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 제1부 l 가난에 빠진 세계를 돌아보라
l 제1장 l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
출근길마다 작은 연못가를 지난다. 날씨가 더울 때면 가끔 연못에 들어가 노는 아이들이 보인다. 겨우 무릎까지 물이 차니 염려는 없다. 하지만 오늘은 날이 춥고, 시간도 이르다. 그런데 연못에서 첨벙거리는 아이가 있는 게 아닌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가까이 가서 보니, 아주 어린아이다. 겨우 걸음마를 하는… 그 아이는 물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허우적대고 있다. 주위에 누구 없나, 부모나 애 보는 사람은? 하고 둘러보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아이는 물 밖으로 겨우 몇 초 동안만 고개를 내밀 수 있는 모양이다. 뛰어 들어가 구하지 않으면, 빠져 죽고 말 것이다. 물에 들어가기란 어렵지 않고, 위험하지도 않다. 하지만 며칠 전에 산 새 신발이 더러워질 것이다. 양복도 젖고 진흙투성이가 되리라. 아이를 보호자에게 넘겨주고 옷을 갈아입고 나면, 틀림없이 지각이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실천윤리학이라는 과목을 가르친다. 지구촌의 빈곤 문제를 논하기 시작할 때면 학생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자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어보곤 한다. 예상대로 아이를 구하겠다는 대답이 나온다. “신발은 어떡하죠? 지각하는 것은?” 그런 건 대수롭지 않다고들 한다. 대체 누가 신발이 더러워진다거나 한두 시간 지각하는 일 때문에 한 아이의 생명을 저버리겠는가?
2007년, 내가 만들어낸 이야기와 비슷한 일이 영국 맨체스터 인근에서 실제로 벌어졌었다. 열 살 먹은 조든 라이언이라는 소년은 이복누이 베타니가 잘못해서 빠진 연못에 뛰어들었다. 누이를 구하려고 했지만, 그만 자신이 가라앉고 말았다. 낚시꾼들이 가까스로 베타니는 건져냈으나, 조든은 가라앉은 채 떠오르지 않았다. 그들은 신고했고, 곧바로 경찰관 두 명이 나타났다. 그러나 그들은 조든을 구하려고 연못에 들어가기를 거부했다. 결국 건져내기는 했으나, 이미 심폐소생술로도 소용이 없었다. 조든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추궁당한 경찰들은 그런 상황에 대비한 훈련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변명했다. 조든의 엄마는 그 말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길을 가다가 아이가 물에 빠진 걸 보면, 지체 없이 뛰어들어야 옳죠… 물에 빠진 아이 구하는 데 무슨 훈련이 필요한가요?”
대부분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유엔아동기금(UNICEF) 자료를 보면, 매년 거의 1천만 명에 달하는 5세 이하의 아동이 빈곤 때문에 죽고 있다. 한 가지 예만 들어보자. 세계은행(World Bank) 소속 연구자에게 어느 가나 사람이 들려준 사례다.
가령 오늘 아침 남자 아이 하나가 죽었어요. 홍역이었죠. 우리 모두 병원에 데려가면 나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이 부모에게는 돈이 없었죠. 결국 그 아이는 오랫동안 앓다가 죽었습니다. 홍역이 아니라, 가난 때문에 죽은 거죠.
이런 일이 매일, 2만 7천 번이나 되풀이되고 있다. 어떤 아이들은 먹지 못해서 죽는다. 더 많은 아이는 그 가나의 남자아이처럼, 홍역, 말라리아, 설사증, 폐렴 따위로 죽는다. 모두 선진국에는 있지도 않은 질병이다. 설령 그런 병에 걸려도, 선진국이라면 목숨이 위험할 정도의 일은 결코 아니다. 개발도상국 아이들이 그런 질병에 취약한 까닭은 안심하고 마실 물이나 하수 정화 시설이 없기 때문이고, 병에 걸렸을 때 부모에게 치료비가 없기 때문이다. UNICEF와 옥스팜(Oxfam)을 비롯한 여러 단체들은 빈곤을 줄이고 깨끗한 물과 기본적인 보건 서비스를 보급하려 애쓰고 있다. 덕분에 유아 사망자의 수는 줄고 있다. 더 많은 돈이 모이면 이들이 더 많은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고, 더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가 놓인 상황을 생각해보자. 상대적으로 적은 돈을 기부함으로써, 한 아이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 아마 신발 한 켤레를 사는 돈보다는 조금 많으리라. 하지만 우리가 별로 필요 없는 일에 쓰는 돈, 즉 음료수, 외식, 옷, 영화, 콘서트, 휴가 여행, 새 자동차, 가옥 리모델링 등에 들이는 돈은 얼마인가? 그런 데 돈을 쓰면서 구호 단체에 기부하지는 않음으로써, 우리는 우리가 구할 수 있는 아이를 죽게 내버려두고 있지 않는가?
하루 1.25달러로 연명하는 14억 명의 사람들
몇 년 전, 세계은행은 소속 연구원들에게 가난한 사람들과 인터뷰를 해오라는 과제를 주었다. 73개국의 약 6만 명의 남녀가 인터뷰에 응했다. 그들은 서로 사는 곳이 다르고 쓰는 언어도 다르지만, 빈곤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이렇게 입을 모았다.
● 일 년 내내, 또는 그 상당 기간 동안, 식량이 부족하다. 종종 하루 한 끼로 때우며, 때로는 얼마 안 되는 음식을 스스로 먹느냐, 자식에게 먹이느냐를 놓고 선택해야 한다. 그런 선택조차 불가능할 때도 있다.
● 돈을 저축할 수 없다. 가족이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고, 흉년이 들면 굶는 수밖에 없다. 돈놀이하는 사람에게 돈을 꾸면 이자가 하염없이 이자를 낳고, 결국 절대로 빚에서 못 벗어난다.
●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못한다. 설령 보내도 흉년이 들면 더 이상 보낼 수 없다.
● 진흙이나 풀로 얼기설기 만든 집에서 산다. 2, 3년이 지나면, 또는 당장이라도 악천후를 만나면, 다시 지어야 한다.
● 마음 놓고 마실 물이 근처에 없다. 멀리서 길어 와야 하는데, 그나마 안 끓이고 마시면 병에 걸린다.
그러나 절대 빈곤은 단지 물질적 결핍만이 아니다. 힘의 결핍, 힘없는 자의 설움이 종종 동반한다. 그럭저럭 민주적으로 돌아간다는 나라에서조차, 세계은행 조사에 응답한 사람들의 말로는, 아무것도 못하고 굴욕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얼마 되지도 않는 것을 누가 가로채간다. 경찰에게 말해봤자, 경찰은 말을 들어주지도 않는다. 법이 있다고 해봤자, 성폭행이나 성추행을 막는 데는 아무 도움이 안 된다. 이런 처지의 사람들은 수치심과 패배감에 찌들어 산다. 자식에게 해줄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가난은 쇠사슬처럼 그들을 묶고, 죽도록 고생만 하다가, 끝내 아무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스러지는 삶, 그 삶에서 도망칠 희망은 조금도 없다.
세계은행은 적당한 음식, 물, 주거, 의복, 위생 시설, 의료 서비스, 교육으로 이루어지는 가장 기초적인 인간의 욕구 충족이 어려운 상태를 절대 빈곤이라고 정의한다. 10억 명의 사람들이 매일 1달러 이하로 연명하고 있다는 통계치는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것은 2008년까지 세계은행의 절대 빈곤 기준이었다. 전 세계의 상품 가격을 좀더 세밀하게 비교할 수 있게 된 뒤로는 기초 생활조차 영위할 수 없는 사람들의 수를 더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세계은행의 절대 빈곤 기준은 매일 1.25달러다. 그 이하의 수입밖에 없는 사람의 수는 10억이 아니라 14억이다. 우리가 생각하던 것보다 더 많은 사람이 절대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이것은 분명 나쁜 소식이지만, 완전히 나쁜 것만은 아니다. 같은 기준을 적용하면 1981년에는 19억 명이 절대 빈곤선 아래에 있었기 때문이다. 지구인 열 명 중 네 명이 절대 빈곤 상태에 놓였던 셈인데, 이제는 그래도 네 명 중 한 명 정도가 되었다.
남아시아는 아직도 절대 빈곤에 허덕이는 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이며, 모두 6억 명, 그중에서 4억 5천 5백만 명이 인도인이다. 하지만 경제 성장 덕분에 1981년 당시만 해도 남아시아의 절대 빈곤 인구가 60퍼센트에 달했는데 2005년에는 42퍼센트까지 줄었다. 사하라 남부 아프리카에는 3억 8천만 명의 절대 빈곤 인구가 있는데, 그 지역 총인구의 절반에 해당한다. 1981년에 비해서 비율상 변화는 없다. 빈곤층 비율이 가장 현저히 줄어든 지역은 동아시아로, 그래도 아직 2억 명의 중국인이 절대 빈곤 상태며, 그 밖의 지역민은 소수다. 그 밖의 절대 빈곤 인구는 세계 각지에, 즉 라틴아메리카, 카리브 해 연안 지역, 오세아니아, 중동, 북아메리카, 유럽, 중앙아시아 등지에 흩어져 있다.
“하루에 1.25달러”라는 말에 혹시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보통 개발도상국에서는 선진국보다 사는 데 돈이 덜 들지 않느냐고. 그것은 체험에서 나온 생각일 수도 있다. 배낭여행으로 세상을 돌아다녀 보니, 생각보다 사는 데 돈이 덜 들더라. 그러니까 미국이나 다른 선진국에서 그런 돈으로 먹고 산다면야 정말 어렵겠지만, 그런 나라에서라면 좀 괜찮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면, 바로 털어버리는 게 좋다. 1.25달러란 이미 세계은행이 구매력에 따른 조정을 마친 숫자인 것이다. 즉 절대 빈곤 인구란 미국에서 1.25달러로 얻을 수 있는 상품과 서비스보다 못한 것이 하루에 얻을 수 있는 것의 전부인(돈 주고 샀든, 직접 만들었든) 사람들을 가리킨다.
더 부유한 나라에서 ‘빈곤’이란 대개 상대적이다. 누군가 TV 광고에 나오는 물건들을 마음대로 살 만한 여유가 없다면, 나는 가난하구나, 한다. 하지만 그 사람은 적어도 TV가 있다! 미국 인구조사국에서 ‘빈민’으로 분류하는 사람의 97퍼센트가 TV를 갖고 있다. 4분의 3은 에어컨도 있다. 또 4분의 3이 비디오나 DVD 플레이어를 갖고 있다.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런 통계치를 든다고 해서 미국의 빈민들이 어렵게 살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그 어려움은 세계의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과는 다른 맥락이다. 절대 빈곤에 허덕이는 14억 명의 사람들은 인간으로서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조차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적어도 1년 중 상당 기간을 굶주린다. 비록 주린 배를 채울 식량이 충분해도, 영양실조를 면하지 못한다. 기초영양소가 결핍된 음식을 먹기 때문이다. 영양실조는 자라나는 아이들의 성장을 억제하며, 뇌에 평생 없어지지 않을 장애를 남길 수도 있다. 이렇게 가난한 사람들은 자식을 학교에 보내기도 어렵다. 최소한의 의료 서비스도 대부분 그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이런 식의 가난은 사람을 죽이는 가난이다. 부유한 나라 사람들의 기대 수명은 평균 78세다. “최저개발국”이라는 공식 명칭으로 불리는 최빈국의 경우, 50세를 못 넘는다. 부유한 나라에서는 5세를 넘기지 못하고 죽는 아동의 수가 백에 하나도 안 된다. 최빈국에서는 다섯에 하나다. 그리고 유엔아동기금의 통계로는 거의 1천만 명에 달하는 아이들이 피할 수 있었을 죽음을 맞이한다. 가난 때문에 죽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죽는 사람은 5세 이상의 아동과 성인을 합쳐 매년 8백만 명이 더 된다.
매년 1천억 달러어치의 음식이 버려지는 풍요의 땅 미국
절대 빈곤에 빠진 14억 명의 사람들과 얼추 비슷한 숫자인 10억 명의 인구가 오늘날 일찍이 없었던, 있었더라도 왕이나 귀족들 정도나 누렸을 법한 풍요를 누리고 있다.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는 유럽에서 처음 보는 화려한 궁전을 세울 수 있었다. 하지만 여름에 궁전을 시원하게 만들 방법은 없었다. 오늘날에는 대부분의 산업사회의 중산층에게 냉방은 대수롭지 않다. 또 루이 14세의 정원사는 아무리 애를 쓴대도 오늘날 우리처럼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전 세계에서 다양하게 들여와 왕에게 맛보일 수 없었다. 왕이 치통을 앓거나 병에 걸렸을 때, 그의 치과 의사나 주치의가 내린 최선의 처방이란 지금 우리가 보기에는 기겁을 할 성격의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수백 년 전의 프랑스 왕보다 더 잘살고 있을 뿐 아니라, 바로 우리 증조할아버지에 비해서도 훨씬 잘산다. 무엇보다 우리는 그분들보다 약 30년은 더 산다. 백 년 전, 태어난 아기는 열 명 중 한 명꼴로 사망했다. 지금 대부분의 부유한 나라에서, 그 수치는 2백 명 중 한 명이다. 오늘날 우리가 얼마나 풍요로운지 보여주는 또 하나의 뚜렷한 지표는 기초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우리가 들여야 하는 노동 시간이 매우 짧다는 것이다. 오늘날 평균적인 미국인은 수입의 겨우 6퍼센트만을 먹을거리에 쓴다. 주당 40시간을 일하지만, 그중 겨우 2시간의 노동으로 1주일분의 먹을거리를 넉넉히 구할 수 있다. 대부분의 돈은 소비재 구입, 오락, 휴양 등에 들어간다.
그리고 대부호들이 있다. 대궐 같은 저택, 어이없을 만큼 크고 화려한 요트, 자가용 비행기 등에 돈을 쓰는 사람들. 2008년의 주식시장 폭락 때문에 수가 제법 줄기 전까지, 전 세계의 억만장자는 1천 1백 명 이상에 달했다. 그들의 연간 순수익을 합치면 4조 4천억 달러였다. 그런 사람들을 만족시키려, 루프트한자 항공사는 보잉사의 새로운 787 드림라이너 항공기를 판매하는 야심찬 계획을 내놓았다. 그 비행기는 보통 여객기로 쓰면 330명을 태울 수 있다. 그러나 억만장자 자가용으로는 35명을 태우는데, 가격은 1억 5천만 달러다. 가격은 둘째치고, 소수 인원만 태우는 대형 항공기를 자가용으로 구입하는 것만큼 지구 온난화에 확실히 기여할 수 있는 일도 없다. 이미 747보다 작은 여객기를 소수 탑승용으로 개조한 억만장자 소유 비행기들이 날아다니고 있다. 구글의 공동 창립자인 래리 페이지(Larry Page)와 서지 브린(Sergey Brin)은 보잉 767기를 한 대 구입해서 개인용으로 개조하는 일에 수백만 달러를 썼다고 한다. 하지만 돈과 자원을 물 쓰듯 하는 일에 아누셰 안사리(Anousheh Ansari)를 따라갈 사람은 없다. 이란 출신의 미국인으로 통신회사를 경영하고 있는 안사리는 11일간의 우주여행을 위해 2천만 달러를 지불했다고 한다. 코미디언 루이스 블랙(Lewis Black)은 존 스튜어트(John Stewart)의 「데일리 쇼?에서 그 일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그의 평생소원이 그거였거든요. 세상의 모든 굶주리는 사람들 머리 위를 날면서 ‘이봐! 내가 돈 쓰는 것 좀 보라고!’ 하고 소리치는 것.”
이 책을 쓰는 동안, 구독하는 《뉴욕 타임스》의 일요일판을 보니 두툼한 광고 전용 부록이 있다. 화려한 양장본 페이지마다 롤렉스, 파텍필립, 브라이틀링 등등의 명품 손목시계 광고가 들어찬 68쪽짜리 잡지다. 그런 광고는 가격 정보를 세세히 밝혀놓지 않는다. 대신, 기계식 손목시계의 새로운 유행을 더 저렴한 비용으로 따라잡을 수 있다는 선전이 눈에 띈다. 값이 싼 쿼츠 손목시계가 훨씬 정확하고 기능도 뛰어나다는 점을 인정하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계식 손목시계에 대한 열정”에 대해 늘어놓는다. 좋다. 하지만 그 기계식 시계에 대한 열정이라는 걸 손목에 감기 위해 얼마가 필요한가? “기계식 시계는 비싸다고 생각하실지 모릅니다. 하지만 5백 달러에서 5천 달러 사이 모델도 많습니다.” 하지만 확실히, “오픈 프라이스 포인트(OPP)로 드리는 이 모델들은 그만큼 단출합니다. 무브먼트와 디스플레이도 기본형이고, 장식도 심플하게 했습니다.” 그런 문구에서 우리는 광고되는 시계가 대개 5천 달러 이상이라는 사실, 다시 말해서 오래 가고 정확한 쿼츠 식 시계를 손목에 차는 비용의 1백 배가 넘는 비용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어쨌든 그런 상품을 위한 시장은 있다. 그리고 그런 고가품은 《뉴욕 타임스》 정기구독자를 위해 광고된다. 《뉴욕타임스》 정기구독은 우리 사회에서 부유함의 표시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부자들의 소비 행태를 가지고 고개를 젓더라도, 너무 힘차게 젓지는 말자. 보통의 미국 사람들이 돈 쓰는 방식을 생각해보라. 미국의 대부분 지역에서, 인체가 하루에 필요로 하는 물 권장량인 여덟 잔은 1페니보다 적은 값으로 수도꼭지에서 받을 수 있다. 반면 생수 한 병을 사려면 1.5달러나 그 이상이 필요하다. 그리고 생수를 만들고 운송하는 데 소비되는 에너지에 대한 문제 제기가 계속되지만, 미국인들은 여전히 생수를 사 먹고 있다. 2006년 기준 310억 달러에 달할 만큼 말이다. 또한 우리가 카페인을 보통 어떻게 섭취하는지 생각해보자. 집에서 커피를 끓여 마시면 몇 페니가 들고, 밖에서 라떼 한 잔을 시키면 3달러 이상이 든다. 그리고 아직 비우지 않은 음료수나 와인 잔을 “다시 채워드릴까요?” 하고 묻는 웨이터에게 습관적으로 예라고 하지 않는가?
고고학자이며 미국 정부가 후원하는 음식물 쓰레기 연구 책임자기도 한 티머시 존스(Timothy Jones) 박사는 가정에서 내버리는 음식물 쓰레기의 14퍼센트가 그대로 먹어도 되는 것이라고 발표했다. 포장도 뜯지 않았고, 날짜도 지나지 않은 음식물이 마구 버려지고 있다. 그런 음식물 중 절반 이상이 진공포장 식품이거나 통조림 상태의 식품으로, 오래 보관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존스에 따르면, 미국에서 매년 폐기되는 음식물은 1천억 달러어치에 이른다. 패션 디자이너 데보라 린키스트(Deborah Lindquist)는 작년에 아직 해어지지 않은 옷을 버린 것이 여성 한 사람당 평균 6백 달러 이상이라고 한다. 이런 수치가 얼마나 정확한지는 몰라도, 우리가 보통, 남녀를 가리지 않고, 꼭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사서 그중 일부는 한 번도 쓰지 않고 있음은 분명하다.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는 데 이것저것 따질 필요가 없고, 그러기 위해 상당한 손해를 보더라도 감수해야 마땅하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일치된 의견이었다. 그러나 매일 수천 명의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우리는 있으나 마나 한 물건을 사는 데 돈을 쓴다. 이것은 부도덕한 일인가?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얼마나 책임을 져야 할까?
(제1장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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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피터 싱어 (Peter Albert David Singer)
피터 싱어는 실천윤리학 분야의 거장이자 동물해방론자로 2005년 <타임>지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한 명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프린스턴 대학 ‘인간가치 센터’에서 생명윤리를 가르치며 프린스턴대학교 생명윤리학 석좌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동물권익옹호단체인 <동물 해방>(Animal Liberation)의 초대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는 공리주의에 바탕을 둔 윤리체계를 정립하여 빈곤 및 기아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실천주의적 윤리학자로 잘 알려져 있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낙태의 합법화, 유전병을 갖고 태어난 아이와 불치병 환자의 안락사 지지 등으로 뜨거운 논쟁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또한 그동안 역사, 종교, 문화 등 인간의 총체적 삶을 조명하며 자신의 실천윤리관을 펼쳐왔는데 특히 다른 인종을 차별하는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말에 빗대어 동물차별을 정당화하는 사람들을 종(種)차별주의자라고 지칭하여 많은 논란을 자아내기도 했다. 그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윤리 관련 주요 항목에 글을 실었으며 헬가 쿠제와 더불어 잡지 <생명윤리>의 공동 편집인으로 활동했다. 또한 농부인 짐 메이슨과 함께 발로 뛰며 저술한 『죽음의 밥상』에서는 그의 실천윤리 사상을 극명하게 드러내며 대형 농장 시스템에서 잔인하게 사육되고 있는 동물들을 우리가 맛있게 먹는 것이 과연 윤리적으로 옳은 일인가라고 질문했다. 그리고 동물학대의 진짜 주범은 맛있는 고기를 탐하는 우리 모두라는 지적을 서슴치 않았다. 저서로는 『동물해방』(Animal Liberation, 1975), 『실천윤리학』(Practical Ethics, 1979), 『사회생물학과 윤리』(Expanding Circle, 1981), 『다윈의 대답』, 『이 시대에 윤리적으로 살아가기』, 『죽음의 밥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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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함규진
성균관대학교 국가경영전략연구소 연구원. 저서로는 『왕이 못 된 세자들』, 『108가지 결정』 등이 있고, 역서로는 『안전지대 고라즈데』, 『록펠러 가의 사람들』, 『마키아벨리』, 『팔레스타인』, 『죽음의 밥상』, 『유동하는 공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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