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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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받는 지배자
인천에서 출발하는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에 올랐다. 강민 씨와 선애 씨 부부를 인터뷰한 지도 벌써 13년이 지났다. 당시 나는 유학생이던 그들의 유학 동기와 유학 생활에 대해 연구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졸업 후 미국에 정착하여 직업을 가지고 이민자로서 살고 있다. 그들은 어떻게 변해있을까? 기대와 궁금증이 밀려들었다. 두 편의 영화를 보고 두 끼의 식사를 하고 나자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했다. 6월 말이라 관광객이 꽤 많았고, 렌터카를 빌리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1시간을 기다린 끝에 차를 빌려 공항에서 남쪽에 위치한 서니베일로 향했다. 캘리포니아의 태양이 눈부셨다. 101번 고속도로와 실리콘밸리의 대표적인 도로 엘 카미노 레알을 따라 이 지역의 부촌인 팰로앨토, 세계적인 명문인 스탠퍼드 대학교, 구글 본사가 있는 마운틴뷰를 거쳐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 바로 앞에는 대형 한국 마켓과 여러 가게들이 있었다. 그 다음 날 함께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애플 본사가 있는 쿠퍼티노 근처 부부의 집으로 향했다.
강민 씨 부부와 아이들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준비한 장난감 선물을 건네고 집 안을 둘러보았다. 수영장이 있는 넓은 단층집, 서울에선 좀처럼 보기 어려운 집이었다. 식사를 하고 지난 13년 동안 어떻게 미국에 정착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강민 씨는 1997년 미국으로 유학 와서 2003년에 컴퓨터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3년 정도 연구소에서 일하다, 2006년부터는 실리콘밸리의 세계적인 IT 기업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의 가족은 한국 교회를 다니며 한국인 친구들과 여가를 보낸다. 종종 한국을 방문하고, 한국 드라마와 뉴스를 인터넷으로 상시적으로 접한다. 그는 연구원 시절 연봉 6만 6,000달러(6,600만 원, 1달러=1,000원으로 계산)를 받다가 실리콘밸리 기업에선 15만 달러(1억 5,000만 원)의 연봉을 받았다. 최근 그는 다른 IT 기업으로부터 30만 달러(3억 원)의 계약 보너스와 16만 달러(1억 6,000만 원)의 연봉을 제안받고 직장을 옮겼다. 현재 그의 모습은 13년 전 힘들게 유학시절을 보내던 모습과 너무나도 달라져 있었다.
대한민국 서울. 12년 전에 인터뷰한 박동준 씨를 다시 만났다. 1999년 당시 유학생이었던 그는 나의 첫 면접자였다. 그는 지금 서울 모 대학의 교수가 되어 있었다. 그는 연구실로 찾아온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의 교수 연구실은 꽤 넓었다. 나는 12년 전을 기억하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는 또렷이 기억한다면서 그 인터뷰가 벌써 12년이나 되었냐고 물으며 세월이 너무 빠르다는 말을 덧붙였다. 박 교수는 1997년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2003년 박사학위를 받고 박사후postdoc(‘포닥’) 연구원을 2년 하다가 2005년 지금의 국내 대학에 임용되었다. 그는 한국 대학이 최근 경쟁체제로 급변하면서 생존을 위해 연구를 꾸준히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자신도 계약 연장과 승진을 위해 영어 논문 출판에 매진하고 있다고 했다. 소위 ‘SCI 논문’(톰슨 로이터 사가 만드는 저명한 학술지 색인)을 써야만 한국 대학에서 인정받고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에 연구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었다. 그는 한국에서 대학교수로 임용된 이래 7년 동안 방학만 되면 바로 미국으로 떠난다. 한국에서는 생활이 바빠 연구에 집중하기 어렵기 때문에 방학 동안만이라도 미국으로 가서 그동안 밀린 연구를 몰아서 진행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같이 공부하던 학자들과 직접 교류하며 자극을 받으면 연구 생산성이 훨씬 좋아진다고 말했다. 연봉 8,000만 원 정도를 벌면서 현재의 직업과 생활에 만족하면서 살고 있었다.
‘지배받는 지배자’는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의 계층 이론에서 ‘지식인’을 일컫는 말이다. 그에 따르면 현대 사회의 지배층은 자본가 계층과 지식인 계층으로 양분되어 있다. 이 중에서도 경제적 영역을 지배하는 자본가 계층이 문화적 영역을 지배하는 지식인 계층보다 우위에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지식보다 우선한다는 것이다. 지식인은 지배층에 속하지만 이런 이유로 지배층이면서도 지배를 받는 모순적인 집단이다.
이 책은 미국 유학생의 트랜스내셔널 사회적 궤적transnational social trajectories을 다룬다. 사회적 궤적은 성장, 교육, 직업을 추축으로 한 개인의 생애 과정을 말한다. 즉 이 책은 미국 유학생들이 한국과 미국 사이에서 어떻게 교육받고 졸업 후 어떻게 직업생활을 영위하는지를 분석한다. 이 궤적은 한편으로는 학벌, 계급, 인종, 젠더와의 복잡한 함수관계 속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대학의 글로벌 위계와 직업의 트랜스내셔널 기회 구조 속에서 이루어진다.
‘트랜스내셔널transnational’(초국가적)이란 표현은 특정 사회 현상을 한편으로는 국가 간의 연결이라는 관점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의 틀을 넘어서는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의미다. 트랜스내셔널에서 트랜스trans는 연결, 변형, 초월을 동시에 뜻한다. 그러므로 미국 유학에서 트랜스내셔널리티transnationality(초국가성)는 한국과 미국 사이에서 교육과 직업 기회 간의 연결, 변형, 초월을 의미한다. 미국 유학 지식인은 유학을 통해, 그리고 추후에 한국 또는 미국의 대학이나 기업에서 일하면서 정체성, 아비투스habitus, 로컬리티의 변형과 ‘양다리성’을 경험한다. 트랜스내셔널리티에서 로컬리티, 맥락, 관계는 중요하다. 분명 미국 학위는 일본, 영국, 프랑스에서보다 한국에서 가지는 효과와 의미가 훨씬 크고, 미국 학위자들은 다른 지역보다 한국과 미국 간에 뿌리내리는 경향이 강하다. 이런 로컬리티, 맥락, 관계를 고려하면서 한국의 문화적 엘리트가 미국 대학에서 어떻게 교육받고 어떤 직업을 갖는지를 다루고자 한다. 나는 부르디외의 계층 이론을 교육과 대학의 지정학적 관점으로 비틀어서 미국 유학파 지식인들을 ‘지배받는 지배자’로 명명한다. ‘트랜스내셔널 미들맨 지식인’으로서 그들은 한국 사회에서 교육적, 문화적 헤게모니를 가지고 있지만, 한편으로 미국 대학의 글로벌 헤게모니의 지배를 받는다. 곧 한국에서의 지배자의 위치는 미국 대학이 제공한 학위와 지식 속에서 가능하고, 따라서 이는 대학과 학문의 트랜스내셔널 권력 관계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 책은 한국 학계와 지식인의 미국 중심성을 지식 생산의 물질적, 문화적 조건 속에 위치시키는 동시에 행위자들의 경험과 전략을 강조한다. 지난 20년 동안 한국의 인문사회과학자들은 한국 학계의 서구 지향성을 담론 중심적인 입장에서 비판했다. 이들이 간과했던 것은 학문적 지위와 활동의 물질적, 조직적, 문화적 조건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이었으며, 이 책은 한국 지식인의 서구 지향성을 학문권력의 트랜스내셔널 간극 속에서 지식계층 내의 계급 투쟁 또는 지위 투쟁으로 이해한다. 다시 말해 학문자본의 글로벌 생산, 위계, 분배에 따라 한국 지식인의 계층화가 이루어지는데 서구(특히 미국) 대학과 한국 대학의 격차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여기서 주체의 행위성이 또한 중요한데, 이 책은 한국 지식인들이 자신의 위치와 지식을 어떻게 전략적으로 구성해나가는지를 밝힐 것이다. 주의할 점은 교육, 대학, 학문의 권력 관계를 미국 대 한국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로 환원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 대학은 한국 지식계층에게 지배자인 동시에 해방자인데, 이는 미국 대학의 조직적, 도덕적 우위가 한국 학문 공동체의 천민성pariahood과 전근대성pre-modernity을 폭로하고 개혁을 이끌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국 지식인은 한미 간의 대학과 지식 생산의 트랜스내셔널 구조뿐만 아니라 국내 학벌, 계급, 젠더, 인종에 따라 전략적으로 자신의 위치와 궤적을 구성해나간다. 즉 이 책은 한국 지식인의 트랜스내셔널 탄생을 다중적인 권력 관계 속에서 파악한다. 이 연구는 일종의 엘리트 연구studying up(상층 연구)인데 그 대상은 한국에서 가장 똑똑한 교육 · 문화 엘리트들이다. 이제까지 한 번도 학계에서 본격적으로 다루어지지 않은 미국 유학파 지식인에 대한 분석은 대단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학벌사회의 피라미드에서 꼭짓점에 위치한 엘리트 지식인 집단의 탄생에 대한 이해로부터 한국 대학과 학계의 모순을 해체하고 그 체제를 재구성하는 단초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최고 지식 엘리트들의 취약성과 불완전성을 드러냄으로써 지식인 계층의 민주적이고 개방적인 권력 관계 재편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트랜스내셔널 미들맨 지식인
이 책은 한국 지식인의 트랜스내셔널 탄생을 미국 대학의 글로벌 헤게모니, 트랜스내셔널 위치 경쟁, 트랜스내셔널 직업 기회들 사이의 역학 관계 속에서 이해한다. 나는 미국 유학파 한국 지식인을 ‘트랜스내셔널 미들맨 지식인’으로 규정하는데, 왜냐하면 이들은 지식인의 글로벌 계층화에서 미국 대학의 지식인들보다 열등한 위치를 점하지만 한국의 국내 학위자들보다는 우월한 위치를 점하기 때문이다. 나의 이러한 이해는 미들맨 소수자middleman minority 이론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한국 지식인의 트랜스내셔널 계층화를 이해하기 위해 이를 기계적으로 대입시키는 것이 아니라 지식인이라는 새로운 대상과 지식 생산이라는 새로운 주제에 맞게 창조적으로 해석한다.
미들맨 소수자 이론은 경제적 행위와 인종 간의 관계에 대한 설명으로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지위 간극status gap’의 중간에 위치하여 이 둘 간의 경제적 활동을 연결하며 이익을 보는 계층을 일컫는다. 미들맨 소수자들은 지배 집단이 생산하는 상품에 대한 무역과 유통을 담당하여 피지배자들에게 판매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중세 유럽의 유대인, 동남아시아의 중국인, 아프리카의 인도인, 미국의 한국인 등이 이러한 미들맨 소수자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시켜주는 중간자적 ‘경제적 역할’을 수행한다. 이들의 경제활동의 특징은 산업화 이전의 자본주의와 유사한데, 보편적인 경제 원칙에 의거하기보다는 특정 경제활동 영역을 독점하거나 친족 체계에 기반한 채용 등에서 이러한 현상을 볼 수 있다. 산업화 이전의 자본주의에서는 사회계급이 양극화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 간극을 미들맨이 채워주며, 이는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사이의 완충buffer 역할을 한다. 이 과정에서 미들맨은 이민국인들의 적대감host hostility을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 유럽에서 있었던 유대인 탄압과 학살이 대표적인 사례다. 에드나 보나치치Edna Bonacich는 세계체제론에 입각하여 전근대적인 미들맨 이론을 현대 미국 사회에서 소상공업small business에 종사하는 아시아인들에게 적용하였다. 이들은 백인과 흑인 사이, 즉 백인이 지배하는 대기업 회사와 임금 수준이 낮은 흑인 사이를 소상공업을 통해 연결한다. 아시아인들은 중간에서 이익을 누리지만 피지배층의 보복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1992년에 있었던 LA 폭동 때 한인과 흑인의 갈등이 대표적인 예다. 미들맨 소수자들은 지배계층에게 지배받으면서 피지배계층을 지배하는 모순된 위치에 놓인다. 이민국의 적대감에 대응하여 이들은 인종적으로 단결하며ethnic solidarity 동일한 거주 지역, 모국의 언어 유지, 본국인끼리의 결혼 등을 통해 모국의 정체성과 문화를 고수하려고 한다. 그런데 이는 또한 이들에 대한 적대감을 부추기기도 한다. 따라서 미들맨 소수자 이론은 미들맨의 중간자적 경제적 역할, 이민국인들의 적대감, 같은 인종끼리의 단결 간의 순환적인 관계를 설명한다.
‘트랜스내셔널 미들맨 지식인’ 이론은 한국 지식인의 계층화를 지식 생산의 글로벌 위계 안에 위치시킨다. 미국과 한국 사이의 ‘중간에 끼인 존재’로서 이들은 글로벌(미국 또는 서구) 지식 집단과 로컬(한국) 지식 집단의 ‘지식 간극knowledge gap’의 중간에 위치하며, 지식 매개자의 역할을 담당한다. 이런 종류의 지식인은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존재해왔다. 신라시대 당나라로 유학했던 불교 지식인들(유학을 사이에 두고 원효와 의상의 갈라진 운명은 가장 드라마틱하게 역사적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 유학과 실학을 배우러 명나라와 청나라로 떠났던 지식인들, 일제강점기 일본에 유학했던 근대 지식인들은 트랜스내셔널 미들맨 지식인의 역사적 전형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 유학은 지식 생산의 트랜스내셔널 이해관계에 놓이게 되고, 한국 지식인은 미국 대학과 한국 대학의 지식 간극의 중간에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 이들은 서구의 지배적인 주류 지식인 집단에 비해 그 수와 영향력이 작고, 학문의 아류일 가능성이 크며, 학문 생산의 질이 떨어지는 ‘지식인 소수자’ 집단을 이룬다.
트랜스내셔널 미들맨 지식인은 대학의 글로벌 위계 속에서 탄생한다. 미국 대학은 지식 생산의 글로벌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으며, 한국 대학은 상대적으로 열등한 위치를 차지한다. 대학은 지식과 지식인의 생산이라는 이중의 역할을 담당하며, 이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지식 생산은 특정한 기술사회적 하부구조 안에서 이루어지며, 지식인은 이 생산 과정의 주체다. 여기서 미국 대학은 한국 대학보다 월등히 우월한 지식 생산 구조를 가짐으로써 세계 지식체계를 선도해나간다. 미국 대학과 한국 대학은 지식 생산 능력에서 큰 격차를 보이는데, 한국인 유학생들은 이 간극에서 트랜스내셔널 기회를 포착한다. 트랜스내셔널 미들맨 지식인은 어떤 의미에서 지식 생산의 경제적 지위를 뜻하며, 지식인의 계급적 질서에서 중간적 위치에 있음을 의미한다. 미들맨 소수자가 식민지적, 전근대적 상황에서 출현하듯 트랜스내셔널 미들맨 지식인은 한국 학계의 지적 식민성과 전근대성 속에서 탄생한다.
미국에서 교육받은 한국 지식인들은 귀국하거나 미국에 정착한다. 트랜스내셔널 이동의 상황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지식인은 미국에서 생산된 지식을 한국으로 수입하는 역할을 하며, 이를 한국 실정에 맞게 변형, 적용시킨다. 이들의 한국에서의 지식 생산은 일반적으로 미국의 연구 중심 대학보다 독창성, 중요성, 파급력이 떨어지는데, 이는 연구 자원의 부족, 연구 인력의 전문성 부족, 연구 인정 체계의 파편화, 연구 집중 강도의 약화, 연구 문화의 파벌화와 정치화, 한국 학문 공동체의 천민성pariahood으로부터 기인한다. 따라서 트랜스내셔널 미들맨 지식인의 주요 생존 전략은 미국에서 생산된 지식을 빨리 받아들여 한국의 로컬 지식인들에게 판매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훈련받은 한국 지식인들은 영문 저널 투고, 국내외 특허 출원, 연구의 글로벌 네트워킹에 참여하여 세계적인 지식 생산에 기여함에도 불구하고 중요하고 독창적인 연구 성과를 내지 못하고 세계 지식체계의 주변에 머무르는 경향이 있다.
유학 후 미국에 정착하는 경우 한국 지식인들은 미국의 대학과 기업에서 미국인들과 같이 지식 생산에 참여하게 된다. 일부는 탁월한 지식 생산을 하지만 대부분은 지식 생산의 상층부에 진입하지 못한다. 무엇보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지식 생산의 탁월함이라기보다 이민 사회의 전문가로서 살아남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궤적은 백인 중심의 미국 전문가 사회의 인종적, 언어적 질서 속에서 제약을 받는다. 또한 이들은 영어가 완벽하지 못하기 때문에 지식 생산의 과정에서 커뮤니케이션 장벽에 부딪히게 되고, 이로 인해 지식 생산의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데, 이는 곧 연구와 사회 네트워크 확장의 어려움을 뜻한다. 이러한 언어자본과 사회자본 확충의 어려움 때문에 미국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장벽을 경험하면서 이들의 학문적, 전문가적 야망은 떨어지게 된다. 상당수의 지식인들은 한국으로 돌아와서 주류적인 위치를 점하려고 하는데 이는 트랜스내셔널 기회와 연관된다. 미국에 정착한 한국 지식인들도 미국 지식 생산 체계의 상층부를 차지하기 힘들기 때문에 중간자적 역할을 수행하는 데 그친다. 이들이 차지하는 위치에 따라 중간자적 역할은 달라진다. 예컨대 대학에서는 학문적 리더들과 추종자들 사이, 기업에서는 상층부 요직과 하층부 생산직 사이의 중간에 위치하게 된다.
한국과 미국 사이에 끼인 미들맨 지식인은 끊임없는 정체성 혼란을 경험한다. 한국에 정착한 지식인들은 미국과 한국의 학문 공동체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침으로써 어디에 소속되어 자신의 연구와 삶을 헌신할지 고민한다. 미국 유학을 통해 형성된 이들의 리버럴 아비투스는 한국사회를 여전히 지배하고 있는 유교적, 가부장적 질서와 충돌한다. 미국에 정착한 지식인들은 ‘트랜스내셔널 이방인 엘리트’로서 전문가적 성공을 거두지만 백인 중심의 인종적 질서와 영어 중심의 언어적 질서에서 소외감을 느낀다. 이들은 경제적으로는 주류에 속하지만 사회적, 정치적으로는 비주류에 속하는 모순을 경험한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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