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공간, 도서관에서의 책 읽기
제3의 공간, 도서관의 발견
이제 책을 제일 많이 소장하고 있는 곳, 인류 역사에서 책이 있는 공간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넓은 곳인 도서관으로 가 보자.
도서관에서 회원카드를 발급받으려면 보통 ‘회원가입신청서’를 쓰는데, 거기에는 어떤 경로로 도서관을 알게 되었는지 쓰는 난이 있다. 1년마다 신청서를 모아 검토하다 보면 도서관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얼마나 급변하고 있는지에 놀라게 된다. 불과 1~2년 사이에 도서관 때문에 이사를 했다고 적는 사람들의 수가 눈에 띄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이사한 다음에 인터넷이나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서 도서관을 찾아오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이제는 도서관이 주거지를 결정하는 주요한 잣대가 된 것 같다. 도대체 도서관이 무엇이기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도서관은 기원전 5세기부터 존재했다. 당시 도서관은 오늘날처럼 기능에 맞게 책들을 분류하고 책을 보관하기 위한 곳이 아니라 교육을 위한 곳이었다. 플라톤은 자신의 개인도서관을 가지고 있었고,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자신이 세운 학교 리케이온에 도서관을 만들었다.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아테네도서관 비문에는 도서관은 1시부터 7시까지 운영되고, 대출은 금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지리학자 스트라본의 기록에 따르면 로마의 독재자 술라가 점령지의 도서관을 통째로 옮겨왔다고 한다. 이를 보면 독재자가 책을 수집하고 도서관을 세우기 위해 온갖 폭력을 동원하기도 했음을 알 수 있다.
건축에는 인류의 문화, 전통, 환경 그리고 가장 중요한 시대 사상이 담겨 있다. 그래서 김석철은 《세계 건축 기행》(창비, 1997) 서문에서 건축은 문명이라고 했다. 그런데 수많은 건축물 중에서 인류문명의 태동기부터 지금까지 존속하는 몇 안 되는 건축물이 바로 도서관이다. 이는 도서관이 인류 문명의 시작과 발전에 기여한 주요 공간이었음을 말해준다. 그러나 알렉산드리아도서관처럼 그 시기의 도서관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대중적인 공간은 아니었다. 지극히 소수의 권력자들만 소유하고 누릴 수 있었다. 《기억 전달자》에서 살펴봤듯이 책을 읽는 자는 지혜를 획득하게 되고 그 지혜가 용기와 결합하면 행동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류는 점진적으로 모든 사람이 책을 읽을 수 있고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사회체제를 향해 나아갔다. 인간이 공공도서관의 확대를 위해 투쟁한 까닭이 바로 이것이다. 공공도서관의 수와 형태가 선진국이냐 아니냐의 기준이 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여러 형태의 도서관 중에서 특히 공공도서관은 누구나 무료로 이용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그 어떤 제한으로부터 자유롭다. 그래서 지식정보사회에서 심화되는 계층 간의 지식 격차를 줄이는 역할을 한다. 공교육과 공공도서관을 시민사회의 가장 중요한 토대라 부르는 까닭이다.
한국의 도서관은 이러한 역사적 발전 과정을 충분히 거치지는 않았지만, 정부 예산으로 도서관을 설립하고 운영하게 된 데에는 도서관이 시민사회를 이끌어가는 근본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바탕에 있다. 그러나 한국의 도서관은 다른 영역과 마찬가지로 짧은 시기에 급격한 변화를 동시다발적으로 겪고 있다. 즉 도서관을 전혀 경험하지 못한 세대, 학교도서관에서나마 겨우 책을 볼 수 있었던 세대, 책을 열람하기보다 각종 시험과 취업을 준비하는 곳으로 도서관을 이용하는 세대, 태어나자마자 도서관으로부터 책을 선물 받은(도서관 북스타트운동) 세대가 공존한다.
또 여러 종류의 도서관이 세워졌다. 가장 기본적인 형태의 도서관이 이제 막 전국적으로 운영의 토대를 마련해 활발하게 설립되고 있는 가운데, 최첨단 시설을 자랑하는 도서관도 동시에 만들어지고 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도서관 활성화 정책을 내세우고 국립중앙도서관의 첫 지방분관이자 정책전문도서관인 세종도서관을 2013년 12월 개관했다. 또 2012년 10월에는 서울시청에 서울도서관을 개관해 도서관의 광화문 시대를 열었다. 전국적으로 작은도서관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풀뿌리 활동 또한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기업에서도 도서관 건립을 사회적기업활동의 일환으로 적극 모색하고 있는데, 이를 바탕으로 네이버라이브러리, 현대카드디자인라이브러리와 같은 전문주제도서관이 운영되기 시작했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지금처럼 활발하게 도서관이 건립된 예가 없을 만큼 그 열기가 뜨겁다. 도서관으로 향한 이러한 움직임의 사회문화적 의미를 살펴봐야 할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공공적·사회적·미래적 책읽기란?
미국 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는 《정말 좋은 공간The great good place》(Marlowe & Company, 1999)에서 집을 제1공간, 직장을 제2공간, 집이나 직장 이외의 장소를 제3의 공간이라고 했다. 이는 사람에게 집과 직장 이외의 또다른 공간에 대한 욕구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옛날에는 마을 입구 느티나무 아래 평상이기도 했고 우물가이기도 했을 것이며, 서양에서는 살롱이나 카페가 그 역할을 했을 것이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그 사회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이 지나치게 세분화, 분업화될수록 제3의 공간에서 다른 ‘나’를 발견하고자 하는 욕구는 더 강렬해진다. 가족과는 너무 가까워서 거리감이 유지되지 않는 것이다. 이때 거리감이란 긴장감을 뜻한다. 삶에 적절한 긴장감이 형성되어야 자신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다.
직장에서의 만남은 목적이 뚜렷하다. 직장이 생계를 잇는 수단이자 삶의 가치를 실현하는 장이 된다면 제3의 공간에 대한 필요가 덜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많지 않다. 이에 비해 가족은 특별한 목적이 없어도 형성되고 그 안에서 만남이 일어난다.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목적 있음(직장)과 없음(집)의 중간지대가 필요하다.
모처럼 쉬는 주말에 편안한 거실에서 책을 읽어도 되련만 굳이 집과 가까운 카페에 가서 책을 읽는 까닭이 무엇이겠는가? 나를 유혹하는 것들로부터 벗어나는 데 조금은 강제성을 둘 필요, 그리고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지만 온전히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곳에 대한 열망 때문이 아닐까? 이 공간에서 자신의 세상을 더 넓힐 수 있고 그래서 성장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이런 제3의 공간으로 어떤 곳이 있을까? 카페, 공원, 쇼핑몰, 공원 등을 제3의 공간이라 부르는 사람도 있지만 여기서는 도서관으로 한정해 좀더 깊이 살펴보겠다. 카페와 공원에 비해 도서관은 활동 영역에 많은 제한을 받는다. 공원에서 할 수 있는 일과 도서관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면 어떤 행위가 제한되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레이 올든버그가 집과 직장 이외에 자연스러우면서도 편한 공간을 제3의 공간이라고 부르면서 스타벅스 같은 곳을 사례로 든 경우와 도서관의 경우는 조금 다르게 살펴야 한다. 도서관과 제3의 공간과의 두드러진 차이는 바로 공공성에 있다. 여기서 공공성은 공공의 이익을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로버트 D. 퍼트넘의 《나 홀로 볼링》(페이퍼로드, 2009)처럼 자신의 이해관계를 넘어 ‘함께 살아가기’에 반드시 필요한 제3의 공간으로서 도서관을 이야기해보자.
《나 홀로 볼링》은 1997년 10월 29일 보쉬미라는 사람이 램버트라는 사람에게 자신의 신장 한쪽을 기증한 사건이 발단이 되어 쓰였다. 보쉬미는 서른세 살의 회계사이며 백인이었고, 램버트는 미시간대학병원에서 근무하다 은퇴한 예순네 살의 흑인 할아버지였다. 직업, 인종, 세대가 전혀 다른 두 사람을 연결시킨 고리는 동네 볼링 리그였다. 보쉬미는 램버트를 리그에서 한 번 봤을 뿐이지만 그가 신장 이식수술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고 3년을 기다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자신의 신장을 선뜻 기증했다.
미국 지역신문에 난 이 기사를 읽은 로버트 퍼트넘이 《나 홀로 볼링》이란 책을 쓴 것이다. 볼링은 혼자서도 하는 게임이다. 그러나 혼자 볼링을 하는 것과 마을 볼링센터에서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은 다르다. 나의 행위가 내가 아는 누군가의 삶을 향상시킬 수 있고 종국에는 그것이 자신의 삶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신뢰가 있어야 자신의 신장을 선뜻 기증할 수 있다. 사회적 연대감이 커질수록 기증이나 기부 같은 행위가 증가하는데, 이렇게 되려면 사회 유대를 강화하는 활동이 필요하다. 로버트는 혼자 볼링을 하고 혼자 교회에 다니는 인구가 증가하는 미국 사회를 재조명하고자 이 책을 썼다고 했다.
책 읽기 또한 마찬가지다. 집에서 책을 읽는 것과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것은 다르다. 함께 책을 읽는 행위가 반드시 독서회나 토론회에 참여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열린 공간에서 책을 선택해 읽는 순간 시야가 달라진다. 나 중심에서 더 넒은 사회로 정신과 몸이 모두 확장되는 것이다. 이때 읽기 행위는 사회적 읽기로 전환된다.
《나 홀로 볼링》의 보쉬미가 볼링을 함께 했다는 이유만으로 신장을 기증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듯이 도서관에서의 ‘읽기’ 역시 사회적 행위로 볼 수 있다.
미국이라는 공동체의 시민 생활과 사회생활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추적하는 작업이 이 책의 주제다. … ‘사회적 자본’이 개인들 사이의 연계 그리고 이로부터 발생하는 사회적 네트워크, 호혜성과 신뢰의 규범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회적 자본은 몇몇 사람들이 ‘시민적 품성’이라고 부르던 것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시민적 품성은 호혜적 사회관계의 촘촘한 네트워크 속에 자리 잡고 있을 때 가장 가열한 힘을 발휘한다는 사실에 ‘사회적 자본’은 주목한다. 바로 이것이 단순한 시민적 품성과 사회적 자본의 차이점이다. 시민으로서의 품성은 풍부하게 갖추고 있지만 서로 연결되지 못한 고립적 개인들로 이루어진 사회는 사회적 자본이 풍부하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다.
《정말 좋은 공간》과 《나 홀로 볼링》은 그 주제가 도서관에 관한 것은 아니지만, 도서관이 집도 직장도 아닌 제3의 공간이며 도서관에서의 ‘읽기’는 집에서 혼자 책을 읽는 것과는 다른 사회적·공공적 의미가 있음을 일러준다.
도서관에서의 책 읽기가 지닌 미래적 가치에 대해 언급한 책도 있다. 미국 노스웨스트 환경기구 수석연구원인 존 라이언은 《지구를 살리는 7가지 불가사의한 물건들》(그물코, 2002)에서 일상의 작은 변화와 실천으로도 지구를 살릴 수 있다고 말한다. 자원을 덜 소비하고 오염물질을 덜 만드는 생활방식으로 매일을 꾸리면 지구 생태계를 지킬 수 있다고 한다. 즉 자전거, 콘돔, 천장 선풍기, 빨랫줄, 타이 국수, 무당벌레, 공공도서관을 매일 사용하거나 이용하는 것이다. 일곱 가지 중에서 공공도서관을 사용하면 복사의 필요성을 줄여 종이 수요를 감소시키고, 이는 결국 숲과 나무를 보호하고 토사와 펄프공장 폐수로 인한 강의 오염을 막는 중차대한 기능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중한 환경을 지키고 미래의 후손들에게 아름다운 자연을 물려주기 위해서라도 도서관을 많이 짓고 자주 방문하는 것이 좋다고 주장한다. 이는 공유자산을 더 많이 활용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필요한 생산물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이미 생산한 물건들을 최대한 사용하며, 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늘린다면 환경을 보존하기 위한 특별한 어떤 행위보다 환경을 덜 파괴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는 공공도서관을 자주 혹은 매일 이용해야 가능한 일이다. 일곱 가지 중에서 무당벌레를 제외하고는 모두 인간이 하는 일이며 매일 해야 목표에 도달한다. 많은 재원을 동원해 건물을 짓고 장서를 구비해놓더라도 그것을 잘 활용하지 않는다면, 함께 공유하는 개인 자산이라 여기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존 라이언은 도서관을 일상적으로 이용하면 인간이 필요로 하는 최소의 것만 생산하므로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하지만, 도서관은 다른 측면에서도 자원 활용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공간이다. 도서관은 책이 있는 다른 공간과 달리 책이 주제별로 혹은 시대순으로 배열되어 있어서 인류 정신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그리고 이곳에서 인간은 뜻밖의 능력을 발휘한다. 관련된 책을 한꺼번에 모아두었을 뿐이지만 그 제목만으로 의식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다. 여행서적 코너에 가면 한국 사회에서 여행의 키워드가 유럽과 미국 중심이었다가 가까운 동남아 휴양지로, 이어서 배낭을 메고 오지를 가는 것으로, 다시 제주도로 향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어떤 책이나 크고 작은 정보를 담고 있고 이웃에 놓인 책을 보완해주기 때문에 관련된 책을 한꺼번에 모아놓으면 학생들이 제목만으로도 인간 정신의 근본적인 힘과 역사를 인식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바르부르크는 생각했다.
_알베르트 망구엘의 《밤의 도서관》(세종서적, 2011)에서
책은 인류가 후대에 전승코자 하는 정신이자 기억이다. 그 오래고 방대한 ‘인류의 기억’인 서가 앞에 서면 ‘나’라는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게 된다. 그 방향은 자연스럽게 공적이며 사회적이며 미래적인 것으로 향한다. 이러한 정체성을 지닌 도서관이 내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시대를 맞이했다. 우리는 도서관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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