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사람은 왜 살아가는가
고민의 선구자들
우리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행복감을 손에 넣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시대와 사회의 DNA인 양 받아들여 온 ‘행복 방정식’을 근저에서부터 의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행복 방정식’을 의심해 보는 것은 자신이 살아가는 의미나 행복감을 변화시킬 수도 있기 때문에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도대체 사람은 왜 살아가는가, 삶의 의미는 어디에 있는가, 행복이란 무엇인가, 이런 문제를 고민하고 시간을 허비하는 것 자체가 쓸데없는 짓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또 그런 물음을 한다고 해도 해답 같은 것은 있을 리 없다고 단정해 버리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사람은 그런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물며 ‘유동하는’ 근대의 ‘비상사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불안해 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이 물음을 끝까지 계속하며 해답을 찾아내려고 한 선구적인 거인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가 그들입니다. 우리는 이 거인들의 어깨에 올라타 그 물음을 더 깊게 파내려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소세키와 베버가 중요한 것은, 동양과 서양에서 거의 동시대를 살았던 두 거인이 이미 100년도 더 지난 과거에 풍부한 통찰력으로 ‘행복 방정식’의 한계를 어느 누구보다 날카롭게 간파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비록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의 ‘고체적 근대’를 살았다고는 하지만,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유동하는’ 근대의 불안이나 갈등, 그 심연을 들여다봄으로써 근대 자체의 임계점도 꿰뚫어 봤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 우리가 ‘행복 방정식’의 ‘끝의 끝’을 경험하고 있다고 한다면 소세키와 베버는 그 ‘끝의 시작’을 꿰뚫어보고, 그것을 문학이나 사회학이라는 표현 방법을 통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 한 마디 한 구절이 그들의 실존 전체를 건 근대라는 시대와의 격투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뒤틀린 행복론에 사로잡히다
우선 소세키의 작품에는 자본주의와 관련된 ‘뒤틀린 행복론’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모두 지금의 우리와 많이 닮아 있고, 그런 만큼 ‘종언의 시대’가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을 생생하게 느끼게 해줍니다.
예컨대 『그 후それから』의 다이스케를 보시기 바랍니다. 부모의 신세를 지며 살고 있는 고등유민*,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니트NEET족**입니다. 하지만 단독주택에 살고 있고 서생***도 두고 있으며, 수입품을 사기도 합니다. 현대의 상류층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상당히 우아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생활을 보낼 수 있는 것은 그의 아버지가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을 뒤덮은 자본주의 물결에 재빨리 올라타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다이스케는 부모의 세속적인 면을 경멸하면서도 재산을 물려받는 것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친구의 아내인 미치요와의 연애 관계가 부모에게 알려져 버림받았을 때에야 비로소 입에 풀칠하는 일의 혹독함을 생각하고 패닉 상태에 빠집니다.
* 나쓰메 소세키가 만든 말로 고등실업자를 의미한다. 고등 교육기관에서 교육을 받았지만 경제적으로 부족함이 없기 때문에 노동에 종사하지 않고 독서 등으로 시간을 보내는 사람을 가리키므로 엄밀히 말하자면 고등실업자나 니트와는 구별된다.
**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NEET). 교육, 노동, 직업훈련, 어느 것에도 참가하지 않는 상태를 가리키는 조어지만, 요즘은 대체로 아르바이트나 파트타임이라는 형태로 일하는 무직자 중에서 정식 구직 활동을 하지 않는 자를 말한다.
*** 다른 사람 집에 얹혀살면서 가사를 도와주며 공부하는 학생.
또 한 사람, 그럭저럭 괜찮은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는 인물로 『명암明暗』의 오노부가 있습니다.
그녀도, 그녀의 남편인 쓰다도 중류 이상의 가정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모두 사치병에 걸려 있는데, 쓰다의 급료가 그리 많지 않아 매달 조금씩 생활비가 부족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생활비를 줄일 생각이 없고, 다이스케가 그랬듯 부족한 돈은 부모에게 얻어 쓰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하지 않는 오노부의 손가락에는 훌륭한 보석 반지가 빛나고 있습니다. 그녀의 머릿속에 부모에게 폐를 끼친다는 생각은 거의 없습니다. 그녀가 생각하는 것은 자신들 부부의 체면과 안락함뿐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무턱대고 ‘사랑’, ‘행복’이라는 말을 연발합니다. 다이스케나 오노부의 사고나 경제 감각은 신기하리만치 요즘의 우리와 닮았습니다.
소세키의 작품에는 또 한 가지 큰 특징이 있습니다. 주요 등장인물이 모조리 중류 이상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풍요로운 생활 때문에 또는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최악의 상황에 빠지고 마는 모습, 대부분 그런 것만 썼다고 해도 좋을 정도입니다. 소세키는 적어도 자신의 작품에서, 사회의 밑바닥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씩씩함이나 분발하는 프롤레타리아의 모습 같은 것에는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소세키의 소설에서 전개되고 있는 것은, 당시로서는 꽤 상층 계급인 특수한 사람들의 세계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100년이 지난 오늘날, 그런 상황은 일반화·대중화하여 사회 구석구석까지 뒤덮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지금 소세키적인 세계는 대체로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된 것입니다. 요즘 세상의 오노부와 다이스케는 우리 주변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정신 없는 전문인’과 ‘가슴 없는 향락인’
이제 베버입니다. 소세키와 베버는 멀리 떨어진 이국 하늘 아래에 있어 접점은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닮은 점이 있습니다. 베버는 다이스케의 독일판 같은 구석이 있습니다. 베버의 아버지는 이른바 신흥 부르주아지 정치가로, 어떤 의미에서는 시민주의적 영웅의 가면을 쓴 사람이었습니다.
베버는 자신의 아버지처럼 벼락출세한 사람들이야말로 자본주의에 말기적 증상을 가져온 사람들이고, 그들의 모습에서 시대의 ‘끝’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날카롭게 감지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소세키가 유학을 간 ‘일등국’ 영국에서 일본의 말로를 엿본 것처럼, 베버도 신대륙 미국에서 근대 자본주의의 미래, 그 ‘끝’을 발견했습니다.
미국 체험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명저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Die protestantische Ethik und der ‘Geist’ des Kapitalismus』의 끝부분에는 이런 기술이 보입니다.
영리 활동이 가장 자유로운 지역인 미합중국에서 영리 활동은 종교적·윤리적인 의미가 없어지고 이제 순수한 경쟁의 감정과 결부되는 경향이 있으며, 그 결과 스포츠의 성격을 띠는 일조차 드물지 않다.
‘카지노화’한 현재의 금융자본주의를 보면 이 지적은 놀라운 선견지명을 보인 말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제 영리 활동은 일체의 모럴이나 윤리, 의미 부여가 떨어져 나가 스포츠 같은 경기가 되었고, 승자만이 살아남아 행복의 축배를 들 수 있습니다. 패자는 불행해질 뿐 아니라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딱지가 붙고 경기장 밖으로 쫓겨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본주의라는 게임에서 패자의 굴욕과 불행을 맛보고 싶지 않으려면 승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매일 ‘승자가 되기 위한 마음가짐이나 노하우가 있다’는 메시지로 샤워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게임화한 자본주의 발전의 앞날에 어떤 유형의 ‘인간’이 등장하게 될 것인지, 베버는 상당히 비관적이었습니다.
베버는 프리드리히 니체Fridrich Nietzsche, 1844~1900의 “‘행복을 찾아냈다’고 말한 최후의 인간(마지막 인간)”을 의식해서일까요, 비아냥거림을 담아 거기에 등장하는 ‘인간 유형’을 자본주의적인 “문화 발전의 마지막 단계에 나타나는 ‘최후의 인간(마지막 단계의 인간)’”이라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 ‘최후의 인간’에 대해 “정신 없는 전문인, 가슴 없는 향락인. 이 무無, nichts인 존재는 일찍이 인간성이 도달해 본 적이 없는 단계에까지 이미 올랐다고 우쭐해할 것이다”(『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정신 없는 전문인’과 ‘가슴 없는 향락인’. 게다가 그 사람들은 무이며,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자신들은 인간성의 최고 단계에 있다고 우쭐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신랄하고 비아냥거림으로 가득 찬 경구가 아닐까요. 하지만 ‘3·11’ 대참사를 경험한 현재, 이는 마치 지금의 일본을 말하고 있다고 착각할 정도로 현실성이 있는 말입니다.
하나님도 부처님도 없어
여기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베버가 변신론辯神論, theodicy에 대해 말한 일입니다.
변신론이란 원래 독일의 철학자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Gottfried Leibniz, 1646~1716가 그리스어의 신theos과 정의dike를 합성한 말로, 그 목적은 전능한 신이 세계를 창조했는데 왜 악이 존재하는가, 즉 신의 선성善性과 세계에 악이 존재하는 것 사이의 근원적인 모순(윤리적 비합리)을 신에게 책임을 돌리지 않고 논증하는 데 있었습니다.
베버는 이 말을 사회학적 용어로 부연하여 설명하고, ‘윤리적 비합리성’을 신의 섭리로 논증하려는 두 가지 입장, 즉 ‘행복의 변신론’과 ‘고난의 변신론’으로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지 한 달이 되었을 때, 제가 취재차 방문한 방사능 오염 지역에서 얼굴의 주름에 인생의 연륜을 뚜렷이 새기고 있는 과묵한 노인이 툭 던진 한마디 말이 지금도 귓가에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도 부처님도 없어.”
그때 제 안에서 아무런 맥락도 없이 ‘변신론’이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이처럼 참혹하고 잔혹한 일이 일어났는데, 그래도 ‘하나님이나 부처님이 있다는 말인가’. 이런 물음에, ‘아니, 있어’라고 즉각 단언할 수는 없었습니다. 변신론이라는 신의 정의의 교리 따위가 공허하게 생각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특히 제가 공허하다고 생각한 것은 ‘행복의 변신론’ 쪽이었습니다. 부富나 권력, 미美나 건강, 장수나 자손이라는 면에서 혜택을 받고 있는 것 등 행복의 조건이 자신(들)에게는 주어지고, 그(들)나 그녀(들)에게는 주어지지 않은 것은 신의 뜻에 따른 것이며 거기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베버가 말한 ‘행복의 변신론’의 입장에 서면 유일무이한 생명을 빼앗긴 2만 명에 가까운 사망자나 행방불명자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이 소름 끼치는 세계의 ‘윤리적 비합리성’을, 행복의 변신론은 과연 논증할 수 있을까요.
논증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그것은 모든 논리나 실존, 선이나 악의 피안에 있는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귀족의 행복’과 ‘자유경쟁의 행복’
원래 돈이나 지위, 권위나 명예, 장수나 건강, 배우자나 아이 등, 베버의 말을 빌리면 ‘행복재幸福財’를 갖고 태어났으며 그것을 천부의신의 섭리 같은 것으로 생각하여 불평등한 ‘행복재’ 배분을 정당한 것으로 간주한 이들은 고귀한 피를 이어받은 귀족계급이었습니다. 행복의 변신론은 그들의 심리적 욕구에 부응하고, 게다가 ‘행복재’를 빼앗긴 자로 하여금 현 상황의 질서는 미래에도 영원히 바꿀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하는 데도 아주 유리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근대가 되고 자본주의 시대가 되자 그런 혈통의 우위에 의한 행복의 변신론은 의미를 상실했고, 지금은 ‘자유경쟁’의 규칙이 행복의 변신론이 했던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피부색, 민족, 성별, 계층, 출신, 빈부, 학력 등 다양한 차이가 있어도 사람은 누구든 경쟁에 참여할 권리가 있고, 능력만 있으면 누구라도 부를 손에 넣을 수 있는 ‘자유경쟁’의 규칙은 사회에 널리 퍼져 모든 사람들이 부를, 비록 잘게 나뉜 형태라 하더라도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혈통에 의한 인간의 서열 등과 달리 자유롭고 평등하며 공명정대한 것이라 생각되었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본래적으로 우승열패의 가혹한 법칙이므로 점차 그 본성을 드러내 패자가 되면 살아갈 가치가 없다는 듯한 방향으로 사람들을 몰아갔습니다. 앞에서 베버의 용어로 소개한 것처럼, 그 징조는 자본주의적 영리 활동이 스포츠의 승패처럼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무렵부터 나타났던 것입니다.
물론 우승열패라고 해도 누군가는 항상 승자가 되고 누군가는 항상 패자가 되도록 운명 지어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패자는 패자부활전으로 다시 경기장이나 링에 올라가 재도전하면 되지 않는가, 하는 반론이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행복의 변신론에 서면, 누군가가 연 수입이 수십 억이고 자산이 수백 억인 부자가 되었다면 이는 오직 그 사람의 노력과 재능에 따른 것이어서 ‘행복재’의 불평등한 배분에는 정당성이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하지만 소세키나 베버가 예견한 대로, 자본주의는 어떤 의미에서 예견을 크게 뛰어넘어 있을 수 없는 극한 형태로까지 진행되었고 100년 후인 지금 다양한 이상 사태, 즉 리먼 사태나 유럽의 금융 위기, 이상하게 높은 실업률, 그리고 그에 따른 수많은 자살자나 우울증 환자라는 말기 증상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일본 대지진 이후, 특히 자본주의의 ‘행복의 변신론’, 또는 ‘자유경쟁’에 의한 시장경제의 ‘복음’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적어도 그런 변신론이나 ‘복음’은 지금까지와 같은 신통력을 잃고 있습니다. 월가나 런던 시내를 점거, 항의하는 젊은이들의 움직임은 그것이 나타난 것인지도 모릅니다.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나니
그러면 여기서 또 하나, ‘고난(또는 수고)의 변신론’을 다루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난의 변신론은 이 세계의 ‘행복재’를 대부분 빼앗긴 사람들을 위한 변신론입니다. 이는 그들이 왜 부조리한 일을 당하고 멸시나 모욕을 받으며 무력한 존재로 간주되고 있는지, 그 이유(세계의 ‘윤리적 비합리성’)를 논증하기 위해 현실 세계의 질서를 넘어선 새로운 세계 질서를 제시했습니다. 이 현세 저편에 신의 나라가 있다고 하고, 그 좁은 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이는 이 세계에서 행복한 사람들이 아니라 오히려 ‘행복재’를 빼앗긴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나니.”
기독교의 이 가르침은, 베버의 입장에서 보면 바로 고난의 변신론에 의해 지탱되고 있는 것입니다. 현세를 물거품과 같은 덧없는 존재로 보고 현세의 피안에서 열반의 경지를 구하는 불교적인 가르침도 어떤 의미에서는 고난의 변신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가치의 역전에 의해 현세에서의 고난이나 수고에 더욱 적극적인 의미가 부여되었던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베버가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언급한 여러 프로테스탄트 교파의 가르침은 이런 고난의 변신론의 후예라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아이러니하게도 여러 교파에 속한 이 사람들은 현세에서의 모든 생활을 신에게 바침으로써 이 세계를 합리적으로 다시 만들고, 결과적으로 자본주의의 발흥과 발전에 공헌하게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게다가 그 이후 ‘세속화’가 결정적인 것이 되어 신을 믿는 것은 기본적으로 하나의 개인적 신념 같은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요컨대 신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대해 어느 것이 가치적으로 우월한가 하는 ‘객관적인’ 판단 같은 것은 없어져 버렸고, ‘개인적인 신념’인 한 무엇을 믿어도 되고 믿지 않아도 되는 자유가 주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한편 자본주의가 발흥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회주의 등의 사상이나 운동이 프롤레타리아의 곤궁 등을 배경으로 고난의 변신론의 세속적인 적자로서 대두했습니다. 특히 마르크스주의로서의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와 항상 함께하면서 자본주의의 ‘폭주’나 행복의 변신론이 제멋대로 날뛰며 비대해지는 것을 막는 데 일정한 역사적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옛 소비에트와 동구권이 붕괴하면서 마르크스주의나 사회주의의 이상은 땅에 떨어지고 세계화와 함께 자본주의의 독식 양상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시장경제의 행복의 변신론만이 세력을 떨치게 되었습니다.
고난의 변신론은 오늘날에도 신학이나 그 밖의 종교적·세속적 변신론 안에서 희미하게 계승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 세계를 압도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것은 행복의 변신론입니다. 즉 자유경쟁의 규칙에 따라 우승열패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고, 강자·적자適者가 번영을 누리고 약자·부적응자가 스러지는 것에는 일정하게 정당성이 있다는 사고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자살하는 이들이 죽을 때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목숨을 끊는 경우가 많은 것은 그 때문일까요. ‘자살 문제’에 몰두하고 있는 민간 비영리단체 ‘라이프링크’의 시미즈 야스유키淸水康之대표에게서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저는 무심코 분노와 슬픔으로 몸이 떨렸습니다. 만약 종교적이든 세속적이든 고난의 변신론이 이 사회에서 숨 쉬며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면, 그런 절망적인 독백을 토해 내지 않을 수 없는 지경까지 내몰리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10년 넘게 해마다 3만 명이 넘는 ‘자살자’를 내면서도, 그 ‘자유경쟁’의 행복의 변신론밖에 말할 수 없는 사회, 이는 정말 행복한 사회일까요. 소세키와 베버의 정신적인 병과 지적 활동은 그런 사회의 앞날이 결코 밝지 않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이제 아편은 듣지 않는다
이렇게 보면 우리는 지금 행복과 고난 또는 불행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 볼 필요에 직면한 것이 아닐까요.
분명히 행복에 대한 고전이라고도 할 만한 『행복론Gluck』에서 카를 힐티Carl Hilty, 1833~1909가 말한 것처럼, 사람이 “의식에 눈뜬 최초의 순간부터 의식이 사라질 때까지 가장 열심히 찾는 것은 뭐니뭐니 해도 역시 행복의 감정”입니다. 거꾸로 말하면, 이 또한 힐티가 같은 책에서 지적한 것입니다만, “이 지상의 현실에서 행복은 찾아지지 않는 것이라고 완전히 확신”한 경우, 이것만큼 “고통스러운 순간”은 없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고난의 변신론은 사람이 경험하는 것 중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을 빠져나가는 것이며, 이 지상이 아닌 세계에서 구원이나 해방, 안심입명安心立命의 장소를 찾으려는 것입니다.
소세키와 베버는 이 지상에서, 특히 근대라는 시대의 세례를 받은 이후에는 행복을 찾을 수 없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의 인생 자체가 ‘고통스러운 순간’의 연속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 두 사람 모두 종교의 문을 빠져나갈 수도, 그렇다고 거기에서 멀리 벗어나 모든 것을 달관한 고대의 현인처럼 행동할 수도 없었습니다. 소설 『문門』의 주인공 소스케가 선사禪寺에서 맛본 고뇌는 소세키의 고뇌와 겹치고, 스스로를 ‘종교적 음치’라고 했던 베버의 빈정거리는 표현에서는 신앙을 구하면서도 교회의 문 앞에 선 채 꼼짝 못하는 모습을 떠올리고 싶을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명저 『행복론Propos sur le Bonheur』의 저자 알랭Emile Auguste Chartier, 1868~1951이 너무나도 그 사람다운 기지에 넘치는 표현으로 냉소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것처럼 “슬픔의 맛을 음미하고 있을 뿐”인 “우울증에 빠진 사람들”인 걸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들에게 좀 더 다른 즐거운 일을 상상하면 된다고 조언해도 이는 아무런 위로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즉 소세키와 베버는 알랭이 말한 것처럼 “일종의 상상력이라는 아편을 투여”한다 해도 “인간의 불행을 이것저것 열거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다”(『행복론』)는 것을 생각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소세키나 베버 등이 100년도 더 전에 고민하고 고뇌했던 문제가 ‘액상화하는’ 근대 안에서 더욱 대중화되고 일상화되어 확실히 우리 눈앞에 나타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제 지금까지와 같은 행복론을 그냥 내버려둘 수는 없게 된 것 같습니다. 저는 오히려 고뇌나 수고에 눈을 돌리고, 그 의미에 대해 더욱 깊이 파고들어야 비로소 새로운 행복의 형태가 보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