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립 대안학교 설립 과정 소회
공립 대안학교代案學校를 신설하는 시도 교육청이 늘고 있다. 경기도 수원시에 소재한 대명고등학교가 2002년에 개교한 걸 시작으로 2009년 전북 정읍시 동화중학교, 2010년 경남 창원시 태봉고등학교, 2012년 서울시 중구 서울다솜학교, 인천시 남동구 해밀학교, 전남 곡성 한울고등학교 등이 학교 문을 열었다. 전라남도 교육청은 중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대안학교를 2013년 개교 목표로 강진군 군동면의 폐교학교를 증, 개축하여 청람중학교를 개교했으며 중학교 과정 대안학교 2개교를 추가로 세우려는 계획을 추진 중에 있는 걸로 알려졌다. 그 외에도 강원도 교육청은 2014년 개교를 목표로 현천군 둔내면에 가칭 ‘현천고’라 명명한 대안학교 설립 계획을 수립하여 행정 절차를 진행 중에 있고, 울산시 교육청 역시 2014년 개교를 목표로 대안학교, 위스쿨(Wee School), 방송통신학교, 병원학교 등 네 가지 기능을 결합한 가칭 ‘둥지 중·고’를 울주군 두서면 두남학교로 입지를 확정했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공립 대안학교는 전국에서 10여 개로 늘어날 전망이다. 특히, 2009년과 2010년에 각각 개교한 전북 정읍시 동화중학교와 경남 창원시 태봉고등학교는 대안학교 설립을 염두에 둔 전국 시도 교육청의 장학진들과 현재 대안학교에서 일하고 있는 교직원, 대안교육에 관심 있는 전국의 교원들을 맞아 설명회를 갖느라 분주하다고 한다.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무너지고 있는 혹은 무너진 우리의 교실을 살리는 대안일 수 있다고 여긴다.
우리나라 대안학교 역사는 그리 길진 않다. 1982년 학교 부적응 학생을 대상으로 한 영광 영산성지학교가 원불교 재단에 의해 개교한 이래 경남 산청에서 간디청소년학교를 1997년에 비인가 과정으로 개설하여 대안교육을 시작했다고 보는 게 일반적이다. 간디학교를 연 양희규 교장은 추후 인가 과정을 거치는 동안 경남도 교육청으로부터 고초를 겪기도 하였다. 지금은 제천 간디학교, 금산 간디학교, 필리핀 간디학교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이후 인가·비인가 형태로 전국에 걸쳐 대안학교가 설립되고 있다. 통칭하여 사립 대안학교다. 개인이나 법인 혹은 종교 단체에서 세우는 대안학교 설립 목적은 다양하며 교육과정 또한 설립 취지에 따라 아주 특색 있게 꾸려지고 있다. 대안학교마다 색다른 교육과정을 들여다보고 낱낱이 소개하긴 어렵지만, 공교육이 담당해 내지 못하는 영역의 교육과정이 소화되고 있다.
이런 바탕 위에 급기야 국가기관이 대안교육을 담당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대안이 없는 듯 보여지는 무너(져 가는)진 교실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한 방편의 모색이라고 우선 여긴다. 사회적 문제로 제기된 국가적 현안 가운데 이를테면 국제 결혼에 의한 이주민 가정 자녀들과 북한에서 이주한 이른바 새터민 자녀들을 위한 특화된 교육 필요에 따라 대안학교가 설립되기도 했다. 서울시 중구 서울다솜학교는 다문화 가정 2세를 위한 교육기관으로, 대안학교는 아니지만 경기도 안산 한겨레중고등학교는 북한 이주민 자녀들을 교육하는 공립으로 개교한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국가 책임으로 돌릴 만큼 사회적 의제에 따라 설립하고자 하는 대안학교 역시 그 설립 목적에 부합하는 여러 논의를 거치게 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공교육 제도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별도의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새롭게 고안한 학교’로서 대안학교를 국·공립학교로 설립하고자 할 때에는 여러 가지 전제해야 할 논의가 더욱 더 많지 않을 수 없다.
전남 곡성에 2012년 개교한 공립 대안교육 특성화 학교인 한울고등학교 개교를 앞두고 잠시 겸임 교장을 맡아 개설 사무를 담당한 적이 있다. 이런 과정에서 몇 가지 느낀 점을 토로하고자 하는 건, 타 시도 교육청의 대안학교 설립을 위한 협의체에서 혹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또한 학교 개설 사무를 관장하는 부서가 시도 교육청마다 달라서 대안학교의 정체성 문제 등을 논의하는 교육 지원국 산하 부서와 개교에 따른 행정 절차를 맡는 행정 지원국 산하 부서에 따라 논의 관점이 다를 수 있다. 하여, 개설에 따른 행정 절차와 관련한 내용보다는 설립 목적과 관련한 정체성 문제 등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사립 대안학교를 설립하면서는 어렵고 깊게 고민하지 않아도 될 문제라고 여겨지는 난제들이 공립 대안학교 설립 경우에는 많이 드러난다. 첫 번째 최대 문제는 정체성 확립이라고 본다. 공립 대안학교의 경우, 이 문제를 보다 집중적으로 논의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닌 채 출발한다. 정체성의 중요성을 각인할 수 있는 공립의 대안교육 기관 설립의 미경험이 불러일으킨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해서, 공립 대안학교를 설립하고자 하는 교육청에서는 현재 대안학교에서 일하는 분들과 장학사(관), 행정직, 시설직 혹은 교육 관련 시민단체 대표 등으로 이뤄진 협의체(TF팀)를 구성하여 개설에 따른 여러 문제를 사전 협의한다. 결국, 정체성에 대한 논의의 한계를 출발부터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대개 설립 목적 등을 학교 헌장에 담아내는데, 그 헌장에 담긴 정신은 현재 사립 대안학교에서 일반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교육과정에 깔린 교육 의지를 담아내는 답습에 그치고 만다. 나는, 사립 대안학교가 아니고 공립 대안학교라면 국가가 책임지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 혹은 그러한 처지에 놓인 학생들을 위한 대안학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자 한다. 즉 학교 부적응 학생 그리고 차상위 계층 이하 학생 가운데 대안교육을 받고자 하는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대안학교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사립 대안학교 대부분의 경우는 중학교 성적 상위 30% 이내에 들지 않으면 진학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또한 공립학교에 비해 교육비가 월등히 많다. 일반계 학교에 가더라도 과외비, 학원비, 방과 후 활동비 등등이 든다. 그 돈이 그 돈이라고 하지만 아니다. 그보다 더 든다. 어려운 형편에 있는 학부모는 사립 대안학교 진학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다. 흔히, 귀족학교라는 말을 듣는 게 교육비 과다에서 기인한다.
가르쳐야 하는 대상 학생에 대한 확고한 정체성을 담보하지 못하면 눈앞의 불을 보듯 결국, 변질되고 말 것이다. 사립 대안학교가 걷고 있는 현재의 일반적인 경향으로 보건대 부득불 그렇게 가게 되어 있다고 예단한다. 학교 부적응 학생 가운데서도 탈선에 의한 징계 대상자를 위한 대안학교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나의 의견에 동의하는 교사들은 공, 사립을 막론하고 많지 않다. 또한 정원의 70% 이상을 차상위 계층 이하 학생들에게 입학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전제 역시 또 다른 규제로 생각하는 듯했다. 나는 이런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 공립 대안학교는 설립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추후 사회적 비용을 막을 수 있는 국가 예산의 손익 문제이기도 하다. 이에 대한 이견이 많을 줄로 알지만, 이 부분은 결코 타협의 여지를 허락해서는 안 된다고 나는 강력히 주장한다. 사립 대안학교에서 하는 교육과정 영역을 실현하고자 할 때에는 일반 초·중·고교 교육과정 결합 형태의 대안교육을 실시할 수 있다. 학교 신설에 따른 약 200억 원에서 600억 원 이상의 예산 소요를 막을 수 있는 방안이다. 일반 초·중·고교에서 실시할 수 있도록 이끌어 낼 수 있는 충분한 예산이다. 실제로 많은 학교에서 대안교육 영역으로 분류할 수 있는 여러 교육 활동을 현재 실천하고 있으며 일반 학교에서 대안교육 내용을 접맥시켜 실시하고 있는 경남 교육청 예를 들 수 있겠다.
두 번째 주요한 과제는 교직원 선발 문제였다. 주지하다시피, 영산성지고나 간디학교는 매우 높은 수준의 교육적 관점을 유지한 가운데 오랜 동안 협의를 통해 함께 갈 수 있는 동지애를 가진 교직원들이 모여 만든 대안학교이다. 영산성지학교는 특히 종교적 힘이 덧붙여 순기능으로 작용한 경우며 간디학교 역시 양희규 교장의 샘솟는 열정이 일궈 낸 산물이다. 그에 비해, 공립학교에서 일하는 교원들과 행정 직원은 자신들의 자녀를 대안학교에 보낸 경우는 있지만 직접 대안학교에서 대안교육을 해 본 경험은 전무하다. 공립 대안학교 성패를 학교 구성원 가운데 교장(감), 교사, 행정 직원이 가장 소중한 위치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들었다. 직책별로 나눠 생각해 보고자 한다. 대안학교 교장은 매우 중요한 자리라 여긴다. 학교의 순항과 난항難航을 가름하는 요소 중 가장 중요한 항수라고 본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고자 한다. 대안교육에 관심 있는 교장 자격증 소지자를 공립에서 찾기란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만큼이나 황망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공립 중등 교장 자격증 소지자 가운데 본인이 희망하더라도 개방형 교장공모제를 통해 공모해야 한다고 본다. 공립 교사들의 대안교육에 대한 의지를 더욱 촉발시킬 수 있는 최소한 요건이다. 그럼에도 개방형 공모제를 적용하기 어려운 현실이어 공립에서 교장을 선발할 수밖에 없다면 최소한 개교 3년 전부터 협의체나 연구 모임에 참여하여 공부할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한다고 본다. 다음으로는 행정실장 역시 교육에 대한 트인 사고를 지닌 자로 보임해야 한다. 가급적 사무관급으로 하면 좋겠으나 일반적 경향으로 보아 작은 학교를 지향하는 대안학교인지라 조직 체계 상 사무관 보임이 어려우면 6급 주무관 가운데 교육에 대한 바른 관점과 대안교육에 대해 이해력을 지닌 자로 개설 사무를 겸임할 수 있도록 미리 선임하여야 한다. 특히, 대안학교 예산 편성은 예산 편성 지침에서 벗어난 경우에라도 구성원들의 결의에 찬 논의와 합의가 있으면 담대하게 편성해야 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교사 진용을 꾸리는 문제는 앞서 교장과 행정실장 보임 문제보다 더 큰 관건이 아닐 수 없다. 공교육 안에서도 대안교육을 접맥하여 교육과정을 이끄는 학교는 요즘 적지 않다. 하지만 대안교육에 대한 이해가 있다 하더라도 대안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하는 배움과 가르침은 결코 쉽지 않은 교육 행위이다. 열정과 이론만으로 섣불리 이뤄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현실은 대안학교 경험을 지닌 교사들로 모두 초빙하여 개교할 수 없다. 전남의 경우 역시 대안학교에서 일하고 있는 단 한 분의 교사도 초빙할 수 없었을 뿐더러 모든 교과에서 지원 교사들이 극히 한정된 몇 교사뿐이어서 결국 기간제 교사로 채울 수밖에 없었다. 기간제 교사들이 어느 면에서는 더 열정적이며 아이들과의 교감과 교류가 훨씬 돋보인다는 평이기도 하다. 승진 가산점도 주어지지 않고 아이들과 24시간 함께 해야 하는 노동 강도 또한 매우 힘든 편이어서 자발적으로 일하겠다고 자원하는 교사들을 결집해 내기란 공립의 경우 참으로 어렵다. 대안학교를 설립하고자 하는 교육청에서는 대안교육에 관심 있는 교사들을 위한 연수 기회를 확대하거나 연구 모임을 조직하도록 하여 적어도 3년 이상 협의 단계를 거친 교사들로 발령 낼 수 있도록 사전 준비가 절대적 관건이다. 또한 대안학교에서 일하고자 하는 교사들에 대한 인사상의 보완책을 가산점이나 인센티브 차원이 아닌 선에서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예를 들면 학습 연구년제안식년제 적용을 통해 휴식과 연구를 겸하면서 동력을 배가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거나 근무 연한 연장이나 근무지 이동 시 대안학교의 급별 이동 배려 등을 고려할 수 있으리라 본다.
세 번째로는 소통 문화가 형성될 수 있도록 학교 문화를 이끌어야 한다는 점이다. 사립 대안학교 경우는 이 점을 매우 중요한 과제로 보고 있다. 모든 구성원들 사이에 놓인 벽을 허물어 내지 않으면 대안학교는 좌초되고 만다는 게 일반적 견해다. 교장(감)과 행정실장 사이, 교장(감)과 교사 사이, 교사와 교사 사이, 행정실과 교무실 사이, 교장과 학생 사이, 교사와 학생 사이, 학생과 학생 사이, 교사와 학부모 사이, 교장(감)과 학부모 사이, 학부모와 학부모 사이 등등 모든 학교 구성원들 사이에 긴밀하고도 허심탄회한 소통이 이뤄져야 한다. 교장의 리더십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사립 대안학교에서 흔히 식구 총회를 통해 의사 결정을 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이러한 의사소통 구조 어디에라도 동맥경화에 걸리면 어렵다는 점에 대해 철저한 인식을 가져야 한다. 다양하고 정례적인 연수 기회 확대를 통해 대안교육과 대안학교의 현재에 대해 토론하고 토의해서 한 걸음, 한 걸음 진척되는 모습의 확인이야말로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보는 것이다.
끝으로 이런 논의가 적어도 개교 3년 전부터 차분하고 진지하게 모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른바 진보 교육감이 당선되기 전에 개교한 경기도 대명고등학교는 분당의 사립 대안학교인 이우학교와 거의 같은 시기에 설립 논의가 있었고 개교하였다고 판단한다. 경남 태봉고등학교는 경남 산청 간디학교의 학습 효과가 있어서 진보 교육감이 아니어도 개설하려는 의지를 가졌기에 가능한 산물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태봉고 교장 역시 간디학교에서 일한 경력을 가진 초빙 교장이다. 이런저런 점을 감안하여 보더라도 공립 대안학교 성패는 일차적으로 교직원 구성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으며 논의 기간이 적어도 최소 3년 전부터 진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전남의 경우, 설립 준비와 과정이 빠르지 않았음에도 도 의회 승인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게 되고 교직원 진용을 구성하는 데에 자구적인 인사 규정에 너무 얽매여 허덕인 경우로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고 판단한다.
이 외에도 입지 선정 문제 또한 중요한 변수일 수 있다. 도시와 도시 인근 혹은 농산어촌 지역에 학교를 세우는 경우 그 각각의 지역적 특성에 따라 교육 활동이나 진학하는 아이들 성향이 달라질 수 있다. 더불어 학교 건물의 공학적 설계 역시 빠뜨릴 수 없는 논제다. 아이들이 놀고 뛰고 웃고, 울고 하면서 보내게 되는 정서적 공간으로서 아늑함과 창발성, 역동성을 촉발해 낼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확장성 등은 매우 중요한 고려 항목이 아닐 수 없다.
몇 가지 지적한 부분은 사실 가장 일반적인 문제여서 개교를 앞둔 교육청 별로 세심하게 논의하고 있을 줄 안다. 그럼에도 가장 원초적인 난관인 까닭에 좀 더 매끄럽고 원활하게 풀지 않고 갔을 때 결국, 이로부터 발생하는 여러 어려움은 대안학교에 진학한 아이들에게 상처로 남을 수 있다. 어른들의 부족한 준비와 논의로 해서 대안학교에 진학한 소중한 청소년 시기를 아름답지 못하게 보내는 경우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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