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강인호가 자신의 승용차에 간단한 이삿짐을 싣고 서울을 출발할 무렵 무진시霧盡市에는 해무海霧가 밀려들기 시작했다. 거대한 흰 짐승이 바다로부터 솟아올라 축축하고 미세한 털로 뒤덮인 발을 성큼성큼 내딛듯 안개는 그렇게 육지로 진군해왔다. 안개의 품에 빨려들어간 사물들은 이미 패색을 감지한 병사들처럼 미세한 수증기 알갱이에 윤곽을 내어주며 스스로를 흐리멍덩하게 만들어버렸다. 바닷가 절벽 위에 선 사층짜리 석조 건물 자애慈愛학원도 그렇게 안개 속으로 빨려들어가기 시작했다. 일층 식당에서 뻗어나와 반짝이는 노란 불빛이 마요네즈 빛깔로 희미해질 때쯤 어디선가 종소리가 들려왔다.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그러니, 아마도 아침 예배를 알리는 교회의 종소리였을 것이다. 종소리는 멀리까지 퍼져나갔다. 안개를 통과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소리뿐이니까.
2
한 소년이 철길을 걷고 있었다. 안개는 아직 육지를 완전히 점령하지는 못했지만 가느다란 그물을 펼치듯이 서서히 사물들을 지워가고 있었다. 철길 가에는 때 이르게 피어난 코스모스 무리가 창백하고 불안하게 그 안개의 그물에 덮인 채 몸을 떨고 있었다.
소년은 열두살이었다. 그러나 또래의 다른 아이들과 세워놓는다면 터무니없을 정도로 작은 키였고 앙상하게 말라 있었다. 소년의 연한 하늘색 줄무늬 티셔츠는 이미 안개의 습기로 젖어가고 있었다.
소년은 철길을 따라 걸었다. 몸 어딘가가 불편한 듯 소년은 다리를 절룩였는데 시간이 조금 흐르자 바다 쪽에서부터 스며들기 시작한 안개 때문에 그 표정은 지워져 거의 보이지 않게 되었다. 소년은 그렇게 안개 속으로 휩싸여들어갔다. 소년의 발길이 닿는 철길로 규칙적이고 작은 진동들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소년은 그것을 느꼈다.
3
무진시 한복판에 있는 영광제일교회의 주일예배는 오전 열시에 시작되었다. 교회 안뜰은 이미 안개로 가득 차 있었다. 늑장을 부리다가 뒤늦게 교회에 도착한 이들의 자동차가 주차장에서 가벼운 접촉사고를 일으키며 내는 작은 파찰음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하이빔을 켜도 소용없었다. 안개는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어둠이 한번도 빛을 이긴 적이 없다,는 성경 말씀이 봉독되는 중에도 안개는 발광한 헤드라이트 빛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주차장에서 잡무를 보는 경비원이 실수로 땅에 떨어뜨린 열쇠 꾸러미를 찾느라 허리를 굽힌 채 애를 먹고 있었다. 겨우 열쇠를 집어든 그는 안개 속에서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안개…… 지독하군.”
그의 말소리는 파이프오르간에 맞추어 부르는 성가대의 노랫소리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4
철로는 덜컹거리기 시작했다. 소년은 뒤돌아보았다. 크게 휘어진 선로를 돌아 기차가 오고 있었다. 소년은 달려오는 기차를 향해 힘껏 두 팔을 벌렸다. 얼핏 그의 얼굴에 미소인지 가벼운 찡그림인지가 번졌다. 그리고 그것은 곧 울부짖음으로 바뀌었다. 소리는 모음과 자음을 감지할 수 없이 기괴했다. 기적이 울었다. 소년의 몸은 기차에 부딪혀 팝콘처럼 가벼이 튕겨나갔고 붉은 피가 천천히 젖은 땅으로 흘러내렸다. 안개는 그 붉은빛을 덮었다. 그렇게 기차가 지나가고 주위는 아주 고요했다. 깊은 물속 같았다. 소년의 눈꺼풀이 마지막으로 파르르 떨리고 이어 안개가 점령한 유백색 허공에 고정되었다.
5
강인호가 휴게소에 도착해서 차를 세울 무렵 휴대폰이 울렸다. 아내였다. 집을 출발한 지 아직 한시간도 지나지 않은 때였다. 무진으로 그를 보낸 것도, 자신과 아이는 서울에 그대로 남고 그 혼자 무진으로 가라고 결정한 것도 아내였지만 아내의 목소리는 서운함에 젖어 있었다.
“운전 중이야?”
“아니야, 잠깐 차 세웠어. 휴게소야.”
딱히 할 말이 있어서 전화를 건 것 같지는 않았다. 아내는 막상 그가 작은 이삿짐을 싣고 떠나자 새삼 그 빈자리를 확인한 것 같았다. 그는 잠시 아내가 딱하게 생각되었고 이렇게 떠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가 서글퍼졌다.
“당신 또 담배 피우고 있어? 이제 내가 없으니 잔소리할 사람도 없겠네.”
“……너무 걱정하지 마. 봐서 내년 봄쯤 새미하고 무진으로 내려와. 여기서 유치원 입학시키면 되잖아.”
아내가 웃는 소리가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다.
“그래, 정식 교사 발령받으면 말이야.”
그는 기간제 교사로 임시 발령을 받아 무진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것 또한 아내가 힘써주지 않았다면 어림없는 일이긴 했다. 우연히 만난 아내의 여고 동창이 마침 무진에 있는 자애학원의 일가였고 붙임성 좋은 아내가 친구에게 남편의 일을 부탁한 모양이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잠시 교직에 몸담았으나 곧 친구와 함께 작은 의류업을 시작했다. 지난해 지구촌을 뒤덮은 불경기의 여파만 아니었다면 그는 오늘 같은 일요일에 중국 현지 공장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교직을 다시 떠올린 것은 아내였다. 육개월을 실업자로 지낸 뒤였고 어떻게든 살아야 했다. 다행히 사업이 완전히 망가지기 전에 공장 문을 닫긴 했다. 서울 외곽에 있는 아파트를 날리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었다. 그러나 붓던 적금은 이미 해약한 지 오래였고 보험들마저 깨진 상태였다.
“교사? 특수학교 교사라구? 게다가 청각장애아들이라……”
아내가 동창을 만나고 와서 처음 이야기를 꺼냈을 때 그는 어리둥절했다.
“난 대학 졸업 후 받은 일반 교사 자격증뿐이야. 그게 언제 얘긴데 내가 가르칠 수 있겠어?”
아내는 전리품을 가져온 사람처럼 그를 보며 웃었다.
“당신 그렇게 고지식하니까……”
그러니까 사업을 망해먹지, 하는 뒷말을 아내는 우물거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무렵 몹시 의기소침해진 그를 의식한 듯 아내는 애써 부드러운 투로 다시 말했다.
“사립학교잖아. 이사장 집안하고 연줄만 있으면 그건 괜찮대. 다들 그렇게 취직을 하고 야간대학원에 다니면서 특수교육을 잠깐 전공하면 된대. 전혀 문제가 안된다고 했다니까. 보수도 좋고 근무시간도 널널하고, 이보다 더 좋은 직장 없을 거라나. 어쨌든 열심히 해서 정식 교사 발령을 받아요. 그러고 나면 또 어떻게 서울로 자리를 옮겨볼 수도 있는 거잖아.”
마지막 말을 마치고 아내는 그를 향해 빙긋이 웃었다.
6
강인호의 차는 다시 남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로 말하자면 서울에서 태어나 반도의 중심을 벗어나본 일이 별로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반도 남쪽 지방의 삶에 대해 전혀 짐작 가는 바가 없었다. 억양이 강한 말씨를 쓰는 사람들이 간이 강한 음식을 먹고 있다는 것 외에 남쪽의 도시들은 그에게는 그저 낮선 한 지명일 뿐이었다. 그러나 무진은 좀 달랐다.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그에게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의 그림자를 데려왔다. 아내가 무진,이라는 도시의 지명을 꺼냈을 때부터 기억은 안개의 바다에서 항구로 다가와 윤곽을 드러낸 배처럼 그에게로 미끄러져들어왔다.
“『무진기행』 말이에요…… 나는 선생님이 처음 부임해서 그 소설을 소개해주었을 때 꼭 오늘이 올 줄 알았어요.”
난데없이 부대로 면회를 와서 자고 가겠다고 우기던 명희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곤 이불 속에서 망설이는 그의 몸을 끌어당겼다. 그의 얼굴에 제 얼굴을 가까이 대고 그녀가 물었다.
“하인숙이라는 여자 말이에요. 주인공이 약속을 어기고 떠난 후 무진에 홀로 남아 어떻게 되었을 것 같아요?
명희의 몸에서는 희미한 복숭아 냄새가 났다. 그녀는 그가 대학 졸업 후 영장이 늦어지는 바람에 잠시 근무한 여학교의 제자였다. 그리고 부대 앞으로 찾아온 그녀는 갓 스물의 나이를 숨기지 못하고 서투른 화장을 하고 있었다.
“두려워하지 말아요, 나 처음…… 아니에요.”
오히려 떨고 있는 것은 그였다. 주저하는 그의 손을 끌어다 자신의 벗은 가슴에 대며 명희는 까르르 웃었던 것 같다. 거기에는 이미 많은 것을 포기한 어린아이의 서늘한 기운 같은 것이 서려 있었지만 그가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 그래서 명희를 보내고 부대 근처의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낮술을 퍼먹고 다시 귀대했을 때 그는 날파리처럼 달려드는 간지러운 죄책감들을 떼어낼 수 있었다. 그렇게 가끔씩 찾아오는 명희와 나눈 살의에 가까운 정사가 아니었다면 그는 아마도 누군가에게 총부리를 겨누었을 것이 틀림없었다. 설사 그 누군가가 자기 자신이었을지라도 말이다.
제대할 무렵, 명희의 소식은 끊겼다. 그가 서울로 돌아왔을 때, 그는 그녀가 몇 달 전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 그의 머릿속으로 그녀의 말이 떠올랐다.
“하인숙이라는 여자 말이에요, 주인공이 약속을 어기고 떠난 후 무진에 홀로 남아 어떻게 되었을 것 같아요?”
7
강인호는 무진이라는 이정표를 보고 갈림길에서 핸들을 꺾었다. 고개를 넘으면 무진시였다. 그런데 그가 고개 정상에서 발견한 것은 흰 덩어리같이 고여 있는 거대한 구름의 바다, 무진을 뒤덮은 안개였다. 그것은 희고 고운 해조류 덩어리처럼 보였다. 그의 차는 흰 안개의 터널로 들어섰다. 백발 마녀의 머리카락같이 가느다란 안개의 결이 촘촘히 그의 차를 감싸기 시작했다. 왜였을까, 그는 오래전 여름 낚시터에서 물에 빠져 죽을 뻔한 기억을 떠올렸다. 떠내려간 낚싯대를 건지려고 저수지에 뛰어들었을 때 그의 맨다리에 감겨오던 수초의, 미끈거리고 동시에 끈적거리던 감촉을, 그때 그는 수영하기를 포기하고 함께 낚시하던 친구에게 도움을 청했다. 엉겨드는 물풀의 감촉은 그에게서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듯했다. 온몸에서 기운이 쭉 빠져나갔다. 수영에 익숙했지만 소용없었다. 안개를 보며 문득 떠올린 기억 때문에 그는 불길했다. 어쨌든 조심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끝장날지도 모른다는 터무니없는 공포에 잠시 뒷덜미도 뻣뻣해졌다. 그는 마른침을 삼키며 비상등을 켰다. 비상등이 점멸하는 소리가 째깍거렸다. 차에 켜둔 내비게이션이 안개 속에서 그에게 명령했다.
“전방에 안개 주의 지역입니다. 일 킬로미터 앞에서 우회전하십시오.”
그는 우회전을 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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