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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갑작스런 편지에 얼마나 놀라셨습니까. 실례인 줄은 알지만 저희의 딱한 처지를 하소연하고자 이렇게 펜을 들었습니다. 저희로 말할 것 같으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본 대학의 이곳저곳을 깨끗이 청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미화원들입니다.
지난 월요일, 저희 미화원들은 이번에 새로 부임한 김종래 소장으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시간당 4800원인 현재 시급을 500원 깎아 4300원으로 내릴 계획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루 일당이 4500원 줄어들고 한 달로 치면 약 10만원이 줄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우리 27명 미화원에게 사형선고나 다름없습니다. 소장에게 하소연을 해봤지만 싫으면 일을 그만두라는 매정한 답만 들었습니다. 최궁실이 20년, 김양이, 정병호가 13년, 유영자, 박환분이 9년을 이 대학에서 일했고 올해 들어온 신입 양춘단만 제외하면 모두 5년 이상을 일한 토박이들인데 어찌 정든 일터를 하루아침에 떠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바라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현재 4800원인 시급을 그대로 유지해달라는 것뿐입니다. 김종래 소장과는 더 이상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하루속히 이 문제를 해결해주시어 우리 미화원들이 예전처럼 학교 미화에만 집중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우리는 본 대학의 미화원이라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9월 14일, 27인의 미화원을 대표하여 한문식 올림
A관 4층. 아홉 개의 형광등 중 하나만 켜진 어스름한 지도 제작 실습실. 전직 9급 공무원 출신 한문식은 여태껏 청소만 했지 한 번도 앉아본 적 없는 강의실 의자에 앉아 26인이 보는 앞에서 편지의 초안을 작성했다. 한씨가 한 자 한 자 필체를 다듬어 글을 써내려가는 동안 나머지 미화원들은 숨을 죽인 채 그의 필적을 따라 눈동자를 움직였다. 투명한 아크릴판 책상에 비친 한씨와 한씨의 어깨를 둘러싼 26인의 그림자가 봉우리 많은 산맥으로 보였다.
대강의 골격을 잡은 한씨는 개별 의견을 수렴했다. 먼저 더 예의 바르게 쓰는 게 좋겠다는 제안에 얼마나 놀라셨습니까를 첨가하고, 감동적으로 쓰라는 말에 어찌와 정든 같이 호소력 있는 단어를 덧붙였다. 우리 미화원들은 임금 상승을 기대하기도 했었지만,이라는 문구는 아무래도 자신들의 진의를 해치고 쓸데없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것 같으니 지우는 게 좋겠다는 의견에 아쉽지만 과감히 삭제했다. 해주십시오,로 글이 끝나면 자칫 명령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으니 조금 더 대학 측의 호감을 살 수 있게 끝내는 것이 좋겠다는 최씨의 지적도 흔쾌히 수용하여 우리는 본 대학의 미화원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라는 말을 보탰다. 그래도 여전히 무언가 부족한 것 같다는 엄격한 감상이 나오자 한씨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신이 쓴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더 읽더니 자부심 앞에 큰,을 덧붙여 짧지만 시간은 오래 걸린 편지 한 통을 완성했다.
마지막까지 사형선고라는 단어를 둘러싸고 지워야 한다, 살려야 한다, 27개의 봉우리가 흔들릴 정도로 논쟁이 붙었지만 공공기관에 편지를 쓸 때는 배운 사람처럼 예의 있게 쓰되 비슷비슷한 민원 중에서 한시라도 빨리 처리받으려면 당장에 절박해보이는 강한 단어 한두 개를 꼭 넣어줘야 한다고 한씨가 주장하자 그전까지만 해도 제일 강력하게 사형선고는 삭제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문씨가 공무원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하고 수긍하여 오랜 작업이 걸린 편지를 드디어 봉투에 넣을 수 있었다.
발신인에 27인의 미화원이라고 적은 한씨는 수신인 쪽으로 펜을 옮겼다. 그런데 선뜻 손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미화원들은 뭘 꾸물거리느냐며 빨리 끝내고 집에 가자고 했다. 그러나 여러 명이 다그치는 소리에도 펜은 움직일 줄 몰랐다. 이 사람 갑자기 까막눈이 됐나,라고 누군가 소리칠 때가 되어서야 한씨는 고개를 치켜들고 미화원들을 바라보았다.
누구에게 보내야 하는 것일까.
발신인은 많은데 수신인이 불명확했다. 미화원 중 한 명이 대학의 우두머리인 총장에게 보내자고 포문을 여니 그건 왠지 겁이 난다고 김씨가 막아섰다. 교수 중 한 명에게 보내자니 그 많은 교수 중 한 명을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 또한 이 일은 교수들이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 뭉뚱그려 대학에게,라고 쓰자는 의견이 나왔다.
대학이 누군데?
결국은 제일 위에 있는 총장이 대학의 주인 아닌가. 아니, 내가 듣기로는 총장을 임명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던데. 대학이란 건 여기 부지랑 건물들을 말하는 거 아니었어? 숫자를 봐, 뭐가 제일 많아? 학생들이잖아. 대학은 학생들을 말하는 거라고. 하지만 학생들을 다스리는 건 교수인데. 교수는 또 총장 밑이잖아.
대학의 실체와 구성요소를 둘러싸고 피라미드적 관점과 실존론적 관점과 민주주의적 관점을 오가며 또 한 차례 토론을 벌인 미화원들은 그래도 일면식이 있는 사람에게 보내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동양의 인연론적 관점에서 원만한 합의를 이루었다. 그 인물로는 미화과가 소속된 시설관리팀의 김자용 주임이 뽑혔다.
편지 전달은 대학본부 청소를 담당하는 유씨에게 일임되었다. 유씨는 점퍼 속주머니에 편지를 넣으며 긴장이 되는지 어깨를 들썩거렸다. 미화원들은 유씨의 어깨를 두드리며 용기를 북돋웠다. 별것 아니야, 신문 배달할 때처럼 쓱 던지기만 하면 되니까 마음 편히 가지라고. 편지를 전달하는 공식적인 경로를 모르는 미화원들로서는 이른 아침, 행정실 문틈에 편지를 슬쩍 밀어넣는 것이 최선의 방법으로 보였다.
일을 마친 27인의 미화원은 교정으로 나왔다. 학생들이 떠난 밤의 교정에 코끼리가 수호신처럼 서 있었다. 미화원들은 누가 그러자고 한 것도 아닌데 길게 줄을 서서 한 명씩 코끼리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두 손으로 코끼리 다리를 정성스레 쓰다듬었다. 아예 얼굴을 부비는 사람도 있었다.
부디 우리에게 좋은 소식을 가져다주시오.
미화원들은 그렇게 똑같은 소원을 스물일곱 번 빌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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