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600명의 인간백화점
사람들은 수월하게 행과 불행을 얘기한다. (……) 그렇게 분류되는 불행, 그렇게 가치 지어지는 행복이라면 실상 그 어느 것과도 나와는 별 인연이 있을 성싶지 않았다.
1973년 6월 3일 밤에 쓰인 글입니다. 박경리 작가가 『토지』 1부를 쓰던 삼 년 동안의 심경心境이라고 합니다. 글을 쓰며 걸어온 자신의 길을 더듬어보면서 책상 앞에 앉아 있던 마흔 일곱의 작가. 문득 책상 위 달력을 보았습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오늘 밤, 저는 왜 『토지』를 마주한 것일까요. 작가의 글을 조금 더 읽어보기로 합니다.
앞으로 나는 내 자신에게 무엇을 언약할 것인가. 포기함으로써 좌절할 것인가, 저항함으로써 방어할 것인가, 도전함으로써 비약할 것인가. 다만 확실한 것은 보다 험난한 길이 남아 있으리라는 예감이다. 이 밤에 나는 예감을 응시하며 빗소리를 듣는다.
벌떡 일어나 창문을 열었습니다. 이곳에도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게는 응시할 예감 따위는 없었습니다. 괜히 검은 어둠 속을 노려보고 말았습니다.
─ 『토지』라는 독한 소설
『토지』를 처음으로 읽은 때, 저는 스물다섯 살이었습니다. 국문학과 대학원 입학시험을 치르고 난 직후였지요. 이십 대의 제가 『토지』에서 가장 좋아한 인물은 ‘서희’였습니다. 요즘으로 치자면 ‘금수저’로 태어난 대지주 양반집의 무남독녀. 하지만 부모는 물론이거니와 가문의 어른이었던 할머니까지 여의고 모든 권력과 재산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소녀. 또 하지만 ‘서희’는 시종일관 고슴도치마냥 온몸에 가시를 곤두세우며 복수를 다짐하고 실행해나갔습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서희의 호된 소리가 솟아오르는 듯 했습니다. 그녀의 눈에서 레이저광선이라도 뿜어져 나오는 듯했습니다. 멋지고도 통쾌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토지』를 다 읽고 나서 저는 멍해지고 말았습니다. 어찌할 바를 몰랐지요. 명색이 국문학과 대학원생인데, 도대체 이걸 텍스트로, 연구 대상으로 삼는다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 싶어서 말입니다.
600여 명에 달하는 등장인물과 원고지 4만여 장이 넘는 분량에 기가 질렸고, 결단코 ‘서희’의 복수극으로 수렴되지 않는 수많은 이야기에 휘둘려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급기야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싶어 포기해버렸고, 그 순간 오만방자하게도 『토지』는 ‘순수문학’이라기엔 잡스럽다고 결론짓고 말았습니다. 도대체 그때의 저는 무엇이 순수문학이며 무엇이 잡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했던 걸까요. 돌이켜보면 얼굴이 화끈거리는 ‘흑역사’입니다만, 하여튼 『토지』와의 첫 만남은 그렇게 끝이 나버렸습니다.
그 후 20년도 더 훌쩍 지난 뒤 저는 다소 기이한 경로로 『토지』를 다시 만났습니다. 대학에서 고전읽기 강의를 시작하면서였지요. 소설을 다시 읽었을 때 제가 놀랐던 것은 무엇보다도 『토지』가 만들어진 과정이었습니다. 박경리 작가는 1969년 9월 『현대문학』 177호에 소설을 연재하기 시작해 1994년 8월 30일 『문화일보』에서 연재를 끝냈습니다. 기존 연구에 따르면, 연재되는 동안 여덟 군데의 매체를 옮겨 다녔고 원고지 4만 장 분량을 채웠습니다. 26년의 기나긴, 그야말로 대장정이었습니다. 물론 그 긴 시간이 송두리째 『토지』 쓰기에 바쳐진 것은 아닐 테지요. 『토지』가 연재된 흔적을 더듬어보면 짧게는 한 달, 길게는 이삼 년씩 비워진 시간들도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야말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인간이 어떤 하나의 일을, 그것이 소설 쓰기든 뭐든 간에 26년 동안 계속할 수 있다는 거, 이건 도대체 무엇일까요. 26년 동안 쓴 소설이라, 독하지 않습니까. 인간이 정말 독하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토지』 1권에 실린 작가 서문을 보면 더 놀라운 이야기가 나옵니다.
글을 쓰지 않는 내 삶의 터전은 아무 곳에도 없었다. 목숨이 있는 이상 나는 또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고, 보름 만에 퇴원한 그날부터 가슴에 붕대를 감은 채 『토지』의 원고를 썼던 것이다. 백 매를 쓰고 나서 악착스러운 내 자신에 나는 무서움을 느꼈다. 어찌하여 빙벽氷壁에 걸린 자일처럼 내 삶은 이토록 팽팽해야만 하는가? 가중되는 망상妄想의 무게 때문에 내 등은 이토록 휘어들어야 하는가? 나는 주술呪術에 걸린 죄인인가? 〔중략〕 정녕 이 육신적 고통에서 도망칠 수는 없을까? 〔중략〕 도망칠 수는 없다. 사슬을 물어 끊을 수도 없다. 용기가 없는 때문인지 모른다. 운명에의 저항인지도 모른다. 마지막 시각까지 내 스스로는 포기하지 않으리. 그것이 죽음보다 더한 가시덤불의 길일지라도.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가슴에 붕대를 감은 채 원고를 썼다……, 악마에 사로잡힌 것 같다는 느낌, 나도 나를 어쩔 수 없다는 그 느낌, 그건 도대체 무엇일까요. 내 삶에서 소설이든 뭐든 좋다, 소설도 좋고, 사랑도 좋고, 일도 좋고, 취미도 좋고, 뭐든 좋은데 내 인생에서 진짜 소중해서 난 이걸 안 하고는 살 수 없어! 이렇게 외칠 정도로 그 어쩔 수 없다는 느낌은 무엇일까요.
솔직히 저는 그런 느낌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르겠습니다. 다만 저는 제 자신이 무엇을, 어떤 일을 좋아하는지 정도는 겨우 압니다. 그중 하나가 ‘강의’입니다. 강의실에서 저는 스스로가 점점 또렷해지고 생생해지는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 우스꽝스럽게도 강의를 시작하는 그 직전 순간까지는 무척 힘이 듭니다. 학교에 가려고 가방을 챙기면서, 옷을 갈아입으면서 오늘은 학교 가기 싫다고 중얼거립니다. 매일매일 주문이라도 외는 양 “오늘은 가기 싫어”라고 중얼거립니다. 학교에 도착해서도 ‘오늘은’ 강의를 조금 일찍 끝낼 수 없을까…… 뭉그적거리기 일쑵니다. 그런데 일단 강의실에 들어가면, 묘하게도 서서히 기운이 차오릅니다. 학생들과 눈빛을 주고받으면서 점점 신이 나고 강의가 끝나는 순간에 이르러서는 아, 내가 직업은 잘 선택했나 보다, 하며 슬며시 미소를 짓기도 합니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박경리 작가처럼 내가 이거 안 하면 죽을 거 같다, 그런 지경에는 이르러보지 못했습니다. 더더욱 부끄럽게도, 방학이 너무 좋습니다. 심지어 달력을 보면서 왜 이번 학기에는 ‘빨간 날’도 이렇게 드문 것이냐고 투덜거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26년이라니, 26년 동안 한 가지 일에 매달리다니! 그렇다면 나는 삶을 송두리째 걸 만한 것이 무엇일까, 아니 그게 무엇인지 진심으로 찾아 나서본 적이라도 있었나. 선뜻 대답을 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내 삶에서 이거 하나’라는 말 자체가 그저 무겁게만 느껴질 따름이었습니다. 어쩌면 『토지』를 통해 그 질문의 답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져본 것 같기도 합니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자면 은밀한 지름길이나 숨겨진 비법을 찾고 싶었던 것도 같습니다. 이런 제 욕심의 끝이 어떤 결말을 맞이했는지는 지금부터 차차 풀어나가려 합니다.
─ 누구의 이야기인가?
누가 제게 『토지』가 어떤 책이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이렇게 말할 거 같습니다.
“겁나…….”
『토지』는 겁나 많은 사람이 나와서, 겁나 많이 지지고 볶고 물고 뜯고 죽고…… 그 와중에 또 겁나 많이 사랑하고 헤어지고 슬퍼하고 기뻐하고…… 그런 이야기라는 거지요. 만약 질문한 이가 내게 ‘장난하지 말라’라고 눈을 흘기면, 정색을 하고 다시 말할 터입니다.
경남 하동 평사리의 지주집 최참판댁이 몰락하고 나서, 무남독녀 서희가 갖은 고생을 겪으며 집안을 일으켜 세운 이야기라고. 으음, 복수극? 그런 셈이지. 근데 뭐가 그렇게 길고 긴 이야기라 자그만치 20권이나 되느냐고 다시 묻는다면, 서희가 다섯 살 때인 1897년에 이야기를 시작해서, 서희가 결혼하고 두 아들을 낳고, 그 아들이 다시 아들을 낳고 키우는 1945년까지의 이야기여서 그렇다고 말할 겁니다. 그러나 금세 다시 이렇게 말할 게 분명합니다. 그건 줄거리가 아니야. 이야기는 ‘겁나’ 많아.
『토지』를 처음 읽는 사람은 아마도 ‘서희’라는 강렬한 캐릭터에 눈길을 빼앗길 겁니다. 예전에 TV 드라마로 만들어졌을 때도 “찢어 죽일 테야, 말려 죽일 테야”라며 눈에서 레이저광선을 내뿜는 듯한 서희의 모습이 모든 이에게 오랫동안 생생하게 각인되었더랬습니다. 그리고 『토지』가 서희의 복수극이라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지』는 서희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서희는 『토지』를 가능하게 하는 배경일 뿐입니다. 최참판댁과 평사리 사람들, 최참판댁이 망하고 나서 쫓기다시피 간도로 떠난 평사리 사람들, 간도에 사는 조선사람들, 그리고 간도에서 다시 평사리로 돌아온 사람들, 그 모든 장면 아래에 놓인 배경일 뿐입니다. 『토지』에서는 그 ‘서희’를 바탕 삼아 6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착한 사람, 나쁜 사람, 욕심 많은 사람, 이렇게 사는 사람, 저렇게 사는 사람 등등 그야말로 별의별 사람들이 다 나와서, 어떨 때 보면 이 사람이 나 같고, 또 다른 때는 저 사람과 내가 닮은 것 같고, 어떤 때는 이 사람이 괜찮고, 그러다가 저 사람이 맘에 들고, 1권과 2권을 읽을 때는, 뭐 이딴 사람이 다 있어? 하며 진저리를 치다가도, 3권쯤에 이르러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며 고개를 끄덕이게 되기도 합니다. 『토지』는 수많은 사람의 수많은 삶의 굴곡을 마주 볼 수 있는 ‘인간백화점’인 셈이지요.
(본문 중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