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
유럽이란 무엇인가?
이 책의 결론에서 더 폭넓게 논의하겠지만, 21세기 초에 유럽인들과 비유럽인들 할 것 없이 해묵은 주제, 즉 ‘유럽이란 무엇인가?’(또는 좀 더 일반적으로 ‘유럽인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라는 복잡한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게 되었다. 그런 관심이 어느 정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통합이 진전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었는데, 이는 동시에 근대 민족국가들의 발흥과 연관된 민족주의적 열정에 대해 불신감이 증폭되었다는 사실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또 그런 관심이 부각된 것은 유럽의 통일성이 점증해 나감에 따라 제기된 딜레마 때문이기도 하다.
냉전이 점점 더 아련한 기억으로 희미해짐에 따라 유럽인은 자신들이 미국, 그러니까 20세기에 유럽사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으나 유럽과는 여러모로 다른 유럽식 원리들에 입각하여 유럽인에 의해 건설된 나라인 미국의 시민들과 어떻게 구별될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이 질문은 처음 제기된 건 아니었지만 예전보다는 더 직설적이고도 더 실천적인 함의를 띠고 있었다.
미국 시민들은 오래전부터 자기 나라를, 세계를 위한 하나의 모델로 여겨 왔다. 이런 견해를 진지하게 받아들인 사람들도 얼마간 있었으나, 대다수 나머지 세계는 이런 생각을 자만심에 빠져 있는 안이한 견해라고 치부했다. 그럼에도 특히 조지 W. 부시가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시기에 미국 모델(또는 미국에서 흔히 ‘미국 예외주의’라고 지칭된 것)은 예전에는 미국에 동정적인 유럽인들마저 불편하게 만들었다. ‘유럽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하나의 편리하고도 간결한 답변은, 유럽은 ‘미국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아메리카인들’[Americans]은 이 책에서 ‘미합중국 시민들’이라는 뜻으로 사용될 텐데, 이런 용법은 단순 명쾌할 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널리 통용되기도 한다. 물론 충분히 이해할 수 있듯이, 그런 용법이 일부 라틴 아메리카인들을 짜증나게 만들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정체성은 종종 그가 누구인가보다는 누구가 아닌가라는 견지에서 더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미국 모델에 대한 부정적 반응은 그 뉘앙스나 강도와는 무관하게 의미심장해 보이는데, 이는 유럽인이 가령 일본인이나 중국인, 또는 아프리카인과 어떻게 다른지 애써 장황하게 진술할 필요가 없는 것과 대조를 이룬다. 물론 그럴 필요가 없는 까닭은 유럽인과 일본인, 중국인, 아프리카인을 구분해 주는 차이가 너무도 명백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과거 수백 년에 걸쳐 ‘아시아가 아니다’라는 것도 그와 똑같이 간결하고 만족스러운 대답이었을 것이다(‘아시아’와 ‘오리엔트’는 그 무렵 유럽의 동쪽이나 남동쪽을 모호하게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러나 냉전 이후에 유럽인들은 자신들을 미국인과 구별해 주는 것이 무엇인지를 조사하고 강조하고 싶은 욕구를 새삼스레 느꼈는데, 실은 과거에도 그런 욕구는 있었다.
‘기독교 공화국’
현재 통용되는 단어로서 유럽은, 고대로 거슬러 올라갈 뿐 아니라 미묘하고 복잡한 상징주의를 내포하는, 장구한 역사를 자부하는 말이다. 중세 초기부터 17세기까지는 ‘기독교 공화국’Christendom이 일반적으로 쓰이던 표현이었으나, 18세기를 지나오면서 ‘유럽’이 점점 ‘기독교 공화국’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낡은 용어는 몇 가지 점에서 불만족스러운 말로 여겨졌는데,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일부 영향력 있는 엘리트들이 17세기의 파국적인 종교전쟁들에 대해 역겨움을 느꼈다는 사실이다. 그런 역겨운 감정은 기독교 이전 그리스·로마 문명이 보여 준 관용적이고도 세련된 가치들을 점점 더 경외하는 마음과 한데 뒤섞였다. 이 지식인 엘리트들은 어떤 특질이 가장 유럽적인 것인가를 두고는 견해가 서로 달랐으나, 그럼에도 18세기 무렵에 이르면 공히 기독교 신앙을 넘어 확장된 공통의 정체성을 점점 더 강하게 느꼈다.
그런 공통의 정체성 중에서 가장 중요한 양상은, 비유럽 문명들은 누리지 못한 ‘자유들’liberties을 유럽인들이 누렸다는 감각이다. 이와 연관된 것으로, 유럽인들은 지배 엘리트가 부과한 단일한 언어나 문화를 강요받지 않고 (비록 프랑스어와 프랑스 문화가 그런 쪽으로 근접하기는 했지만) 자기 나라 안에서 여러 문화와 언어의 풍부한 다양성과 그것들 사이의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상호작용을 만끽했다는 사실에 점점 더 큰 자부심을 느껴 왔다. 심지어 ‘기독교도’Christian라는 용어도 유럽의 지식인 엘리트들 사이에서 평판이 좋지 않았음에도 그 이전 천 년 동안의 유럽 문명이 누가 봐도 기독교적이었다는 점에서, 이제 막 출현하는 유럽적 가치들에 대한 공유된 감각들 중 한 요소를 이루며 여전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다. 기실, 압도적 다수의 유럽인들이 20세기까지 열렬하게 또는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기독교도로 남아 있었다. 심지어 기독교적 가치에 환멸을 표한 유럽인들조차도 기독교적인 주제와 영감을 다룬 과거의 미술과 음악에 일체감을 느껴 왔던 것이다.
이처럼 나머지 세계와 비교하는 가운데 감지된 유럽 문화의 공통성이라는 감각은, 19세기 초에 유럽인들을 한데 묶어 주는 미묘하지만 중요한 힘이었다. 여기서도 다시 간결하게 답변하기에 가장 쉬운 질문이 바로 ‘유럽적이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각별히 시사적인 사례 하나 들자면, 터키인들은 유럽인으로 간주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실 그들의 제국은 유럽 대륙의 일부로까지 팽창했고, 여러 해 동안 유럽인들이 그들의 지배에 종속되었다. 터키인들의 수도 이스탄불은 바르샤바만큼 로마와 가깝다. 게다가 터키인들의 수도는 한때 로마에 필적한 기독교 세계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이었다. 터키의 사례는 터키의 배후지인 소아시아의 민족들이 신체적으로(또는 ‘인종적으로’) 유럽인들과 닮았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심장하다.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아나톨리아반도(소아시아의 또 다른 명칭)가 유럽 쪽으로 튀어나와 있고 유럽의 바다들(남쪽으로는 지중해와 북쪽으로는 흑해)에 둘러싸여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터키인들은 소아시아(물론 이 명칭 자체가 유럽과의 차이점을 드러낸다)에서 ‘동양적’Oriental 전제주의 아래에서 살아왔다는 이유로, 그리고 유럽적인 의미의 자유들을 누려오지 못했다는 이유로 유럽인으로 간주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자유의 결핍이 유일한 쟁점은 아니었다. 러시아인도 전제주의 아래에서 살았으나, 18세기 무렵에 터키인보다 더 유럽인으로 간주할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었기 때문이다. 자유의 결핍보다 더 결정적인 쟁점은, 터키인들이 이슬람교도였고 기독교 공화국의 초기 근대 대부분의 기간 동안 유럽인들의 적수였다는 사실이다. 근대 초기에 터키-이슬람의 군사적 위협에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터키를 방어하는 문제가 유럽의 공동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전체로서 유럽의 일체감이 형성되는 데 기여했다. 이는 19세기에 합스부르크 제국과 러시아 제국이 발칸 민족들에 대한 터키의 장악력을 조금씩 잠식해 나감에 따라 터키 제국이 지속적으로 약화된 것이 점점 강해진 유럽인들의 우월감에 핵심 요소가 된 것과 마찬가지 과정이었다.
결국 터키인의 기원은, 선사시대의 민족 이동으로 보건대 유럽인 절대 다수의 기원과 다르다는 믿음이 공유되고 있다. 그리고 이는 터키어의 성격으로 증명된다는 식이다. 유럽 언어 대부분은 인도-유럽어족(‘아리아’는 당시에 흔히 선호되던 용어였다)에서 유래한 반면, 터키인들은 ‘아시아’의 알타이 어족에 속한 언어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사실조차 오랫동안 누적되어 온, 터키인은 유럽인과 다르다는 감각에서 결정적인 것이라기보다는 그저 하나의 요소에 지나지 않는다. 주목할 만한 사례로서, 그 기원과 언어가 터키인과 마찬가지로 아리아가 아니지만 헝가리인과 핀란드인의 경우처럼 그래도 유럽인으로 간주되는 사람들이 있는 까닭이다.
자연환경과 지리
지리적 특징에 기초하여 유럽을 정의하는 것은 종교나 문화 또는 언어에 기초를 둔 정의보다 공식화하기가 더 쉬었다. 그럼에도 유럽의 ‘자연’ 경계는 막 언급한 아나톨리아반도와 발칸반도가 만나는 남동쪽 경계만 보더라도 곤혹스럽고 논란의 여지가 많은 쟁점들을 안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유럽의 북동쪽 가장자리에서도 러시아인이 과연 온전히 유럽인인가 하는 점도 오랫동안 문제시되어 왔다. 아마도 이 쟁점을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러시아 제국이 이론의 여지없이 유럽이 아닌 지역들로까지 뻗어 나갔기에 제국의 어느 부분이 유럽이고 유럽이 아닌가의 문제가 될 터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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