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건의 시작은 접이식 우산이 사라진 것이었습니다. 그 사건은 작년 ─ 작년이라곤 해도 바로 얼마 전인 ─ 12월 22일 오전에 일어난 일입니다. 나는 내가 사는 소도시의 중앙에 있는 광장을 가로지르고 있었습니다. 좋아하는 장밋빛 베레모를 쓰고, 입에는 조금 오래된 큰 파이프 담배를 물고, 그리고 손에는 접이식 우산을 들고 말이지요. 나는 원래 우산같이 거추장스러운 물건을 들고 다니는 건 질색이지만 그날은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처럼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는 통에, 어울리지 않게 준비를 단단히 한답시고 들고 나왔지요. 그런데 내가 빌라를 나오자마자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하늘이 개기 시작하더니 광장으로 접어들었을 때는 엷은 햇살마저 비추고 있었습니다.
광장 한가운데에 한 남자아이가 서 있었습니다. 아이는 하늘색의 부들부들한 코트를 입고 같은 천으로 된 두건을 쓰고 있었지요. 두건 아래로 금빛이 도는 갈색의 빛나는 머리카락이 살짝 보였습니다. 코끝이 오뚝한 게 장난꾸러기같이 보였지요. 길에서 스친 낯선 아이를 이렇게 자세히 기억하는 건 이상하다고요? 거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나는 아이의 모습을 보자마자 가슴을 두근대며 생각했답니다.
‘이 아이도 그 책을 사 볼까? 내 그림이 표지를 장식한 그 책을.’
그렇습니다. 내가 그린 〈눈雪 도깨비와 까마귀〉 그림이 인쇄돼 아동 잡지의 표지를 장식했습니다. 나는 지금 그림값과 완성된 잡지를 받으러 잡지사로 가던 참입니다. 길에서 스친 아이의 모습이 내 마음을 설레게 한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요? 맞습니다, 나는 그림 작가입니다. 그것도 아이들을 위한 그림을 그리는, 아직 그리 유명하지 않은 그림 작가랍니다. 광장을 가로질러 바로 보이는 붉은 벽돌의 큰 건물은 시청으로, 그 뒤가 내가 향하던 잡지사입니다.
“자, 이게 그림값. 이쪽이 잡지. 착상이 재미있어 쓰긴 했지만, 네 그림은 아무래도 빨강이 부족해. 아이들은 빨강을 좋아하거든.”
그렇게 말한 사람은 이 잡지의 편집장입니다. 나하고는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로 꽤 오랫동안 아동 잡지의 편집을 하고 있는 녀석이지요. 그러니까 이 친구가 하는 말은 사실이겠지요. 하지만 나는 이 그림에 빨강이 적은 건 어쩔 수 없다고 봅니다. 생각해 보세요. 그림 제목이 〈눈 도깨비와 까마귀〉잖아요.
어쨌든 난 기쁜 마음에 몸이라도 붕 뜨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광장으로 나왔을 때는 조금 전에 보았던 아이는 이제 없었습니다. 나는 무심코 내 손을 보았습니다. 빳빳한 새 잡지를 안고 있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접이식 우산이 없습니다.
“쳇, 어쩌다 들고 나오면 바로 이 모양이라니까.”
나는 잡지사로 되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우산이 없습니다. 편집실 문 옆에 세워 두었는데 말이지요.
“우산이 없다고? 이상하네.”
편집장은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네가 이 방에 있는 동안 누가 들어왔었나? 안 왔다고? 네가 가고 난 뒤에도 아무도 안 들어왔어. 착각한 것 아냐?”
착각한 게 아닙니다. 문 옆에 확실히 세워 두었으니까요. 하지만 나는 포기했습니다. 이 이상 우산을 찾는답시고 이러니저러니 말했다가는 오랜 친구인 편집장을 의심하는 것밖에 안 되니까요. 그럴 수는 없겠지요?
나는 금방 받은 돈으로 붉은 양초 한 개와 호랑가시나무 잎이 달린 은색 종을 사고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삼 일 앞으로 다가온 크리스마스를 위해 내 팔레트랑 그림붓들을 장식할 생각입니다.
2
새해가 밝고 1월도 막바지에 접어든 어느 수요일 저녁의 일입니다. 나는 저녁을 먹으러 시내로 나가야만 했습니다. 혼자 사는 나는 식사는 항상 밖에서 하지만, 오늘따라 어쩐지 나가기가 귀찮았습니다. 차가운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데도 우산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배는 꼬르륵꼬르륵 요동을 쳐 왔습니다. 나는 베레모 위에 비닐 보자기를 뒤집어쓰고 빌라를 나섰습니다.
모퉁이를 돌자, 내 앞으로 한 초라한 몰골의 여자아이가 걸어가는 게 보였습니다. 나와 마찬가지로 비닐 보자기를 쓰고 있었지만, 그 보자기라는 게 갈기갈기 찢어져 안 쓴 거나 매한가지였습니다. 비닐이라는 녀석은 편리하지만 한번 찢어지면 다루기 힘든 물건이 되지요. 여자아이는 석간신문이 가득 든 바구니를 감싸 쥐고, 바구니 위에는 찢어지지 않은 다른 비닐을 덮고는 추운 듯이 어깨를 움츠리며 걷고 있었습니다.
“우산이 있었으면 씌워 줬을 텐데.”
입속으로 중얼거렸을 때입니다. 나는 이런! 하며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내 오른손에 어느새 우산이 쥐어져 있는 게 아닙니까! 멈추어 서서 자세히 살폈습니다. 틀림없이 내 우산입니다. 우산살이 하나 부러진 것도 그대로입니다. 편집실 문 옆에서 사라진 접이식 우산입니다. 왜 우산이 내게 돌아왔는지 생각할 사이도 없이 난 여자아이의 뒤를 쫓아 아이 손에 우산을 쥐여 주었습니다.
“이거 줄게. 쓰렴.”
나는 그대로 뛰어 골목에 있는 메밀국숫집으로 냅다 들어가 버렸습니다.
‘왠지 멍청한 짓을 한 것 같아.’
나는 생각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그건 내 우산입니다. 세어보니 딱 5주 만에 돌아온 우산입니다. 남아도는 것도 아니고, 우산이 필요한 건 그 여자아이나 나나 매한가지입니다.
‘하지만 이걸로 됐어. 5주나 없이도 살았잖아. 앞으로도 우산 없이 살 수 있어.’
나는 뚝뚝 물방울이 떨어지는 비닐 보자기를 벗었습니다.
“어?”
머리에 손을 얹었습니다. 없습니다! 장밋빛 베레모가…… 이게 무슨 일일까요? 확실히 머리에 쓰고 빌라를 나왔건만. 내 마음에 쏙 드는 모자로 집 안에서도 늘 쓰고 있는 터라 착각했을 리 없습니다. 오다가 떨어뜨렸나? 그런 어처구니없는 얘기가? 오늘 밤에는 바람도 불지 않았고, 베레모 위에다 다시 비닐 보자기를 덮어쓰고 있었습니다.
“이상한 일투성이야. 하지만 베레모도 어쩌면 다시 불쑥 돌아오지 않을까? 우산처럼.”
나는 고개를 갸우뚱갸우뚱하며 중얼거렸습니다.
(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