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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의 탄생
원시 시대의 평준화
불평등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었는가? 오늘날 세상에서 우리와 가장 가까운 비非인류 친척인 아프리카 유인원 ─ 고릴라, 침팬지, 보노보 ─ 은 강력한 위계질서를 가진 생물이다. 성인 수컷 고릴라는 암컷들의 하렘을 부여받은 소수 지배자와 배우자가 전혀 없는 그 밖의 다수로 분류된다. 실버백silverback: 등에 은백색 털이 난 나이 많은 수컷 고릴라 ─ 옮긴이은 집단에서 암컷은 물론이고 장성한 후에도 계속 남아 있는 모든 수컷을 지배한다. 특히 침팬지는 ─ 비단 수컷들만 그런 것은 아니지만 ─ 지위 경쟁에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한다. 괴롭힘과 공격적 우위의 과시는 서열상 하위에 위치한 녀석들의 갖가지 굴복 행위와 부합한다. 각 구성원은 위계서열에서 특정한 지위를 차지하지만 언제라도 그것을 개선할 방도를 모색하기 때문에 50~100마리의 집단에서 순위는 가장 중요하면서도 스트레스를 주는 현실이다. 그리고 여기에 탈출구는 없다. 고압적인 지배자를 피하고자 자기 집단을 이탈하는 수컷은 다른 집단의 수컷에게 제거당할 위험을 감수해야 하므로 그 자리에 남아 경쟁하든가 복종하든가 선택해야 한다. 인류의 위계 생명을 설명할 때 언급하곤 하는 사회적 제한 현상을 상기시키는 이런 강력한 제약은 불평등 강화에 기여한다.
침팬지의 가장 가까운 친척인 보노보는 한층 온화한 이미지로 세상에 비춰지지만, 마찬가지로 일인자 수컷과 암컷을 특징으로 한다. 그들은 침팬지보다는 훨씬 덜 폭력적이고 괴롭히려는 의향도 적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확한 위계 서열을 유지한다. 감춰진 배란기 및 수컷에 의한 체계적 암컷 지배의 결여가 짝짓기 기회를 놓고 벌이는 과격한 충돌을 줄이긴 하지만, 위계는 수컷들 사이의 먹이 경쟁에서 드러난다. 이 종 전체에 걸쳐 불평등이란 먹이 자원에 대한 불균등한 접근 기회 ─ 인간 방식의 소득 격차에 가장 가까운 근사치 ─ 와 무엇보다도 번식의 성공이라는 관점에서 표현된다. 가장 크고 가장 강하고 가장 공격적인 수컷이러한 수컷이 가장 많은 것을 소비하고 대부분의 암컷과 성적 관계를 갖는다이 최고 자리에 오르는 지배 위계가 표준적 패턴이다.
이런 공통된 특성은 이들 세 종이 조상의 혈통에서부터 갈라져 나온 이후에야 진화되었을 것 같지 않다. 이는 고릴라의 등장과 함께 1100만 년 전에 시작되었고,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및 궁극적으로는 인간으로 진화한 가장 초기의 선대들로부터 침팬지와 보노보의 공통된 조상이 분리되는 300만 년 후까지 계속 이어진 과정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불평등이 사회적으로 뚜렷하게 표출된 것은 영장류 사이에서 항상 보편적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위계란 집단생활의 작용이고, 일찍이 갈라져 나온 좀더 먼 우리의 영장류 친척은 오늘날 덜 사회적이어서 혼자 살든가 아니면 매우 작거나 일시적인 집단 내에서 살아간다. 이는 그 조상들이 약 2200만 년 전 유인원으로부터 갈라진 긴팔원숭이와 대략 1700만 년 전 유인원 중 최초로 종 분화를 겪고 현재 아시아에서만 서식하는 오랑우탄 둘 모두에도 역시 해당한다. 반대로 위계적 집단성은 분류학상 우리 인간을 포함한 이 과科의 아프리카 속屬에서는 전형적이다. 이는 고릴라, 침팬지, 보노보 및 인간 가장 최근의 공통 조상은 이미 이런 특성의 어떤 버전을 선보인 반면, 좀더 오래전의 선대는 그럴 필요가 없었음을 시사한다.
다른 영장류 종과의 유사성은 초기 호미닌hominin 및 인간의 불평등에 대한 형편없는 안내서일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가진 최고의 대체 증거는 한 성性의 성숙한 구성원 ─ 이 경우 남성 ─ 이 다른 성보다 더 키가 크고 더 무겁고 더 힘이 센 정도를 이르는 성별 크기 이형sexual size dimorphism에 관한 골격 데이터다. 바다사자가 그렇듯 고릴라의 경우 수컷과 암컷 사이는 물론 하렘을 가진 수컷과 그렇지 않은 수컷 사이의 극심한 불평등은 수컷에 고도로 편향된 크기 이형과 관련이 있다. 화석 기록으로 판단해보건대, 인류 이전의 호미닌 ─ 400만 년 이상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파란트로푸스Paranthropus ─ 은 인간보다 더욱 이형적이었던 것 같다. 만일 최근 점점 더 압력을 받고 있는 정통적 입장을 옹호해도 좋다면, 최초 종들의 일부로서 300만~400만 년 전에 등장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Australopithecus afarensis와 아나멘시스anamensis는 남성이 체질량지수에서 50퍼센트 넘게 강점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반면, 이후 종들은 그들과 인간 사이의 중간에 위치했다. 200만 년도 전에 더 커다란 뇌를 가진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가 출현할 무렵, 성별 크기 이형은 이미 우리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목격할 수 있는 비교적 경미한 수준까지 떨어진 뒤였다. 이형의 정도가 암컷을 향한 수컷 대 수컷의 무리한 경쟁 관행과 상관관계가 있거나 암컷의 성적 선택으로 형성되는 한 성별 차이의 감소는 수컷 사이에서 생식의 다양성이 줄어들었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이런 해석으로 보자면 진화는 수컷 사이에서도, 이성 사이에서도 불평등을 약화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컷보다는 수컷에게서 더 높게 나타나는 번식 불평등 비율은 미미한 수준의 일부다처제 번식과 함께 끈질기게 이어져왔다.
200만 년 전에 시작되었을 다른 발전 역시 평등의 확대를 조성해온 것으로 여겨진다. 협동 교배와 사육을 촉진한 뇌 및 생리학적 변화가 지배자들의 공격에 맞서도록 했을 테고, 더 큰 집단의 위계를 약화시켰을 것이다. 폭력을 적용하는 것과 관련한 혁신이 이 과정에 기여했을 수도 있다. 하층민으로 하여금 지배 계급에 저항하도록 한 모든 게 후자의 힘을 축소함으로써 전반적 불평등을 감소시켰을 것이다. 하층민의 연대 구축은 이런 목적을 위한 한 가지 수단이었고, 발사 무기의 사용은 또 다른 수단이었다. 두 손과 이빨이든, 막대기와 돌이든 근거리 싸움은 더 강하고 더 공격적인 인간을 선호했다. 무기를 더 먼 거리에 배치할 수 있게 된 이후, 무기는 평준화 역할을 맡기 시작했다.
약 200만 넌 전 어깨의 해부학적 변화는 최초로 돌과 그 밖의 다른 물건을 효과적인 방식으로 던지는 것을 가능케 했다. 그 이전의 종들과 오늘날의 비인간 영장류에게는 없는 기술이다. 이런 적응은 사냥 능력을 향상시켰을 뿐만 아니라 2인자들이 일인자에게 도전하는 것을 더욱 용이하게 만들었다. 창을 만드는 것이 그다음 단계였고, 창끝을 불로 강화하고 이어서 돌촉 같은 개선이 뒤따랐다. 불의 세심한 사용은 아마도 80만 년 전, 열처리 기술은 적어도 16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것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약 7만 년 전의 것으로 처음 입증된 활이나 돌화살촉의 등장은 지체된 발사 무기의 발전 과정에서 마지막 단계에 불과했다. 현대의 관찰자들에게 아무리 원시적으로 보일지라도 이런 도구는 크기·힘·공격성보다 기술에 특권을 부여했고, 약한 개인들에게 협동은 물론 최초의 습격과 매복을 가능케 해줬다. 인지 능력의 진화는 더욱 정확한 던지기, 무기 설계 개선 및 좀더 신뢰할 만한 협력 구축에 필요한 필수적 보완 요소였다. 한층 정교한 동맹을 가능케 하고 도덕 개념을 강화했을 완벽한 언어 능력은 적게는 10만 년 전, 많게는 30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것이다. 이런 사회적 변화의 연대기에서 많은 부분은 여전히 불확실하다. 이는 대부분 지난 200만 년 동안 전개되어왔을 수도 있고, 아니면 최소 2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해부학적 현대 인류이자 우리와 같은 종인 호모 사피엔스 사이에 더욱 집중되었을 수도 있다.
현재의 맥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누적된 성과로서, 낮은 지위의 개인들 사이에서 비인간 영장류라면 감행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일인자 수컷에 맞설 능력이 향상됐다는 점이다. 구성원들이 발사 무기로 무장하고 연합을 형성해 일인자의 영향력에 팽팽히 맞설 수 있는 집단에서 무력과 협박을 통한 공공연한 지배는 더 이상 실행 가능한 선택 사항이 아니었다. 만일 이 추측이 옳다면 ─ 이러한 추측만이 가능하므로 ─ 폭력은, 아니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과격한 활동을 조직하고 위협하는 새로운 전략은 인류 역사상 최초의 커다란 평준화에서 중요하고 어쩌면 필수적이기까지한 역할을 했다. 그때까지 인류의 생물학적·사회적 진화는 평등주의적 균형 상태를 가져왔다. 집단은 아직 충분히 크지 않았고, 생산력은 아직 제대로 분화하지 않았으며, 집단 간 갈등과 세력권은 아직 소수에게 굴복하기엔 충분히 발달하지 않아 다수로서는 가장 나쁘지 않은 선택지로 보였다. 동물적 지배와 위계 형태는 무너졌지만 아직 가축 사육, 재산 및 전쟁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유형의 불평등으로 대체되지는 않았다. 그 세계가 대부분 사라졌으나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던 것이다. 낮은 자원 불평등 수준과 강항 평등주의 정신으로 정의되는, 비록 많은 수는 아니어도 오늘날 세상에 남아 있는 수렵·채집 인구는 구석기 시대 중기와 후기에 평등의 역학이 어땠을지 감을 잡을 수 있게끔 해준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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