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복무
곁에 누운 보충병 양덕수가 으응 앓는 소리를 하며 몸뚱이를 뒤쳤다. 양현호는 덕수의 엉덩이가 아랫배에 가해오는 뿌듯한 압박감을 느꼈다. 아랫배뿐만 아니라 가슴팍은 더 답답했다. 통나무를 재어놓은 것처럼 빼곡히 누워 있는 몸뚱이들 사이에 현호 몸뚱이도 그렇게 끼여 있었다. 누웠다기보다 차라리 쌀가마니나 통나무처럼 재여 있는 꼴이었다. 몸뚱이 위에 사람이 눕지 않았을 뿐 모로 누운 몸뚱이가 이렇게 답답할 지경이면, 이것은 물건을 재어놓은 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말하자면, 위로 재여 있는 것이 아니라 옆으로 재여 있는 꼴이다. 저쪽으로 머리를 두른 양덕수와 김 상병의 전봇대 같은 다리 토막이 양쪽에서 현호의 가슴팍과 등덜미를 짓눌렀다.
내무반이 비좁아, 사병들은 6자와 9자를 늘어놓은 것처럼 머리를 양쪽으로 하고 누웠다. 어깨판이 차지하는 공간을 절약하자는 취침법이다. 그러고도 비좁아 모로 누웠다. 거기다가 오늘은 보충병이 하나 더 늘었다. 보충병 양덕수 발바닥은 바로 현호 코앞에 있다. 발 고린내가 콧속으로 솔솔 들어왔다. 방한화 속에서 땀에 절었던 양말이 말라지며 내는 이 냄새는 처음에 맡으면 이만저만 독한 게 아니다. 머리를 옆으로 젖힐 수도 없고, 위로 올릴 수도 없다. 머리 위는 바로 통로다.
현호는 그냥 그 고린내를 들이마시기로 했다. 붕어가 어항바닥에 깔린 오물을 들이마시는 꼴이다. 자신의 말간 의식을 이런 냄새로 한번 휘저어보고 싶었다. 물거품처럼 하잘것없는 사념들만 명멸하는 의식은 그냥 휘저어버리고 싶은 것이었다. 색깔로 치면, 검붉은 황토색 같은, 아니 청동빛 시궁창 색깔 같은 양덕수 발 고린내를 내 의식 위에 좍 끼얹어보는 것이다. 냉수 그릇에 떨어진 잉크 방울처럼 이 고린내는 의식 속에 싹 번져, 지금의 먹먹한 상태에 무슨 변화를 가져올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녀석 발 고린내는 좀 독특했다. 시궁창 썩은 냄새에 약간 고소한 냄새가 섞인 것 같았다. 아까 검붉다고 느껴진 것은 이 고소한 냄새 때문이었을까? 숨을 천천히, 그리고 깊이 들이마셨다. 그 고소한 냄새는 느껴지지 않았다. 콧속에 신경을 모으고 다시 마셔보았다. 그 냄새가 느껴지는 것도 같고 고린내 속에 묻혀버린 것도 같다. 곁에 누워 있는 김 상병 냄새는 어쨌던가? 아버지의 냄새는? 그러고 보니 모두 조금씩 달랐던 것 같았다.
관상이란 건 얼굴 생김새로 보아 그 사람의 개성이며 운명 등, 어떤 인간적인 내막을 알아낼 수 있다는 것인데, 이런 냄새도 그 사람의 내막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았다. 도리어 인간의 어떤 핵심과 통하는 비밀스런 통로가 엉뚱하게 이런 곳에 있는 건 아닐까? 그럼 양덕수 발에서 나는 이 고소한 냄새에 해당하는 인간적인 내막은 어떤 것일까? 그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다 하더라도, 이렇게 들이마셔보면 양덕수의 어떤 인간적인 핵심과 서로 내밀한 교감이 이루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콧속에 다시 신경을 모으고, 체로 거르듯 서서히 냄새를 들이켰다. 겨자처럼 쏘는 것도 아니고, 그 청동빛 고린내에서 이렇다 할 무슨 단서가 붙잡혀 오는 건 아니었다. 현호는 그냥 고린내를 깊숙이 들이켰다. 그것은 기도 같은 것이고 그 기도의 밑바닥에는 양덕수라는 인간을 가슴에 끌어안고 싶은 간절한 갈구가 있었다.
오늘 낮에 보충 온 양덕수를 처음 보았을 때, 그 이름이 바로 현호 자기 아버지 이름인 양덕수여서 갑자기 일어났던 적개심과는 전혀 다른 감정이었다.
현호는 오늘 낮에 온 보충병 양덕수 이름을 보자 깜짝 놀랐다. 양덕수는 바로 자기 아버지 이름이었다. 순간 적개심이 치솟아 현호는 그 얼굴을 빤히 보고 있었다. 실없이 숨이 가빠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감정의 변화가 어떻게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다. 아버지의 이름을 달고 온 그가, 무슨 잡귀처럼 자기의 생애에 끼어들어, 자기의 운명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만 같은 막연한 공포 뒤에 일어난 변화인 것만은 확실했다. 그의 출현은 애써 외면하고 있는 자기의 현실에 억지로 고개를 돌려놓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중학교 운동장 조회시간 때 교장선생의 훈화 소리를 듣지 않고 한눈 파는 자기 머리통을, 느닷없이 나타난 담임선생이 두 손으로 꽉 붙잡아서 홱 돌려놓았듯이.
붙잡혀 온 날짐승처럼, 둥그런 눈을 해가지고 선임하사의 뒤를 따라 들어와 신고를 한 그에게, 모포를 정돈하고 있던 강 병장이 농을 걸었다.
“갱상도 문둥이가?”
“넷!”
그를 보고 있던 사병들이 와 웃었다. 이런 농조면 그냥 웃어넘겨도 좋을 텐데 꼿꼿한 자세로 대답하는 게 우스웠다.
“관등성명은?”
“이병 양덕숩니닷!”
현호는 섬뜩했다. 양덕수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가 성큼 일어섰다. 닦고 있던 엠원 대검을 손에 쥔 채, 가까이 가서 명찰을 들여다보았다. 서투른 글씨였으나 또렷하게 ‘양덕수’라 쓰여 있었다.
“무슨 자, 무슨 자지?”
“큰 덕 자, 물가 숫잡니다.”
현호는 그 얼굴을 또 빤히 건너다보았다. 양덕수는 무슨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겁먹은 눈알을 굴리고 있었다.
“창호 너 꼭 찌를 자세다. 무슨 유감 있어?”
누군가가 지껄이는 소리에 현호는 후딱 정신을 차렸다. 엠원 대검을 꼬나쥐고 있는 자기 자세가 정말 그를 찌를 모양이 되었다. 사병들이 또 까르르 웃었다. 현호는 멋쩍게 입가에 웃음을 흘리며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렇게 웃어버려야 자리에 어울리겠다 싶기도 하고, 괜한 것에 신경을 썼다고 자신을 달래고 싶기도 했다.
자리에 앉아 수입포에 기름을 듬뿍 묻혀 칼날을 막 문지르려는 참이었다.
“창호, 편지!”
중대본부에 갔던 분대장이 소리를 질렀다. 얼결에 기름 묻은 손으로 받았다. 형한테서 온 편지였다. 의식 한 귀퉁이에 쇳덩어리가 퐁당 구멍을 뚫는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현호의 표정은 싹 굳어버렸다. 우연이라 하기에는 너무도 정연하게 아귀가 맞았다. 아버지의 이름, 그다음 순간 형의 편지.
현호는 입대하고 나서 지금까지 집에 편지한 적이 없는데, 중대장이 무더기로 보내는 편지에서 소속을 알았을 것이다. 훈련소에서도 그랬다.
현호는 고등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형 창호를 대신해서, 아버지한테 등을 떼밀려서 두 번째 군대에 왔다. 그래서 지금 현호 이름은 양창호다. 방금 온 그 편지도 실은 형 양창호가 보낸 것인데, ‘양창호 앞’으로 되어 있고, 발신인은 양필승이란 가명이다. 고등고시 합격을 필승이란 이름으로까지 다짐하고 있지만, 형이 고등고시에 합겪하는 따위의 ‘필승’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확신하는 현호는 이제 이따위 수다는 진저리가 쳐질 만큼 지겨웠다. 언어의 공허한 의미에 맥이 풀렸다. 이쪽에서 아무리 정연한 논리로 힘들여 말을 해도 ‘그러나’ 따위의 간단한 부정으로 이쪽 말을 뒤집고 나올 때 느끼는, 그런 갑갑증과 허탈감이었다.
“집안에 사람이 하나 나야 한다. 사람이 나야 우리가 사람 구실을 한다. 나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네가 자식을 낳아도, 그 자식들까지 사람 구실을 하려면 집안에 사람이 나야 해, 사람이!”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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