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야반도주
달빛도 없는 캄캄한 밤. 드문드문 놓인 가로등 아래로 그림자 하나가 미끄러져 들어온다. 도쿄의 북쪽에 위치한 외곽 동네는 열차들이 지나가며 내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차디찬 공기 속에 잠들어 있다. 주변 고층 빌딩들에 파묻혀 잘 보이지 않는 동네지만 낮은 집, 인적 드문 길, 커버 덮인 자동차, 어지럽게 세워진 자전거들로 가득하다. 스스로 증발하여 숨어서 지내기에 이상적인 장소다. 어느 골목길 모퉁이에나 있는 평범하기 그지 없는 건물이다. 흰색 콘크리트 건물 앞에 ‘무엇이든 처리해 드립니다’라고 적힌 간판이 달려 있다. 1층 보관창고 앞에는 세워진 세 대의 소형 트럭 주변으로 남자들이 분주하게 물건들을 내려놓고 있다. 작지만 다부진 남자 한 명이 희미한 빛을 받으며 걸어온다. “사장님은 곧 오실 겁니다.” 남자는 자리를 떴다가 30분쯤 지나서 다시 모습을 드러내더니 우리에게 계단 위 사무실을 가리킨다. 각종 서류와 낡은 컴퓨터, 타자기, 무선기 등 온갖 잡동사니가 모여있다. 서류 더미에 파묻혀 보이지 않던 사장이 불쑥 자리에서 일어난다. 마른 체격의 남자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공손히 고개를 숙여 인사한다. “쿠니 가즈후미라고 합니다.” 사장은 접이식 의자를 가리킨다. 그리고 잠시 우리 통역과 알아들을 수 없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이어서 그는 선반 위에서 봉투 하나를 집어들더니 누렇게 바랜 종이들을 한 장 한 장 조심스럽게 꺼내놓는다. 각종 서류와 편지, 그리고 신분증이다. 1943년생 가즈후미, 사장 본인의 신분증이다. 사진 속에는 야심만만한 눈빛을 가진 젊은 시절의 그가 있다. 각종 서류에는 실종된 그의 인상착의가 묘사되어 있다. 현재 그는 누렇고 쭈글쭈글한 얼굴에 이름도 바꾼 상태다. 과거와 완전히 단절한 것이다.
어느 날 가즈후미는 훌쩍 집을 나와 그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다른 수천 명의 일본인들처럼 그도 스스로 증발해 숨어 사는 삶을 선택했다. 하지만 이제 세상이 자신의 것이라고 확신하며 살아가고 있다. 현재 66세인 그는 한창 잘 나갔던 과거 이야기를 들려준다. 명문 대학을 졸업하고 자산관리 업무를 했다고 한다. “톱셀러맨금융상품을 최고로 잘 파는 직원이었죠!” 가즈후미가 영어를 써가며 말했다. 단정한 용모에 미래가 창창했던 젊은 시절의 그는 계속 높은 실적을 올리는 능력 있는 금융맨이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어느 날 그는 잘못된 곳에 투자를 했다가 4억 엔을 고스란히 날렸다. 고객들의 비난이 이어졌고 상사들은 투자 손실의 책임을 물었다. 그는 막다른 벼랑 끝에 몰린 기분이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뭔가가 솟구쳐올라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그것은 용기가 아니라 깊은 수치심이었다. 1970년 어느 날 아침, 그는 아무런 말도 없이 무작정 열차를 타고 그대로 사라졌다. 그야말로 ‘증발’이다.
처음에 그는 도쿄의 어느 서민 동네에 사는 대학 동창 집에 숨어 지냈다. 몇 주 동안 두 사람은 완전히 서로 모르는 사이처럼 살았다. 가즈후미는 점점 말을 하지 않았고 어느 날 또 다시 증발했다. 방황하던 그는, 어두운 곳이라면 어느 곳에나 있는 불법 고용주가 판치는 동네로 흘러들어가 일당 8000엔 정도의 밑바닥 일을 시작했다. 먹고살려면 그 길 밖에 없었다. 벽돌 나르는 일, 운전, 잠수부, 카바레 웨이터 등 닥치는 대로 일했다. 그렇게 그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단단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방랑자의 삶, 과거가 지워진 채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새로운 삶은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도망친 것이니까요. 그게 다죠. 도망치는 게 떳떳한 일은 아니죠. 돈도, 사회적 위치도 없어지거든요. 오직 살아남는 것이 중요해집니다.”
하지만 가족들은 여전히 그를 잊지 않고 있다. 그는 고향에서 아버지가 자신을 찾는 전단지를 뿌리고 사립탐정에게 조사를 의뢰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빚쟁이들도 그를 찾아다녔고 아버지를 윽박질렀으나 이내 포기했다고 한다. 사라진 사람을 상대로는 소송도 할 수 없다. 그렇게 그는 몇 년 간 방황하다가 위장 명의로 아파트를 빌렸다. 어느 날 신문을 읽다가 무엇이든지 처리해주는 해결사 ‘벤리야便利屋’라는 심부름센터를 알게 되었다.
화초에 물 주기부터 개 산책시키기, 골치 아픈 세입자 쫓아내기까지, 그야말로 각종 서비스를 대신해주는 회사였다. 당시 38세였던 그는 여기서 창업 아이디어를 얻어 ‘무엇이든 처리해 드립니다’라는 간판을 단 회사를 차렸다. 이미 그는 어떤 물건이든 운반할 수 있는 자격증을 갖고 있었다. 그가 처음 맡은 서비스는 로드킬 당한 개의 사체를 치우는 일이었다. 부패로 악취가 진동하고 벌레가 파먹고 있는 개 사체. 사람들은 그 끔찍한 사체를 보지 않으려고 일부러 멀찌감치 떨어져 지나갔다. 가즈후미도 역겹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애써 누르고 개 사체를 치우는 더러운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먹고사는 일이 무엇보다 급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때부터 더 이상 그 무엇 앞에서도 물러나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다음에 맡은 일은 위험한 산업 폐기물과 전기폐기물을 치우는 일이었다. 이후 물에 빠진 시신, 토막 살해당한 시체를 처리하는 등 어두운 사업을 계속했다.
한편 그는 또 다른 어둡고 은밀한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야반도주하려는 사람들을 돕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그도 잠재 고객들의 배경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고객마다 스스로 증발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물론 광고를 한 적도 없었다. 고객들이 알음알음 입소문을 듣고 찾아왔거나 ‘무엇이든 처리해 드립니다’ 간판에 자석처럼 이끌려온 것이다. 전화로 사람들이 ‘이사’라는 말을 꺼내면 가즈후미는 그 뜻을 알아챘다. 하지만 야반도주를 도우려면 고객들의 사정을 정확히 알아야 했기에 이것저것 자세히 물어보았다. “사람들이 증발하는 길을 택한 이유는 복잡합니다. 하지만 ‘수상해 보이는 사람들과는 거래하지 않는다’가 나름의 원칙입니다. 경찰이었던 아버지로부터 선을 넘지 말라는 가르침을 받았거든요.”
요즘 가즈후미 사장은 의뢰를 받아도 거절하는 일이 많지만 일단 계약을 맺으면 모든 일이 일사불란하게 이루어진다. 어두컴컴한 새벽에 수상한 이삿짐센터 직원들이 검은색 담요와 커튼을 들고 나타난다. 재빨리 창문을 가리고 가구 포장이 이루어진다. 대부분의 고객들은 처음에는 ‘가져갈 것이 별로 없다’고 하지만 막상 닥치면 가전제품까지 모두 가져가고 싶다며 마음을 바꾼다.
가즈후미와 직원들은 가능한 은밀하게, 그리고 재빨리 작업을 한다. 가즈후미 사장은 야반도주하기 전날 여성과 아이들에게는 어딘가에 숨어 있으라고 말한다. 야반도주하는 날이 되면 남자들만 짐 옮기는 작업을 지켜본다. 회사 전체가 야반도주하는 일도 있다. 이때는 가즈후미와 직원들이 더욱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작업해야 한다. 직원들은 구두 대신 운동화를 신고 혹시 소형 마이크 같은 것이 숨겨져 있지는 않은지 샅샅이 살펴본다. 그리고 흔적을 지우기 위해 가짜 주소를 포함해 혼선을 주는 증거들을 일부러 뿌린다. 일본 경제가 큰 위기를 맞던 1990년대, 극도의 불안 증세를 보이던 고객들은 칼과 몽둥이를 준비하기도 했다. “야반도주하는 날은 긴장이 철철 넘치죠. 혹여 빚쟁이들이 들이닥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고객들은 극도로 예민해집니다. 주먹다짐과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때 한 남자가 사무실로 들어와 가즈후미 사장에게 귓속말을 한다. 사무실 벽마다 집의 도면,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휘갈긴 스케치, 손으로 그린 약도 등이 가득하다. “저는 특별히 사람들을 도쿄 내에서 이사시켜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고국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자발적으로 증발한 사람들을 찾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증발한 사람을 찾느니 그냥 스스로 증발해버리는 편이 더 쉽죠.” 가즈후미는 고객의 이름을 아무에게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 사람들 모두 제 기억 속에서 지워버렸습니다.” 가즈후미가 한숨을 푹 쉬며 쭈글쭈글한 손으로 커다랗고 누런 봉투를 조심스럽게 닫는다. 그런데 반쯤 열린 문틈으로 그가 중얼거리듯이 말을 내뱉는다.
“후지산 온천 쪽으로 가보십시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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