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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배워야 할 건 군대에서 다 배웠다
왜 ‘군대’는 금기어가 되었나?
사람은 살아가면서 늘 요령이란 걸 터득하게 되는데 나는 적어도 이 사회에서 어떤 말이 이성적으로 상대에게 납득되려면 ‘군대’라는 두 글자를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네가 페미니즘 매체에 칼럼을 써? 너 마초 아니었어?”
페미니즘 매체에 2년간 글을 연재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뭐, 틀린 말이 아니다. 나는 전형적인 경상도 집안에서 보수적인 사고를 자연스레 교육받아 왔고 좀처럼 그 색깔을 벗겨내지 못했다. 20대 중반이 되어서도 ‘착하고 말 잘 듣는 여자’가 이상형이라고 공공연히 밝히고 다닐 정도였다. 개인 취향일 수는 있겠지만, 세상의 스테레오 타입을 비판하는, 특히 남자라는 권력으로부터 만들어진 순종적 여성상像을 의심하라고 가르치는 사회학 강사라면 이야기가 좀 다르다. “어떻게 너는 사회학 강사라는 사람이 그렇게도 사회학스럽지 못한 생각을 할 수 있어?”라는 핀잔을 듣는 게 일상이었으니 내가 (최소한 그렇게 말하는 쪽에서 볼 때는) 지독히도 보수적이었나 보다. 그랬던 내가 ‘보수들이 가장 싫어한다는’ 한국의 페미니스트들과 비슷한 논지의 글을 쓰고 심지어 ‘여성학’ 강의마저 하고 있으니 동료들이 놀라는 건 당연했다.
나는 왜 전향하게 되었나?
나의 ‘전향’에는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무슨 마르틴 루터처럼 ‘탑의 체험’을 한 것도 아니다. 나는 ‘늘’ 하던 일을 했을 뿐인데, 어느 순간 세상이 나를 페미니스트라 불렀다. 평소처럼 사회학의 시선으로 세상을 분석하고 글을 쓰는 일상의 어느 날, 그날의 주제는 ‘아내의 출산’이었다. 그 과정 속의 ‘아름다운’ 에피소드를 작성하여 인터넷 매체에 송고하고 내 블로그에 올린 지 3시간 후, 나는 ‘페미니스트’가 되어 있었다. 그 전말을 공개한다.
결혼, 아내의 임신, 그리고 출산에 이르는 과정은 사회학 전공자에게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사회학은 단순하게 말해 개인의 인지, 행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회의 존재를 들춰내는 학문이다. 그래서 비판 정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내 눈에 비친 한국의 출산 문화에는 못마땅한 것이 많았다. 특히, 별다른 사전 설명 없이 이루어지는 임신 기간 내 각종 검사들이 그랬다. 안 하기에는 찜찜한 기분을 ‘영리’가 목적인 병원은 교묘히 이용했다. 그렇게 9개월을 지내니 어느덧 나는 ‘의사를 불신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의사들의 모든 권고는 ‘돈 벌려는 수작’으로 귀결될 뿐이었다. 병원은 아내에게 ‘자연분만이 힘든 케이스’라 했지만 난 콧방귀를 뀌었다. 아내에게는 “그게 다 제왕절개 수술을 유도해서 돈 벌려는 수작이지”라면서 무안을 줬다. 아내는 의사로부터 충분한 설명을 듣고 왔지만 ‘비전문가’인 남편의 ‘도도한’ 잘난 척에 주눅이 들어 별다른 말을 하지 못했고 병원은 ‘그렇게 자연분만을 원하신다면’ 유도분만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예정일보다 일주일 빨리 분만을 인위적으로 시도하게 되었다. 분만 대기실에 들어간 지 40시간 후, 나는 심정의 변화를 맞이한다.
대기실에는 여러 침대가 있고 산모들은 각자의 커튼 안에서 끙끙거린다. 진통의 절정에 이르렀다는 의사의 지시가 떨어져야지만 ‘분만실’로 향할 수 있다. 산모들은 ‘이제 때가 된 것 같다!’면서 얼른 자신을 분만실로 옮겨달라고 하지만, 의사들은 “아직 멀었어요!”라고 야속하게 말하고 또 산모들은 절망하는 진풍경이 이어진다. 그 신음소리의 향연만으로도 나는 ‘때가 되어 진통 몇 번 참는 게’ 출산의 고통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촉진제를 맞은 지 10시간이 지나자 아내에게도 진통이 시작된다. 현장의 소리를 직접 귀로 듣고 나니, 불안과 공포의 기운은 더 커진다. 아내의 고통은 슬슬 절정에 이른다. 의사가 찾아온다. 아내의 표정은 일그러질 때로 일그러졌지만 별 반응은 없다. 그러길 몇 차례, 의사는 생뚱맞게 내게 말한다.
“남편분이 자연분만을 하겠다고 그러셔서 유도분만을 해봤습니다만, 의미가 없어요. 산모분의 경우 수술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지금 저러는 거 괜한 고생만 시키는 겁니다. 태아한테도 안 좋아요.”
나는 깜짝 놀라, 그게 무슨 소리냐고 했다. 그러자 의사는 예상했다는 표정을 짓더니 나를 따로 불러 말을 이어갔다.
“제가 누차 말씀드렸어요. 자연분만 어렵다고. 그런데 산모분이 남편이 절대 안 된다고 해서 걱정 많이 하셨거든요. 그런데 지금 어려워요. 아내분 상태가 지금 어느 정도냐면, 남편분이 제 동생이라면 정말 혼내고 싶을 정도랍니다. 가끔 자연분만을 무슨 ‘부모 도리’처럼 생각하시는 분들 있는데, 전문가 진단을 안 믿으시면 어떡합니까. 이러다가 나중에 태아가 태변 먹고 응급조치 들어가면 그때는 또 늦게 조치했다고 우리보고 화내는 분들 간혹 있는데 정말 이해할 수 없네요.”
그 순간 무언가에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 들더니 만감이 교차했다. 나는 지금까지 무슨 짓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세상 비판한다는 사회학 공부가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어찌 한 사람의 고통을 모른 체했을꼬. 나는 한심한 사람이었다. 아내를 힘들게 하면서 그것을 ‘의사라는 권력’에 저항한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오히려 ‘자연분만을 하는 것이 좋다’는 또 다른 사회 분위기에 내가 지배당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아내를 짓눌렀던 나의 몹쓸 집착은 논리적이지도 않았고 ‘주술’에 가까웠다. 그러면서 나는 스스로 ‘계몽적’이라 생각하고 있었으니, 낯짝이 부끄럽고 할 말이 없다. 의사의 꾸지람을 들은 후 나는 곧바로 수술을 결정했고 아내는 무사히 이후 과정을 겪어냈다.
나는 이 부끄러움을 글로 옮겼다. 영리 위주의 경영을 고집하는 병원의 문제점을 모든 ‘의학적 진단’을 해석하는 근거로 삼는 이 무지함이야말로 사회학에서 말하는 ‘계몽’의 대상 아니겠는가. 자연분만이 ‘최선’이라는 건 다 알지만, 그 ‘최선’이란 기준에 내 아이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는 욕망 때문에 또 다른 누군가를 고통스럽게 했던 생생한 현장 경험담을 그대로 드러냈다. 실제로 제왕절개를 할 경우, 산후 산모의 회복이 너무나 더디고 (그래서 비용이 많이 들고) 몸매 관리 등에도 굉장한 어려움이 많다는 경험자들의 후기는 무수하다. 문제는 이것이 ‘자연분만을 원한다면 평소에 운동을 열심히 하세요’라는 정보와 결합해서 기이한 생각을 완성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제왕절개 수술은 평소에 운동도 안 하다가 출산의 고통이 힘들까 봐 편하게 애 낳으려는 여자들이나 받는 거 아니야?”와 같은 편견에 찬 이야기들 말이다. 이와 비례하여 자연분만 역시 ‘별거 아닌 것’이 된다. 그러니 아무리 의사가 경고한다고 해도 ‘에이, 애는 누구나 다 낳는 건데, 왜 수술까지 하라는 거야?’라는 호기를 부릴 뿐이다. 나의 글은 이 오만함에 대한 반성이었다. 이 얼마나 기특하고 훈훈한 글인가! “분만실의 심리학 vs. 분만실의 사회학”이라는 제목의 글을 나는 블로그에 올렸고 인터넷 매체에 송고했다. 블로그에는 여러 댓글이 달렸고 그 내용들은 아주 일상적인 수준이었다.
간만에 컴퓨터에 접속했는데, 이렇게 웃길 수가! 저도 7개월째부터 노산이고 골반보다 아기가 크다고 수술 권유 받았어요. 그래도 꿋꿋이 자연분만하려고 하다가 결국 13시간 진통 끝에 ‘이제 기계로 끄집어내야 한다’고 해서 그때서야 수술했지요. 의사 말 진작 안 들은 거 엄청 후회했답니다.
남자를 모욕했으니 넌 죽어도 마땅해
가끔 자신을 ‘의사’라고 밝힌 분들이 수술의 당위성을 의학적인 관점이 아닌 사회학적 아집에 집착한 나를 질타했지만 분위기는 훈훈했다. 많은 여성들이 자신도 세상의 편견에 아파했다면서 내 아내를 위로했다. 어떤 이도 ‘스스로의 착오를 인정하고 글로 반성한’ 나를 공격하지는 않았다. 모두가 사회학을 도구 삼아 ‘갑질’을 한 나를 비판했지만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오히려 ‘나의 경험’을 발판 삼아 ‘한국 사회’에 대해 이야기했다. 내 글의 원래 목적을 달성한 것 같았다.
그런데 몇 시간이 지나, 나는 미국에 있는 지인으로부터 이상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친구는 다짜고짜 “너 괜찮아?”라는 말부터 했다. 나는 이 친구가 ‘아내의 건강’을 묻는 줄 알고 “지금 회복하고 있는 중이야”라고 답했다. 그러자 상대는 “아니, 제수씨 말고 너 말이야! 너! 지금 난리 났잖아! 댓글 안 봤어?”라면서 흥분하기 시작했다. 전화를 끊고 이게 무슨 영문인가 하고 나는 컴퓨터를 켰다. 내 블로그에는 별 특이한 내용이 없었다. 그래서 인터넷 매체에 송고한 글의 댓글을 살펴봤다. 헉! 강렬한 댓글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나도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이가 있지만, 기사 읽는 내내 혹시나 했던 글귀가 맨 마지막에 달렸더군. 너 씨발 지금 낚시하냐? 여자들 출산의 고통은 내 아내도 심하게 겪었기 때문에 이해는 한다만, 이 개만도 못한 놈아. 어디 군 생활이랑 이틀의 출산이랑 비교하냐? 씨바 너처럼 편하게 군 생활 한 것처럼 여자들도 편하게 자연분만하는 사람도 많아. 힘들게 출산하는 것 수십 배 이상 고통스러운 군 생활을 보낸 사람이 이 시대에는 훨씬 많다는 걸 기억해라, 이 모자란 새끼야.
‘너 씨발 낚시하냐’ …… 아 ……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이지? 생뚱맞게 갑자기 군대 얘기가 왜 나오지? 의문은 금세 풀렸다. 글이 인터넷 매체로 넘어가면서 제목이 “분만실 40시간 체험, 군대보다 더 무서워”라고 바뀌었던 것이다. 제목에 포함된, ‘군대’ 그리고 이것이 출산과 비교되는 조합은 한국 사회에서 남자들의 흥분을 자동적으로 일으키는 것 아닌가. 나는 어이가 없었다. 왜냐하면 ‘군대’와 ‘출산’을 비교하기 위해 이 글을 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글에서 ‘군대’라는 말은 등장하지도 않고 ‘군 생활’이라는 말만 딱 한 번 언급된다. 그것도 마지막 문장에서 스쳐 지나가듯이 등장한다. ‘어쨌든 세상의 모든 엄마들! 정말 대단하다. 비록 간접적으로 경험한 분만실 40시간이었지만 남자들이 흔히 핏대 세우는 ‘26개월’(내 경우)의 ‘군 생활’은 실로 장난이었다.’
이게 전부였다. 하지만 이 글은 (리베카 솔닛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람들의 심금을 건드렸다. 신경도 건드렸다.” 그리고 나는 별안간 페미니스트가 되어 있었다. 내가 쓴 글의 의도는 간단했다. 일차적으로 그만큼 아내의 출산 고통에 존경을 표한다는 뜻이었고, 다음으로 흔히들 ‘군대 생활’을 빌미 삼아 여성들의 출산·육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애써 무시하는 짓이 얼마나 무의미한지를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것도 논의의 핵심으로서가 아니라 곁가지로 말이다.
하지만 난리가 났다. ‘자극적인 제목’의 글을 포털 사이트들이 내버려둘 리 없었다. 모든 포털에서 이 글을 ‘메인 화면’에 노출시켰다. 댓글은 ‘융단폭격’ 그 자체였다. 가끔 ‘글쓴이가 마지막에 남긴 문장은 대한민국 남자로서 태어나서 국방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한 모든 이를 모욕했다고 느껴집니다’라는 온순한 글도 있었지만, 모든 댓글이 이런 전제에서 나아가 ‘남자를 모욕했으니 넌 죽어도 마땅해’라는 일종의 명예 살인honor killing을 하고 있었다. 한국 사회에서 출산과 군대를 비교한다는 건 그것이 ‘별 의미가 없다 할지라도’ 대역죄였다. 아니, ‘별 의미도 없이’ 비교를 했기에 더 화를 냈다. 누가 어떤 식으로든 군대를 ‘낮게’ 평가하는 뉘앙스를 풍기면 능지처참을 면치 못하리라.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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