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나는 감옥에서 나가는 문을 찾아냈다. 그 문은 자유를 향해 열려 있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은 그 문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내가 얼마만큼의 자유를 가질 자격이 있는지 물어보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나란 소년은 덴마크의 그란 카나리아라고 불리는 섬 피뇌에서, 그것도 어지간한 공원만큼이나 큰 정원과 방이 열두 개나 딸린 교회 목사관에서 태어나 부모, 누나, 형, 조부모, 증조모에 개 한 마리까지 있는 대가족 속에서 자라났다. 나를 둘러싼 이런 풍경은 마치 비싸지만 가족을 위해 기꺼이 투자할 만한 것을 광고하는 장면 같을 수도 있겠다.
아무튼 나는 피뇌타운 학교 7학년들 가운데 끝에서 두 번째로 작은 데다 비쩍 말라서 거울로 보면 내가 봐도 참 볼품없다. 하지만 일단 축구장에만 나가면 나이 많고 덩치 큰 선수들도 내가 서퍼처럼 바람을 타고 미끄러지듯이 달려오는 모습을 속절없이 지켜볼 뿐이다. 필살기인 오른발 슛을 날리기라도 하면 다들 머리털이 쭈뼛 서고 만다.
그렇다면 뭐가 불만이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다른 열네살짜리 아이들은 어떤 기분으로 살 것 같으냐고 물을 수도 있다. 이 두 질문에 대답해보겠다.
우선 뭐가 불만이냐는 질문은 어쩌면 당연하다. 나는 불평할 처지가 아니다. 하지만 엄마 아빠가 갑자기 사라져버리고 상황이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복잡해졌을 때 그동안 잊고 있던 사실을 깨달았다. 어둠이 몰려오는 시간에 진정으로 의지할 수 있는 것, 언제까지고 변함없을 만한 것을 아직 모든 것이 밝고 환할 때 미리 찾아두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다른 아이들은 어떤 기분으로 살 것 같으냐는 질문은 대답하기 가장 어렵다. 주위를 둘러보라. 행복해 보이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목사관에 살 때의 나처럼 마세라티 같은 고급차를 가진 아빠와 밍크코트를 휘감은 엄마가 있다 해도, 진정으로 즐거워할 만한 것을 가진 사람은 실제 몇이나 될까 싶다. 그러니 사람을 자유롭게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하는 의문을 품어도 괜찮지 않겠는가?
세상에는 이래라저래라 가르치려 드는 사람들이 득실거리고, 어차피 나도 그런 사람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당신은 비아냥거릴지도 모른다. 어떤 면에서는 그 말이 맞지만 다른 면에서 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아빠가 실종되기 전 피뇌타운 교회에서 하던 설교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예수님이 길이다’라는 말을 들었을 것이다. 아빠는 얼마나 아름답고 편안하게 그 말을 하는지, 그 길이라는 것이 꼭 1분이면 항구에 도착하는 길을 두고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만약 당신이 예배 시간에 우리 엄마가 연주하는 오르간 옆자리에 앉았고, 예배가 끝난 뒤에도 계속 앉아 있다면 엄마는 당신에게 ‘음악이 곧 미래’라고 말할 것이다. 엄마는 당신이 첫 피아노 레슨을 예약하고 일생 동안 모은 연금을 미니 그랜드피아노를 사는 데 쓰려는 사람인 것처럼 대할 것이다.
만약 당신이 예배가 끝나고 커피라도 마시려고 목사관에 들어간다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요나스 삼촌과 마주칠 수도 있다. 요나스 삼촌은 외몽골 곰 사냥에서 잡아온 곰을 박제해서 거실에 진열해놓았으며, 노조원이다. 삼촌은 자신을 계속 나아가게 하는 힘은 바로 스스로를 믿는 것과 노동자 계급을 조직하는 데 일생을 바치겠다는 다짐이라는 이야기를 꽤 장황하게 늘어놓을지도 모른다. 그러고는 목사인 아빠를 약 올리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실로 그렇게 믿기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그들은 인생은 9학년이 끝난 다음에야 시작된다고 대답할 것이다. 피뇌 아이들은 대부분 그때쯤이면 그레노에서 직업훈련학교를 다니거나 고등학교 기숙사로 떠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완전히 다른 방향이지만 빅힐 재활센터의 수용자들에게 일대일로 허심탄회하게 물어볼 수도 있다. 피뇌타운 서쪽은 열여섯살 즈음이면 모조리 마약쟁이가 되는 동네인데, 빅힐 재활센터는 바로 거기에 자리 잡고 있다. 재활센터 사람들은 이제 완전히 약물에서 손을 뗐고 치료에 진심으로 고마워하며 한시라도 빨리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어 하지만, 그래도 헤로인이나 아편만큼 긴 시간 달콤하게 뿅 가게 만드는 것은 없다고 고백할 것이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재활센터 수용자를 포함해 지금까지 언급한 모든 사람들의 말이 다 맞다고.
이런 태도는 틸테 누나한테서 배운 것이다. 틸테 누나의 재능 가운데 하나는 모든 사람이 옳다고 진심으로 믿으면서도, 자신의 말은 자신만이 안다고 확신하는 능력이다.
앞에서 말한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방으로 들어가는 문을 갖고 있다. 그 방에는 예수나 슈베르트의 가곡, 9학년이 끝나고 보는 국가학력평가나 박제 곰, 안정적인 직업, 아니면 따뜻하게 등을 도닥여주는 손길 등이 있다. 물론 끝내주게 멋진 방들이 많다.
하지만 방 안에 있다는 건 어딘가 안에 있는 것이고, 어딘가 안에 있는 한 당신은 죄수인 것이다.
내가 보여주려는 문은 다르다. 그 문은 다른 방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건물 밖으로 나오는 문이다.
그 문을 찾은 것은 내가 아니었다. 나는 그럴 만한 위인이 못 된다. 그 문을 찾은 사람은 바로 틸테 누나였다.
지금으로부터 2년 전, 엄마 아빠가 처음 실종되기 바로 전의 일이다. 나는 열두살, 틸테 누나는 열네살이었다. 그때 일이 어제처럼 생생하게 기억나지만 당시에는 틸테 누나가 그 문을 찾은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당시 우리는 증조할머니와 함께 지내고 있었는데, 그날 할머니는 버터밀크수프를 만들었다.
버터밀크수프를 만들 때면 증조할머니는 의자 두 개를 포개놓고 그 위에 서서 수프를 젓는다. 태어날 때부터 키가 작은 데다 여섯 번이나 척추를 다쳐서 허리가 심하게 굽었기 때문이다. 아까 이야기한 대가족 광고 사진이라도 찍으려면 각도를 세심하게 신경 써야 할 것이다. 증조할머니 등의 혹이 우산꽂이만큼이나 불룩 솟아 있기 때문이다.
증조할머니를 만난 많은 사람들은 만약 예수님이 이 세상에 다시 오신다면 아흔세살 여성의 모습일 거라고 믿는다. 증조할머니는 이른바 ‘절대선’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증조할머니는 모든 사람을 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인정이 많은 사람이다. 심지어 카를 머로더 라네르나 피뇌타운 학교를 맡으라고 교육부에서 파견한 알렉산데르 비스틀리 플라운더블러드 교장처럼 친엄마나 되어야 사랑할 수 있을 법한, 심지어 친엄마라도 사랑하기 힘든 족속들까지도 말이다. 왜 이런 말까지 하느냐면 교장이 연락선으로 오는 어머니를 모시러 간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그 어머니도 그와 오래 있고 싶지 않은 눈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 증조할머니를 그저 착한 사람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자식을 몇이나 먼저 저세상으로 보내고 여섯 번의 척추 손상과 제1차 세계대전 말기와 제2차 세계대전을 견뎌내고 아흔세살까지 살아남으려면 특별한 삶의 비결이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할 것이다. 만약 증조할머니가 자동차라면 기본 차틀은 오래전에 부서졌지만 엔진은 공장에서 갓 나온 것처럼 쌩쌩한 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말수로 치자면 증조할머니는 과묵한 편이다. 마치 몇 개 남지 않은 사탕처럼 말을 아낀달까. 하기야 아흔세살쯤 되면 할 말이 별로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증조할머니가 고개도 돌리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하고 말을 꺼내면 우리는 모두 입을 다물고 귀를 기울인다.
여기서 ‘우리’란 엄마, 아빠, 한스 형, 틸테 누나, 나, 그리고 우리 집 폭스테리어 강아지 배스커 3세를 말한다. 배스커 3세는 『배스커빌 가의 개』에서 이름을 따왔는데, 3세라고 덧붙인 이유는 틸테 누나가 키운 세 번째 폭스테리어이기 때문이다. 누나는 키우던 개가 죽고 새로 개를 얻을 때마다 똑같은 이름에 숫자만 더하자고 우겼다. 그리고 우리와 만나는 기쁨을 처음 누리는 사람들에게도 개 이름을 이야기해줄 때 항상 이름 뒤의 숫자까지 말해준다. 그러면 사람들은 대개 할 말을 잃는다. 아마 그 숫자를 들으면 배스커 이전에 죽은 개들이 있음을 깨닫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바로 그 때문에 틸테 누나는 굳이 개 이름을 그렇게 짓자고 우기는 것 같다. 누나는 보통 아이들보다 더 죽음에 집착해왔으니까.
어쨌든 휠체어에 앉은 증조할머니가 뭔가 말하려고 하면 틸테 누나는 주방 조리대 위로 몸을 기울여 두 다리를 바닥에서 들어올린다. 그러면 증조할머니는 휠체어를 움직여 틸테 누나 아래쪽으로 간다. 누나는 증조할머니가 이야기할 때면 항상 할머니 무릎에 앉고 싶어 하지만, 증조할머니는 나날이 기력이 쇠약해지고 누나는 점점 무거워졌다. 그래서 이제 두 사람은 이렇게 한다. 누나가 몸을 들어올리고 있다가 할머니가 아래쪽으로 오면 자기보다 작은 할머니 무릎에 웅크리고 앉는 것이다.
증조할머니가 말했다.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 그러니까 너희 고조부모님은 젊은 나이라고는 할 수 없는 삼십대 후반에 결혼하셨지. 그래도 자식을 일곱이나 두셨단다. 일곱째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어머니의 오빠와 부인, 그러니까 우리 외삼촌 외숙모가 스페인독감에 걸려 세상을 떠났단다. 두 사람은 열두 명의 아이들을 남긴 채 거의 동시에 하늘나라로 가고 말았지. 우리 아버지는 노르하운의 장례식장으로 갔어. 장례식이 끝나고 친척들은 열두 명의 아이를 어떻게 나누어 맡을지 의논했단다. 당시에는 다들 그렇게 했지. 90년 전 일인데, 생존의 문제였으니까. 피뇌에서 노르하운까지 마차로 두 시간 거리였는데, 아버지는 저녁때가 다 되어서야 돌아왔어. 그러고는 ‘애들을 다 데리고 왔소.’라고 했지. 어머니는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아버지를 쳐다보더니 이렇게 말했어. ‘안데르스, 믿음을 가져줘서 고마워요.’라고.”
증조할머니의 이야기가 끝나자 방 안은 조용해졌다. 그 침묵이 얼마나 오래갔는지 모르겠다. 시간이 뚝 멈춘 것 같았다. 다들 받아들여야 할 것이 너무 많아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생각하는 걸 포기한 건지도 모른다. 우리는 고조할아버지가 장례식장에서 열두 명의 아이들을 보고 차마 떼어놓을 순 없다고 느꼈을 때 그 마음속에서 어떤 생각이 떠올랐는지 이해해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남편이 집에 와서 “애들을 다 데리고 왔소.”라고 말했을 때의 아내 마음도 이해해야 했다. 아내는 우리 자식만 해도 일곱이나 되는데 어떡하느냐고 절망하며 울부짖기는커녕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아이들을 반겼다. 가족용 욕실 두 개에 손님용 욕실까지 있는 목사관에서도 우리 삼남매가 복닥거리는 것을 생각해보면 아이 일곱도 벅찰 텐데, 거기다 하루아침에 아이가 열둘이나 더 생긴 상황에서 말이다.
너무나 조용해서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지만 분명 한참이 지났을 것이다. 이윽고 틸테 누나가 입을 연다.
“저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우리는 틸테 누나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틸테 누나의 말뜻은 고조할아버지나 고조할머니를, 아니 두 분 모두를 닮고 싶고, 필요하다면 기꺼이 열아홉 명의 아이를 떠맡겠다는 뜻일 것이다.
틸테 누나의 말은 그런 뜻이었다. 하지만 그런 의미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입을 열기 전, 그 긴 침묵의 시간 동안 누나는 문을 발견한 것 같다. 아니면 그 문의 존재를 확신하게 되었거나.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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