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장시간 노동이라는 돼지우리에서
칼퇴근, 나만의 자유 시간, 2주 연속 바캉스, 가족과 먹는 저녁, 텃밭을 가꿀 시간, 상상의 나래를 펼칠 시간, 사랑의 싹을 틔울 시간, 더 짧은 노동, 더 많은 임금, 여유로운 삶! 이 모든 게 그저 먼 나라 남의 이야기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장시간 노동이라는 돼지우리에 갇혀 있다. 너무 오래 있다 보니 악취가 악취인 것도 모르고 있다. 너무 익숙해진 탓에 악취를 맡더라도 얼마나 고약한지 표현하지 못하는 저인지 상태에 놓여있다. 우리가 어떻게 과로 사회가 뿜어내는 불쾌한 냄새를 참고 견디는 주체가 된 것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장시간 노동은 우리 시대의 부끄러운 과거이자 현재를 말해준다. 장시간 노동은 우리 시대의 서글픈 미래이기도 하다. 미래에도 ‘과거’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 있다. 장시간 노동은 어제를 살았고 오늘을 사는 모든 이가 짊어진 고통이다. 어제와 오늘의 고통이 내 내일이 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우리는 왜 풀리지 않는 피로에 시달리는가? 우리는 왜 피로회복제를 달고 사는가? 우리는 왜 천근만근인 우리 몸을 붕붕드링크로 채찍질해야 하는가? 우리는 왜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부족한가? 우리는 왜 주말 부부가 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친정 근처로 이사를 가야 하는가? 우리는 왜 아이를 낳으면 집에 들어앉을 수밖에 없는가? 우리는 왜 야밤에도 사무실에 불을 밝히고 남아 있는가? 우리는 왜 심야 버스를 타고 퇴근해야 하는가? 우리는 왜 주말에도 출근해야 하는가? 우리는 왜 5일 남짓의 여름휴가 밖에 못 가는가? 우리는 왜 3~4주 바캉스를 갈 수 없는가? 우리는 왜 텃밭을 가꿀 시간조차 없는가? 우리는 왜 바쁘다는 하소연을 늘어놓을 수밖에 없는가? 우리는 왜 여유롭지 못한가?
이 모든 문제의 핵심은 장시간 노동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다. 장시간 노동은 체력을 회복할 최소한의 시간을 확보하는 것도 힘들게 한다. 가족 관계를 해친다. 아이의 숨결을 느끼는 즐거움을 빼앗는다. 사회관계 또한 빈약하게 만든다. 공동체 참여를 어렵게 한다. 가만히 멈춰 서서 여유를 즐길 시간을 박탈한다. 우리의 정신과 상상력을 좀먹는다. 장시간 노동은 이렇게 우리의 삶 자체를 팍팍하게 만든다.
과로 사회에서는 건강한 삶, 더불어 사는 삶, 한갓진 여가, 상상력, 공감, 민주주의,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치기가 어렵다. 장시간 노동에 예속된 우리네 삶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뿐이라며 크리스마스 이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일만하는 스크루지 영감의 삶과 다름없다. 영원토록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밀어 올려야만 하는 시시포스의 신세와 다를 바 없다. 일말의 자유 시간이 없는 상태, 그것은 노예의 범주에 해당하는 게 아닐까? 장시간 노동이라는 예속 상태는 이대로 계속돼야만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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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로 사회》는 이런 의문에 관한 진단과 해답을 담았다. 《과로 사회》는 모두 4부, 9장으로 구성돼 있다. 1장은 과로 사회의 단면을 스케치한다. 장시간 노동에 휩싸인 과로 사회의 현주소를 점검한 뒤, 인터뷰를 통해 직장인들의 일 경험과 일에 관한 인식을 구체화한다.
2장은 장시간 노동이라는 모순 덩어리의 결을 풀어보는 작업이다. 먼저 장시간 노동의 다양한 원인을 구조, 문화, 장치 차원에서 분석한 뒤, 경영 담론이 노동에서 면제된 자유 시간(휴가)을 특정한 방식으로 형상화해온 역사를 검토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시간의 민주화 가능성이 어떻게 굴절될 수밖에 없었는지 스케치한다. 또한 우리가 일-소비의 다람쥐 쳇바퀴에 갇히게 된 이유를 줄리엣 B. 쇼어의 논의를 통해 반추한다.
3장은 특별해 보이지만 특별하지 않은 사람들의 일과 삶을 들여다본다. 1990년대 중반 이후 24시간 사회로 빠르게 재편되면서 등장한 독특한 맞벌이 형태인 태그팀 커플의 일과 삶을 스케치한다. 늘 피곤할 수밖에 없는 24시간 ‘회전하는’ 사회의 자화상을 그려본 뒤, 파견이 마구잡이로 확산되는 안산 반월공단을 중심으로 날품팔이 노동자들의 일과 삶을 살펴본다. 이런 과정을 통해 대한민국 노동 세계의 현재이자 다가올 미래를 진단한다.
4장은 시간을 둘러싼 정치에 관해 살펴본다. 성월요일, 근로자의 날, 해태제과 8시간제 투쟁, 켈로그 6시간제 등 시간을 둘러싼 투쟁사례를 살펴보면서 자유 시간의 의미를 짚어보고, 과로 사회에 사는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리고 있는지 탐색한다. 마지막으로 과로 사회를 넘어서야 하는 이유를 다시 강조한다. 장시간 노동이라는 예속을 해체하고 우리가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 이야기한다.
이제 우리는 부끄러운 ‘과거’를 넘어 건강한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장시간 노동이 해체되지 않는다면 건강한 미래라는 문구는 단지 미사여구에 그치는, 그저 먼 나라 남의 이야기에 불과할 뿐이다. 장시간 노동이라는 예속을 해체한다면 우리는 다른 현재, 다른 미래, 다른 세계를 그릴 수 있다. 우리는 충분히 여유로운 삶을 살 수 있다.
우리는 지금 가만히 멈추어 서서바라볼 시간이 필요하다우리는 혼자 있을 시간이타인과 관계를 맺을 시간이창조적인 일을 할 시간이즐거움을 주체적으로 즐길 시간이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그저 근육과 감각을 움직일 시간이 필요하다그리고 친구들과 함께‘내’가 살고 싶은 세상을 구상하고기획할 시간이 필요하다─ 폴 라파르그의 《게으를 수 있는 권리》 중에서
01
대한민국은 여전히 과로 중
1. 신성일과 이주일
‘먹는 것’을 죄악시하는 보육원이 있다.
식욕은 죄악이라는 교리가 진리로 통하는 곳이다. 이 보육원에서는 오직 단식만이 교리를 실천하는 최선의 길이다. 여기서 비만은 최고의 죄악으로 여겨진다. 그렇기에 배부르게 먹는 일은 죄를 짓는 것이고 수치스러운 짓이다. 그래서인지 보육원의 아이들은 영양실조에 걸린 듯 얼굴이 퀭해 보인다.이런 교리를 모르는 전학 온 한 아이가 친구들 앞에서 초코파이를 스스럼없이 먹는 일이 발생하는데, 보육원 아이들 모두 그 아이를 악마 대하듯 한다. 신심이 두터운 주인공 ‘신성일’은 너무 놀란다. 신성일에게는 상상도 못할 일이 벌어진 것이다. 먹는 것이 죄악인 보육원에서 대놓고 초코파이를 먹는다는 것은 악마의 행동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먹더라도 화장실이나 침대 밑과 같이 구석진 곳에 숨어서 먹어야 한다. 보통 혼자 몰래 먹는 것이 당연지사였다.
《신성일의 행방불명》(2006)이라는 영화의 한 장면이다. 관객은 먹는 짓이 죄라는 교리가 허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 교리를 배우고 자란 신성일은 교리를 깨고 마음껏 식사를 즐기기가 생각처럼 쉽지 않다.
먹는 짓을 죄악시하는 보육원처럼, ‘알아서 7시에 출근하고 11시에 퇴근’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과로사社라는 가상의 회사가 있다.
7시 출근, 11시 퇴근이라는 사훈이 진리로 여겨지는 곳이다. 과로사에서 ‘비어 있는 시간’은 한 방울 남김없이 쥐어짜 일을 하는 데 투여하는 게 최선이다. 여기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대죄에 해당한다. 그래서 남는 시간에 무언가를 채우지 않으면 뒤처지는 것 같고 불안하기만 하다. 그래서 그런지 직원들은 피로에 지친 듯 눈이 잔뜩 충혈돼 있다.이런 조직 문화를 모르는 ‘이주일’이라는 한 신입 사원이 연차 휴가 앞뒤에 주말을 더해 보름이 넘는 여름휴가를 신청하는 일이 벌어지는데, 직원들 모두 “그 친구, 머리에 총 맞은 것 아니냐!”며 크게 놀란다. ‘세븐일레븐(7/11)’이라는 이름을 가진 충성도 높은 회사원도 놀라기는 마찬가지다. 세븐일레븐에게는 꿈도 꿀 수 없는 사태이기 때문이다. 긴 휴가를 보내는 게 죄와 똑같이 취급될 필요는 없지만 장시간 노동이 상식인 곳에서는 참으로 개념 없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휴가를 사용하더라도 눈치를 봐야 하고, 알아서 잘라 써야 한다. 남은 휴가는 고스란히 반납하는 게 당연지사다.
이런 풍경은 대한민국 과로 사회의 현주소다. 우리는 긴 휴가가 죄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과로사에 다니는 세븐일레븐이 장시간 노동이라는 상식을 깨고 ‘이주일’처럼 한갓지게 바캉스를 즐기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장시간 노동이 자연 법칙처럼 여겨지는 한국에서 우리는 모두 과로사에 다니는 ‘세븐일레븐’이다. 먹는 일을 죄악시하는 보육원의 ‘신성일’이기도 하다. 우리는 장시간 노동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의지를 모으거나 문제 삼기보다는 어쩔 수 없다며 포기한 채, 과로사의 관행처럼 굴러가는 톱니바퀴 리듬 속에서 오히려 편안함을 느낀다. 세븐일레븐을 자긍심, 우월감, 유능함, 편안함, 열정에 연결하는 모습도 발견된다. 사실 그 편안함이나 자긍심은 하도 오래 돼지우리에서 살면서 우리 몸에 깊게 밴 냄새인 탓에 어느새 무감각해진 편안함하고 다르지 않다. 분명 그 편안함은 불쾌한 것이다.
해마다 반복되는 서글픈 이야기가 있다. OECD 자료가 발표될 때마다 한국의 노동 시간이 너무 길다는 한탄이 나온다. 2010년 기준 한국의 노동 시간(2183시간)은 OECD 평균(1749시간)에 견줘 너무 길다는 것이다. 한국은 그리스(2109시간), 칠레(2068시간)와 더불어 최장시간 노동 국가로 불린다. 노동 시간이 가장 짧은 네덜란드(1377시간)에 견주면 800시간이나 길다. 일본(1733시간)보다도 500시간이나 길다. 삶의 만족도나 행복 지수가 낮게 나타나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해마다 반복되는 서글픈 이야기지만, 그때뿐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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