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일, 금요일. 위대한 날씨
새벽 5시 반경 눈을 떴다. 창밖을 내다보니 먼동 속 어슬프레 푸른 색조로 다가오는 산세들이 위압적이면서도 인간적이다. 와아 ! 여기가 과연 주몽이 도읍한 그곳인가? 가슴이 설렌다.
“나는 천제의 아들이요 , 하백의 외손이라 ! 오늘 도망하는 중에 날 쫓는 자들이 이르렀으니 어찌하랴! 我是天帝子, 河伯外孫, 今日逃走, 追者垂及, 如何?”
이 절박한 주몽의 외침이 귀에 쟁쟁히 들리는 듯하다. 『삼국사기』에는 이 사건이 일어난 곳을 엄호수淹狐水, 엄사수淹淲水, 개사수蓋斯水 등의 말로 표현하고 있고, 호태왕비 비문에는 엄리대수奄利大水로 되어있다. “엄리奄利”를 “엄내”로 보아 그것을 “압록”의 고칭과 상통하는 것으로 비정하나, “엄니” “엄내”라는 것 자체가 “큰 물大水”이라는 뜻이니, 이 강은 대강 지금 흑룡강성과 송화강松花江이 만나는 지역 언저리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송화강은 다시 라린강拉林江과 만나는데, 그 아래는 아직도 부여현扶餘縣이라는 지명이 남아있다. 하여튼 이런 이야기, 다시 말해서 그 긴박한 시점에 강으로부터 물고기떼와 자라떼魚鼈가 떠올라 큰 물을 무사히 건널 수 있었고, 그 어별교는 그들이 건너자마자 사라져 추자追者들을 따돌렸다는 이야기, 이런 이야기를 우리는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이것이 사실인가? 신화인가?『삼국사기』에는 어별魚鼈의 떼로만 되어있고, 『광개토대왕비』에는 거북이가 갈대를 엮어 제대로 된 다리를 만드는 것으로 되어있다. 그런데 더 중요한 사실은 신화적 상상력의 차원에 있어서조차, 이러한 중대한 사건을 상상하는 우리민족의 관념적 스케일은 겨우 몇사람이 어떻게 거북이나 자라의 부력을 이용해 도강한 사건의 규모에 그치고 만다는 것이다. 이스라엘민족이 모세의 영도하에 홍해에 이르렀을 때 시내산에서 영험성을 부여받은 지팡이로 홍해를 갈라 민족이 바다벽 사이로 이동하는 그 장쾌한 모습의 스케일을 연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양자는 동일한 신화적 표현이다. 진도 고군면 금계리 앞바다에서도 바다가 갈라지는 자연현상이 목도되곤 하는데, 하여튼 불가능하지만 가능할 수도 있는 자연의 현상을 조합하여 신화적 사건을 지어내는 인간의 상상력은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것이다. 신화는 사실을 바탕으로 한다.
자아! 우선 이 환인에서 166㎞ 밖에 안떨어진 곳에 이곳의 역사를 알려주는 당대의 기록 (광개토대왕비)이 있고, 그 기록의 사실성과 실체성을 입증하는 수없는 유적(고분군이나 궁터, 성터, 그리고 여타 벽화 , 문자 자료)이 있다고 할 때, 이 환인의 흘승골성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 『삼국사기』의 몇 줄에 제약되어 있는 아득한 먼나라의 신화적 환영에 그치고 말 수는 없는 것이다.
광개토대왕은 움직일 수 없는 역사적 사실historical fact이다. 그 비는 그가 서거한지(AD 412) 2년 후에 그의 아들 장수왕이 아버지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자기 아버지 능묘 동편에 세운 것이다(AD 414: 장수왕 원년이 AD 413). 그러므로 이들에게 있어서 자기네 나라의 건국자인 시조 주몽의 이야기는 신화가 아닌 당대에 전승된 담론이다. 그러면 무엇보다도 우리의 모든 담론의 사실근거를 확보할 수 있는 확실한 자료인 비문을 한번 해석해보자 ! 이것은 서류상으로 조작할 수 없는 AD 414 년 당대의 확실한 언증言證인 것이다.
惟昔始祖鄒牟王之創基也, 出自北夫餘, 天帝之子, 母河伯女郞, 剖卵降世, 生子有聖德, □□□□□命駕, 巡幸南下, 路由夫餘奄利大水。 王臨津言曰: “我是皇天之子, 母河伯女郞, 鄒牟王, 爲我連葭浮龜。” 應聲卽爲連葭浮龜, 然後造渡。 於沸流谷忽本西, 城山上而建都焉。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광개토대왕비의 첫 머리인데,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자연스럽고도 유려한 한문의 문체이며, 전혀 이상한 고대의 수수께끼가 아니다. 다시 말해서 이 정도의 명료한 문장을 쓸 수 있는 사람들의 합리적 사고구조에 대하여 우리는 보다 치열한 이해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해석해 보면 다음과 같다(세부적 판독에 관한 이설이 많이 있다. 이하의 번역은 기존의 모든 성과를 종합한 나의 해석방식을 반영한 것이다).
아~ 옛날에 우리들의 시조이신 추모왕(鄒牟는 『삼국사기』에 朱蒙, 象解, 衆牟, 東明으로 나오는데 발음상 다 관련이 있을 것이다)께서 국가의 기업基業을 창건하신 내력은 다음과 같다. 우리의 시조 추모왕은 북부여지역에서 출생하시었는데, 그는 천제天帝(하느님)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하백河伯(물의 신=땅의 신=따님)의 딸이었다. 그는 알을 깨고 나옴으로써 인간세로 강림하시었던 것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범인과는 다른 성덕聖德(성스러운 덕성holy virtue)을 지니시었다. 그는 … 이유로 고토를 떠날 것을 하명 받으시었다. 그는 천제의 아들로서 순행의 대열을 갖추어 남하하시었다. 그런데 그 남하의 여로가 부여의 엄리대수를 지나갈 수밖에 없었다. 추모왕께서 그 엄리수의 나룻터에 이르시어 말씀하시었다: “나는 황천 皇天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하백의 딸이다. 내가 곧 추모왕이로다. 나를 위하여 갈대를 엮고 거북을 띄워라.” 그 말씀에 향응하여 곧바로 갈대가 엮어지고 거북이 떠서 다리를 받치었다. 연후에 엄리수를 무사히 건넜다. 이들은 계속 남하하여 비류곡沸流谷(비류하沸流河의 계곡. 비류하는 지금의 혼강渾江, River Hun이라는데 대체로 학설이 일치한다)의 홀본忽本(우리가 보통 졸본卒本이라 칭하는 명칭과 일치하는 것으로 보이나 졸본의 정확한 위치는 여러 설이 있을 수 있다. 『삼국사기』주에 졸본천卒本川에 이른 것을 흘승골성紇升骨城에 이르렀다고도 했다) 서쪽에 이르러, 산 위에 성을 쌓고 그곳에 국도를 건립했다(즉 고구려라는 국가를 세웠다).
이것은 결코 신화가 아니다. 바로 이 비문이 지시하고 있는 역사적 사건의 현장을 우리는 두 눈으로 목도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여타 역사적 문헌에 의지하지 않고 이 비문에 즉해서 사태를 추궁해 들어간다면 분명 추모왕은 “북부여北扶餘”라는 지역으로부터 내원하는 세력이고, 그는 철저히 “천제지자天帝之子”라는 의식 속에서 자기의 아이덴티티를 규정한 것이다. 모세는 야훼의 권능을 대행하는 인간세의 한 개체일 뿐이다 . 그러나 추모왕은 인간인 동시에 천제天帝의 아들이다. 다시 말해서 그는 인간인 동시에 하늘의 영역에 속하는 존재이다. 그의 어머니가 하백河伯의 딸이라는 것은 하늘과 땅의 교감을 상징하는 것이다. 하백은 물의 신이지만 물은 땅이라는 생명체의 심볼리즘symbolism이다. 하늘이 땅과 교감함으로써 추모왕은 인간세로 강림한 것이다. 추모왕 본인이 하늘과 땅이라는 천지코스모스의 합체合體이며 주축主軸, the Cardinal Axis이다. 그는 모세와는 격格이 다르다. 그가 곧 하늘이요 땅인 것이다. 이러한 존재의 창기創基(새로운 시작=창조)에는 인간세의 아버지가 있을 수 없다. 부권이 강성한 부계사회에서의 아들은 필연적으로 아버지의 핏줄에 종속되기 때문에 진정한 새출발이 될 수 없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the Son of God이 되기 위해서는 생부 요셉의 정액을 배제시키고 성령에 의한 동정녀 마리아 회임을 복음서기자들이 주장하듯이, 주몽 또한 인간세의 부계를 배제시키는 난생卵生의 심볼리즘의 방식으로 강세降世하는 것이다.
추모왕이 엄리대수에 이르러 외치는 당당한 모습을 보라! 그는 모세처럼 하나님 야훼의 영험한 권능을 빌릴 필요가 없다. 그에겐 야훼의 지팡이가 필요없다. 그 본인이 하백의 딸의 아들이다. 따라서 그는 물 (땅)의 신에게 곧 바로 명령할 권능을 지니고 있다: “내가 곧 하늘신과 땅신의 아들 추모왕이다.”
그는 이미 “건도建都(개국)”하기 이전에 이미 추모왕으로서의 권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산천이 모두 자신이 추모왕임을 인가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 “내가 곧 추모왕이다. 나를 위하여 갈대를 엮고 거북이를 띄워라!”
우리는 이 메세지를 신화적 사건으로 해석해서는 아니된다. 신화속의 몇 사람이 영험스러운 산천의 도움을 입어 외나무다리 같은 것을 간신히 건넌 가냘픈 사건으로 읽어서는 아니된다는 것이다. 나는 “환인”에 와서 비로소 내 생애 처음으로 “신화myth”의 의미를 실감나게 느껴보는 듯 했다. 신화의 배경에는 엄청난 역사적 사건이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신화는 그 엄청난 사건의 기술을 단순화시키고 있을 뿐이다.
추모왕은 북부여의 막강한 세력이었을 것이다. 비문은 그의 남하南下를 “순행巡幸”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소수의 도망침이 아니라, 대규모의 민족이동이 있었음을 나타낸다. 활 잘쏘고 말 잘타며, 도강의 기술이 탁월한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된 것이다.
고려 고종시의 대문호인 백운거사 이규보李奎報(1168~1241)가 김부식이 『삼국사기』의 자료로 삼았던 원사료 중의 하나인 『구삼국사舊三國史』 중의 「동명왕본기東明王本紀」를 읽고 김부식이 그 진실한 사태를 너무 소략하게 처리한 것을 통탄하면서 외치는 한마디는 참으로 오늘 우리가 되씹어 볼만하다:
及三復耽味, 漸涉其源, 非幻也及聖也, 非鬼也及神也。(『東明王篇』幷序)내가 동명왕기사를 세번 반복해 읽으면서 그 문장의 맛을 음미하고, 점점 그 본원으로 섭렵해 들어가니, 이는 환幻이 아닌 성聖이요, 귀鬼가 아닌 신神의 일이로다!
나는 이날 아침밥도 먹지 않고 새벽기운을 놓칠세라 옥수수 들판과 황금빛으로 물든 벼이삭 논두렁을 마구 달렸다. 어제 흠뻑 내린 비로 티끌먼지 하나 없이 씻겨내린 청명한 가을하늘, 그 아래 굽이치는 황금들판은 단풍 물들은 산하의 청아한 기운과 강렬한 콘트라스트를 형성하면서, 나에게 싱그러운 파노라마를 선사하고 있었다. 카메라에 포착된 영상의 질점들은 외설악 연못을 튀어오르는 잉어비늘에 반사되는 햇빛보다 더 강렬하게 나의 시선을 자극했다. 10월 3일과 4일 양이틀간 나의 니콘 카메라에 담긴 영상들은 나의 생애에서 가장 고귀한 신의 선물이었다. 나는 드디어 비류수沸流水 혼강渾江, River Hun가에 섰다. 나는 이규보의 『동명왕편』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검은 구름 홀령鶻嶺을 휘덮으니산들은 보이지 않네그러나 그 가운데수천의 사람들이 나무를 자르며집을 짓는 소리가 서려있다왕이 외치시는 듯 하다하늘이 나에게 여기 이 땅에 성을 쌓으라고독려하시는구나!홀연히 운무가 흩어지니드높은 궁궐이웅장한 자태를 드러내었다.
이러한 시구절의 바로 그 현장에 내가 서있는 것이다. 어제까지 비구름에 덮혀있던 “홀승골성忽升骨城”(=흘승골성紇升骨城. 『동명왕편』에 “홀령鶻嶺”이라 말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이 갑자기 나에게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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