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나는 왜 너를 싫어하게 됐을까?
저 사람은 왜 ‘이물질’이 되어버린 걸까?
이물질의 판정 기준
인간 알레르기는 타인을 자신이 아닌 이물질로 인식하여 제거하는 동안에 나타나는 과잉 반응이다. 그렇다면 애당초 자신(가족)인지 자신이 아닌지에 대한 인식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걸까?
인간은 참으로 다양한 기준으로 그 사람이 받아들여도 좋을 동료인지 아닌지를 판정한다. 외모나 사회적 지위, 취미나 교양, 경제력, 학력, 가치관, 성격 등 판정의 재료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자신의 이상에 부합하지 않더라도 허용할 때가 많다.
한편 대체로 마음에 들었다 해도 도저히 양보할 수 없는 절대 조건이 있다. 그 하나가 마음에 걸리면 그 이외의 것이 아무리 좋더라도 이물질로 인식하고 만다. 이를테면 조건이 좋아서 결혼했지만 결국 이혼하거나 처음에는 사이가 좋았는데 험악한 관계로 끝나버리는 경우는 보통 이물질의 판정 기준에 저촉된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물질인지 아닌지 판가름하는 결정적인 기준이란 무엇일까?
나에게 해가 되는 사람인가?
가장 중요한 기준은 나에게 손해를 끼치는 사람인지의 여부이다. 폭력 같은 신체적인 위협은 두말할 것도 없고, 기분이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는 것,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설령 조금 귀찮게 하더라도 나의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영역을 침범하지만 않아도 허용의 폭은 넓어진다.
【미워할 수 없는 사람】
과거 내 동료였던 의사 중에 특이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예술가적 기질이 넘쳤고, 자기 스타일이 뚜렷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지 못해 지각을 밥 먹듯이 했다. 간호사가 전화를 걸어 깨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닐 정도였다. 멍하니 있을 때도 많아서 약 처방을 깜박하기도 했다. 하지만 크게 문제가 되는 일은 의외로 없었다. 담당 간호사가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담당 간호사는 자신이 대신 모든 것을 챙겨야 하는 상황이 힘들었을 텐데 단 한 번도 그에 대해 험담하지 않았다.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인정하고 친근하게 대했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동료의 성품 자체가 권위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었고 부하 직원들을 꾸짖지도 않았다. 오히려 자기가 나서서 귀찮은 일을 처리하고, 손해 보는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 즉 그는 똑 부러지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결코 이기적이지 않았고,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거나 공격하는 일도 전혀 없었다. 타인의 기분을 나쁘게 하지도 영역을 침범하지도 않았으므로 동료로 인정받은 것이다.
자신의 치부를 숨기지 않고 드러낸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러니 주변 사람들은 오히려 친근감을 느끼고 거부감을 갖지도 않았을 것이다. 누구나 무방비 상태의 사람을 공격하는 일은 주저하게 마련이다. 그는 출세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나중에 대학으로 돌아가 교수가 되었다. 적을 만들지 않는 성격이나 야심 없는 태도가 주변 사람들의 경계심을 없앴고, 오히려 후원과 출세로 이어졌다고 말할 수 있는 경우다.
그런데 이와는 정반대의 사람이 있다. 바로 상대방의 기분을 해칠 만한 말과 행동을 일삼는 사람이다. 이들은 사방에 강한 알레르기 반응의 씨앗을 뿌리고 다닌다. 만약 당신이 화가 나면 자신도 모르게 감정적인 말을 내뱉고, 얼굴에 감정을 날것으로 드러내는 사람이라면 주의해야 한다. 아마도 당신 주변 사람들은 내면에 당신에 대한 거부 반응을 차곡차곡 쌓아놓고, 당신이 약해졌을 때 숨겨두었던 날카로운 발톱을 꺼내 공격하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상식과 규칙을 공유할 수 있는가?
다음으로 주요한 판정 기준은 상식과 규칙을 공유할 수 있느냐의 여부이다. 상식과 규칙이 다르면 자신의 기대가 어긋나기도 하고, 상대의 기대를 저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좋은 뜻으로 한 일인데, 오히려 질책을 받기도 한다. 서로 호흡 맞추기가 상당히 힘들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인다.
하지만 어느 정도 차이가 있더라도 그 사람 나름의 규칙을 주변 사람들도 이해하고, 미리 예상한다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다. 물론 한계가 있다. 서로의 규칙이 판이하게 다른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상식이나 규칙은 사람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있다. 정반대라고 해도 좋을 만큼 다른 경우도 많다. 이를테면 전통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사람은 사회 상식을 무시하는 사람에게 강한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 반대로 자유를 추구하며 사는 사람은 기존 가치에 얽매이는 사람이 고리타분하게 보일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각각의 원칙이 있으므로 아무리 오래 대화한다고 해도 의견 일치를 보기는 힘들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이것은 혈액형 같은 다형多形, variation의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에 어느 쪽이 옳다고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모두 일장일단이 있고, 상황에 따라 유리하게도 불리하게도 작용한다. 어떤 한쪽만을 정답으로 규정해버리면 환경이 바뀌었을 때, 종種 자체의 생존까지 위험해질 수도 있다. 위험 부담을 덜고 멸종을 피하기 위해 다형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 시각에서 보면 어떤 변종도, 종 전체의 생존에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으니까 살아남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그런 차이를 끝내 떨쳐버리지 못한 채 서로 미워하고 다투는 일을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 전체적으로 보면 양쪽 모두 필요하지만 상식과 규칙이 다른 사람들끼리 친밀하게 공존하는 것은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하나가 미우면 다 미운 법】
히로미 씨(가명)는 40대의 전업주부이다. 1년쯤 전부터 헬스클럽에 다녔고, 거기에서 밝은 성격의 유리나 씨(가명)를 알게 되었다. 대화가 잘 통해 함께 점심을 먹거나 차를 마시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게 즐거웠다.
그런데 친해지기 시작한 지 반년쯤 됐을 무렵부터 히로미 씨는 돈 문제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서로 번갈아 돈을 냈지만, 최근에는 히로미 씨가 돈을 내는 게 당연한 일인 것처럼 되어버렸다. 어느 사이엔가 고맙다는 말조차 들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흐리터분한 유리나 씨의 성격이 자꾸 거슬렸고, 그녀의 말에 진심으로 공감하는 것도 힘들었다. 결정적으로 엇갈리게 된 것은 남자의 바람기에 대해 이야기할 때였다. 유리나 씨는 ‘남자는 모두 바람피워요. 다만 들키지 않는 남자와 그렇지 못한 남자만 있을 뿐이죠’라며 자신의 남편이 바람피우는 것을 재미있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히로미 씨가 ‘우리 남편은 아니에요’라고 자신도 모르게 반박하자 ‘어머, 미안해요. 그렇다고 그렇게 화낼 것까지는 없잖아요’라며 오히려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지었던 것이다.
그날 이후부터 유리나 씨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신경에 거슬려 점심을 먹거나 차를 마시러 가자는 권유도 거절하는 일이 늘어났다. 가끔 헬스클럽에서 모습을 보거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혐오감이 솟아올라 발길을 끊게 되었다. 결국 다른 헬스클럽으로 옮기고 휴대전화도 수신 거부로 하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의 평온을 되찾았다.
왜 이렇게까지 강한 거부 반응이 생겨난 것일까? 히로미 씨는 돈에 대한 개념이나 정조 관념에 대해 엄격한 교육을 받아서 그 부분에 대한 가치관은 양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유리나 씨는 히로미 씨의 의견이 자신과 다르다는 것을 피력하고 싶었을 뿐, 그녀를 비웃으려는 의도는 없었다.
이렇듯 상식이나 규칙의 차이는 친밀해질수록 명확히 드러나게 마련인데 서로 타협하기 어려울 때도 많다. 인정할 수 없는 상식이나 규칙을 가진 사람과 만남을 반복하는 동안 자신이 소중히 여겼던 신념이나 정체성을 위협하는 듯한 불쾌함과 고통이 몰려들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상대방의 상식에 맞출 수밖에 없을 때도 있다. 가치관을 공유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접촉하고, 그 외에는 거리를 두는 게 현실적인 타협책이라 할 수 있다. 이때 상대방에게 완전히 동화되어 다른 사람처럼 변해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것 역시 인간 알레르기를 회피하기 위한 적응 전략 중 하나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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