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계 5: 보행자를 보호하라
보행자들은 살아남을 것인가? 더 엄밀히 말해 자동차 사고의 위험으로부터 충분히 보호받고 있으면, 계속 걸어다니기를 선택할 수 있을까?
이것이 걸을 수 있는 도시에 관한 논의의 핵심이다. 다른 단계들을 갖추는 것으로는 보행자 안전을 충분히 보장할 수 없다. 솔직히 보행자의 안전은 꽤 자주 도시를 건설하는 사람들에 의해 망가졌다. 보행자들에 대한 관심 부족과 안전에 관한 전문가 집단의 근본적인 오해로 실패했는데, 그 원인으로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 번째 이유는 정치적이고 공개적인 지지를 통해 극복할 수 있다. 두 번째 원인은 기술적인 것으로 잘못된 오해를 바로잡음으로써 극복할 수 있다.
크기의 문제
도시계획 전문가 앨런 제이콥스는 대표작 『위대한 거리들』에 전 세계 40개 도시의 지도를 실었다. 거리는 흰색, 블록은 검은색으로 표시했는데, 이 지도를 통해 우리는 걸을 수 있는 지역과 걸을 수 없는 지역을 분명히 비교할 수 있다. 지도의 교훈은 명백하다. 당신이 방문해본 도시들을 떠올려보면 더욱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도시에서의 걷기는 블록의 크기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대개 블록이 큰 도시들은 걷기를 즐길 수 없는 곳이고 블록의 크기가 작은 도시는 걷기 좋은 도시로 알려져 있다. 유럽의 거리처럼, 산업화 이전 보스턴과 남부 맨해튼 도심의 근린지역은 평균 60미터도 되지 않는 짧은 블록으로 이루어져 있다(그리고 기이한 중세의 건물 양식이 거리 경관을 만들어낸다). 필라델피아나 샌프란시스코처럼, 대부분 걸을 수 있는 거리는 평균 길이 120미터 이하의 블록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블록이 300미터 이상인 캘리포니아의 어바인에는 보행자유구역이 있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여기에도 예외는 있다. 베를린의 많은 거리는 놀랍게도 커다란 블록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베를린 도심의 블록 내부에 깊숙이 퍼져 있는 골목과 건물의 사이 공간이 사람들의 보행을 위한 보이지 않는 연결망을 만들어낸다. 바르셀로나의 블록은 로스앤젤레스보다 크지만, 거리의 자동차 제한속도가 아주 느리다. 로스앤젤레스는 작은 블록의 도시도 걸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한다. 그리고 블록이 큰 도시를 걸을 수 있게 만드는 것보다 이런 곳의 워커빌리티를 향상시키는 게 훨씬 어렵다.
내가 라스베이거스를 처음 방문했을 때 스트립과 옛 중심가(포몬트거리)를 제외하고 그곳은 아무도 걷지 않는 도시였다. 자동차를 몰고 마을로 운전해 들어가며, 나는 호텔로 가는 길을 찾기 위해 네비게이션을 확인했다. 그 당시에 네비게이션 지도는 간결함을 위해 도시의 세밀한 조직은 삭제하고, 오직 주요 도로들만 표시했다. 하지만 그 도시에 들어갔을 때 나는 네비게이션에서 본 것과 똑같이 세밀한 연결망이 없는 것을 알고 큰 충격을 받았다. 지나치게 단순화시킨 줄 알았던 지도가 그 도시의 실제 모습이었다. 이 사실은 많은 것을 말해준다.
작은 블록이 보행 환경에 도움이 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안전보다 편리함 때문이다. 동일한 면적이라도 블록이 더 잘게 나누어져 있으면 보행자들에게 주어지는 선택지가 더 많아진다. 예컨대 커피숍이나 세탁소를 찾아가는 방법이 늘어나면 걷기는 더욱 흥미로워진다.
이보다 더 중요한 두 번째 이유가 있다. 블록이 커지면 작은 블록 사이사이를 관통하는 차도의 면적을 충당하기 위해 더 넓은 차도가 필요해진다. 동일한 교통량을 소화하기 위해서, 두 배 큰 블록을 가진 도시의 차선은 두 배가 되어야 한다. 블록의 한 면이 60미터인 포틀랜드 도심의 차도는 2차선이지만, 한 면의 길이가 180미터가 넘는 솔트레이크시티 도심의 차도는 6차선이다. 당연히 6차선 도로가 2차선 도로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
코네티컷 대학교의 웨즐리 마샬과 노만 개릭의 연구는 이 사실을 강력히 뒷받침한다. 그들은 캘리포니아 주의 중간 규모 도시 24곳에서 9년 동안 발생한 13만 건 이상의 자동차 사고 자료를 모았고, 12개의 ‘안전한’ 도시와 12개의 ‘위험한’ 도시를 구분했다. 그리고 블록의 크기가 교통사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위험한 도시의 블록이 평균 138제곱미터인 것에 반해, 안전한 도시의 블록은 평균 73제곱미터였다. 블록 크기가 두 배로 늘면서 사망률은 3배가 된 것이다.
큰 블록과 차선이 많은 도로에서 보행자는 길을 건너기 어려운 반면 차들은 속도를 내기 좋다. 1차선 도로와 2차선 도로의 차이가 가장 심하다. 1차선이었던 도로가 2차선으로 바뀌면 운전자들은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가기 위해 추월을 서슴지 않는다. 도로가 2차선 이상이라면 옆에 있는 인도를 가로수길로 만들어서 보행자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지만 그런 데 돈을 쓰는 도시는 거의 없다. 샹젤리제가 있는 파리도 가로수에 무관심하긴 마찬가지다.
다차선 도로가 만들어내는 효과는 ‘친절함을 가장한 살인’과 같다. 마치 운전자들을 위한 것 같지만, 사실 다차선 도로는 운전자에게도 위험하다. 다차선 도로에서 좌회전을 하려면 차량은 인접한 차선으로 접근한 뒤 중앙선을 넘어야 한다. 그 순간 같은 차선에서 달려오는 차량을 인식하지 못하고 충돌한 가능성이 크다.
4차선 도로가 치명적인 만큼 비효율적일 수 있다는 사실이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4차선 도로에서 보통 가운데 두 개 차선은 좌회전 전용차선이기 때문에,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운전자는 차선을 변경해야 한다. 이와 같은 비효율성 덕분에 많은 도시에서 4차선을 3차선으로 줄이고 각 방향 가운데 한 차선을 좌회전 전용차선으로 만드는 ‘도로 다이어트’를 시행하려 한다.
도로 다이어트로 수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리 놀랍지 않다. 일례로 올랜도의 에지워터 드라이브에서는 자동차 사고가 34퍼센트, 부상자는 68퍼센트 감소했다. 9일에 한 번 꼴로 발생하던 사고가 한 달에 한 번으로 줄어든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도로 수용력은 전혀 줄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단지 좌회전 전용차선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이런 변화가 가능하다. 좌회전 전용차선의 효율성 덕분에 도로 다이어트를 실시한 지역에서는 교통량을 줄이기 위한 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됐다. 엔지니어링 회사 AECOM이 17개의 도로 다이어트 사례를 비교한 결과, 오직 두 곳에서만 수용력이 감소했고 다섯 곳은 변화가 없었으며 무려 열 곳에서 수용력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수치는 매우 중요하다. 교통 혼잡에 대한 우려가 사람들이 도로 다이어트에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였기 때문이다. 1980년에 펜실베니아 루이스턴 주민의 95퍼센트가 이동 시간이 길어질 것이라며 펜실베니아 교통국PennDOT에서 제안한 도로 다이어트에 반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펜실베니아 교통국은 정책을 밀어붙였고, 이후 사고는 거의 사라진 반면 이동시간은 변함이 없었다.
이 이야기는 미국의 모든 도시에 엄청난 기회가 찾아왔음을 의미한다. 어느 도시에나 도로 다이어트가 가능한 4차선 도로가 있다. 도로 다이어트로 차선을 줄이면 3에서 3.6미터의 공간이 새로 생긴다. 이 공간에 우리는 가로수를 심거나, 잃어버린 주차선을 만들고, 상업지역에서는 평행주차를 대각선 주차로 바꾸어 주차공간을 늘릴 수도 있다. 이미 보도, 가로수, 주차공간을 갖춘 도시라면 여기에 자전거 도로를 놓을 수도 있다. 그렇게 하면 도로 경계선을 다시 만드는 데 드는 비용도 절약할 수 있다.
(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 및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