟁이 간호사는 정신을 차리게 하려고 의사를 발로 마구 밀었는데, 그러면서 계속 이렇게 고함을 질러 댔다.
“무슨 의사가 이 모양이야? 당신 의사 맞아? 일어나! 어서 일어나!”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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