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북한은 과연 붕괴할 것인가
강국진
북한에 대해 우리가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단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는 북한을 제대로 모른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 자신도 어린 시절 텔레비전에 나온 북한 사람들이 우리와 너무 똑같이 생겨서 낯설게 느껴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머리로는 같은 민족이고 같은 언어를 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북한을 가 본 적도 없고 북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도 없습니다.
우리는 일본을 일컬어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하지만 일본보다 더 멀게 느껴지는 곳이 북한이 아닐까요. 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우리는 일본에서 배울 점이 많다’는 말을 하고는 합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저를 ‘친일파’라고 비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공개적인 자리에서 “우리는 북한에서 배울 점이 있다”는 말을 꺼내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운 것이 현실입니다. 냉전은 이미 수십 년 전에 끝났습니다만, 우리는 여전히 냉전보다 더한 냉전 시대를 살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한국에서 볼 때 가장 빈번하게 나오는 북한 관련 질문 세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북한은 망할까, 망하지 않을까’, ‘망한다면 언제 망할까’, ‘망하지 않는다면 왜 그럴까’가 아닐까 싶습니다. 북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첫 번째 화두를 ‘북한은 붕괴할까?’로 정하는 것은 사실 그다지 좋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이름도 위치도 잘 모르는 나라를 소개하면서 그 나라가 망할지의 여부부터 다룬다면 그것은 분명 공정한 태도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아도 현실은 현실이겠지요. 이번 기회에 그 문제를 확실히 정리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합니다.
박한식
북한 붕괴론의 역사는 오래되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1948년 북한의 정부 수립과 함께 시작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특히 동구권이 붕괴되던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에 북한 붕괴는 시간문제라고 보는 시각이 팽배했습니다. 당시 미국에서는 북한이 갑자기 붕괴되면 미국 국익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한 많은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미국 정치권에서는 동북아시아의 정세 급변을 우려하기도 했고, 군수산업체 쪽에서는 실제 북한이 붕괴되면 어쩌나 우려하는 기류도 있었습니다.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을 때는 또 어떻습니까. 대학 교수라는 분이 방송에 출연해 “빠르면 사흘, 늦어도 3년 안에 북한이 무너질 것”일이라는 말을 버젓이 하기도 했습니다. 1994년 김영삼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우리는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통일을 희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통일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갑자기 닥쳐올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가능성을 점검하고 충분히 준비해야 합니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했을 때도 몇 개월 내에 북한이 붕괴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돌았습니다.
때로는 조그만 단서라도 있으면 북한이 붕괴할 징조로 연결시키기도 합니다. 북한 고위급 인사가 탈북할 때마다 북한 붕괴설도 함께 흘러나왔습니다. 최근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태영호 공사의 망명도 그렇지만, 1997년 조선노동당 비서 황장엽이 망명했을 때도 신문이나 방송에서는 당장이라도 북한이 붕괴될 것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물론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는 우리 모두가 잘 아는 그대로입니다. 이쯤 되면 ‘북한 붕괴’는 거의 종교적 도그마 수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 눈에는 1992년 한국 사회를 시끄럽게 했던 ‘휴거’ 소동이나 마야 달력에 근거했다는 2012년 세계 종말론, 세기말 증후군과 북한 붕괴론이 얼마나 다른지 잘 모르겠습니다.
더구나 갖가지 북한 붕괴론을 들어 보면 정확히 ‘붕괴’가 어떤 의미인지도 모호하게 뒤섞여 있습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축출하는 것이 붕괴인 것인지, 정변이 일어나서 새로운 정권을 구성하는 것이 붕괴인 것인지, 조선노동당이 집권당 자리를 잃어야 붕괴인 것인지, 그것이 아니라면 북한이라는 국가 자체가 세상에서 사라져야 붕괴인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래서는 제대로 된 미래지향적인 토론을 할 수가 없습니다.
─ 북한 붕괴라는 도그마
그러고 보면 우리가 북한에 대해 명확하게 아는 것은 딱 두 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북한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붕괴한 것은 북한이 아니라 닳고 닳은 ‘북한 붕괴론’이라는 점입니다.
북한 붕괴론이라는 거친 언사에 반론을 제기해 본다면, 단적으로 표현해서 북한은 ‘절대’ 붕괴하지 않습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대규모 식량난과 ‘고난의 행군’ 속에서도 북한은 붕괴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들 시스템이 이미 자체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특정한 지도자가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더구나 북한은 개인을 우상화하는 체제이지만 김정일이나 김정은의 나라가 아니라 김일성 주석의 나라입니다. ‘김일성 주석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라는 구호가 그냥 빈말이 아닙니다. 김일성 주석의 비중이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큰 나라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 한 사람이 없어진다고 체제가 붕괴하지는 않습니다. 더구나 뒤에서 다시 이야기하겠습니다만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 혼자서 모든 것을 결정하지 않습니다. 일종의 ‘집단 결정 체제’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극단적으로 가정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암살된다고 해도 북한 체제가 무너질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어떤 정치 체제도 단순히 경제가 어렵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붕괴되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역설적이지만 독재국가에서는 외부의 압력으로 경제가 어려울수록 독재는 더 잘 이루어집니다. 카다피리비아나 후세인이라크 정권이 무너진 것이 경제 봉쇄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체제가 붕괴하는 것은 그 체제를 유지하는 정통성이 무너졌을 때입니다. 만약 북한이 경제성장을 정통성의 근거로 삼는 국가였다면 북한은 몇 번이나 무너졌을 것입니다. 냉정히 말해서 북한 체제는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단 한 번도 정통성의 위기를 겪지 않았습니다. 북한의 정통성은 경제성장이 아니라 항일 무장투쟁을 지도한 김일성 주석과 조선노동당 그리고 미국 등 외세에 맞서 자주성을 지키는 것에 그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통성은 주관적인 개념입니다. 경제가 정통성 유지에 도움은 되겠지만 기본적으로 정통성 자체는 상징적 가치관으로 유지됩니다. 그런 논리로 본다면 북한은 정통성이 굉장히 강한 국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십만 명이 굶어 죽을 정도로 경제가 나빠져도 국가의 정통성이나 정체성의 위기를 겪지 않는 것입니다. 종교적 성격도 분명히 있습니다. 뒤에서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하겠습니다만 북한은 이른바 김일성 주체 종교가 지배하는 국가이고, 끊임없이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찬송가를 만들어 내는 체제입니다. 국가에서 생산해 내는 환상이 공고합니다.
사실 체제 유지를 위한 환상은 어느 나라에나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대다수 미국인들은 실제로는 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살면서도 자신들이 세계에서 가장 민주적인 국가에서 살고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 환상에 빠져 있는 것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 이유로 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북한이 지금까지 붕괴되지 않았던 것처럼 앞으로도 붕괴될 가능성이 없다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 민중봉기와 쿠데타가 일어나지 않는 이유
일부에서는 민중봉기의 가능성을 언급합니다. 민중봉기를 기대하는 대부분의 사람이 정작 국내 문제에서는 민중의 힘을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논외로 치더라도, 북한에서 민중봉기는 다만 그들의 희망사항에 불과할 뿐입니다. 민중봉기가 가능했다면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에 벌써 일어났겠지요. 쿠데타 역시 현실성이 떨어지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김정은 정권은 이미 자리를 잡았습니다. 설령 쿠데타가 일어난다고 해도 그것은 북한이라는 국가 시스템이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권력 중심부의 일부분이 교체되는 것에 불과할 것입니다.
잇따르는 ‘숙청’과 ‘처벌’이 북한 정권이 붕괴하는 징후인 양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간과하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권력에서 밀려나고 쫓겨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자리를 채우며 출세하는 사람도 있는 법입니다.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대기업에서 대규모 명예퇴직을 실시했다는 보도를 쉽게 접할 수 있지만, 그것 때문에 회사 업무가 마비되었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명예퇴직으로 인해 생기는 빈자리를 채우며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 체제에 진심으로 충성하고 신뢰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제가 보기에 북한 인구의 4분의 1은 북한 체제에 충성해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조선노동당은 당원이 약 360만 명 정도인데, 북한 인구 중 약 14퍼센트입니다. 이들은 체제를 신뢰할 뿐 아니라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과 능력, 의지가 있습니다. 최소한 이들은 현재 체제에서 수혜를 입고 있으며, 체제 유지에 이해관계가 있습니다. 게다가 이들의 배우자나 부모, 자녀까지 감안하면 ‘친정부’ 범주를 대략 북한 인구의 절반 정도까지 확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다른 4분의 1은 지성인을 포함해 이른바 ‘세상 물정을 아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핵무기를 추구해서 얻는 것이 무엇인지 손해가 무엇인지, 주체사상의 장단점이 무엇인지 등을 생각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충성은 무조건적인 충성은 아닙니다. 비판은 하지만 체제에 적대적이지 않은 사람들, 곧 ‘건설적 비판’ 혹은 ‘비판적지지’를 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여론 조사를 해보면 ‘헬조선’이니 하면서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렇다고 해서 혁명이나 체제 전복을 추구하지는 않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북한을 알기 위해서는 ‘자아비판’이라는 제도도 알아야 합니다. 직장에선 직장대로, 마을에선 마을대로 각자 속한 사회 단위마다 정기적으로 반상회 같은 모임을 갖는데, 그 자리에서 ‘자아비판’을 합니다. 직장에는 직급이 높은 사람도 있고 낮은 사람도 있지만, 자아비판을 하는 자리에서는 직위가 낮은 사람이 직위가 높은 사람을 주저하지 않고 비판을 하며 그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분위기이기도 합니다. 제가 아는 교수들도 자기 동네 자아비판 모임에서 비판을 많이 당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당에서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도 예외 없이 자아비판을 하는 자리에 참석해야 합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각종 불만을 체제 안으로 순치馴致 시키는 것입니다.
이들 50퍼센트, 곧 당원과 지성인들은 국가의 향방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지만, 이들을 체제에서 벗어나지 않는 부류이기도 합니다. 체제 유지가 이득이거나 체제 안에서 대안을 찾은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북한이 곧 무너질 것이라고 간주하는 것은 실제 대북정책에 막대한 악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인식해야 합니다. 당장 장기적인 대북정책을 어렵게 만듭니다. 북한 붕괴론이라는 생각의 틀에 사로잡혀 있던 김영삼 정부가 보여 준 정책 실패와 국제적 고립은 두고두고 되짚어 보아야 할 반면교사입니다. 위키리크스wikileaks에 따르면 주한 미국대사관이 미 국무부에 보고한 한 외교 전문에 이명박 정부 당시 외교부 제2차관이었던 천영우는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대사와 가진 오찬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후 2, 3년 안에 북한이 붕괴할 것으로 전망했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이 문건에서 천영우는 북한이 경제적으로는 이미 붕괴했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죽고 나면 정치적으로도 무너질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어땠습니까. 북한은 경제적·정치적으로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무너진 것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였지요.
한국의 보수 세력 중에는 북한이 붕괴하면 자연스럽게 남북통일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국제관계를 고려하지 않은 ‘우물 안 개구리’ 사고방식에 불과할 뿐 아니라 한반도에 극심한 혼란만 초래할 위험하기 짝이 없는 발상입니다.
통일이란 그렇게 손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수십 년간 교류를 이어 가며 준비한 독일만 하더라도 지금은 보이지 않는 진통을 계속 겪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좀 더 냉정히 말해서 만약 북한이 급작스럽게 붕괴한다면 이후 일어날 일은 흡수 통일이 아니라 제2차 한국전쟁이 아닐까요? 그런 점에서 본다면 ‘북한 붕괴’의 결말은 ‘독일’이라기보다 ‘시리아’에 더 가깝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다음에 북한의 2500만, 한국의 5000만 주민들에게 올 것은 고통과 갈등, 위험뿐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북한은 붕괴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붕괴해서도 안 됩니다.
(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