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그 많던 급진주의자는 어디로 갔나?
지난 20년간 운동 조직들은 갈수록 기업처럼 보고, 생각하고, 행동하게 되었다. 이런 주장에 심기가 불편해지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보다 훨씬 파격적인 주장도 서슴지 않을 것이다. 조직과 문화권을 막론하고 운동의 기업화가 빠르게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 바로 우리의 주장이다. 이제 ‘직업’ 운동가 중에서 새로운 국제경제 질서나 세계 정부, 아니면 다국적 기업의 철폐를 부르짖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린피스 공동 설립자인 밥 헌터Bob Hunter의 표현을 빌리면 오직 비주류의 엄선된 소수만이 아직도 이 세상에 ‘의식 혁명mindbomb’을 일으켜 새로운 ‘세계 의식’을 만들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
갈수록 많은 운동가들이, 특히 거대한 캠페인 조직에서 활동하는 운동가들의 경우 친시장적인 언어를 사용한다. 이들은 좀 더 신사적인 자본주의, 가령 공정무역, 〔친환경 · 공정무역〕 인증서, 친환경 상품 시장 같은 것들을 요구한다. 록 스타의 후원과 백만장자의 선행에 대한 뒷이야기가 넘쳐 난다. 전 지구적인 문제에 대한 해법은 윤리적 구매를 위한 캠페인으로 귀결된다. 즉, 사회적 대의를 상품화하여 ‘카푸치노〔를 홀짝이는 중산〕계급’에게 ‘선행’을 하고 있다는 기분을 판매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운동가들이 아직도 권력자들에게 진실을 전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오늘날 운동가들은 이 권력에 얽매여 꼼짝 못하고 있다. 대기업(월마트, 맥도날드, 나이키)과의 동반자 관계는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이제는 흔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은근히 바라는 일이 되었다. 단적으로 세계자연기금 글로벌 네트워크 운동가들은 코카콜라에서 재정을 지원받고 이 회사와 긴밀하게 공조한다. 세계자연기금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코카콜라와 공조하는 이유를 굳이 감추지 않는다. 한때 세계자연기금 캐나다 지부의 의장이자 최고경영자였던 제랄드 버츠Gerald Butts는 이렇게 설명한다. “지속가능성 문제에서 코카콜라는 국제연합United Nations, UN(이하 유엔)보다 더 중요하다.
코카콜라가 지배하는 세상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걸까? 어째서 어떤 캠페인 조직은 다른 조직보다 기업화의 영향을 더 많이 받고 있는 걸까? 운동의 기업화는 운동의 본질과 힘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뒤에서 보여 주겠지만 이에 대한 대답은 결코 간단치 않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운동가들이 운동의 기업화에 맞서기 위한 반격을 조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전 세계 운동의 표면을 살펴보면 시장 및 정치와 상호작용하는 세 과정이 운동을 기업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첫 번째 과정은 안보를 빌미로 저항을 탄압하는 것이고(3장), 두 번째 과정은 사회적 삶의 사유화이며(4장), 세 번째 과정은 운동의 제도화다(5장).
서로 맞물려 있는 이 세 과정은 전 지구적인 차원에서 권력과 저항의 배열을 조정한다. 기업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명목으로 사회적 힘을 행사하고, 정부는 사회 서비스를 감축하고 권한을 기업에 이양하며, 소비주의가 확산되고, 국가가 대중들의 저항을 억누른다. 그 결과 전 세계적으로 운동의 본성에 큰 지각변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갈수록 많은 기업들이 운동 집단을 재정적으로 후원하고 동반자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운동가들이 갈수록 기업화된 프레임 안에서 의사소통하고 주장을 펼치며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또한 친기업적인 선택을 목표 달성을 위한 논리적이고 효과적인 전략으로 바라보는 운동가들이 점점 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운동가들이 기업에 투항해 버린 것은 아니다. 기업의 악행은 지금도 계속 운동가들의 공분을 자아낸다. 모든 운동 영역에서 많은 활동가들은 자본주의의 가치와 제도에 분명하게 도전하고 있다. 기업화를 늦추거나 역전하기 위한 노력이 성공적인 결실을 맺은 사례도 적지 않다. 봉기 역시 전 세계적으로 조직적인 형태로든, 자발적인 형태로든 끊이지 않고 일어난다. 페이스북Facebook과 트위터Twitter 같은 소셜 미디어 덕에 수십만 명이 운집하여 조작된 선거에, 부패한 독재 정권에, 기업의 약탈에 맞서 분노를 표출하기도 한다. 사회적 소요는 무리를 이루고 파문을 일으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 우리는 훨씬 더 많은 (그리고 더 큰) 대중 저항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세계 인구가 100억 명에 육박해 가고, 통신 기술과 경제는 꾸준히 세계화되고 있으며, 시민들은 늘 구조 조정 상태에 있는 세계경제의 팍팍함에 분노로 대응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전반적으로 운동이 기업화되는 경향을 보인다는 주장을 펼칠 것이다. 물론 이는 엎치락뒤치락하는 경합이며, 결코 피할 수 없는 길도 아니다. 하지만 인권 · 성평등 · 사회정의 · 동물권 · 환경운동 조직들의 의제와 담론, 그리고 그들이 제기하는 문제와 제시하는 해법들은 전 지구적 자본주의에 도전하기보다는 순응하는 경향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는 부분적으로 정부 감사와 기업의 보복, 긴축의 압력에서 비롯된 자기 검열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무엇이 실행 가능하고 효과적인지에 대한 활동가 스스로의 판단 역시 무시하지 못할 역할을 하고 있다.
기득권을 위한 노력
운동의 기업화는 단순히 기업이 일방적으로 운동을 매수하는 것이 아니다. 기업은 정당성을 확보하고 마케팅 기회를 확대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캠페인 조직advocacy organization을 등에 업고자 한다. 하지만 운동가들 역시 재정을 마련하고 동반자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기업 못지않은 열정으로 기업에 구애 행위를 하고 있다.
이들의 열성을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다. 기업과 동반자 관계를 맺으면 캠페인 조직들은 지배적인 정치 · 경제 제도 내에서 영향력을 강화할 수 있다. 운동가들이 기업 이사회나 국제적인 협상 테이블에서 한자리를 차지하고 앉는 것도 이 덕분이다. 또한 기업과 동반자 관계가 형성되면 더 많은 재정을 확보하여 훨씬 더 많은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다. 물론 권력의 실세에 접근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하지만 기득권 밖보다는 안에 있는 운동가들이 아무래도 기업의 지배 구조를 결정하거나 정책 개혁을 촉구하여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높은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어째서 그렇게 많은 캠페인 집단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심지어는 열렬히 기업화를 받아들이고 있는지는 영향력에 대한 자연스러운 욕망을 가지고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다. 캠페인 집단들은 이 영향력을 이용하여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큰 희생이 따른다. 캠페인 집단은 전 지구적 자본주의가 정해 놓은 울타리 안에서 움직여야 하고, 세계질서를 뒤바꾼다는 생각은 접어 둬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세계정치에 몇 가지 영향을 미친다. 먼저 최소한 시스템상의 광범위한 변화를 요구하는 관점에서 보았을 때, 오늘날의 운동은 40~50년 전에 비해 급진적인 색채가 훨씬 약해졌다. 또한 해가 갈수록 운동가들의 자금 확보, 프로젝트, 목표에 기업의 이해관계가 얽혀 들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2장에서 자세하게 다룰 것이다. 운동과 코포라티즘corporatism을 구별하는 것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그 대신 운동이 기업화되면서 비판적인 사상과 사람들은 주변으로 밀려나고 있다.
운동의 기업화는 북반구에서 더 강하고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아시아, 아프리카, 서유럽, 라틴아메리카의 공동체 기반, 상향식 풀뿌리운동보다는 서유럽과 북미에 본부를 두고 있는 대규모 비정부지구Non Governmental Organization, NGO의 기업화가 더 빠르고 그 정도가 심하다. 남반구와 북반구를 아울러 많은 공동체 집단과 풀뿌리운동은 기업화에 저항하고 이를 거부한다. 그럼에도 운동의 기업화는 이런 집단들이 조직을 갖추고 직접행동 같은 전술의 재정적 · 법적 기틀을 닦는 환경을 바꿔 놓고 있다. 자본주의 제도들을 개혁하는 데 열을 올리는 비정부기구들은 특히 기업화에 취약한 모습을 보인다. 얼핏 보면 이는 직관적인 판단과 상반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비판과 저항을 동화하는 자본주의의 힘을 고려했을 때 비정부기구의 기업화는 여러 가지 점에서 논리적으로 완벽하다. 다국적 기업들은 거대한 전 지구적 비정부기구들과 동반자 관계를 맺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이는 비판과 압력의 성격을 바꿔놓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기업의 성장을 정당화하고 효율성과 경쟁 우위를 확보해 이윤을 얻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다시 한번 밝히자면 우리는 기업이 운동가들을 으르거나 꾄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높은 연봉이나 제트기를 타고 다니는 일상을 위해 신념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운동가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거의 모든 운동가들은 헌신적이다. 자신들이 믿는 대의를 위해 소득과 전문적인 지위를 희생한 이들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대다수는 더 나은 세상을 진정으로 원한다. 남아프리카의 삼림 파괴를 중단하고 에이즈에 걸린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어 한다. 분명히 해 두자면 이 책은 운동가들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하려고 쓴 것이 아니다. 1960년대나 1970년대의 운동에 대한 향수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쓴 것도 아니다. 우리는 운동의 기업화가 세게 정치의 변혁 가능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크게 경종을 울리려는 것뿐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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