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키 바트만’이라는 이름
사르키 바트만Saartjie Baartman은 1789년 남아프리카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이름은 중간의 ‘r’자를 굴려 ‘사르키’로 발음한다. 사르키라는 이름은 바트만이라는 성과 마찬가지로 아프리칸스어남아프리카에 정착한 네덜란드계 보어인 언어에서 온 것이고 순수한 크리올이다. 크리올은 다양한 언어와 문화가 서로 뒤섞여 꽃을 피운 원주민 언어를 말한다. 태어났을 때 그녀는 코이산 이름으로 불렸을 테지만 그에 관한 역사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그녀는 짧은 생을 사는 동안 자신을 ‘사르키’라고 칭했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바트만이란 성은 말 그대로 옮기면 ‘수염이 난 사내’란 뜻이다. 사르키라는 이름은 ‘작고 귀여운 사라’ 정도로 옮길 수 있다. 그러나 사르키를 ‘사라’라고 영어식으로 옮기면 ‘키’라는 접미사가 만들어내는 의미가 그 밀도를 잃는다. ‘키’라는 접미사는 아프리칸스어에서 작고 귀여운 것을 뜻한다. 이 형태는 네덜란드어에서 영향 받은 것으로, 네덜란드어에서는 대개 접미사 ‘키’를 명사 끝에 붙여 쓴다. 아프리칸스어에서 이 ‘키’는 서로 다른 두 가지 기능을 수행한다. 하나는 크기가 작다는 것을 가리키고, 다른 하나는 정서를 전달하는 강력한 한 방식을 의미한다. ‘키’에서 우러나는 핵심 정서는 ‘아끼는 마음’이다. 친구와 가족, 사랑하는 사람, 계급과 인종을 초월한 여러 사람들 사이에서 애용되는 이 접미사는 애정과 배려를 드러내는 언어적 표현 양식이다.
그렇지만 어떤 명사가 내포하는 의미의 크기를 줄이는 형태로 사용되다보니 ‘키’라는 접미사는 굴종의 느낌을 강화하거나 보강하는 방식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특히 백인과 흑인, 주인과 노예,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처럼 한 개인이 상대에게 일방적 권력을 행사하는 문맥에서 사용되면 이 축소형 접미사는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드러내기 십상이다. 식민주의와 아파르트헤이트가 판치던 시절, 백인들은 접미사 ‘키’를 활용해 흑인들에게 경멸과 조롱, 지배의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따라서 정치적으로도 순수하지 않고 유혈이 낭자한 남아프리카의 언어 역사를 고려해볼 때, 한 사람의 이름 끝에 ‘키’를 붙여 축소형으로 부르는 것은 인종차별적인 행위를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사르키 바트만은 남아프리카에서 가장 유명하고 존경받는 국가적 상징으로 과거 식민주의시기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상징적 인물들이 흔히 그렇듯이, 그녀를 어떻게 부르는 게 맞느냐 하는 것에 다소 논란이 있다. ‘사라 바트만’이란 세례명을 비롯해, 사르키는 살면서 수차례 바뀐 이름으로 세간에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녀를 어떻게 부르는 게 적절한가 하는 문제에서 사람들은 사라Sarah/Sara 같은 영국식 이름을 선호하는 쪽과 사르키를 고집하는 쪽으로 갈라져 있다. 전자의 사람들은 ‘사라’라는 이름이 비극적 인물에게 으레 따라붙는 인종주의적 유산인 축소형 접미사를 떼어낸 존경과 숭모의 마음을 담은 것이라 본다. 반면에 후자의 사람들은 ‘사르키’라는 이름이 실제 발음에 한층 더 가까우며 남아프리카 전통을 잘 나타낸 것이라 여긴다. 두 진영 사이에선 가끔 격렬한 논쟁이 오가기도 하지만, 양측 모두 이름짓기가 권력을 행사하는 아주 막강한 형식들 중 하나라는 입장에선 인식을 같이한다.
살아생전 그녀는 사르키로 불렸다.
1 경이로움
진홍색 벨벳 커튼을 젖히자 ‘호텐토트의 비너스’라는 무대명의 주인공 사르키 바트만이 마침내 그 자태를 드러냈다. 1미터 정도 되는 높이의 무대로 나온 그녀는 앞코에 까만 비단 나비매듭이 달린 뾰족한 초록색 슬리퍼를 신고 런던의 관객들을 대담한 눈길로 둘러보았다. 툭 튀어나온 광대뼈와 극적일 만큼 번들번들한 숯검정 같은 분장 탓인지 그 표정은 먼 곳을 바라보는 듯 불가사의해 보였다. 큐피드 활 같은 윤곽의 입술에 물린 파이프에서 연기가 꼬불꼬불 말려 피어올랐다. 보조개가 들어간 두 뺨과 하트형 얼굴은 관객의 주의를 끌기에 충분했다. 런던은 축축한 어느 가을날 오후를 지나고 있었다. 때는 1810년이었고, 사르키는 집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와 있었다.
키가 불과 140센티미터 정도밖에 안 되는 사르키 바트만은 작디작은 여신이었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두텁고 탄력 좋은 모피 망토를 어깨에 걸친 그녀는 영락없는 아프리카판 비너스였다. 화려하고 풍성하고 곱슬곱슬한 머리가, 황금 옥수수처럼 머리를 딴 보티첼리의 비너스와 모든 면에서 같아 보였다.
밝고 어두운 얼굴들이 사르키를 먼발치서 쳐다보고 있었다. 사르키는 사람들의 눈동자가 경이로움으로 커졌다가 이내 의심스러운 듯 다시 오그라드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어두침침한 촛불과 내부를 밝힌 기름 램프가 뿜어대는, 눈이 시고 매캐한 연기 사이로 나타난 이 아프리카판 비너스의 모습에 당황하는 듯이 보였다. 사르키 주변으로는 풀로 엮은 자그마한 오두막과 목가적 아프리카 풍경을 그려 넣은 형형색색의 나무판과 푸릇푸릇 이국적인 식물들이 보였다. 런던의 도심 구석구석에 화려한 색깔과 큼지막한 글자로 호텐토트의 비너스 출현을 알리는 광고포스터가 나붙었다. 그 포스터 속에는 도대체 어디가 어딘지 모를 신비한 아프리카의 내지가 그려져 있었다.
호기심에 찬 시선의 관객들에게 사르키라 불리는 이 비너스는 성욕性慾의 다른 이름이었다. 비너스의 모습을 보거나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사람들은 욕정이나 사랑의 행위를 떠올렸다. 호텐토트아프리카 남부 코이산의 한 부족라는 단어는 신기하고 모호하며 이질적이고 변태적인 모든 것을 암시했다. 관객들 중 상당수는 이미 소문이나 책을 통해 신기한 호텐토트족 여자에 관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커다란 엉덩이에 이상하리만치 긴 음순을 한 골초로 소문난 호텐토트족 여자, 바로 그 여자가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환상은 현실로 화해 무대 조명을 받으며 금빛으로 빛나고 있었고, 호텐토트와 비너스라는 두 가지 강력한 신화는 서로 합쳐져 풍성한 상상력을 자극하며 그들 눈앞에 솟아올랐다. 관객들은 그녀가 피부색과 똑같은 검은색 전신 스타킹을 착용한 사실을 몰랐다. 그저 겉으로 나타난 모습으로 코르셋은 물론 스타킹과 속옷조차 입지 않았을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무엇보다 낯 뜨거운 것은 얇은 실크 옷감 너머로 완연하게 드러난 탱탱한 젖꼭지였다. 그 젖꼭지는 그녀의 목 줄기를 타고 허리춤까지 폭포수처럼 흘러내린 여러 겹의 반짝거리는 목걸이로도, 그 상아빛 타조알 구슬 목걸이로도 가려지지 않았다.
내부에 불이 들어오자 사르키는 관객들을 볼 수 있었고 관객들도 사르키를 더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다. 그때 사르키는 막 극장 문을 열고 들어온 두 사람을 골똘히 바라보았다. 이들도 잠시 무언가에 홀린 듯 사르키를 응시했다. 한 사람은 키가 크고 조각 같은 매부리코에 당당한 눈빛을 가지고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키가 작고 곱슬머리에 다소 균형이 안 맞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사르키는 이들의 정체를 몰랐지만 대다수 영국 관객들은 한눈에 알아차렸다. 이들을 알아본 관객들이 곧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이들은 키가 크고 진지한 표정을 한 이는 존 켐블, 당시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배우였다. 키가 작은 이는 소문난 희극인이자 무언극 배우 찰스 매튜였다. 사르키는 매튜가 매우 희한하게 얼굴을 찡긋거리는 것을 보았다. 그는 한쪽 눈썹은 가만히 두고 다른 눈썹을 우스꽝스럽게 위아래로 움직이는 재주를 부렸다. 켐블은 사르키가 어릴 적 들었던 옛날이야기 속의 달을 쳐다보는 사자처럼 가만히 그녀를 보았다. 그러곤 사르키에게 말을 걸려고 무대로 다가갔다. 바로 그 순간, 백인 여자 하나가 나타나 팔꿈치로 먼저 앞을 가로막더니 그녀를 세차게 꼬집었다. 깜짝 놀란 사르키가 허리를 굽혀 그 여자를 힘껏 밀쳐냈다. 그러나 이번엔 허리선이 높이 올라가는 (제인 오스틴의 소설에 나오는 여주인공의 옷을 연상시키는) 제국식 톱코트 차림을 한껏 뽐낸 여자가 무대로 올라와 접힌 양산으로 엉덩이를 찌르며 “난 이 모든 게 ‘진짜’인지 확인해봐야겠어”라고 했다. 사르키가 방어할 틈도 없이, 이번에 말쑥한 신사가 무례하게 공격자 진영에 가세해 지팡이로 그녀를 꾹 찔러보았다.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사르키의 관리자인 헨드릭 세자르는 무대로 뛰어올라 오후공연을 취소해버렸다. 관객들이 흩어지고 난 뒤, 켐블은 “너무나 가엾고 불쌍해” 하고 안타까워하면서 사르키에게 가해진 폭력에 항의하듯 세자르를 잡고 그녀의 심리 상태, 건강 상태, 생활 여건에 관한 질문을 퍼부었다. 이에 세자르는 켐블을 구슬리려 했다. 켐블은 사르키의 몸을 한번 만져보아도 된다는 이 쇼 진행자의 제안을 “싫소, 싫어. 불쌍한 족속 같으니, 싫소!”라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이날 사건을 일기장에 기록한 찰스 매튜에 따르면, 사르키는 켐블과 세자르가 주고받을 대화를 주의 깊게 지켜봤다고 한다. “사르키는 이 상황을 매우 즐거워하면서 손뼉을 치기도 하고 신이 난 듯 두 손을 마주잡고 하늘 높이 들어올리기도 했고,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켐블을 보며 ‘오, 나의 바바! 오, 나의 바바!’와 같이 도통 알아듣기 힘든 말을 중얼거리기도 했다”고 한다. 그 순간만큼은 사르키도 당당한 풍채에 걸맞지 않게 놀라우리만치 경쾌하고 가벼운 몸짓을 취했다고 한다.
“저 여자가 뭐라고 하는 겁니까? 저 여자가 혹시 나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 아닌가요?” 하고 켐블이 세자르에게 물었다.
사르키의 관리자인 세자르가 대답했다. “아닙니다. 저 여자는 당신이 참 좋은 분 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르키가 켐블에게 보인 온화한 반응은 인간애와 동료의식, 예의와 친절을 드러내는 아프리카의 정신인 ‘우분투ubuntu’의 고전적인 표현이었다. 사르키가 한 말은 존중과 감사를 뜻했고 손뼉을 친 행위는 예의 바르고 겸손한 태도를 취하겠다는 의미였다. 사르키는 켐블이 자신에게 보여준 존중과 염려에 감사를 전하고, 아울러 그녀의 눈에 아버지 같아 보이고 게다가 잘생긴 한 남자에게 예의를 차리고 있었던 것이다. 켐블은 숨을 한번 훅 들이마시고는 힘을 주어 “내가 했던 말에, 저 숙녀가 무한한 존중심을 드러내고 있었다는 거군요!”라고 대꾸했다.
두 배우는 함께 전시장을 나왔다. “이보게, 매튜. 저 광경을 보고 나니 마음이 울적해지는구먼! 내가 보기에는 저들이 저 가련한 여자를 이용해 먹고 있어. 제기랄, 너무 충격적이야!” 켐블과 매튜는 오후 늦게 차를 한 잔 마실 요량으로 피카딜리 광장을 터덜터덜 걸어 내려가며, 사르키와 그녀가 처한 환경을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들은 사르키가 누구인지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그날 오후에 호텐토트 비너스를 구경하기 위해 2실링을 지불했던 수많은 관객들도 사르키를 모르기는 매한가지였다.
사르키는 스물한 살이었다. 그녀는 그 6개월 전 케이프 식민지에서 배를 타고 영국에 도착했다. 알렉산더 던롭이라는 이름의 영국인 군의관과 그가 데리고 다니는 남아프리카인 시종 헨드릭 세자르, 그리고 이름은 기록돼 있지 않지만 과거 흑인노예 신분이었고 당시는 던롭의 하인이던 한 사내와 함께 말이다. 이 사르키 일행은 요크 가에 살았다. 요크 가는 저민 가와 제임스 2세 추모해 조성된 ‘세인트 제임스 광장’을 잇는 피카딜리 남쪽으로 가는 지름길에 있었다. 사르키의 새로운 거처는 런던에서 가장 휘황한 번화가 한복판이었고 그녀가 태어나 자란 곳으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다.
매튜와 켐블이 사르키의 쇼를 보기 한 달 전인 9월 12일 수요일, 영국왕립학회 회장인 조지프 뱅크스 경은 다음 주 월요일에 벌어질 호텐토트의 비너스 쇼 시사회에 참석해달라는 초청을 받았다. 이 은밀한 시사회는 피카딜리 225번지의 ‘전시장’에서 열렸고 초청장은 헨드릭 세자르가 발송했다. 뱅크스 경은 이 시사회 초청장이 과학자, 박물학자, 상류사회 저명인사들은 물론, 나이 지긋한 극작가 겸 정치가 리처드 브린슬리 셰리든과 런던에서 가장 많은 관람객을 유치하는 리버풀박물관의 관장 윌리엄 불록에게도 보내졌음을 알게 됐다. 시사회 사흘 뒤인 9월 20일 목요일, <모닝 헤럴드>와 <모닝 포스트>에는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최신 쇼의 개막을 알리는 광고가 게재됐다.
호텐토트의 비너스. 이제 막 상륙하다! 피카딜리 225번지에서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관람 가능. 남아프리카 내륙의, 카프라리아와 국경선을 맞댄 감투스 강가 출신의 호텐토트 비너스는 이런 종류의 인종을 대표하는 가장 정확하고 완벽한 표본이다. 이 기이한 자연의 신비를 접하는 관객들은, 역사가들이 제공하는 이런 종족에 대한 설명과 묘사가 이 여자 앞에서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호텐토트의 비너스는 자기 부족이 착용하는 전통의상과 원시적인 장식물들을 선보일 것이다. 그녀를 미리 본 런던 시의 한 관계자는 어리둥절해하며 이런 놀라운 인종을 보게 된 것에 큰 감사를 표했다. 케이프 식민지의 원주민 출신인 헨드릭 세자르는 그녀를 런던으로 부르기 위해 거금을 지불했다. 호텐토트의 비너스는 런던에 잠깐만 머물 것이다. 9월 24일 월요일, 즉시 개막. 입장료는 1인당 2실링.
이 같은 과장광고는 아주 많은 것을 약속하지만 실상은 아무 내용도 없는 말이었다. 그러나 이 광고는 1810년 런던의 겨울을 달굴 그 유명하고 논쟁적인 공연 사건의 서막을 예고하고 있었다. 호텐토트의 비너스는 하루아침에 무대 안팎은 물론이고 런던이라는 대도시에서 뜨거운 바람을 불러일으킬 참이었다. 이 여자는 도대체 누구일까? 어디서 왔을까? 노래하고 춤추며 기타를 치는 이 젊은 흑인여자는 어떻게 런던 무대에 서게 된 걸까? 어쩌다 쇼걸처럼 공연을 하면서 성적 관음의 대상이 된 걸까?
(제1장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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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레이철 홈스 Rachel Holmes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수학했으며, 1991년부터 1998년까지 퀸메리칼리지, 런던대학, 서식스대학 등에서 영문학을 가르쳤다. 1998년에는 영국 아마존(amazon.co.uk) 창립에 관여하여 2002년까지 웹사이트 매니저로 일하기도 했다. 2002년에 첫 책 『보잘것없는 특별함: 19세기 제임스 배리 의사의 삶 Scanty Particulars: The Life of Dr James Barry』을 출판하여 평단을 주목을 받았으며, 지금은 카를 마르크스의 막내딸인 엘리노어 마르크스의 삶에 관한 책을 집필하고 있다. 그녀는 저술가 외에 방송인, 칼럼니스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에이즈 퇴치를 위한 시민단체 ‘치료행동캠페인Treatment Action Campaign(TAC)’의 영국 지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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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이석호
원광대학교 학술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며, 아프리카문화연구소 소장, AALA(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문학포럼 집행위원, 국제게릴라극장 상임 연출자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응구기와 시옹오의 『탈식민주의와 아프리카 문학』(인간사랑, 1999), 치누아 아체베의 『제3세계 문학과 식민주의 비평』(인간사랑, 1999), 루이스 응코시의 『검은 새의 노래』(창비, 2009), 누르딘 파라의 『지도』(인천문화재단, 2010), 에메 세제르의 『귀향수첩』『어떤 태풍』『식민주의에 대한 담론』(이상 그린비, 2011), 『사라 바트만』(도서출판 아프리카, 2011) 등이 있고, 편역한 책으로는 『아프리카 탈식민주의 문화론과 근대성』(동인, 2011)이 있다. 창작 희곡 <사르키 바트만>으로 2002년과 2003년 남아공, 모잠비크, 케냐 등지에서 순회공연을 가진 바 있으며, 현재는 <사르키 바트만>을 영화로 만드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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