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나 중심주위 사회
1
조금 더 빨리 조금 더 많이
“시리, 라테 파는 곳을 알려줘.”
금요일 오후 늦은 시각, 시애틀 북부 지역 애플 매장에서 열린 아이폰 구매자들을 위한 ‘워크숍’ 자리에 나는 중년 고객들 대여섯 명과 함께 앉아 있었다. 예전 같으면 사람들은 늦은 금요일 오후를 반값 술을 퍼마시고 시시덕거리며 보냈겠지만, 이제는 개인용 최신 기기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애플 매장이 매우 북적이다 보니, 20대로 보이는 우리의 교육 강사 칩은 마치 노인들을 실은 관광버스에서 안내 역할을 하다가 지친 가이드 같은 표정을 지으며, PA앰프를 이용해 목소리를 키웠다. 듬성듬성 난 수염에 힙스터풍 뿔테 안경을 걸친 그는 시리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시리는 아이폰의 디지털 보조 장치로, 애플사의 말에 따르면 문자 전송부터 호텔 검색, 최고의 캔자스시티 스타일 바비큐 집을 찾는 일까지 다방면에서 우리를 도와준다고 한다. 시리가 이러한 첨단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은 ‘적응형 지능’ 덕분으로, 칩의 설명에 따르면 적응형 지능은 우리가 시리에게 말을 많이 걸수록 시리가 더 정확히 반응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칩은 더 짧은 시간에 더 많이 일하도록 우리의 효율성을 높여 주는 ‘인간 위주의 생산성 앱’ 시리가 인간과 기계의 관계에서 결정적 진화를 보여 준다고 홍보하면서도 처음에는 이 힘이 당황스러울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솔직히 기계장치에 말을 걸어 대답하게 하고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게 한다는 것이 다소 어색할 겁니다.” 칩은 자기도 한때는 시리를 사용하는 것이 어색하고 부끄러웠다며 미리 준비한 듯 공감 어린 말투로 말했다. 그러고는 가급적 집에서 연습하기 전에는 공개된 장소에서 시리를 쓰지 말라고 조언했다. “그래도 이삼 일 지나면 시리를 사용하는 게 편해질 겁니다.”
칩의 유창한 설명은 2011년 시리가 출시됐을 때 나온 일각의 노골적 평가와 매우 대조적이었다. 구체적인 불만 사항, 예를 들면 시리가 브롱크스라는 단어를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 말고도, 생산성 향상 도구로 나온 시리에 대한 비판은 광범위했고 때로는 조롱에 가까웠다. 광고에 나오는 시리의 용도(“시리, 라테 파는 곳 알려 줘”라든가 “시리, 뛸 때 듣는 음악 틀어 줘.” 등)중 상당수는 생산성 도구라기보다 심심한 여피족들이 갖고 노는 신기한 디지털 장난감에 가까웠다. 애플사가 그 유명한 공격적인 출시 일정(기존 제품의 수익이 주춤하면 바로 새 버전들을 내놓았다.)을 순탄하게 하기 위해 기술 유토피아식 광고(“아이패드는 당신과 당신이 원하는 것 사이에 그 어떤 것도 끼어들지 못하게 하는 마법의 창”이라고 광고했다.)를 질리도록 내보낸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굳이 냉소적으로 보지 않아도 시리는 매우 정교한 미끼임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워크숍이 있은 지 며칠 후, 시리가 5분 타이머를 맞춰 달라는 나의 명령을 그대로 수행했을 때 나는 흥분을 억누르기 힘들었다. 또 내가 크로스 컨트리 운동(숲과 언덕 등 자연 지형물을 달리는 스포츠) 때문에 늦게 데리러 간다고 아들에게 전해 달라고 부탁하자 시리가 내 말을 ‘정확하게’ 문자로 전송해 줬을 때 나는 몹시 흥분했다. 또 어젯밤 매리너스(시애틀이 연고지인 미 프로야구팀) 경기 결과를 검색하라거나 내일 날씨를 확인해 달라고, 또 내가 받은 문자를 크게 읽어 달라고 하면, 시리는 이 모든 걸 다 해줬다. 처음에는 조금 어설펐지만 내 언어 습관에 익숙해지면서 시리는 점점 능숙해졌다. 여기에 여러 다른 생산성 앱(예를 들면 나의 모든 은행 업무를 총괄해 주는 앱, 조깅할 때 칼로리 소모량을 계산해 주는 앱, 또 가상공간에서 내 고향을 맴돌면서 이웃집 뒷마당을 엿보게 해 주는 앱 등)을 다운받기 시작하면서 나는 묘한 본능적 쾌감까지 느꼈다. 사실 나는 아직도 이러한 ‘도구’들이 어떤 식으로 생산성을 높여 준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으나(다른 건 몰라도 내가 끝낸 작업량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건 확실하다.) 시리 덕분에 나는 근사한 ‘기분’을 느낀다. 이러한 기분은 뿌리 깊고 본능적인 것으로, 과거 우리 선조들이 최소한의 노력으로 가급적 빠르게 식량과 피난처와 이성을 찾게 한 신경의 화학작용과 분명 관련이 있다. 그리고 애플사가 내놓은 ‘진짜’ 상품은 바로 이러한 생화학적 흥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플사는 알맹이보다 스타일에 더 신경 쓴다는 비난을 듣는다. 그렇지만 애플뿐 아니라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에 이르기까지 개인용 첨단 장비를 제공하는 업체들 대부분이 실제로 파는 것은 일종의 생산성이다. 즉 최소한의 노력으로 순간적 쾌감을 극대화하는 능력 말이다.
그렇지만 이는 애덤 스미스가 말한 의미의 생산성이 아니다. 경제학자들에게 생산성이란, 우리 선조들을 기아와 빈곤과 결핍에서 대체로 해방시킨, 효용을 극대화하고 비용을 절감시키며 생존 능력을 높여 준 것들(이를테면 노동 시간은 적고 열량은 더 많이 생산하는 더욱 효율적인 방법)을 뜻한다. 그렇지만 애플사의 엄청난 성공(애플사의 시장가치는 석유화학 기업 엑슨모빌의 시장가치보다 크지만, 엑슨모빌의 제품이 인류에게 훨씬 필수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한다.)이나 개인용 첨단 장비의 기하급수적 성장(연간 2500억 달러가 스마트폰과 태블릿에 들어간다.)을 본다면, 이 새롭고 더 개인적인 제품들이 어떤 맥락에서는 다른 제품들만큼 필수적이다. 우리는 이 제품들에 거액을 쏟을 뿐 아니라 상황을 예의 주시하는 수렵 채집인들처럼 매번 생산성이 더 높아지길 고대하며, 선조들이 새로운 무기와 도구를 손에 넣듯 새롭게 출시된 제품을 반사적으로 빠르게 낚아챈다. 충동 사회의 핵심에 놓인 것은, 언제 어디서든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이려는 이 자동 반사적 행동이다.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한다.
헨리 포드, 생산성 혁명을 일으키다
(중략)
앨프리드 슬론의 천재적 심리 전략
(중략)
강력한 개인의 시대
강력한 개인의 시대로 완전히 진입하려면 한 가지 세부 조건이 더 필요했다. 생산자에서 소비자로 도약하면서, 이제 우리는 소비하는 물건뿐 아니라 그 물건을 살 때 필요한 임금에서도 전적으로 시장의 지배를 받았는데, 이는 실로 불안정한 상태였다. 임금소득자로서 우리는 노동을 여전히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만 취급하는 기업 세계에 훨씬 더 얽매이게 되었다. 제조업체들은 일상으로 임금을 삭감하고 폭력을 동원하거나 정치인에게 뇌물을 바치는 등 노조를 결성하려는 그 어떤 시도도 박살냈다. 가장 부유한 미국인과 나머지 인구 사이의 격차가 갈수록 커진 것은 당연했다. 반면 소비자로서 우리는, 점잖게 표현하면, 우리의 이해관계와 늘 일치하는 것은 아닌 시장과 마주했다. 다수의 새로운 재화와 서비스는 결함이 있고 위험했으며 기만적이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신제품 상당수가 성능이 ‘지나치게’ 좋아서, 보통 안전이나 지속성보다는 개인의 힘을 키우는 용도로 쓰였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우리의 차량은 이제 초기 도로망이 안전하게 감당할 수 있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달린다.(1920년대의 교통사고 사망률은 현재보다 마일당 약 17배 높았다.) 한편 새로 접하게 된 소비자신용은 가계부채를 대폭 늘리면서 1929년 주가 대폭락과 뒤이은 대공황의 배경이 되었다. 개인들은 점점 사회를 희생시켜 자신들의 욕망을 채울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오늘날에는 매우 익숙한 현상이지만, 당시에는 부유층만 누릴 수 있던 ‘특권’이었다.
우리의 경제는 위험하게도 균형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생산자 국가에서 벗어나 소비자 국가로 이동할수록, 강력한 자동차나 소비자신용 같은 사적 재화가 안전한 도로나 안정적인 신용 시장 같은 ‘공공재’보다 생산량에서 앞섰다. 시장은 서서히 그러나 끊임없이 사회의 이익에서 벗어나 개인의 이익 쪽으로 기울었다. 그렇지만 이러한 이동은 전적으로 합리적이었다. 순전히 경제적 관점에서 보자면, 사적 재화 특히 개인의 힘을 더 키우는 재화를 생산하는 것이 공공재를 생산하는 것보다 훨씬 이득이었다. 그렇지만 합리성을 떠나, 시장의 중심이 공공재에서 사적 재화로 이동하면서 사회는 근대의 핵심 딜레마와 마주해야 했다. 현 상황을 다시 검토하지 않으면, 사회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자아의 경제적 이해관계에 느리지만 무자비하게 묻혀 버린다는 사실이었다.
개인과 사회의 위태로운 시소게임
공적 이해와 사적 이해의 이 같은 불균형을 해소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29년에 주가 대폭락이 있기 훨씬 이전에 시어도어 루스벨트와 우드로 윌슨 같은 개혁가들은 정부의 방대한 규모와 힘을 이용해 기업이든 개인이든 단기적 만족에만 지나치게 몰두하는 시장을 재정비하기 위해 애썼다. 그래서 스탠더드오일 같은 독점 기업과 철도 트러스트를 해체하고 규제했다. 노동자들은 최저임금과 단체교섭을 보장한 법 덕분에 서서히 힘을 키웠다. 그러므로 기업들은 점점 노조들과 평화로운 분위기를 유지해야 했다. 소비자들은 규제를 통해 안전하지 못한 제품, 오염된 식품, 금융업체의 횡포, 근시안적 투기 세력이 낳는 가격 불안정으로부터 보호받았다. 또한 정부는 교육과 연구, 특히 사회 기반 시설(도로와 다리부터 관개와 간척 사업에 이르는 모든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해 공공재의 투자 부족을 해소했고, 이를 통해 민간 기업이 투자를 늘리도록 유도했다. 당시 싹트기 시작한 순간적 만족과 편협한 사적 이해를 중시하는 문화도, 비록 수사적이긴 했지만, 끈질긴 정치적 호소를 통해 공격받았다.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1933년 취임 연설에서 한 주장이 바로 그런 경우로, 그는 미국인이 “공동의 규율을 위해 희생을 감수하는 잘 훈련된 충직한 군대처럼 행동해야” 하며, “그러한 규율에 자신의 삶과 재산을 바칠 준비와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달리 말해, 자아 중심적 경제가 스스로 생산할 수 없게 된 것 혹은 생산하려 하지 않는 것을 이제 정부가 나서서 생산하도록 만들겠다는 다짐이었다.
사회적 필요와 사적 필요의 균형을 다시 조율하려는 야심 찬 작업은 놀라운 결과를 낳았다. 바로 루스벨트가 ‘뉴딜’이라고 명명한 정책이었다. 1941년 미국이 2차 세계대전에 개입할 무렵, 미국 경제는 주가 폭락에서 회복되었을 뿐 아니라 정부와 기업 양쪽의 투자 덕분에 새로운 첨단 소비재를 선보였고 새로운 차원의 번영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전쟁 때문에 착수 시기가 늦어지긴 했지만, 덕분에 소비자 경제가 재정비되고 확대됐다. 이후 4년에 걸쳐 정부는 산업 생산을 늘리기 위해 현재 가치로 4조 3000억 달러에 달하는 비용을 들여 신규 공장 설립과 새로운 제조 공정 도입, 신기술 개발을 지원했다. 반면 소비는 배급제와 여타 전시 제한 조치를 동원해 억제했다. 1945년에 전쟁이 끝날 무렵 미국 국민은 소비되길 기다리는, 현재 가치로 1조 5000억 달러에 달하는 돈을 저축했다. 전후 시대가 시작되자, 그 모든 돈이 그리고 그 돈이 드러내는 온갖 억눌렸던 욕망이, 전보다 훨씬 커지고 정교해진 데다 소비자의 욕망에 훨씬 발 빠르게 대처하는 산업 조직체들을 통해 분출됐다.
전후 시기는 그 어느 때보다 엄청난 경제 호황에 힘입어 이상적인 모습을 보였다. 일단 소비자들의 수요가 높았다. 제너럴모터스, 포드, 에소, 제너럴일렉트릭, AT&T, 듀폰 같은 미국 기업들은 전보다 훨씬 덩치가 커졌고 효율적이었을 뿐 아니라, 전쟁으로 해외 경쟁이 사라진 세계경제 무대에서 마음껏 활개를 쳤다. 천연자원은 저렴했고(유가가 지금의 4분의 1에 불과했다.) 이를 이용한 기술이 급속히 발전해 산업 생산성 즉 노동 시간당 생산량이 연간 3~4퍼센트씩 증가했다. 이후 25년에 걸쳐 미국 경제는 규모가 거의 세 배 늘었고, 1인당 국내총생산은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일본과 서유럽도 비슷한 상황이었는데, 이들은 대개 미국 납세자들이 지원한 전후 재건 프로그램 덕분에 1인당 소득이 3배 늘었다. 게다가 결정적인 사실은 이 새로운 번영을 그 어느 때보다 폭넓은 계층이 누렸다는 점이다. 실제로 경제 사다리의 하위 집단은 상위 집단보다 소득이 빠르게 증가했다. 이제 미국 사회의 핵심 테마는 ‘신분 상승’이었다. 1960년대 무렵, 중위中尉 가계 소득은 50퍼센트 이상 늘었는데, 이는 결국 미국 사회에서 세 가구 중 두 가구가 중산층이라는 뜻이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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