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홍적세에서 온
이방인
진화의 이해
인간의 진화는 오늘날과는 전혀 다른 세상에서 이루어졌다. 고등학교 수업이나 역사 드라마를 통해 주입된 우리의 역사인식으로는 사실 인간이라는 종種이 겪어온 일들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역사 드라마를 통해 2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더라도 머리 모양과 옷 스타일이 다를 뿐 진화론적으로 말하면 여전히 현대라는 걸 알아야 한다. 예수의 시대든, 더 나아가 그리스문명 시대로든 마법같이 그 시대를 여행한다 해도 기차나 비행기나 자동차, 아이팟이 없을 뿐이지 그들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행동하는 이해 가능한 사람들이다. 우리가 ‘고대’라고 부르는 시대의 이야기들이 오늘날의 사람들에게도 먹히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그들 자체가 현대적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기원은 상당히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훗날 인간이 되는 사람과科의 동물은 600만 년 전에 유인원과의 공통 조상으로부터 떨어져 나왔다. 오늘날 온라인으로 음악을 다운로드하고 비행기 티켓을 살 수 있게 되기까지 그들에게는 매우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들의 생존과 번식에는 엄청난 선택압選擇壓이 가해졌고 생활 조건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했다. 또한 그들의 신체적 특징은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과는 많이 달랐다. 그러나 마음과 몸 양쪽에서 신체의 진화가 천천히 일어났고, 그리고 축적되어갔다.
자연선택은 천천히 진행된다. 한편으로는 무자비할 정도로 효율성을 추구하며 번식 성공률을 최대화하지 못하는 특징들을 배제해가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가능한 대안들 가운데서만 선택을 하며 아주 천천히 진행한다. 가령 먹이가 머리 위 높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단번에 기린의 목을 길게 만들 수는 없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목이 긴 개체가 나타나면 그 개체는 번식에서 성공을 거둔다. 긴 목은 유전 암호로 저장되고, 짧은 목의 경쟁자보다 더 번식에 성공하며 개체군에서 자신들의 수를 늘려간다.
간단히 말해 유전적 기반genetic basis이 있는 자질에 한해서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유전heredity은 다윈 이론의 초석이라는 것은 모두 알고 있다. 만약 유전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자연선택의 효과는 한 세대에만 한정될 것이고, 따라서 모든 세대는 무엇이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 가령 매력적인 새로운 헤어스타일 같은 자질이 한 개체의 생애 동안 획득된다 해도 유전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더 많은 성적 파트너와 같은 일시적인 보상만이 주어질 뿐 그것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 지구에 서식하는 동식물들에게 가장 중요한 행동적·신체적 특징은 유전적으로 전달되며 선택압에 취약하다. 그렇기 때문에 번식을 성공시키는 자질이 있다면 그것이 오랜 시간에 걸쳐 한 종의 표준 능력으로 자리잡게 된다.
환경의 도전을 극복하고 번식의 성공을 강화시킨 이러한 자질을 적응이라고 부른다. 이 자질을 재생산하는 유전자를 갖는다면 그 자질은 다음 세대에도 전달된다. 최종적인 결과는 성적 파트너의 게놈에도 영향을 받을 것이다. 유성생식有性生殖은 쾌락을 만들어내는 대신 일부 단점도 가지고 있는데, 파트너 각각이 새로 태어날 게놈의 절반만 책임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렇게나 짝짓기를 하지 않는다. 노벨상 수상자든 청개구리든 표준 이하의 파트너는 원하지 않는다. 모든 동물 생명체는 최고 게놈을 가진 상대를 고르기 위해 잠재적 배우자들에 대한 자격심사 방법을 개발했다. 물론 그것은 의식적인 과정은 아니다. 인간도 의식적으로 자격심사를 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고등학교 댄스파티나 아마존 원시사회의 짝짓기 의식을 생각해보라. 동물들이 파트너를 선택하고 매료시키는 과정은 언제나 놀라운데, 나는 그 중에서도 글래디에이터 개구리에 관한 이야기를 가장 좋아한다. 대부분의 종이 그렇지만 암컷은 자기 새끼의 아버지를 고르는 문제에 관한 한 매우 까다롭다. 이 호전적인 종에게는 ‘강인함’이 가장 바람직한 자질이기 때문에 암컷 글래디에이터 개구리는 매우 단순한 방법, 즉 잠재적 배우자에게 접근해 말 그대로 힘껏 밀어보는 것을 자격심사의 방법으로 택했다. 암컷의 힘에 쓰러지는 수컷은 짝짓기의 행운을 누리지 못한다.
자연선택은 이렇게 자연스러운 과정이고 논의거리가 되지 않는다. 이를 두고 정치적 논쟁을 벌이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이다. 한 마디로 자연선택은 종 내에서 유전적인 차이가 번식 성공의 차이로 이끌고, 가장 성공적인 적응이 개체군에서 널리 퍼지게 된다는 얘기다. 이건 그다지 어렵지도 위험하지도 않은 설명이다. 개 교배업자들도 좋은 품종을 얻기 위해 자연선택을 이용한다.
그런데 수많은 설문조사에 의하면 미국인의 대다수가 다윈의 진화론을 ‘믿지’ 않는다고 하니 이상한 노릇이다. 지금은 21세기인데 정말로 납득이 가지 않는 불가해한 일이다. 어떤 생각을 거부할지 수용할지는 그것을 제대로 이해한 뒤에 결정해야 한다. 그들은 정말 진화론과 자연선택에 대해 알고 있을까? 진화론을 거부하는 많은 고등학생들과 그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그들이 진화론을 제대로 배우지도 이해하지도 못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거부하는 다윈 이론이라면 과학자들도 거부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건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일반인들은 자연선택에 대해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다윈이 쓴 유명한 책의 제목도 제대로 대지 못한다. 책 제목을 물으면 대개 ‘종의 기원 Origin of the Species’이라고 대답한다. ‘종의 기원에 대하여 On the Origin of the Species’라고 대답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미묘한 차이이긴 하지만 많은 것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1960년 베를린 영화제 수상작인 <신의 법정 Inherit the Wind>의 대사 중에서도 잘못 말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진화론을 가르치는 것을 놓고 시민들 간에 분쟁이 생기고 지역 학군 내에서 혼란이 벌어진다면 양 진영을 불러 서로 토론하게 해야 한다. 그러나 실상 미국에서는 불가능하다. 미국 교육 시스템에는 분명 문제점이 있다. 학생들이 다윈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할 때면(종종 심리학 입문 수업에서) 나는 그게 무슨 의미냐고 물어본다. 강력하게 의견을 개진하는 학생치고 진화론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경우는 별로 없다. 가장 자주 나오는 반응은 “그건 우리가 원숭이에서 나왔다는 얘기잖아요”이다. 누군들 그걸 거부하지 않겠는가? 진화론자들이 제대로 설명을 못해서든, 아니면 창조론자들의 고의적인 왜곡에 의해서든 자연선택은 제대로 된 이해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일단 제대로 이해하게 되면 받아들이기가 보다 쉬워진다. 사실 자연선택의 원칙은 그렇게 위협적인 것이 아니다. 그릇된 버전의 이야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잘못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다. 게다가 리처드 도킨스의 주장대로 몇 가지 기본 전제만 받아들이고 나면 자연선택의 수용은 불가피해진다. 수전 블랙모어는 저서 『밈 The Meme Machine』에서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자신을 불완전하게 복사하는 개체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복사된 것들의 일부만 생존하게 되면서 결국 진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진화의 불가피성은 다윈의 탁월한 통찰력을 보여준다. 한 마디로, 올바른 출발 조건만 주어진다면 진화는 저절로 발생한다.”
그럼 이러한 불가피한 과정이 발생하려면 어떤 조건이 주어져야 할까? 우선 복사해야 한다. 인간은 성적으로 자기를 복사한다. 일부 반反다윈론자들은 그러한 과정을 인정하기 껄끄러워하겠지만, 그럼에도 사실이다. 아무리 반다윈론자라도 유전 자체를 부정하지는 못한다. 그들 가운데 전부는 아니라도 대부분은 우리가 유전자 정보를 전달하고 자신의 유전 정보와 파트너의 유전 정보가 조합되어 새로운 생명체가 형성된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이것은 논쟁거리가 아니다. 우리의 후손이 모계와 부계의 DNA의 혼합으로 구성된다는 사실도 논쟁거리가 아니다. 우리의 유전자는 어머니나 아버지에게서 받은 것이다. 누구도 이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까지는 좋다. 그렇다면 이제 ‘복사’ 부분을 받아들일 차례다. ‘불완전한 복사’를 한다는 건 무슨 말일까? 복사상의 실수가 나타날 수 있다는 의미다. 자주 발생하는 건 아니지만(100만 분의 1의 확률) 분명히 일어나는 일이다. 이러한 실수로 나타난 형질을 대체 대립형질alternative allele, 또는 더 일반적으로 돌연변이라고 한다. 이는 표현형의 일부 변화를 가져온다. 대개는 별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지 않지만, 변화가 일어날 때는 대개 부정적으로 일어난다. 즉 조상의 대립형질이 돌연변이의 것보다 나은 것이다. 돌연변이의 개체수가 늘어나지 않는 건 그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이것이 바로 자연선택의 핵심이다) 불가피한 실수인 돌연변이가 인간 게놈에 변이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변이는 좋은 것이다. 그 누구도 정형성이나 완벽함만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러한 실수는 종의 생존에 필수적이다. 오류가 전혀 없다면, 즉 복사가 완벽하다면 표현형의 변화는 없고 자연선택도 없을 것이다.
지금껏 양 진영 어느 쪽의 심기도 건드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넘어가보자. 이러한 변이들 가운데 일부가 환경 속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인다. 사람들은 경쟁이라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지구에서 살아가려면 피할 수 없는 게 경쟁이다. 종의 구성원들이 귀중한 자원을 놓고 경쟁할 때 일부 돌연변이가 남들보다 더 번식 성공을 거둔다. 이때 환경이 필터 역할을 하여 일부 자질은 다른 것보다 더 유리하다는 것이 입증된다.
1859년에 다윈이 주장했듯, 종종 동물들은 번식적 고립 속에서 상당한 변화를 겪는다. 지리적인 요소도 이러한 고립을 불러오는 요인이다. 이처럼 고립된 일부 개체군이 상당히 차별화되면서 새로운 종이 형성된다. 쥐와 생쥐가 좋은 사례다. 그들은 비슷하지만, 공통 조상을 둔 별개의 종이다. 일부 신체적·행동적 특성을 공유하지만 또한 크기와 행동 면에서 차이도 보인다.
이제 이해가 될 것이다. 이는 가치나 논쟁거리는 개입되지 않은 틀림없고 타당한 과정이다. 동화도 아니고 창조 신화도 아니다. 이것은 결과를 가져오며 틀림없는 방식으로 일어나는 객관적인 일이다. 나의 동료인 마틴 달리는 이렇게 명쾌하게 한 마디로 표현했다.
“자연선택은 목표를 가지지 않고, 다만 유기체가 그러한 이유다.”
일부 사람들에겐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지만, 지구 생명체에 대한 멋진 요약이다. 자연선택은 천천히 진행되기 때문에 그 개념을 납득하기도 어렵다.
자연선택에는 아버지상이나 신성이 없다. 하지만 그건 다윈의 잘못이 아니다. 중력의 법칙이 뉴턴의 책임은 아니잖은가. 그러나 자연선택은 경외로 가득한 이 세상의 일부이며, 우리가 올바른 질문을 던지고 지식을 축적할 때 그 모습을 드러낸다. 우주의 비밀을 알아내고 미스터리에 대적할 때 우주는 더 이상 두려운 곳이 아니다. 우리 종이 진화시킨 멋진 지능을 사용해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다. 이보다 더 고무적인 일이 어디 있겠는가.
앞에서 이야기한 복사 오류를 기억하는가? 모든 개체가 똑같다면 자연선택은 없고, 그렇게 되면 단 하나의 병균이나 적이 약점을 알아냈을 때 전체 개체군이 위험에 처한다. 19세기 중반 아일랜드의 감자 기근이 그 예다. 종종 역사가들은 아일랜드가 한 곡물에만 의존한 탓에 비극을 불러왔다고 지적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아일랜드 감자들에게 유전적 다양성이 있었다면 그렇게 한 번에, 하나의 수생균에 의해 하룻밤 사이에 다 죽어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유전적 다양성은 환경에 잘 적응하는 하나의 생명체를 설계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것이다. 또한 네 발 달린 짐승이 공격해오든 단세포가 공격해오든 간에 저항할 수 있게 해주는 원천이다. 1850년 무렵에 거의 100만 명이 아일랜드 감자 기근으로 사망했다. 또한 그 두 배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미국, 캐나다, 호주, 영국으로 이민 갈 수밖에 없었다. 자연선택을 생각하면 “다양성을 찬양한다”라는 표현이 새롭게 느껴질 것이다.
알 수 없는 미세한 세계
유전자에 관한 지식은 이 책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긴 하지만 분자생물학의 몇 가지 사항을 다루고 넘어가자.
유전자형genotype이라 불리는 유전자의 총합은 겉으로 드러나는 유기체의 특성, 종합해서 표현형phenotype이라 부르는 것을 (환경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낸다. 유전자는 디옥시리보 핵산deoxyribo nucleic acid, DNA으로 구성되어 있고, 여기에는 어떤 단백질이 만들어져야 할지 구체화하는 지시 사항이 담겨 있다. 그런 식으로 DNA는 표현형을 만드는 역할을 담당한다.
우리 몸속의 세포 하나는 늘어뜨리면 대략 1.8미터에 달하는 DNA로 구성되어 있다. 1천 개의 세포가 대략 1.8킬로미터의 DNA로 이루어진다. 인간의 몸은 100조 가량의 세포를 갖고 있으니, 약 1800억 킬로미터의 DNA를 갖고 있는 셈이다.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가 1억 5천만 킬로미터임을 생각하면 굉장한 숫자다.
우리는 아직도 DNA에 대해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인간과 침팬지의 게놈에 대한 연구가 진행될수록 발견되는 유사성의 정도는 점점 커진다. 그러나 인간과 침팬지가 쥐와 생쥐만큼이나 연관되어 있다는 그럴듯한 진술 외에는 별로 할 말이 없다. 2008년에 내가 말했듯 이러한 연구에 대해서는 입을 다무는 편이 나은 것이, 거의 모든 지식이 금방 무용지물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크레이그 벤터는 인간 게놈을 해독해서 웹사이트(www.jcvi.org)에 자신의 염기쌍을 올렸다.
인간과 침팬지 유전자의 ‘겹치는 정도’ 추정치가 10년도 채 안 되는 동안 97퍼센트에서 99퍼센트로 늘어났다. 그리고 ‘인간 게놈’ 염기쌍의 추정치는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 2000년, 인간의 게놈 지도를 작성하기에 앞서서는 추정치가 약 10만이었는데 얼마 되지 않아 2만 5천으로 떨어졌다. 수치는 놀라운 속도로 떨어지고 있다. 1년 전 내가 이 책을 썼을 때는 약 2만 2천 정도였다. 여러분이 이 책을 읽을 무렵이면 2만이 채 안 될 것이다. 인간 게놈은 그대로인데, 추정 수치는 계속 감소한다. 따라서 이런 수치로는 인간의 차별적 특성을 정의할 수 없다.
유전자형을 표현형으로 바꾸도록 유전자의 작동과 발현을 지시하는 ‘스위치’가 게놈 안에 있다. 켜지고 꺼지는 개념의 스위치가 잘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것의 일부는 유전자 내부에 있으며, 또 다른 일부는 이른바 정크 DNA에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정크 DNA는 게놈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물질로, 아직까지 제대로 파악되지 못한 상태다. 2006년, 개체상의 차이는 게놈에서 특정한 핵심 유전자가 반복되는 횟수로 인해 생겨났다고 보고되었다. 우선 전체 연속 과정은 열 번이나 반복되고, 이러한 과정은 개인마다 다르며, 전반적인 유전자의 반복 횟수의 차이로 이어진다고 생각하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이러한 정크 DNA를 무시한 채 측정과 조사가 보다 쉽고 분명한 단백질에만 집중해왔다. 어쨌든 고등학교 유전학 교과서, 그리고 종종 대학의 분자생물학 교과서도 출판되자마자 다시 팔 수 없게 된다. 관련 지식이 급변하기 때문이다.
(제1장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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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행크 데이비스 Hank Davis
뉴욕 출신의 행크 데이비스는 컬럼비아 대학에서 공부하고 메릴랜드 대학 뇌연구실험실 박사후연구원,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심리학 부교수를 거쳐 현재 캐나다 온타리오 구엘프 대학의 심리학 교수로 있다. 동물 인지에 관해 수년간 연구한 뒤, 지난 12년간은 진화심리학을 연구해왔다. 주로 대중문화와 비이성적 믿음 체계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두 개의 저명한 교육상을 수상했다. 행크는 수업과 연구에 사용한 실험동물을 위해 캐나다 애완동물 장례식장 서비스를 처음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유럽 레코드 회사에서 1950년대 음악 모음집과 앨범을 내 호평을 받은 뛰어난 음악가이자 프로듀서이기도 하다. 그는 100편 이상의 논문과 더불어, 동물 행동부터 고전영화(주로 산악 영화들)와 마이너리그 야구 등을 주제로 6권의 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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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김소희
사회학을 전공한 후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역저로는 『뇌, 1.4킬로그램의 사용법』, 『심리학, 사랑을 말하다』, 『쇼크 독트린』, 『잃어버린 역사』, 『헬로 아시아』, 『보보스는 파라다이스에 산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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