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멩이를 사랑한다는 것
누구든 사랑할 수 있다는 것
집 앞 과일 트럭이 떨이 사과를 한 소쿠리 퍼주었다
어둑해진 골목을 더듬거리며 빠져나가는 트럭의 꽁무니를 오래 바라보았다
낡은 코트를 양팔로 안아드는 세탁소를
부은 발등을 들여다보며 아파요? 근심하는 엑스레이를
나는 사랑했다 절뚝이며 걷다 무심코 발길에 차이는 돌멩이
너는 참 처연한 눈매를 가졌구나 생각했다 어제는
지친 얼굴로 돌아와 말없이 이불을 끌어다 덮는 감기마저
사랑하게 되었음을
내일이 온다면
영혼이 떠난 육신처럼 가벼워진 이불을
상할 대로 상해 맛을 체념한 반찬을 어루만지기로 한다
실연에 취한 친구는 자주 울곤 했는데
사랑은 아픈 거라고 때때로
그 아픔의 눈물이 삶의 마른 화분을 적시기도 한다고 가르쳐주었는데
어째서 나는 이토록 아프지 않은 건지
견딜 만하다, 덤덤히 말한다는 것
견딜 만한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텅 빈 곳으로의 귀가를 재촉한다는 것
이 또한 사랑이 아닐까 궁지에 몰린 사랑,
그게 아니라면
도리가 없다는 것 더 이상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우연히 날아온 무엇에라도 맞아 철철 피 흘리지 않을 도리가
체념을 위하여
희망과 야합한 적 없었다 결단코
늘 한발 앞서 오던 체념만이 오랜 밥이고 약이었음을
고백한다 밤낮 부레끓는 숨과 다투던 폐암 말기의 어머니
악착같이 달아 펄떡이던 몸뚱이를
일찍이 반지하 시린 윗목에 안장한 일에 대하여
마지막 구원의 싸이렌마저 함부로 외면할 수 있었던 조숙한 나약함에 대하여
방 한 귀퉁이 중고 산소호흡기를 들여놓고
새벽마다 동네 장의사 명함만 만지작거렸다
그 어떤 신념보다 더욱 견고한 체념으로, 어김없이 날은 밝아
먼 산 기울어진 해도 저토록 가쁘게
가쁘게 도시의 관짝을 여밀 수 있음을 알았다 습관처럼
사랑을 구하던 애인이 어느 막다른 골목에서 뒷걸음질 쳐 갈 때도
시험에 낙방하고 아무 일자리나 찾아 낯선 가게들을 전전할 때도
오로지 체념, 체념만을 택하였다 체념은 나의 신앙
그 앞에 무릎 꿇고 자주 빌었으며 순실히 경배하였다
체념하며 산 것이 아니라 체념하기 위해 살았다 어쩌면
이제 와 더 깊이 체념한다 한들 제 발 살 려 다 오
끝까지 매달리던 어머니의 원망 같은 무덤이 핏빛 흉몽으로 솟아오르고
안부조차 알 길 없는 애인이 허랑한 시절이 막무가내로 뺨따귀를 갈긴다 한들
행여 우연히 한번쯤 더듬거리듯 옛날을 불러세운다 한들
절망은 여전히 온 힘을 다해 절망할 것이고
나는 기어이 침묵으로 순교할 것이다 다시 체념을 위하여
도망치듯 나를 여기까지 끌고 온 굳센 체념을
용산을 추억함
폐수종의 애인을 사랑했네 중대병원 중환자실에서 용산우체국까지 대설주의보가 발효된 한강로 거리를 쿨럭이며 걸었네 재개발지구 언저리 함부로 사생된 먼지처럼 풀풀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도시의 몸 구석구석에선 고질의 수포음이 새어나왔네 엑스선이 짙게 드리워진 마천루 사이 위태롭게 선 담벼락들은 저마다 붉은 객담을 쏟아내고 그 아래 무거운 날개를 들썩이던 익명의 새들은 남김없이 철거되었네 핏기 없는 몇그루 은행나무만이 간신히 버텨 서 있었네 지난 계절 채 여물지 못한 은행알들이 대진여관 냉골에 앉아 깔깔거리던 우리의 얼굴들이 보도블록 위로 황망히 으깨어져갔네 빈 거리를 머리에 이고 잠든 밤이면 자주 가위에 눌렸네 홀로 남겨진 애인이 흉만胸滿의 몸을 이끌고 남일당 망루에 올라 오 기어이 날개를 빼앗긴 한 마리 새처럼 찬 아스팔트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치는 꿈이 머릿속을 낭자하게 물들였네 상복을 입은 먹구름떼가 순식간에 몰려들었네 깨진 유리창 너머 파편 같은 눈발이 점점이 가슴팍에 박혀왔네 한숨으로 피워낸 시간 앞에 제를 올리듯 길고 긴 편지를 썼으나 아무도 돌아올 줄 모르고 봄은 답장이 없었네 애인을, 잃어버린 애인만을 나는 사랑했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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