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할아버지와 다시 공원에 들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들은 첼로의 대합창이 내 귓속에서 웅웅 울리고 있었다.
"여기서 보는 저녁노을은 참 예쁘지. 나도 3년 전까지는 이렇게 나무가 가득한 언덕이 있는 동네에서 살았단다."
"하지만 그날, 순식간에 우리 마을도, 집도, 가족도, 친구도, 형태가 있는 것도, 없는 것도 모두 부서졌단다. 60년이나 친구였던 소중한 첼로도 ‥ ‥ ‥. 이 첼로? 이건 그때 지진으로 세상을 떠난 내 친구의 유품이란다."
『천 개의 바람 천 개의 첼로를 읽고』
엄혜숙(번역가, 아동문학가)
1995년 1월 17일 일본 고베에서 대지진이 발생했다. 이와지 섬을 진원지로 한 진도 7.2의 고베 대지진은 인구 150만 명이 살던 아름다운 도시 고베를 송두리째 무너뜨렸다. 고베 대지진으로 6,434명이 사망하고, 3명이 실종되고, 43,792명이 부상을 입고, 주택이 104,906채나 파괴되었다고 하니 대지진 당시 고베 시는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으리라. 그러나 이럴 때야말로 뜨거운 인간애가 발휘되는 법. 고베 대지진 이후, 고베 시 복구를 위해 하루 평균 2만 명 이상이 3개월간 자원봉사 활동을 하며 이재민의 정착을 도왔다. 지진으로 모든 것을 몽땅 잃게 된 사람들을, 일본 각지와 전 세계에서 달려온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도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 그림책은 고베 대지진 자체를 다루고 있지 않다. 대지진 이후 3년 뒤에 열린, 고베 대지진 복구 지원 자선행사인 '천 명의 첼로 음악회'를 다루고 있다. 자신이 키우던 개를 읽고 나서 첼로를 배우게 된 남자아이. 고베 대지진에서 키우던 새를 날려 보내야 했던 여자아이. 또 고베 대지진에서 평생 쓰던 첼로마저 잃고, 지금은 죽고만 친구의 첼로로 연주를 해야 하는 할아버지. 그리고 저마다 사연을 지닌 사람들이 일본 각지에서 또 전 세계에서 연습을 하다가, 어느 날 천 명이 넘는 사람이 모여 첼로를 연주하는 음악회.
작가는 작중인물인 남자아이의 입을 빌어 음악회장으로 모여드는 사람에게 느꼈던 감동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색색의 케이스를 멘 사람들 행렬이 공연장으로 향한다. 모두 자신의 그림자를 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소중한 또 하나의 자신을 ……." 또 연주할 때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천 개의 첼로가 천 개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틀림없이 하나의 곡을 이루고 있다. 천 개의 소리가 하나의 마음이 된 것이다."
이 책을 만든 이세 히데코는 직접 '천 명의 첼로 음악회'에 참석했다고 한다. 그랬기 때문에 그때의 감동을 이토록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자연 앞에서 인간은 참으로 약한 존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가슴 뭉클한 모습을 이 작품은 '천 명의 첼로 음악회'를 통해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이 작품에서 남자아이는 고베 대지진을 경험하지 않았다. 그러나 '천 명의 첼로 음악회'에 참여함으로써 자신의 상처도 치유하게 된다. 그렇다. 남을 돕는 것은 곧 자신을 돕는 것이다. 이러한 소중한 깨달음을 이 작품은 아름다운 그림과 글로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