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햇빛 살인
그날 아침 한 염부가 죽은 채 발견되었다.
섬까지 포함해 1만 7천여 킬로미터가 넘는 한반도 해안의 특별하지 않은 한 지점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곳은 우주 끝까지 놓인 장려한 철로에서, 웬만한 기차는 멈추지 않고 지나치는 게 너무도 당연한 변방의 이름 없는 간이역 같은 지점에 불과했으며, 죽은 그는, 한반도에 살림터를 잡고 사는 7천만 명이 넘는 사람 중 어디에 어떻게 세워놔도 전혀 표가 나지 않을 한 사람의 중년 남자에 지나지 않았다.
그냥 염부1이라 불러도 좋을 사람이었다.
그가 발견된 지점은 소금을 거두는 마지막 단계인 최종 ‘결정지’였다. 결정지는 여러 단계의 ‘증발지’를 거치면서 염도를 옹골차게 다진 바닷물이 마지막으로 깃들어 꽃으로 피었다가 비로소 육체를 갖춰 소금이라는 이름을 얻는 존엄한 곳이었다. 염부1은 함수(鹹水)를 가둬두는 ‘해주’의 슬레이트 지붕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엎드려 있었다. 이웃 결정지에서 일하던 염부2가 보다 일찍 그를 발견하지 못한 것은 그들 사이에 해주의 슬레이트 지붕이 가로놓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해는 벌써 한 뼘이나 솟아나 있었다.
어제 저물녁에 거두었어야 할 소금이었다. 그러나 어떻게 된 노릇인지 요즘은 저녁이 돼도 기온이 35도 이하로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염부2는 물론 다른 염부들도 새벽 시간에 나와 소금을 거두고 있었다. 결정지의 소금을 큰 고무래인 ‘대파’로 대강 밀어 모아놓고 한숨을 돌리려다가 염부1을 발견한 염부2는, 처음에 염부1이 단지 실수로 미끄러져 넘어졌다고 생각했다. 결정지의 바닥은 미끈미끈한 데가 많아 힘에 부치면 넘어지기 일쑤였다.
“어이, 날씨 좋네. 소금 많이 오시겠어!”
염부2는 매끈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염부들은 너나없이 소금이 “온다”라고 말했다. 소금은 염부의 손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햇빛과 바람이 바닷물을 익혀주기 기다리면 시간의 레일을 타고 마침내 눈부시고 가뿐한 결정체로 찾아와주는 귀빈이 바로 소금이었다. 때마침 바닷바람도 나슬나슬 불고 있었다. 소금이 오기에 아주 좋은 날씨였다. 염부2의 목소리엔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윤기가 자르르 흘렀다. 이런 날씨라면 보나 마나 소금이 더 알뜰히 꽃피우며 흐벅지게 찾아와줄 터였다.
염부1에게선 아무런 대답도 날아오지 않았다.
해주의 슬레이트 지붕 높이는 지상에서 겨우 1미터 정도였다. 대파의 손잡이를 고쳐 잡으려고 잠시 허리를 펴던 염부2는 다시 한 번 해주 너머로 염부1을 기웃, 바라보았다. 가슴이 그 순간, 철퍼덕 하고 내려앉았다. 염부1은 결정지 한가운데, 둥글게 모아진 소금 더께의 한쪽 모서리에 이마를 뉜 채 여전히 꼼작하지 않고 있었다. 살진 소금꽃이 염부1의 머리칼과 해진 작업복 따위에 덤턱스럽게 엉겨 붙어 있는 걸 염부2는 보았다. 그것은 염부1이 조금 전에 쓰러진 게 아니라는 명백한 증거였다. 대파 손잡이가 염부2의 손아귀에서 쓰윽 빠져나갔다.
“아이고, 이게 뭔 일! 어이! 어허이!”
염부2가 허둥지둥 달려가기 시작했다.
먼 곳에서 증발지의 물꼬를 보고 있거나, 다른 결정지에서 외발 수레에 소금을 퍼 담고 있던 몇몇 염부들이 염부2의 왜장치는 소리에 비로소 허리를 펴고 이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여과를 끝낸 증발지 바닷물은 유리처럼 투명해 능히 햇빛의 깐깐한 살기를 가볍게 튕겨내고 있었다. 먼 곳의 염부들은 아직 형편을 알지 못했으므로 손차양을 하고서 미친 듯 달려가는 염부2를 데면데면 바라보았다.
서두는 것은 염부2뿐이었다.
너무 조급하게 달려가느라 두렁에 발의 앞부리를 부딪히고 얄망스럽게 고꾸라지기도 했다. 고꾸라진 염부2의 몸이 달려온 관성을 따라 쭉 미끄러지다가 엎어진 염부1의 허벅지에 닿고서야 멈췄다. 염부1의 전신이 이미 빳빳이 굳어 있다는 것을 염부2는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소금밭 저수조 둑을 돌아온 경찰차가 잔자갈과 잡초들이 범벅된 비포장 길을 따라 굼뜬 걸음새로 들어왔다. 소금 자루나 오가는 길이었다. 땜질을 여러 번 한 궁뚱망뚱한 소금 창고를 세 개나 지나와서 경찰차가 멈춰 섰다. 정복 순경과 사복형사 한 사람이 차 문을 열고 나왔다.
사복형사는 검은 안경을 쓰고 있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목을 쭉 빼 올리고 좌우로 몇 번 꺾어본 뒤에야 ‘사복’은 비로소 염부들이 기다리고 있는 이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염부들 중엔 형사와 안면이 있는 이도 있었다.
“내 말대로, 현장은 그대로 뒀지요?”
염부1은 그가 애초 쓰러져 있던 결정지에서 하늘을 향해 반듯이 누워 있었다. 소금을 모으다가 쓰러졌는지 층을 이룬 소금 더께의 한쪽에 뒤꼭지를 댄 자세였다. 염부2가 뒷머리를 긁적이면서 엎어져 있던 시신을 자신이 반듯이 뉘어놓았다고 자백했다. “사람을…… 소금에 코 박고 있게…… 차마 내버려둘 수 없어서…….” 벌그레해진 얼굴로 염부2가 우물우물 말하고 나자 사복이 미간을 와락 찌푸렸다. 해는 벌써 중천에 가까워져 있었다. 일은 물론 아침밥도 작파한 채 모여 선 염부들의 흐린 눈동자에 손수건만 한 구름 떼가 시나브로 지나갔다.
바람도 햇빛도 정말 원만한 날씨였다.
사복이 검은 안경을 벗고 염부1의 시신을 시시콜콜 살폈다. 심지어 사복은 염부1의 입을 벌려 보고 감은 눈을 까뒤집어 보기까지 했다. 염부1의 입안에 다 녹지 않은 소금이 한 움큼 들어 있었다. 그 무렵엔 계속 비가 오지 않아 염부들은 한 식경도 쉴 틈이 없었다. 염부1도 물론 예외가 아니었다. 한계치에 달하는 노동력과 피어린 단심(丹心)을 다 바쳐 마침내 맞아들인 귀하고 귀한 손님을 그가 마지막 가는 길, 입안 가득 물고 있었다.
“엎드려 있을 때 어떤 자세였나요?”
사복이 물었고, 염부2가 두서없이 대답했다.
흡족한 대답이 아니라는 사복의 섬쩍지근한 눈빛에 염부2는 염부1이 엎드려 있던 대로 직접 엎어져 보이기까지 했다. 해진 트레이닝복을 걸친 채 염부1은 대파를 한쪽 가슴께에 대고 엎어진 자세로 죽어 있었다. 낡아서 갈라진 소금 장화 틈으로 소금 가루들이 엉겨 붙은 발목이 보였다. 염도 30도 가까운 소금물에 그의 발은 늘 절여져 있었을 것이었다. 어떤 염부는 아침에 그가 제1증발지인 ‘난치’에 저수조 바닷물을 들여앉히는 것을 보았다고 했고, 또 어떤 염부는 한낮에 그가 저수조 건너편 하천 부지 콩밭을 매는 걸 보았다고도 했다. 그는 일벌레였다. “아들 대학 졸업식에 가봐야 한다고 했어요. 요즘처럼 더우면 새벽에 거두어야 하는데, 서울에 다녀와야 한다면서…….” 염부2가 덧붙였다. 다들 임대염업자 신세라 힘들지 않은 사람은 없었지만, 그중에서도 염부1은 마누라도 없는데다 자식이 많아서 남달리 혹독한 삶을 살아오던 중이었다.
“대학생 아들 하나 보고 살아온 사람인데!”
사복과 안면이 있는 늙수그레한 염부3이 중얼거렸다.
그 역시 평생 한 번도 소금밭을 떠나보지 않은 사람이었다. 한번 시작하면 거의 놓을 수 없는 것이 소금밭 대파질이었다. 사복이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햇빛의 칼끝에 눈이 찔려 얼른 검은 안경을 다시 썼다. 하늘은 허공에도 있고 결정지의 순도 높은 함수에도 들어박혀 있었다.
“어, 어떻게 된 노릇인지, 원!”
염부2가 말을 더듬적거렸다. 반짝거리는 결정지 바닥을 찢어진 솜털 같은 구름이 천천히 가로질러가는 중이었다.
“뻔하지!”
사복이 이윽고 몰강스럽게 말했다.
“햇빛이 죽인 거지. 소금이 죽인 거지! 그래도 모르겠어요? 소금 만드는 양반들이, 참 뭘 모르네. 안 먹고 땀만 많이 흘리면 몸속의 소금기가 속속 빠져 달아나요. 이 양반, 몸속 염분이 부족해 실신해 쓰러졌던 거예요. 만들기만 하면 뭐해요, 자기 몸속의 소금은 챙기지도 못하면서!”
배롱나무
배롱나무는 꽃은 물론 그 줄기도 품격이 남달라 예로부터 선비들의 지극한 사랑을 받았다. 내가 다녀본 웬만한 고택의 뜰엔 꼭 배롱나무가 한 그루쯤 서 있었다. 이를테면 수많은 관직을 제수받았으나 오탁汚濁의 세월을 한 사람 뜻으로 뒤집을 수 없다는 걸 알고 한 번도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은 소론파의 거두 명재明齋 윤증尹拯 선생의 고택 뜰 앞 연못의 작은 섬에도 배롱나무가 있었다. 벼슬길의 유혹이 있을 때마다 명재 선생은 아마도 배롱나무가 껍질을 벗듯이 울분의 껍데기를 벗겨내며 자기 각성의 길을 옹골차게 도모했을 터였다.
내가 그 배롱나무를 발견한 것은 가을 초입이었다.
저물녘이었다. 한적한 시골 보건지소 앞을 지나다가 무엇에 홀린 듯 그 안쪽 길로 꼬부라져 들어갔는데 어떤 폐교의 철문이 나왔다. 운동장 북쪽 울타리를 따라 도열한 키 큰 전나무와 플라타너스들이 우선 눈에 들어왔다.
폐교는 정갈한 고요를 품고 있어서 좋았다.
빈 운동장에 서 있으면 작은 것들의 소멸을 보는 애련함이 가슴에 나붓나붓 들어찼다. 금방이라도 교실 문을 박차고 나올 것 같은 아이들의 오동통한 발소리, 해맑은 함성 등 그 멀고 깊은 청음淸音들을 듣는 느낌도 좋았다. 그것은 추억으로 가는 너른 길이었으며, 추억은 구체적인 기억들조차 모두 일관되게 추상화했으므로 언제나 나를 편안하게 했다. 아내와 이혼하고 내려와 있던 그 무렵의 나에겐 더욱 그러했다.
걸음을 멈춘 건 운동장을 반쯤 지난 다음이었다.
플라타너스 그늘에 서서 나는 그것을 보았다. 내가 그것을 발견하고 걸음을 멈추었는지, 아니면 앞으로부터 뻗어 나오는 어떤 서기를 본능적으로 느껴 걸음을 멈추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아, 하고 한순간 나는 입을 벌렸다. 허물어져가고 있는 교실 지붕 너머로 바야흐로 저녁놀이 홍옥紅玉처럼 익어가는 중이었다. 가슴속에서 파장이 일었다. 사멸로 내닫는 교실 지붕과 내박차 오르는 놀의 선홍빛 대비가 주는 감흥 때문이 아니었다. 교실 앞에 줄지어 선 배롱나무들이 은은하고 부드럽게 내게로 밀어내주는 황홀한 서기 때문이었다.
배롱나무가 네 그루, 교사 앞에 도열해 있었다.
놀빛을 역광으로 받고 있는 곳에 서 있어서 가까이 다가갈 때까지 발견하지 못했던가 보았다. 잡초들이 허리께까지 자라나 있었지만 그것들은 단연코 그 모든 것을 사소한 것으로 만들 만큼 품격이 있었다. 보는 이 없는 폐교의 운동장을 여름 내내 지키고 있었을 배롱나무였다. 꽃잎들이 하롱하롱 지고 있었다.
유독 내 시선이 머문 것은 첫 번째 나무였다.
밑둥에서 쌍으로 나눠진 두 가지가 밀어내듯 서로 멀어지다가 되구부러져 돌아와 스치는 형국으로 만나면서 여러 잔가지로 나뉘어 자랐다. 그 바람에 나무는 자연스럽게 한가운데 ㅁ자형의 허공을 만들어 품고 있었다. 균형 잡힌 좌우대칭이 미학적 전형을 보여주고 있었으며, 그 위에서 수많은 꽃이 막 떠오르는 우주선처럼 장중한 타원을 이루고 있었다. 그것은 태양의 광채를 품은 비의적인 영원성을 아낌없이 내게 보여주었다. 나는 감동에 차서 굵은 줄기를 가만가만 쓰다듬어보았다. 아내를 떠나보내고 나서 이렇게 감흥의 게이지가 비등한 것은 처음이었다. 눈가가 젖어드는 기분을 느꼈다. 만약 교실 쪽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면 나는 그만 나무의 허리를 부둥켜안고 소리 내어 울었을지도 몰랐다.
처음에 나는 풀벌레 소리를 들은 줄 알았다.
놀이 잦아들며 풀벌레 우는 소리가 났기 때문이었다. 플라타너스 너른 잎들 사이로 자맥질하는 바람의 숨소리도 들렸다. 그러나 잠깐의 시간이 지났을 때 나는 풀벌레 소리 사이에서 다른 음색을 감지할 수 있었다. 여자인 것 같았다.
우는가, 라고 생각했다.
여트막한 바람 소리 같기도 하고 간헐적으로 끊어지는 낮은 휘파람 소리 같기도 했다. 그 울음소리엔 뭐랄까, 누군가를 간절히 그리는 듯한 외따로운 느낌이 배어 있었다. 코를 푸는 것 같은 소리가 나고, 곧 교실 복도를 걸어 나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그 자리를 떠나는 게 미지의 그에 대한 속 깊은 예의일 터였지만 그럴 틈이 없었다. 발소리가 아주 빠르게 다가왔다.
그렇게, 나는 그녀, 시우를 처음 만났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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