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이 멀지 않았다
위화,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1966년 중국 공산당 총서기 마오쩌둥毛澤東은 “부르주아 계급의 자본주의 요소가 공산당을 지배하고 있으니 이를 제거해야 한다”라며 프롤레타리아 계급 문화대혁명(이하 문혁)을 제창한다. 홍위병이 전국을 휘젓고 다니며 마오쩌둥주의자가 아닌 모든 사람을 잡아들였고, 멀쩡한 사람이 반혁명분자로 몰려 재산을 몰수당하고 처형되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났다. 수천 년 된 문화유산을 파괴하고 마오쩌둥의 책을 제외한 모든 책을 없애버린 것도 문혁의 속성을 잘 보여주는데, 중국 소설가 위화가 쓴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는 그 당시의 풍경을 담담히 그린다.
문혁 당시 위화의 집에는 『마오쩌둥 선집』 4권과 『마오 주석 어록』, 이렇게 5권의 책이 있었다. 다른 책을 죄다 없앤 탓이었다. 독서에 갈망이 큰 위화는 또래 소년을 만나자마자 물었다. “야, 너희 집에 책 좀 없니?” 있다고 해서 따라가 보면 죄다 『마오쩌둥 선집』. 이런 일이 반복되자 위화는 말로 묻는 대신 ‘4권은 있겠지?’라는 의미로 손가락 4개를 펴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불에 타서 없어지는 운명을 피한 소설이 있다는 걸 알아낸다. 문제는 그 책들이 수천 개의 손을 거쳐 그에게까지 왔다는 것. “나는 책 제목도 몰랐고 작가가 누구인지도 알지 못했다. 이야기가 어떻게 시작되는지도 몰랐고 어떻게 끝나는지도 몰랐다.”(81쪽)
위화에 따르면 “이야기의 시작을 알 수 없는 건 참을 수 있지만, 이야기가 어떻게 끝나는지 모르는 것은 정말로 고통스러웠”단다. 이 사람 저 사람 찾아다니며 결말을 알아내려 애썼지만, 더 읽은 이가 있다 해도 기껏해야 몇 쪽이 고작이었다. “마침내 나는 스스로 이야기의 결말을 상상하기 시작했다.……상상의 세계로 들어가 이야기의 결말을 지어내고, 이렇게 내가 지어낸 이야기에 감동하여 뜨거운 눈물을 흘리곤 했다.”(82~83쪽) 그러니까 위화는 끝 부분이 뜯겨진 소설들로 창작 열정에 불을 붙였고, 이는 결국 작가로 성공하는 밑바탕이 된다.
책에 관한 아름다운 이야기 하나. 위화는 친구와 함께 또 다른 이에게 알렉상드르 뒤마Alexandre Dumas의 『춘희』 필사본을 빌린다. 대여 기간은 딱 하루, 다음 날이면 넘겨야 한다. 위화와 친구는 머리를 맞대고 읽기 시작했고, “세상에 이렇게 훌륭한 소설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84쪽) 그들은 이 책을 영원히 소장하고 싶었기에 읽기를 중지하고 책을 베끼기 시작했다.
“우리는 온 힘을 다해 책을 베끼기 시작했다. 내가 먼저 베끼다가 지치면 친구가 이어서 베끼고, 친구가 지치면 내가 다시 이어받는 식이었다.”(84쪽) 교실에서 밤을 새우며 책을 베끼는 중학생들이라니, 그들의 문학적 열정에 그저 숙연해진다. 서로 피곤하다 보니 나중에는 5분마다 교대하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결국 “동쪽 하늘에 붉은 햇무리가 솟아오르는 것을 바라보며”(85쪽)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점심때까지 잔 위화는 학교도 빼먹은 채 필사본을 읽는데, 당연하게도 뒤로 갈수록 글씨가 엉망이었다. 그 와중에도 자기 글씨는 알아볼 수 있었지만 친구 글씨는 도무지 알아볼 수 없었다. “읽는 내내 화가 치민 나는 더 참을 수 없어 필사본을 옆구리에 끼고 문을 나섰다.”(86쪽) 농구장에서 친구를 찾은 위화는 화난 표정으로 친구를 부른다. “야, 이리 와! 이리 와보라고!” 친구가 다가오자 위화는 글씨를 알아보지 못하겠다고 하고, 둘은 숲에서 필사본을 꺼내 독서를 계속한다. 책을 읽다가 알아보기 어려운 부분이 나올 때마다 무슨 글자냐고 물어가면서. 이제 친구가 필사본을 읽을 차례였다.
“그날 밤 내가 침대에서 자고 있을 때 그 친구가 우리 집 문 밖에 와서 노기등등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러댔다. 그 역시 내가 갈겨쓴 글씨를 알아보지 못한 것이었다.……나는 하는 수 없이 침대에서 일어나 그와 함께 가로등 밑으로 갔다. 그는……감정에 북받쳐 이 소설을 읽었다.”(87쪽)
이 대목에서 우리나라의 현실이 떠오른다. 세계 10위권의 출판 대국으로 하루에 100종 이상의 신간이 쏟아지지만, 사람들은 이제 책을 읽지 않는다. 지하철 안에서도 책은 고사하고 신문조차 읽는 이도 보기 힘들 지경이니, 오죽하면 ‘지하철에서 책 읽는 사람 찾기’ 같은 이벤트가 벌어지겠는가? 지난 대선 결과를 잠시 분석해보자. 33.7퍼센트에 달하는 20대의 박근혜 지지는 17퍼센트만이 보수 후보에게 투표한 지난 대선과 비교할 때 2배가량 상승했다. 이에 대해 TV조선은 2012년 12월 22일 “(요즘 20대가)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헌법 정신에 대한 신뢰가 두텁고, ‘아버지 세대’의 산업화 공로를 인정한다”라고 감격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이게 다 젊은 층이 책 대신 스마트폰을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책을 통해 비판적 사고를 기르는 대신 채팅하면서 손가락 순발력만 기르다 보면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망각하지 않겠는가? 물론 비판적 팟캐스트들이 존재하지만, 책을 통한 앎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태에서 듣는 팟캐스트는 말초신경 수준에서 소비될 뿐, 사회를 바꾸는 에너지로 승화되지 못한다. 독서에 대해 위화는 말한다. “나는 매번 위대한 작품을 읽을 때마다 그 작품을 따라 어디론가 갔다. ……위대한 작품들은 나를 어느 정도 이끌어준 다음, 나로 하여금 혼자 걸어가게 했다. 제자리로 돌아오고 나서야 나는 그 작품들이 이미 영원히 나와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104쪽)
돈 버는 방법과 대학 입시에 관련된 책만 팔릴 뿐 문학이 점점 죽어가는 21세기 대한민국. 지금 우리는 자발적인 문혁을 수행하는 중이다. 심화되는 고령화와 함께 책을 읽지 않는 20대는 선거가 거듭될수록 위력을 발휘할 것 같은데, 그렇게 본다면 스마트폰의 개발은 영구 집권을 위한 보수의 음모일 수도 있겠다. 여기에 맞서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세계문학전집을 다 읽어야 대학에 들어갈 수 있게 한다든지, 5년간 100권 이상의 책을 읽어야 대통령 선거 투표권을 주든지 뭐든 해보자. 2017년이 그리 멀지 않았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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