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천산 벽서
1
천산 수도원의 벽서(壁書)는 우연한 경로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그 벽서에 의지가 있다면 결코 그렇게 알려지길 원하지 않았을 거라는 뜻에서 하는 말이지만, 그렇게 알려지는 것이 그 벽서의 운명이었다고 말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그 수도원의 벽서가 세상에 알려질, 우연하지 않은 다른 경로를 상정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경로든 우연한 경로일 수밖에 없다. 어떤 우연한 경로도 다른 경로보다 더 우연하거나 덜 우연하다고 말할 수 없다. 어떤 우연도 우연히 일어나지는 않는다. 운명을 만드는 것은 누군가의 욕망이다. 그렇다면 그 벽서가 어떤 경로로든 알려지게 되기를 간절히 원했다고 말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일부러 마음먹고 나서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그러나 일부러 찾아갈 마음을 굳이 먹을 이유가 있을 것 같지 않은 험하고 가파른 산꼭대기에 폐허가 된 채 버려진 건물이 있었는데, 그 건물은 한때 독특한 믿음을 가진 한 무리의 종교인들이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던 일종의 수도원으로 밝혀졌다. 천산 수도원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편의적이다. 이 수도원을 세상에 알린 한 여행 작가의 메모에 적힌 것을 사람들이 그대로 쓴 것이다. 메모에는 헤브론 성(城)과 하늘 집이라는 이름도 보였다. 그러나 폐허가 되기 전에 산 아래 마을 사람들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그냥 산사람들이라고 불렀다.
그곳을 세상에 알린 여행 작가의 이름은 강영호이다. 그는 『당신이 아직 가 보지 않은, 가 볼 만한』이라는 책의 저자이다. 그리고 천산 수도원은 그가 소개한 열다섯 군데의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의 오지 가운데 하나로 그의 책 맨 마지막 장에 소개되어 있다. 엄밀히 말하면, 마지막 장의 원고는 그가 쓴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그 책을 강영호의 책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사연이 있다.
일부러 마음먹고 나서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그러나 일부러 찾아갈 마음을 굳이 먹을 이유가 있을 것 같지 않은 그 산꼭대기를 마음먹고 찾아간 사람은 외국계 회사에서 10년째 일하고 있는 마흔여덟 살의 강상호였다. 그는 1년 전에 죽은 그의 형 강영호의 유고집을 준비하고 있었다. 남미의 한 도시에서 그는 자신의 형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가 주재원으로 2년째 근무하고 있을 때였다. 그의 형은 폐암 진단을 받은 지 7개월 만에 숨졌다. 수술이 성공적이라고 했던 의사는 수술 후 정밀 검사를 하고 나서 다른 부위에 암세포가 또 생겼다고 말했다. 암세포의 성장 속도가 너무 빨라 2차 수술은 불가능할 것 같다고, 수술을 하면 암세포와 숨바꼭질을 하게 될 거라고,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하며 무의미한 숨바꼭질을 할 수는 없다고 했다. 의사의 판단과 권유에 따라 수술 대신 강도 높은 약물 치료를 받았지만 체력이 급격히 떨어진 강영호는 독한 화학요법을 이겨 내지 못했다. 자주 무균실을 드나들던 그는 급기야 모르핀을 맞으며 고통을 견디다 55세 생일을 사흘 앞두고 숨졌다. 강상호는 형이 암 진단을 받았으며 수술이 잘되었고 곧 회복될 거라는 소식을 지구 반대편에서 들었다. 누구보다 활기차고 건강하던 형이, 거기다가 이제 쉰넷이 아닌가, 암에 걸린 것은 충격이었지만, 수술이 잘되었고 곧 회복할 거라는 희망적인 말에 안도했다. 그러면서도 혹시 나쁜 이야기를 듣게 될까 봐 자주 전화하지 못했다. 형이 몸속의 암세포와, 그 암세포와 싸우느라 기진맥진하게 만드는 독한 약과 싸우며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 그는 일부러 일을 만들어 남미의 여러 도시를 헤집고 다녔다. 그는 투병 중인 형을 생각할 겨를이 없을 정도로 바쁘기를 원했고, 실제로 그렇게 지냈다. 그리하여 정작 그의 형이 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슬픔이 아니라 너무 바쁜 일정 때문에 한국행 비행기를 타지 못했다.
해외 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후 그가 맨 먼저 한 일은 형의 유품들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그의 형수는 형의 방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다. 형이 죽은 후 형수는 대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의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집에서 가까운 역 근처 상가에 샌드위치와 커피를 같이 파는 가게를 냈다. 손님이 많은 시간에만 아르바이트생을 쓰고 주방과 카운터와 홀을 도맡았다. 유동 인구가 많아서인지 손님이 제법 있는 편이었다. 형의 방을 손대지 않은 것은 고인의 흔적이 남아 있는 물건들을 치우는 게 께름칙해서이기도 하지만 경황이 없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고 동생은 생각했다. 어쨌거나 그 때문에 형의 유품들을 만질 수 있게 된 강상호는 형에 대한 미안함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을 고맙게 생각했다.
형의 방에서 강상호는 여러 장의 사진이 제목에 따라 분류되어 있는 두툼한 파일북 한 권을 발견했다. 이를테면 “도경리 역(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도경동)①”, “정남진 앞 가슴앓이 섬(전라남도 장흥군 관산읍 신동리)③” 하는 식이었다. 한 제목 아래 열 장 내외의 사진이 모여 있었고, 사진 설명이 붙어 있었다. 사진 설명은 대개 한두 문장이었지만 꽤 긴 것도 있었다. “독특한 종교적 신념을 가진 이들에 의해 천산 정상에 세워진 이 건물은 지금은 폐허가 되었다. 이들은 이곳을 헤브론 성이라고 칭했다. 산 정상에 집을 짓고 살 생각을 하다니, 도대체 이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하는 식으로.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오지와, 세월과 함께 사라졌거나 사라져 가는 유적지가 스무 군데 가까이 정리되어 있었다. 그 가운데 강상호가 알 만한 곳은 하나도 없었다. 세상에 거의 소개되지 않은 특별한 여행지들을 모아 둔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리고 형의 컴퓨터에 저장된 문서 속에서 사진과 같은 제목으로 분류된 한글 문서 파일을 발견했을 때 그는 형이 출판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는 형수에게 혹시 형이 출판 계획을 가지고 있었느냐고 물었다. 그의 형수는, 그 사람이 언제 나한테 그런 이야기하고 살았나요, 하고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그는 늘 어딘가로 쏘다녔던 형에 대한 형수의 불만을 이해했다. 그가 알기에도 형은 가정적이거나 자상한 사람이 아니었다. 형은 서른 살 때부터 몇 군데 잡지사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며 십 수 년을 보냈고 나머지 10년은 프리랜서로 여기저기에 글을 기고하며 살았다. 잡지사에 근무할 때나 프리랜서일 때나 거의 집 밖에서 일했고, 자주 집을 비웠고, 집에 와서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긴 하지만 지상에서 자신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걸 예감했을 때는 주변을 정리할 마음을 먹었을 테고, 그랬다면 아무리 과묵한 사람이라도 진행 중이거나 예정된 일을 가족에게 알렸을 거라고 강상호는 생각했다.
강상호가 기억을 부추기자 그녀는 남편에게서 들은 건 없고, 장례식장에 온 문상객 가운데 어떤 사람이 그 비슷한 이야기를 한 것 같긴 하다고 기억해 냈다. 자기들하고 무슨 일인가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이런 일이 생겨서 놀랍고 아쉽고 마음 아프다는 말을 한 것 같다고 했다. 경황이 없기도 하고 인사로 하는 말이라고 생각해서 그녀는 그 말을 주의 깊게 듣지 않았고 마음에 담아 두지도 않았다. 당연히 그 사람이 누구인지 어디에 근무하는 사람인지도 알지 못했다. 혹시 명함이나 연락처 같은 걸 주지 않더냐는 시동생의 질문을 받고서야 그녀는 문상 온 사람들에게서 받은 몇 장의 명함을 떠올렸다. 방명록 사이에 끼워 둔 네 장의 명함 가운데 씨앗 출판사 편집 주간의 명함이 있었다.
씨앗 출판사 편집 주간은 강상호의 추측이 맞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형의 방에서 나온 글과 사진 들은 형이 죽지 않았다면 씨앗 출판사에서 책으로 만들어졌을 것들이었다. 주간은 ‘한국의 오지 여행’ 정도로 콘셉트를 잡고 진행을 했노라고 했다. 한국에도 가 보지 않은 곳이 있다, 가 보지 않은 곳 가운데도 가 볼 만한 곳이 있다, 그런 깃발 아래 색다른 여행지를 개발하고 소개해 보려는 기획이었지요, 하고 그는 말했다. “작년 말까지 원고를 넘기기로 했어요. 워낙 약속을 잘 지키고 누구보다 전문가이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라 믿고 기다렸는데, 그런 일이 생길지 누가 알았겠어요? 정말 깜짝 놀랐어요. 하지만 뭐, 어쩔 수 없지요. 인명(人命)을 누가 어떻게 하겠어요. 그 책이 아직 세상에 나올 때가 아니었나 보지요.” 강상호는 곧바로 그 책이 나올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 말을 하는 순간 그는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무언가가 울컥 치미는 걸 느꼈는데 형의 원고들이 그 일을 맡기려고 자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는 문득 형이 곁에 있는 것처럼 여겨져서 형, 하고 가만히 불러 보았다. 출판사 주간은 무슨 뜻인지 몰라 침묵했다. 강상호는 형이 죽기 전에 정리해 둔 원고와 사진 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출판사에서는 원고를 확인하고자 했고, 강상호는 원고 중 일부를 스캔한 사진과 함께 파일로 보냈다.
출판사에서는 신중을 기하기 위해 강영호가 취재한 여행지들을 답사하기로 하고 강상호에게 동행할 수 있는지 물었다. 강상호는 스무 군데 가까이 되는 지역을 모두 돌아볼 수는 없지만 사흘 정도 휴가를 내서 몇 군데 같이 가겠다고 했다. 형을 위해서도 그 정도는 해야 할 것 같았다. 일요일을 포함해서 3박 4일 동안 강상호는 출판사의 젊은 직원과 함께 형의 발자취를 따라 몇 군데를 돌아다녔다. 천산 수도원을 찾은 것은 마지막 날 정오 무렵이었다.
2
앞에서 언급한 대로 강영호는 천산 수도원에 대한 원고를 완성하지 못하고 죽었다. 사진 몇 장과 메모 몇 줄이 그가 남긴 전부였다. 출판사에서는 그 장을 빼도 원고 분량이 충분하다는 의견이었다. 유고집의 성격을 살려서 천산 수도원에 대한 강영호의 메모 몇 줄을 그대로 싣는 것도 의미 있겠다는 의견이 나왔다. 강상호에게 다른 견해가 있을 리 없었다. 자연의 일부인 것처럼 부서진 채 비와 바람과 햇빛 속에 방치되어 있는 돌집과 돌집 내부의 지하 공간과 지하 방들에 가득 들어찬 글자들을 찍은 사진들, 그리고 메모에 적힌 내용들이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사실이었지만, 답사 코스에 그 지역이 포함되지 않았다면 굳이 시간을 내서 그 높은 곳까지 올라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강상호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강영호의 메모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 있었다.
천산 수도원. 서해가 내려다보이는 해발 890미터의 천산 정상. 오르는 길은 가파르고 험하다. 여기에 집을 짓고 살 생각을 하다니. 도대체 이 사람들은 왜?
ㄹ자를 두 개 이어 놓은 모양의 건물. 뱀처럼 꾸불꾸불 이어진 긴 복도. 수없이 많은 크고 작은 방들. 독방을 연상시키는 방도 있고 운동장만 한 크기의 방도 있다. 길을 잃을 염려는 없지만 미로 같다는 인상.
헤브론 성(城) 혹은 하늘집. 그러나 산 아래 사람들은 이곳 사람들을 그냥 산사람들이라고 불렀다.
많을 때는 1000명이 넘었다고 하는데, 건물 규모가 1000명을 수용할 정도가 될지 의심스럽다.
농사를 짓고 소와 닭을 치고 약초를 재배. 전기를 비롯해서 일체의 문명의 이기(利器)를 이용하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1970년대 초까지는 건재한 것이 확실하다. 언제 어떻게 사라졌을까? 추측 - 1992년의 시한부 종말론 소동 이후 대거 이탈자가 생겼다? 시대의 변화를 고려하지 않은 근본주의적인 교리와 고루한 생활 방식이 사람들을 산에서 떠나게 했을 가능성은? 흔히 그렇듯 지도자의 사망 후 내분에 휩싸였을 수도. 정확한 내막은 알 수 없다. 새로 유입되는 사람이 없었다면, 최초의 수도사들은 나이가 들어 죽고, 그러면 자연히…… 알 길이 없다.
강영호의 메모에는 거기까지 가는 길이 표시되어 있었는데 오차 없이 정확했다. 천산은 해안 도로에서 내륙 쪽으로 5킬로미터쯤 들어간 곳에 위치했다. 바다로부터 제법 떨어져 있는 셈이다. 강상호 일행은 차가 올라갈 수 있는 곳까지 차를 타고 갔다. 출판사 직원의 2005년식 무쏘는 자갈들을 옆으로 튕겨 내며 가파르고 험한 산길을 웬만큼 올라가 주었다. 그러나 아무리 성능이 좋은 차라고 해도 바위를 부수고 나무를 자르며 올라갈 수는 없었다. 강상호와 출판사 직원은 배낭을 메고 두 시간 반 동안 산을 올랐다. 웃자란 풀과 잔가지 들이 발길을 막았다. 어떤 구간에서는 경사가 거의 90도에 육박하는 길이 나타났다. 자주 멈춰 서서 숨을 골라야 했다.
산 밑에서는 깎아지른 바위들만 보이고 건물은 보이지 않았다. 올라가면서 가끔 올려다보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산을 잘못 찾은 게 아닌가 걱정했을 정도였다. 정상에 올라 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터가 꽤 평평하고 넓었다. 주변을 뺑 둘러싼 기묘한 모양의 바위들이 자연 방벽이 되어 건물을 가려 주고 있었다. 절묘한 은둔처였다. 만일 세상을 피해 숨고자 한다면 이보다 나은 곳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저만치 멀리 펼쳐진 바다는 마침 쏟아진 햇살을 받아 비늘을 뒤척이고, 곳곳에 조개껍데기를 엎어 놓은 것 같은 모양의 섬들은 애써 몸을 뒤집기 위해 꿈틀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ㄹ자를 두 개 이어 붙인 모양의 건물은 낡고 부서져 볼품이 없었다. 심거나 뿌리지 않아도 저절로 나서 자라는 왕성한 생명력의 잡초들이 마당은 물론 담과 문지방까지 침범해 있었다. 사람이 살았던 흔적은 찾을 수 있었지만 그 흔적이 아주 오래전의 것이라는 사실 또한 확인할 수 있었다. ㄱ자나 ㄴ자로 꺾인 미로와도 같은 복도 양편으로 방들이 만들어져 있었고, 방들은 크거나 작았다. 대중 집회를 할 수 있을 만큼 큰 방도 있고, 혼자 살기에 좁을 것 같은 작은 방도 있었다. 귀퉁이 방 한쪽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다. 지하에도 복도를 따라 방들이 만들어져 있었다. 지하의 방들은 지상의 방들과 달리 크기가 일정했다. 지상에 만들어진 가장 작은 방보다 크지 않았다.
어둡고 습한 그 지하 방에서 강상호는 자신의 형이 찍어 놓은 사진 속의 그 벽,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글자들로 가득한 벽을 보았다. 글자들은 가로세로 줄을 따라 반듯하게 늘어서 있었으며 대부분 검은색이었지만 군데군데 빨강과 초록, 노랑이 섞여 있었다. 색을 입히거나 장식을 해서 도드라지게 보이는 글자들도 있었다. 처음에 강상호는 그것이 독특한 디자인의 벽지라고 생각했다. 자세히 보니 벽지가 아니라 흙벽 위에 직접 글씨를 쓴 것이었다.
그는 여러 개의 방문을 열어 보았다. 모든 방의 벽이 글자들로 뒤덮여 있었다. 어떤 글자들은 벽에 촘촘히 박힌 화살촉 같고, 어떤 글자들은 양계장 철망에 갇힌 닭들 같았다. 화살촉들은 금방이라도 튀어나와 방 안에 들어온 사람을 찌를 것 같았고, 닭들은 철망을 부수고 뛰쳐나올 것 같았다. 그는 눈에 들어오는 대로 문장들을 읽었다. 훼손된 부분도 있고 흐릿한 부분도 있었지만 식별이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그는 “온전하여 흠이 없고 아직 멍에 메지 아니한 붉은 암송아지를 네게로 끌어오게 하고…….”라는 문장을 읽었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라는 문장을 읽었고, “빠른 경주자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유력자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라고 식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명철자라고 재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기능자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라는 문장을 읽었다. 강상호는 그것들이 성경에서 옮겨 적은 것임을 어렵지 않게 알아차렸다.
강상호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고, 동행한 출판사 직원도 마찬가지였다. “이게 뭐야, 도대체 누가 이런 일을 한 거야?”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강상호는 연방 감탄사를 늘어놓았다. 그러게요, 성당 벽화나 천장화 이야기는 들어 보았지만, 이런 건 처음인데요, 여기 말고는 없을 것 같은데요, 이걸 뭐라고 해요, 벽에 쓰인 글씨니까 벽화는 아니고 벽서? 하며 젊은 출판사 직원 역시 연방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답사에서 돌아온 후 강상호는 천산 수도원의 벽서에 대한 원고를 직접 썼다. 형이 그에게 그 일을 맡긴 것 같은 생각이 들었으므로 다른 사람에게 넘길 수 없었다. 자기들이 알아서 하겠다는 씨앗 출판사 주간의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 여행기의 마지막 장을 그가 쓰게 된 사연이 책 뒤에 덧붙었다.
물론 책은 거의 팔리지 않았다. 여름휴가를 위한 가이드북도 아니고 이름난 관광지가 소개되어 있는 것도 아닌 이런 유의 여행 책을 사서 읽는 사람이 많을 리 없었다. 거의 읽히지 않았으므로 그 책 속에 실린 천산 수도원이 일반인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몇 명의 호사가들이 자신의 블로그에 이 책의 리뷰를 포스팅했지만 그들 역시 천산 수도원의 벽서에 주목하지는 않았다. 책을 읽은 후 천산을 찾아가 수도원의 벽서를 직접 확인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지는 말하기 어렵다. 몇 달이 지난 후 한 기독교 신문에 실린 기고문이 유일하게 언급할 만한 반응이었다. 경기도 부천에 소재한 한 신학대학에서 교회사(史)를 강의하는 젊은 강사가 천산에서 발견된 벽서를 더블린의 트리니티 대학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는 한 권의 책과 비교해서 소개했다.
(본문 1장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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