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읽고 쓰고 나는 산다
나는 어떻게든 살아가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큰 몫이라 생각한다. 산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 일종의 정언명령인 셈이다. 그러나 삶이란 세월을 흘려보내는 것만으로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인간만이 자신의 삶을 사유하고 합리화해야 살아갈 수 있다. 나 역시 가끔 현재의 삶을 돌이켜보면서 사유 없는 실천을 반성하고, 실천 없는 일상을 돌아보며 반성을 거듭한다.
날마다 책을 읽고, 책을 만들고, 책을 쓰고, 책에 관해 강의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 한 직장에서 20여 년 동안 계절마다 잡지를 만들었다. 어느덧 내가 편집장으로 몸담은 계간 《황해문화》가 통권 100호를 바라보고 있다. 20여 년을 매일같이 반복되는 생활에 대해 의문을 갖기도 한다.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어째서 나는 다른 의미 있는 일, 흙을 일구고 생명을 기르는 일을 택하지 않았을까.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아늑한 집을 짓거나 이른 새벽 아직 사람들이 거리에 나서기 전 길을 닦고, 청소하는 일을 택하지 않았는지 자문한다. 어째서 책을 읽고 책을 쓰고, 책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했는가. 언젠가 함께 일하는 편집부 후배에게 바보 같은 질문을 던졌다.
“넌 어쩌다 이런 일을 하게 되었니? 편집자란 어쩌면 남의 글 뒤에서 그림자로 살아가는 직업인데….”
“편집장님은 글도 쓰시잖아요. 저는 그게 더 힘들더라고요.”
글이란 결국 나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하고, 책읽기와 글쓰기 그리고 책을 세상에 내놓는 일을 업으로 삼은 지 어느덧 25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이런 일을 직업으로 택한 것에 대한 후회가 있다.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우리에게 한 번도 허락되지 않았으며, 자본주의의 음습한 기운이 세계를 적시는, 희망이 사라진 세기를 살아가고, 비루한 일상 속에서 전망 없는 발걸음을 재촉해야 하는데,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은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고민했다.
파울 첼란Paul Celan, 1920~1970이란 사람이 있다. 소련과 루마니아 접경 지역에서 태어나 평생 독일어로 시를 썼던 유대계 시인이다. 독일어는 그에게 어머니의 말이었으나 독일은 그를 죽음이 춤추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보냈다. 인간의 기름이 비누가 되고, 동료들이 죽어가는 동안 나머지 다른 사람들은 흥겨운 춤곡을 연주해야 하는 와중에도 그는 시를 썼다.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지만, 평생 동안 그는 살아남았다는 죄의식과 우울증에 시달리다 센강에 몸을 던졌다. 파울 첼란은 자신의 글을 ‘유리병 편지’라고 불렀다. 글을 쓴다는 것은 누가 읽게 될지, 과연 온전하게 전해질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험난한 파도와 암초를 뚫고, 깊은 심연에 가라앉지 않고 누군가에게는 닿으리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망망대해에 띄우는 편지가 유리병 편지이다.
우리가 누군가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그렇듯 망망대해의 저 너머에서 온 유리병 편지를 집어드는 것과 같다. 역사 속에서는 실제로 이런 일들이 벌어지기도 했다. 바르샤바 게토Ghetto에서 봉기했던 유대인들이 전멸의 위기에 처하자 마지막 힘을 모아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해줄 한 사람을 폴란드 민간인 구역으로 피신시킨다. 모두의 희망을 제 한 몸에 품었던 이작 카체넬존Jizchak Katzenelson, 1886~1944은 극작가이자 작사가였다. 신분을 숨기고 도주하던 중에 그의 위조 신분증이 발각되어 결국 비텔에 위치한 특별수용소에 갇혔다. 그곳에 갇힌 사람들 대부분은 미국이나 영국 같은 적성국가의 민간인들로 훗날 독일 포로와 교환을 목적으로 억류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유대인이란 사실이 드러나면서 결국 아우슈비츠로 끌려가게 되었다. 이송되기 전에 그는 동료 미리암 노비치Miriam Novitch와 함께 유리병 속에 원고를 넣어 땅속 깊이 묻어두었다. 만약 전쟁에서 살아남지 못하게 된다면 동료가 책으로 출판하기로 약속하고 말이다.
나는 거창하게도 ‘글쓰기란 세상 모든 이에게 절망하면서도 동시에 그들에게 희망을 거는 일’이라고 믿는다. 글을 쓰고 읽는다는 것은 누군가의 삶에 가닿고 싶다는 욕망이며, 자신의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이고, 타인의 삶에 귀 기울이겠다는 태도이다.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책이라는 미디어와 출판의 역사에 대해 가르치며 함께 공부하고 있다. 한 권의 ‘책’이 쓰이고, 나오고, 읽는 행위는 인류역사의 가장 큰 혁명이었다. 변화는 때로 매우 더디게 오기에 우리는 생전에 그 결과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런 이유로 고대의 노예, 중세의 농노, 근대의 시민이 변화를 포기했다면 우리는 지금도 어둡고 정체된 사회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당장은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일들에 대해 변화와 도전을 꿈꾸기 시작할 때, 우리의 삶은 달라진다.
12세기의 스콜라 철학자이자 신비주의 수도사였던 생 빅토르 위그Hugues de Saint Victor, 1096~1141는 “자신의 고향이 달콤하게 느껴지는 사람은 초심자일 뿐, 어느 곳엘 가도 고향처럼 느끼는 사람은 강한 사람이다. 그러나 진정 완벽에 이른 사람은 온 세상을 낯선 곳으로 느끼는 사람이다.”라는 말로 유명하다. 이 말은 동료와 제자들에게 바람직한 ‘읽기 기술ars legendi’과 ‘성스러운 독서lectio divina’를 지속시키기 위해 남긴 가르침인 『디다스칼리콘Didascalicon』에 나온다. ‘디다스칼리콘’은 ‘학습론’, ‘공부’ 정도의 뜻이라 할 수 있다. 중세의 교양이었던 생 빅토르 위그의 시대에 이르러 독서의 주체가 개인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오늘날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럽기만 한 ‘책Book’의 형태와 독서 문화는 생각의 탄생, 문자의 발명, 파피루스와 점토판, 양피지와 종이, 두루마리에서 코덱스, 필사본에서 인쇄본에 이르는 인류 지식의 발전사와 더불어 매우 서서히 때로는 급속하게 진화해온 산물이다. 독서는 음독音讀에서 묵독黙讀으로, 진리를 추구했던 전례典禮의 일부였던 성스러운 독서에서 세속적인 독서로, 개인의 지적 탐구를 위한 독서studium legendi로 변천해 왔는데, 위그는 자신의 책머리에 “탐구되어야 할 모든 것 중에서 그 최초의 것은 지혜”라고 적었다. 물론 이때의 지혜란 그리스도의 빛을 가리키는 뜻이지만, 책을 읽는 사람이 궁구해야 할 것이 ‘처방전적 지식’이 아니라 ‘지혜비판적 지성’라는 의미에서 그의 말은 여전히 빛을 발한다. 위그는 개인의 지적 탐욕이나 출세를 위한 독서가 아니라 공동체의 독서로서 소리 내어 읽기를 권했다. 소리 내어 읽기는 문맹이 대다수인 사회에서 지식을 나누는 행위이기도 했다. 그는 단순히 문자를 쫓아가며 읽기보다 책을 암기하여 자신의 내부에서 새롭게 기억의 궁전을 짓도록 권했다. 위그는 어째서 이렇게 이야기했을까? 일단 그가 살았던 시대는 아직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이어서 책이 귀한 탓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지식’과 ‘지혜’의 차이를 명확하게 구분했기 때문이다.
플라톤의 중기 대화편 중 「파이드로스Phaidros」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주사위·숫자·문자·기하학·천문학 등을 발명한 신 토트Thoth가 이집트의 파라오를 방문해 자신이 발명한 문자의 장점을 열거한 뒤 “문자는 사람들의 기억을 향상시켜줄 배움의 한 종류로 내 발명은 기억과 지혜 모두에게 유익한 비결”이라고 주장한다. 그러자 파라오는 이렇게 반론을 제기한다. “사람들이 그걸 배운다면 그들의 영혼에 망각할 수 없는 무언가를 심는 결과가 되어 사람들이 앞으로는 쓰인 것에만 의존하려 들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 기억 속에 무언가를 담아 찾아내려 하지 않고, 눈에 드러난 기호에만 의존할 것이다.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지혜가 아니라 지혜의 유사품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아는 것도 아니면서 말만으로 많은 것을 아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 것이기 때문에 결국엔 짐만 될 것이다.”
이처럼 지식이 아닌 지혜를 구하는 일이 반드시 책을 거쳐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 문학계의 뛰어난 편집자였던 모리스 나도는 “나는 독서할 의무가 없는 순간에만 진정한 독자가 된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삶이 있은 뒤에야 그것을 반추해볼 여유가 생기고, 그때 비로소 책에 담긴 지식이 지혜로 변화할 수 있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정작 내가 그렇게 살아왔는가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다. 독서의 또 다른 효용이랄 수 있는 공부도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지 목적이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나 자신과 다른 이들에게 공부를 위한 독서를 강요한다. 우리에게 그래야 할 만한 이유가 있다면 단 한 가지뿐이다. 총칼이 난무하는 삶의 전장을 가로질러야 하는 이들에게 장미 한 송이만 들려서 보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던 마오쩌둥은 “붓을 움직이지 않는 독서는 독서가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책을 읽은 뒤에는 반드시 요점을 정리했고, 중요한 부분에 표기하고 주를 달았다. 이를 실천한 마오쩌둥이 대단하기는 하지만, 이는 본래 학문하는 가장 오래된 방식이다. 독서 방법은 마오쩌둥을 따르든, 모리스 나도를 따르든 왕도枉道가 없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이, 수많은 길이, 수많은 책이 존재한다. 책을 쓰거나 만드는 사람들은 종종 ‘죽기 전에, 살아 있는 동안에, 어디에 가면 꼭 해야 하고, 꼭 먹어야 하고, 꼭 느껴야 한다.’면서 강변하기 일쑤지만, 세상에 그런 건 없다. 남들을 따라 해봤자 남는 건, 남처럼 되는 일밖에 없다. 책읽기는 삶과 같다. 누군가 대신 살아줄 수 없는 것처럼 누군가 대신 읽어줄 수도 없다. 우리가 자신의 지성지혜을 강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기 눈으로 보고, 자신의 몸과 정신으로 치열하게 생각하는 것뿐이다. 책읽기는 단지 그 일부를 도울 뿐이다. 인터넷을 열면 온갖 정보가 차고 넘친다. 하지만 그러한 정보도 찾아서 읽고 사유하여 녹여내지 못한다면, 서가에 꽂힌 채 누가 읽어주기를 기다리는 책과 같다. 그것의 물성物性이 책의 형태를 띠든, 다른 무엇이든, 거기에 담긴 ‘정보information’가 ‘나’를 거치게 하여 ‘변환transformation’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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