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시간과 실존, 『고함과 분노』
2. 가문의 몰락과 비극적 상실감
소설 전통에서 보면 『고함과 분노』는 한 가문의 몰락과 붕괴를 다루는 계보소설에 속한다. 가문의 몰락이나 붕괴는 서구 문학 전통에서 보면 꽤 흔한 주제이다. 옛 그리스 비극이나 『구약성서』에서부터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비롯한 르네상스 시대 문학을 거쳐 현대 작품에 이르기까지 많은 작가가 이러한 주제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미국 문학으로 그 범위를 좁혀보아도 19세기에 너새니얼 호손이 『일곱 박공의 집』(1851)에서, 에드가 앨런 포가 「어셔 가(家)의 몰락」(1839)에서 한 가문의 붕괴를 중심 플롯으로 다루었다. 특히 미국 문학에서 남부 작가들은 사회의 구성 단위라고 할 가족에 아주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산업화나 공업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혈연관계가 무의미해진 북부와는 달리, 농경 사회인 남부에서는 여전히 가족을 중심으로 한 혈연관계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회 단위였기 때문이다.
윌리엄 포크너는 다른 남부 작가와 마찬가지로 한 가문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인간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이러한 특징은 요크너퍼토퍼 연작소설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가령 사토리스 집안사람들을 다루는 『흙 속의 깃발』을 비롯하여 번드런 집안사람들을 다루는 『내 죽으며 누워 있을 때』(1930), 벤보 집안사람들을 다루는 『성역』, 섯펜 집안사람들을 다루는 『압살롬, 압살롬!』(1936) 등은 그 좋은 예이다. 이 밖에도 맥캐슬린 집안사람들을 다루는 『모세여 내려가라』(1942)와 『무덤 속의 침입자』(1948), 그리고 스놉스 집안사람들을 다루는 『마을』(1940)과 『읍내』(1957)와 『저택』(1959)의 ‘스놉스 삼부작’도 여기에 속한다.
『고함과 분노』에서 포크너가 다루는 콤슨 가문은 사토리스 가문과 마찬가지로 요크너퍼토퍼 군과 제퍼슨 읍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았던 귀족 가문이다. 찬란한 전통과 화려한 명예를 자랑하는 가문으로 선조 중에는 남북전쟁 때 장군으로 이름을 떨친 군인도 있고 미시시피 주의 주지사를 지낸 정치가도 있다. 제퍼슨 읍 창설에 주역을 맡기도 한 콤슨 집안사람들은 저택 주위에 수백 에이커의 땅을 소유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이 주로 다루는 현재 시점에 그 찬란한 전통과 명예는 한낱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가장家長 제이슨 콤슨 3세는 가문의 무거운 짐에 억눌린 채 좌절감과 실망감을 술과 라틴어 시와 냉소주의로 달래다가 숨을 거둔다.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는 그의 아내 캐롤라인은 열등감에 빠져 언제나 불평만 늘어놓는다.
제이슨 콤슨의 자손 대에 내려와서는 상황이 더욱 나빠져서 큰아들 퀜틴은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에 절망한 나머지 마침내 하버드 대학교 재학 중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하나밖에 없는 딸 캐디는 결혼도 하기 전에 무분별한 남자관계로 사생아를 낳고, 결혼 뒤에는 남편으로부터 버림받아 어디론가 자취를 감춘다. 둘째 아들 제이슨은 형과 누이가 받은 기회를 박탈당한 것에 몹시 분개하며 지금은 아버지와 형을 대신하여 가장으로서의 무거운 짐을 걸머진 채 살아간다. 그리고 태어날 때부터 백치인 막내아들 벤지는 나이가 서른세 살이건만 정신 능력은 겨우 세 살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 작품은 캐디의 사생아 미스 퀜틴이 외삼촌 제이슨의 돈을 훔쳐 어느 서커스 단원과 함께 가출하고, 제이슨이 그들의 뒤를 쫓다가 끝내 잡지 못하고 분노와 절망 속에 제퍼슨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뒷날 포크너가 쓴 「부록: 콤슨 집안사람들」에 따르면 캐디는 1940년 프랑스 파리에서 어느 독일 장군의 정부情婦가 되고, 제이슨은 멤피스의 창녀 로레인과 사귀지만, 결국 결혼하지 않은 채 독신으로 외롭게 지낸다. 벤지는 어머니가 죽자마자 1933년에 미시시피 주 주도州都인 잭슨에 있는 주립 정신병원으로 보내진다. 이로써 한때 찬란한 전통과 과거를 자랑하던 콤슨 집안은 마침내 막을 내리고 저택은 폐허가 되어버린다.
그렇다면 콤슨 가문은 과연 무엇 때문에 몰락하는가? 호손의 『일곱 박공의 집』에 나오는 핀천 가문처럼 선조가 저지른 죄나 비행 때문인가? 아니면 포의 어셔 가문처럼 운명적으로 어쩔 수 없이 몰락하고 파멸할 수밖에 없는가? 그것도 아니라면 콤슨 집안사람들 탓으로 돌릴 수 있는가? 바로 이 물음에 대한 답에서 『고함과 분노』의 주제를 파악하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언뜻 보면 콤슨 가문의 파멸은 소포클레스의 비극처럼 운명적이고 필연적인 것 같다. 실제로 퀜틴은 캐디에게 “우리한테는 저주가 내려져 있어. 그건 우리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한다. 그의 말대로라면 오이디푸스 왕이 신탁 때문에 필연적으로 파멸하는 것처럼 콤슨 집안사람들도 그들의 자유의지와 관계없이 몰락한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콤슨 집안의 몰락은 외부적인 힘에서 비롯한다기보다는 내적 결함에 원인이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콤슨 가문의 몰락과 파멸은 가족 구성원 사이에 사랑이나 애정 같은 정서적 교감이나 정신적 교섭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데서 비롯한다.
제이슨 콤슨 3세와 그의 아내 캐롤라인 사이에는 정상적인 부부 사이에서 볼 수 있는 어떠한 정서적 교감도 없다. 두 사람은 상대방을 조금도 배려하지 않고 오직 자신만의 세계에 깊이 빠져 있다. 술과 냉소주의에서 도피처를 찾는 제이슨은 좀처럼 허무주의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그에게 인간은 한낱 “불운의 총화”에 지나지 않으며, 인간의 모든 “희망과 욕망”은 ‘시간’이라는 거센 흐름에 묻혀 결국 ‘무덤’으로 변해버리고 만다. 제이슨은 아내에게 애정을 느끼지 못할뿐더러 자녀에게도 아버지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들에게 애정을 느끼면서도 패배주의와 허무주의 때문에 정신적 지주가 되어주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캐롤라인 콤슨도 남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제이슨 3세가 아버지 구실을 제대로 못 하는 것처럼 캐롤라인도 제대로 된 어머니 역할을 하지 못한다. 그녀는 늘 자기연민에 빠져 불평을 늘어놓고 때로는 신경질환 증세마저 보인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자식을 편애하여 정상적인 가족 관계를 유지하지 못한다. 친정집 식구를 닮았다는 이유로 둘째 아들 제이슨만을 편애하고 다른 자녀는 좀처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더구나 캐롤라인은 벤지 같은 백치를 낳은 것을 몹시 부끄럽게 생각한다. 백치 아들을 둔 것을 신이 자신에게 내린 저주로 간주한다. 더구나 외동딸 캐디가 성적으로 난잡한 행동을 일삼는 것도 귀족 신분이나 체면에 대한 모독으로 여긴다. 이처럼 캐디의 행동에 지나치게 과민한 반응을 보임으로써 그녀는 오히려 딸의 몰락을 재촉하는 결과를 낳는다. 사춘기를 겪는 캐디가 동네 사내아이와 첫 키스를 했을 때 이튿날 그녀는 자기 딸 캐디는 이제 죽었다고 말하면서 검은 상복에 베일을 쓰고 집 안을 돌아다닌다. 결국, 이러한 과민한 행동으로 캐디는 심한 죄책감에 시달리고 질식할 것 같은 집안 분위기에 대한 반발로 더욱 어긋나게 된다. 그리고 캐롤라인이 채우지 못하는 어머니 역할을 나이 어린 캐디가 대신하거나 흑인 하인 딜지 깁슨이 떠맡는다.
제이슨 콤슨 3세와 캐롤라인의 이러한 태도는 두말할 나위가 없이 자식들에게 그야말로 치명적인 해를 끼친다. 어느 다른 형제보다도 남달리 감수성이 예민한 퀜틴은 늘 부모 없는 고아처럼 느낀다. “나에게 어머니, 어머니라고 부를 수 있는 어머니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절망감을 털어놓는다. 퀜틴은 비단 어머니만이 아니라 아버지에 대해서도 이와 똑같은 감정을 느낀다.
이렇듯 콤슨 집안 자녀들은 육체적으로는 멀쩡할는지 모르지만, 정신적으로는 불구자와 다름없다. 태어날 때부터 백치인 벤지는 그렇다 쳐도 다른 자녀도 하나같이 정상적인 인간으로 성장하지 못한다. 앞서 이미 밝혔듯이 캐디는 성적으로 무분별한 행동을 일삼는다. 퀜틴은 콤슨 자녀 중에서 가장 교육을 많이 받은 지적인 인물인데도 지나친 자의식 탓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한다. 캐디가 타락하자 정신적 지주를 찾지 못하는 퀜틴은 마침내 자살하기에 이른다. 한편 제이슨은 극도의 물질주의자로 변한다. 어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으면서도 교묘히 그녀를 속이고, 퀜틴이나 캐디가 받은 기회를 자신에게는 주지 않았던 아버지에 대해 몹시 분개한다. 제이슨에게 인간의 모든 행동은 오직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가치로서밖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 가령 아버지의 장례식 날 캐디가 집안 식구 몰래 찾아와 아버지의 무덤에 가져다 놓은 꽃다발을 보면서 그는 속으로 “50달러어치는 충분히 되겠는걸.”이라고 생각하며 꽃을 사는 데 쓴 돈을 아까워한다. 마찬가지로 그의 정부情婦 로레인과의 관계도 오직 돈의 관점에서만 의미가 있을 뿐, 이렇다 할 정서적 교감이 없다.
『고함과 분노』에서 콤슨 가족은 사랑과 이해의 부족으로 파멸을 맞는다. 그들에게서는 정상적인 가족 구성원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랑과 관용 그리고 이해를 찾아보기 어렵다. 애정보다는 증오, 화해보다는 갈등, 그리고 협력보다는 반목과 질시가 있을 뿐이다. 포크너는 콤슨 가문의 몰락을 통해 사랑이나 동정 또는 이해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역설적으로 이야기한다. 다른 작품에서도 흔히 그러하듯이 그는 이 주제를 표현하는 데 긍정적인 방법보다는 부정적인 방법을 이용한다. 다시 말해서 작가는 이러저러해야 한다고 말하는 대신 오히려 이러저러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콤슨 가문이 가족 구성원 사이에 사랑이나 이해가 없어서 파멸에 이른다는 것은 사랑이나 이해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포크너에게 가족의 붕괴나 가문의 파멸은 그 이상의 상징적 의미가 있다. 콤슨 가문의 몰락은 전통적인 남부 사회의 붕괴를 상징한다. 난해한 실험적 기교 탓에 자칫 독자들은 사회적 의미나 정치적 차원을 놓쳐버리기 쉽지만, 좀 더 꼼꼼히 따져보면 이 작품에는 나름대로 사회적·정치적 의미가 담겨 있다. 실제로 가족은 그저 혈육의 집합체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회의 최소 구성 단위가 된다. 이것은 좁게는 한 공동 사회의 구성원, 넓게는 한 민족, 더 넓게는 우주의 시민을 축소해놓은 것과 다름없다. 가족은 개인을 보호해주는 울타리가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개인을 억압하고 제어하는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한때 찬란한 명예와 전통을 자랑하는 콤슨 가문이 점차 파멸의 길을 걷듯이 미국 남부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쇠퇴의 길로 들어선다. 전통적인 남부 사회에서도 콤슨 가문이 그러하듯이 동료 인간에 대한 사랑과 이해를 찾아보기 어렵다. 북부 사회와 비교할 때 남부 사회는 신분과 혈통에 따라 계급 질서가 뚜렷이 구분되고 똑같은 백인이라고 해도 사회적 위계질서에 따라 차이가 난다. 가령 계급 질서의 사다리에서 콤슨 집안사람들이나 사토리스 집안사람들은 맨 꼭대기를 차지한다. 캐롤라인 콤슨이 친정집 배스콤 가문도 시가媤家 콤슨 가문 못지않게 뼈대 있는 가문이라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을 보면 같은 상류 계급에서도 갈등과 긴장이 적지 않다.
더구나 남부는 ‘비인간적인 흑인 노예제도’라는 원죄의 짐을 지고 있다. 이렇게 노예제도에 의존하는 남부의 전통적 농경 사회는 남북전쟁 이후 북부 공업 사회의 위협을 받자 여지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남부의 몰락은 내적 요인 못지않게 외부 요인에서도 비롯한다. 남부는 정치뿐 아니라 사회?경제적으로도 큰 혼란을 겪는다.
미국의 전통적 남부 사회의 몰락과 붕괴는 또한 20세기 현대인의 정신적 파산을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하다. 거의 같은 시대에 활약한 T. S. 엘리엇처럼 포크너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의 서구 사회를 황무지에 빗댄다. 콤슨 집안사람들이 사는 요크너퍼토퍼 군의 제퍼슨 읍도 황량한 불모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콤슨 집안사람들처럼 20세기 현대인도 삶다운 삶을 살지 못한 채 엘리엇이 말하는 “죽음 속의 삶” 또는 “삶 속의 죽음”을 겪는다.
19세기 이전의 전통 사회에서 살던 사람들은 신 같은 초월적 존재에 기대어 그로부터 큰 힘을 얻고 위안을 찾았다. 때로는 살아 숨 쉬는 자연이 인간에게 큰 힘이 되기도 했고, 공동사회나 가족이 개인의 울타리가 되어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초월적인 존재나 자연, 공동사회와 가족을 잃어버린 현대인들은 어느 때보다도 소외감과 비극적 상실감에 사로잡힌다. 그들에게 참다운 정신적 교섭이나 의사소통은 마치 무지개를 잡으려는 노력처럼 부질없어 보인다.
현대인들은 제이슨 콤슨 3세처럼 허무주의와 냉소주의를 ‘일용할 양식’으로 받아들인다. 초월적 존재를 믿는 종교는 캐롤라인 콤슨처럼 내용이 텅 빈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 또 퀜틴처럼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것을 지나치게 믿음으로써 의미 있는 삶을 살지 못한다. 제이슨과 마찬가지로 인도주의적인 가치관 대신에 상업주의적인 가치관을 받아들이는가 하면, 캐디처럼 쾌락에서 도피처를 찾으려고 한다. 한마디로 정신박약, 정신분열증, 알코올 중독, 편집증, 냉소주의, 자기연민, 성적 방탕 그리고 절도 따위는 콤슨 집안사람들만이 아니라 현대인들에게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특징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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