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단숨에 볼 수 없는
이석은 평판이 좋았다. 사무장은 순전히 재미로 갓 채용된 무주에게 누가 일을 잘하는 것 같으냐고 질문을 던졌는데 무주는 대번에 이석을 지목했다. 이석은 근무 중 잠깐 담배를 피우거나 커피를 마시고 싶을 때 같이 휴게실에 가자고 선뜻 말할 수 있는 선배였다. 고민이 있거나 업무상 곤란한 점이 생겼을 때 먼저 찾는 선배이기도 했다.
이석은 공고를 졸업하고 의무병으로 제대했다. 전투화 대신 구두를 신고 근무해서 의무병이 된 걸 좋아했는데, 그걸 의료에 흥미가 생긴 것으로 착각해 제대 후 간호조무사 학원에 등록했다. 수업을 이수하고 시험을 치러 간호조무사로 얼마간 근무했다. 남자 조무사가 흔치 않던 시절이어서 업무 외에도 해결할 잡무가 무척 많았다. 그러다 결원이 생긴 원무과 업무를 맡게 되어 착실하게 관리 부서에서 경력을 쌓아왔다. 근무하는 동안 하루도 지각하거나 병가를 낸 적 없었다. 특별한 능력 없이 적당한 시기에 적당한 나이가 되어서 관리직이 된 사람과는 달랐다.
이인시里仁市에는 종합병원 규모의 의료기관이 단 두 곳뿐이었다. 그중 하나가 이석이 근무하는 선도병원인데, 개원 7년째인 지지난해 종합병원으로 승격됐다. 그에 맞춰 진료 과목이 아홉 개로 늘고, 전문의와 간호사가 보강되었다. 반면 병상 수를 기존 190개에서 170개로 줄여 쾌적한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홍보했는데, 실상 시설을 늘리기 위해 이전에 마구잡이로 들여놓았던 병상을 적절히 배치한 것에 불과했다.
별도의 홍보 부서 없이 기획 부서에서 마케팅 업무까지 담당했다. 이석은 개원 초기부터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는 그 일을 맡았다. 환자 유치 업무도 했다. 특히 요양이 필요한 노인 환자에 공을 들였다. 보험 혜택이 만료된 장기 입원 환자를 다른 병원에 입원시켰다가 일정 기간 경과 후 다시 데려오는, 사무장 말에 의하면 환자를 ‘순환’ 시키는 일도 했다. 정확한 경위가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다른 병원과 환자를 교환하는 방식일 것이었다.
직원들 중에는 이석의 업무를 비꼬며 그를 ‘삐끼’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빈정거림이 무색하게 한때 이석의 성과는 특별했다. 병동에 빈 병상이 거의 없었다. 대기자가 많아 순번을 정해야 할 정도였다. 순번을 정하는 것 역시 이석의 일이었다. 모두 경기가 좋던 시절의 일이었다. 지금은 아니었다. 이석이 아무리 노력해도, 홍보에 돈을 써도 빈 병상은 점점 늘어갔다.
이석은 병원에서 살다시피 했다. 직원 중 제일 일찍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했다.
“병원이 뭐가 그리 좋으세요?”
무주가 당돌하게 물어도 이석은 거리낌 없이 대답했다.
“당연히 좋지. 병원에 오면 다 아픈 사람인데 나는 아픈 데 없이 멀쩡하니까 좋지.”
“뭐가 그렇게 좋으냐고요.”
무주가 이석을 흉내 내서 다시 물었다. 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건 이석이 고안한 농담이었다. 웃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거리를 두고 싶을 때 주로 썼다.
“돈을 주니까 좋지. 남들은 병원에 돈 쓰러 오는데 나는 돈 벌러 오잖아. 얼마나 좋아.”
“에이, 병원이 왜 좋으냐니까요.”
“가끔 빈 침대에서 낮잠도 잘 수 있고 아프면 공짜로 약도 주고…….”
“그러니까 병원이 왜 좋으냐고요.”
“병원이 좋은 게 아니고 집이 싫어.”
이석이 헤벌쭉 웃으면 무주도 따라 웃는 것으로 쓸데없는 문답이 끝났다.
외근을 나가지 않을 때면 이석은 병원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환자 치료를 두고 의료진이나 약사에게 아는 체하거나 간호사나 직원에게 쓸데없는 농담을 해댔다. 진료실이나 촬영실, 관계자 외 출입이 금지된 약품 보관실까지 무시로 들락거렸다.
“자, 들어봐. 한 남자가 수술을 받으려고 준비하고 있었어. 그런데 갑자기 겁을 먹고 막 달아났어. 왜 그랬게?”
이석이 대답을 기다리며 데스크의 간호사들을 둘러보았다. 관심을 갖는 간호사는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주저하지 않고 이석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싫은 내색을 했다. 이석은 괘념치 않고 딱히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말을 이었다.
“간호사가 ‘겁내지 마세요, 맹장 수술은 간단해요’ 그러더래.”
“그런데요? 그게 왜요?”
“간호사가 그 말을 의사한테 했대.”
간호사들은 혀를 차며 원장 귀에는 들어가게 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원장이 들으면 뭐 어때서. 이발사 주제에. 다들 알지? 처음에 외과의사가 이발사였던 거.”
원장 얘기가 나오면 이석은 대번에 얼굴이 굳었다. 간호사들은 이석을 상대하기를 포기하고 자리를 뜨거나 일에 몰두하는 척했다.
원장은 이석 아이의 수술을 집도했다. 수술 후 아이의 상태는 더 나빠졌다. 원장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고, 응급처치가 늦어진 탓이라고 했다. 실제로 아이는 사고 직후 가까운 병원에 갔다가 다시 선도병원으로 이송되어 오느라 시간을 다소 허비했다. 원장의 잘못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잘못을 증명할 수 없었다. 이석은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았다. 수술이 끝나고 원장은 아이를 계속 치료하는 건 무의미하다고 차가운 말투로 충고했다. 이석이 한참 노려보았고, 흥분한 원장은 더 심한 말을 내뱉었다.
이석은 포기하지 않았다. 의료기구를 잔뜩 매단 아이와 함께 응급차를 타고 서울의 병원으로 갔다. 처음 방문한 강남의 병원에서도 역시 늦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석은 다른 병원으로 갔다. 좀 더 해보자는 말을 들을 때까지 서울의 병원 몇 곳을 아이와 함께 전전했다.
“의사는 절대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니야.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말을 하는 사람인데 어떻게 믿겠어. 얼마 살지 못합니다, 다리를 쓸 수 없습니다. 눈이 안 보일 겁니다, 평생 오줌보를 차야 합니다…….”
이석은 언제나 의사에 대해 혹평했다.
“그중에서 내가 제일 믿을 수 없는 건 희망을 가지라는 말이야. 그렇게 말하는 의사만큼 악랄한 인간은 없어. 희망으로 병이 낫나. 절망에 빠진 사람한테 돈이나 계속 쏟아부으란 얘기지. 잘 들어둬. 그런 인간한테 속으면 안 돼.”
그쯤 되면 누구든지 차라리 이석이 농담이나 계속해줬으면 하는 심정이 되기 마련이었다. 어쨌거나 여긴 병원이었다. 모두들 의사의 헛된 장담이나 보호자의 간절함이 발생시킨 수익으로 월급을 받는 처지였다.
“하지만 그보다 더 못 믿을 건 포기하라는 의사야. 그렇게 말하는 의사는 무능한 거야. 사람이 수학이야? 포기하게……. 무능한 의사보다는 악랄한 의사가 나아. 안 그래?”
동의해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다들 이석의 사정을 알기 때문에 대놓고 뭐라 하는 사람도 없었다.
“다 포기하면 병원은 뭐로 먹고살아?”
경직된 분위기가 자못 미안했는지 이석이 우스개처럼 얘기를 끝내며 예의 허튼 말장난, 쌍문동에 살면 쌍둥이를 낳고 삼성동에 살면 세쌍둥이를 낳고 사당동에 살면 네쌍둥이를 낳는다는 말을 이어갔다. 무거워진 분위기를 의식해 무주가 서울에는 구의동도 있고 천호동도 있다고 말을 거들면 주위 사람들도 마지못해 허허 웃어주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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