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은 푸르러야 한다
청춘 씨의 하루
‘청춘 씨’는 매일 아침 8시에 일어난다. 오전에는 토익 학원에 가고 오후에는 아르바이트를 한다. 저녁에는 자취방에서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취업에 필요한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청춘 씨의 이런 생활은 벌써 1년째이다. 대학 졸업 직후 계약직으로 취업했지만 재계약이 어렵고 적은 임금에 비해 업무량은 무척 많았다. 결국 청춘 씨는 퇴사 후 다시 취업 준비에 ‘올인’하기로 했다. 지금 목표는 안정된 일자리를 얻는 것이다. 대학 졸업반 때부터 총 4번의 공채 시즌을 겪으며 거절에 익숙해진 청춘 씨는 오늘도 이력서를 보며 더 채울 것은 없는지 찾고 있다.
지방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청년, 청춘 씨는 2형제 중 맏이이다. 서울 소재 대학에 합격한 뒤 청춘 씨의 일상은 아르바이트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비싼 학비와 지방에 비해 높은 수준의 주거비는 부모님의 지원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청춘 씨의 학창시절 생활기록부에는 ‘성실함’이라는 단어가 빠지지 않았다. 그 성실함을 바탕으로 대학 입학 직후부터 취업준비를 위한 어학 공부와 자격증 취득에 몰두했다. 그런데 그가 보기에 이상한 점이 있었다. 주변의 학점도 좋고 인성도 훌륭한 선배들이(그 선배들의 생활기록부에도 ‘성실함’이 빠지지 않았다) 취업이 되지 않아서 전전긍긍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며 청춘 씨는 공무원 시험 준비를 잠시 고민했다. 그러나 시험을 준비하는 기간과 비용이 만만치 않았고 합격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섣불리 뛰어들 수 없었다. 대신 남들보다 미리 준비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취업 스펙을 쌓기로 했다. 그는 자격증 취득뿐 아니라 인턴십과 봉사활동에도 참여하는 등 남보다 일찍부터 시간과 노력을 쏟았다.
졸업 후 청춘 씨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적은 수의 정규직과 많은 수의 비정규직 일자리였다. 비정규직의 경우 1년 계약인지 2년 계약인지에 따라서 경쟁률이 크게 달랐고, 정규직 전환 가능성이 언급된 자리에는 대기업 정규직 신입 공채만큼 청년들이 몰렸다.
공채 시즌에 여러 번 고배를 마신 청춘 씨는 규모는 작지만 정규직 전환의 기회가 있다는 무역회사의 1년 계약직 사무직으로 채용되었다. 첫 직장에서 청춘 씨는 잡다한 사무보조 업무를 주로 맡았다. 재계약과 정규직 전환에 대한 기대감은 곧 부담이 되어, 업무를 마친 후에도 일없이 ‘자발적’ 야근을 하는 날이 늘어갔다. 그런데도 정규직 전환은커녕 재게약조차 실패했다. 오늘도 청춘 씨는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며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청춘들
청춘 씨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지하철에, 버스에, 아니면 자격증 학원에 있을까? 실제로 청춘 씨는 어디에나 있다. “저 여기에 있어요!”라고 크게 목소리를 내지는 않지만 사회 곳곳에 존재한다.
우리는 통계로만 보았던 청년들을 직접 만나보고 싶었다. 사회의 양지보다 음지를 조명해야만 겨우 발견할 수 있는 청년들, 그들에게 청구된 과도한 비용의 실체를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가정과 학교의 담장 안에 있다가 성인이 되면서 아무런 준비 없이 치열한 삶의 최전선으로 떠밀려 나온 그들은 어떤 짐을 지고 있을까. 거리에서 스치는 청년 모두가 취업 문제를 유전자 코드처럼 간직하고 있을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질문이다. 취업 문제가 청년 문제의 대문 역할을 하고 있지만, 일단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다양한 종류의 문제를 만나게 된다. 좋은 일자리를 향한 열망의 크기는 청년들 각자의 기대에 따라 달라진다. 스스로 노력한 결과에 대한 기대, 부모님의 투자에 대한 기대, 사회에서 ‘중간’이고자 하는 기대 등 취업 문제 이면에는 이처럼 여러 기대들이 응축되어 있었다. 그 시작이 대학교 입학이고, 짝꿍처럼 취업이 따라 붙는다.
‘대학 졸업 후 취업’은 오늘날 청년들의 유일한 선택지이다. 그래서 성실한 청년일수록 취업 문제를 ‘내 노력이 부족해서 사회를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자기 탓을 하게 된다. 그리고 모자란 부분을 채우기 위해서 끊임없이 내달리다 결국 ‘포기’하고 ‘달관’하고 스스로를 ‘흙수저’로 규정해버린다. 이 과정에서 청춘은 제 빛깔을 잃고 스스로 목소리를 꺼버리고 만다. 어느새 보이지 않는 청춘들만 가득한 역설적인 사회가 되었다.
청춘이라는 말의 무게, 그들은 누구인가
청춘은 한자어로 푸를 청靑과 봄 춘春을 붙여 쓴다. 만물이 푸른 봄철이라는 뜻인데, 보통 1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까지의 젊은 세대를 아우른다. 하지만 오늘날의 대한민국 청춘, 청년들은 말의 본뜻과는 사뭇 다른 무채색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청년들 사이에는 취업과 고용 형태, 주거 환경, 그리고 미래를 위한 투자 등 여러 범위에서 양극화가 발생하고 있고, 대체로 밝은 미래를 전망하기 힘들다는 우울함이 근저에 깔려 있다. 왜 청년은 청춘이어야 하는가? 청년은 미래이기 때문이다. 청년을 푸른 봄에 비유하는 이유는 그 시기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준비를 하는 ‘가능성’의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년은 곧 청춘이어야 한다. 절망 속에서 제자리걸음하는 청년들이 많아질수록 그 사회의 미래는 어두워진다.
청년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청년의 범위’를 먼저 정의해야 한다. 청년의 범위를 어떻게 설정하는지에 따라 각종 통계의 추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연령을 기준으로 볼 때, OECD 기준 청년은 15세에서 29세의 인구집단을 가리킨다. 국내에서도 「청년고용촉진특별법」에서 청년을 OECD와 동일하게 15세 이상 29세 이하의 인구집단으로 규정하여 관련법의 시행 대상으로 삼았다. 다만 지방 공기업은 15세 이상 34세 이하의 인구집단으로 청년의 범위를 확대했다. 청년 실업 문제를 대할 때는 만학의 영향으로 20세에서 30대 중반까지로 청년의 범위를 조정하기도 하며, 정치권에서는 정당 청년위원회에 속할 수 있는 나이를 만 45세까지로 규정하면서 청년의 범주를 늘렸다. 농촌 지역에서는 고령화 문제와 맞물리며 50세를 청년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연령만을 기준으로 청년을 정의하는 방식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예를 들어 같은 30대 초반이라고 해도, 막 취업을 한 신입사원 A와 결혼 및 출산·육아의 과정을 거친 ‘경단녀’(경력 단절 여성) B를 같은 범주에 포함시켜서는 청년 문제에 제대로 접근하기 어렵다.
우리는 『청춘의 가격』이라는 제목으로 청년들이 청춘의 시기를 보내는 데 필요한 요소들과 그것을 획득하기까지 필요한 비용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한 사람이 태어나 성인이 될 때까지 투자된 사회적·개인적 자본의 총량을 유추해보고, 이후 청년들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임금과 소득으로 돌려받는 비용을 계싼하여 청년들의 삶을 현실적으로 드러낼 것이다.
이 책에서는 이제 막 대학에 입학한 20세부터 취업·연애·결혼의 단계를 지나온(또는 지나고 있는) 35세까지를 청년의 범위로 정하고, 다시 그들을 연애 및 결혼, 주거, 여가, 노동 시장과 노등 환경을 주제로 분류할 것이다. 또한 실제 청년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이 원하는 청춘의 모습과 그들이 겪고 있는 청춘의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줄 것이다.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은
2000년대 후반부터 취업 준비를 위한 휴학이 청년기에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가 되었다. 안정된 직장 중 최고라는 공무원 시험과 교사 임용시험의 경쟁률은 매년 치솟고 있다. 오늘날 청년들이 안정성에 매달리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비정규직 및 불안정한 일자리의 임금은 수도권에서의 생활비를 겨우 충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청년들은 빚을 내서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아 기르며 부모 세대가 자신들에게 해준 경제적인 지원을 내 아이에게 똑같이 해줄 자신이 없다. 1~2년 혹은 한 달이나 일주일에 불과한 계약기간을 감내해야 하는 청년들에게 ‘근시안적 태도를 버리고 멀리 보라’고 독촉하는 것은 폭력에 가깝다. 청년은 당연히 힘든 시기이니 더 힘든 이들을 보면서 지금 가진 것에 감사하고, 그 안에서 너의 길을 찾으라는 위로는 현재와 미래를 포기하라는 말과 다름없다.
우리는 응당 누려야 할 청춘을 잃어버린 청년들의 이야기를 ‘가격’에 빗대어 풀어내고자 한다. 청년이 청춘을 얻는 데 드는 비용은 얼마인가? 그것을 얻고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을 들여다보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청년들에게 어떤 것이 필요한지가 선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또한 청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조직된 다양한 공동체의 활동도 살펴보며,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실마리를 발견해나갈 것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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