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경성의 봄
1938년 3월 23일.
막 도착한 경원선 열차가 경성역 구내에 승객들을 잔뜩 부려 놓았다. 중절모에 양복 입은 신사들과 지짐 머리 신여성들부터 교복에 모자 쓴 학생들, 올망졸망한 보따리를 든 시골 노인들, 아이 업은 아낙네들까지 행렬은 끝이 없었다. 먼 나들이 차림새가 아직 남아 있는 승객들은 열차의 시발점인 원산 안쪽에서 탔을 테고, 옷자락이 잔뜩 구겨져 흐트러진 행색의 승객들은 회령이나 청진에서부터 함경선을 타고 와 다시 경원선으로 갈아탔을 것이다. 아니면 국경 너머 용정 혹은 길림이나 신경 등 저 멀리 만주에서 온 이들인지도 몰랐다.
“동주! 몽규!”
인파에 치이고 휩쓸리며 학생복 차림의 두 젊은이가 막 경성역 대합실에 들어설 때였다. 자신들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와 걸음을 늦췄다. 그러나 눈앞에는 출구로 향하는 이들의 캄캄한 뒤통수만 보일 따름이었다.
“여기네, 여기! 동주야, 몽규야! 이쪽이다!”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사람들의 물결을 거슬러 오느라 허우적대면서도 위로 치켜든 하얀 손이 보였다. 과연 출입문 쪽 둥근 기둥 뒤편에, 북간도 용정의 고향 선배 라사행의 얼굴이 눈에 띄다 다시 인파에 가려지곤 했다.
“형님!”
두 청년은 한꺼번에 외쳤다. 걸음을 좀처럼 내디딜 수 없기는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겨우 눈인사만 주고받던 세 사람이 한숨 돌리며 손이라도 맞잡을 수 있게 된 것은, 대합실을 빠져나와 드넓은 경성역 광장에 섰을 때였다. 그늘진 귀퉁이에 겨울의 매운 기가 조금 남아 있긴 했으나 광장 위로 쏟아지는 삼월 한낮 햇살은 여지없이 느긋한 봄날이었다.
“용정에서 경성까지, 기차 안에서만 꼬박 하루를 더 보냈겠구나. 먼 길 오느라 정말 고생 많았다.”
“아닙니다, 형님, 이렇게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동주가 먼저 말했다. 오뚝한 콧날에 눈매가 무척 부드러워 호감을 주는 인상이었다. 옆에 있던 몽규도 말했다.
“경성까지야 뭐……. 이보다 더 먼 중국도 다녀온걸요.”
휘파람 불 듯 경쾌한 목소리였다. 동그란 안경테 뒤에 빛나는 두 눈도 목소리처럼 또렷하고 영롱했다. 동주보다는 반 뼘쯤 키가 컸고, 학생복 옷깃 속의 목이 껑충했다. 긴 여행으로 옷자락은 후줄근하게 구겨져 있었지만, 낯빛은 낯선 도시에서도 전혀 구김 없었다. 성품도 거침없어 보였다. 동주는 깔끔한 성미답게 옷매무새는 그런대로 반듯했지만 낯선 곳이라 그런지, 시험을 앞두어 그런지 다소 긴장한 듯싶었다.
윤동주와 송몽규. 스물두 살 동갑내기에 사촌 간인 이들은, 머나먼 북간도 용정에서 경성의 연희 전문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여러 번 기차를 갈아타고 온 것이다. 입학시험을 앞두고 있어 마냥 푸근한 마음은 아니었다. 세 살 위인 라사행은 용정의 은진 중학교 선배다. 중국에 있는 임시 정부 군관 학교에서 몽규와 함께 훈련받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고생한 적도 있었다. 감옥에서 나온 뒤 경성으로 올라와 지금은 감리교 신학교 2학년에 다니고 있다.
고종사촌 몽규가 선배 라사행과 그간의 안부를 나누는 동안, 동주는 역 광장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지은 지 10여 년이 된다는, 원형 돔이 얹힌 붉은 벽돌의 역사驛舍는 장중했고 들고 나는 사람의 수도 용정역에 비할 바 아니었다. 인력거 정거장에는 인력거들이 느런히 늘어섰고, 자동차나 승합차도 꽤 보였다. 지게꾼들은 고리짝이나 보따리 등 짐을 잔뜩 든 사람에게 다가가 짐삯을 흥정했고, 전차가 올 시간이 다 되었는지 많은 사람이 정거장으로 뛰어갔다. 광장 건너편에는 비스듬히 놓인 대로를 따라 신식 상점들이 줄지어 섰고, 번듯하고 높은 건물도 여럿 보였다. 그 끝에, 반쯤 가려지긴 했으나 높다랗게 기와지붕을 얹어 놓은 문루가 눈에 띄었다. 말로만 듣던 남대문인가 보았다. 잇대어 있던 성벽은 모두 잘리고 대문만 홀로 서 있는 모습이 애잔했다.
어릴 때 지내던 북간도 시골 마을 명동촌에 비하면 중학시절을 보낸 용정도 번화하긴 했으나, 경성은 과연 대도시였다. 용정역 부근 신시가지는 사람들이 모여든다 해도, 조선 사람보다는 중국 사람이나 제복 입은 일본인이 많았고 간혹 러시아나 다른 서양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경성역 광장에는 흰옷 입은 사람들이 많았다. 더러 양복이나 학생복을 입긴 했어도 거의가 조선 사람이었다. 손님을 끄는 소리, 일행끼리 서로 부르며 찾는 소리, 깎아 달라느니 안 된다느니 흥정하는 소리, 신문팔이 아이들이 “신문 사려!” 외치는 소리……. 봄 하늘 위로 흩어지는 저 수많은 소리는 모두 조선의 소리, 조선말이었다.
동주는 체온만큼 따스한 물속에 몸을 담그고 있는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고향 집을 나설 때부터 겹겹이 껴입고 온 무거운 옷들을 얼른 벗어 버리고 싶었다. 삼월이라 해도 북간도는 땅이 꽝꽝 얼어 있는 데다가 겨울바람의 기세도 여전히 맹렬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을 포근히 감싸는 것은, 눈꺼풀을 맡기고만 싶게 따사롭고도 나른한 조선의 봄 햇살이었다. 햇살은 광장 위에, 사람들 위에, 뒤로 보이는 북악과 인왕이란 흰 돌산들에 고루 가 닿았다.
‘아니, 저건…….’
광장을 한 바퀴 흐뭇하게 돌아 나오던 동주의 눈살이 갑자기 찌푸려졌다. 인력거 정거장에 가려 언뜻 눈에 띄지 않았는데, 역 건물 옆에 일본 경찰 주재소가 있었던 것이다. 하늘을 찌르듯 높다란 깃대 위에 일장기가 펄럭이며, 역 광장과 광장에 모여든 조선 사람들을 거만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못 볼 것을 본것처럼 동주는 고개를 홱 돌려 버렸다. 잔잔하게 약동 치던 심장이 일시에 베이는 듯했다. 저 일장기의 붉고 둥근 원, 히노마루는 저들의 단심丹心이 아니라, 저들에게 상처 입은 자의 핏빛 흔적인지도 몰랐다. 갑작스러운 동주의 기세에 라사행과 몽규가 이쪽을 바라보았다. 상황을 짐작한 듯 주재소 쪽을 힐끗 보며 라사행이 말했다.
“고국 땅이라고 밟았는데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게 저놈의 깃발이라니……. 어쨌건 주재소 순사나 헌병과는 마주치지 않는 게 좋아. 너희들도 알고 있겠지만, 얼마 전에 도산 안창호 선생이 감옥에서 병보석으로 나와 돌아가셨단다. 문상도 못 하게 하고 장례도 제대로 못 치르게 하더니, 젊은 사람들이 모여 있기만 하면 괜히 트집을 잡곤 해. 그 얘긴 차차 더 하기로 하고, 어디 가서 요기부터 하고 기숙사로 가자.”
세 청년은 광장을 돌아 서대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동주와 몽규는 당분간 냉천정에 있는 감리교 신학교 라사행의 기숙사에 머무르면서 시험 준비를 하기로 했던 것이다.
시험은 닷새 뒤, 3월 28일이었다. 몽규는 그 와중에도 경성 구경을 한다며 자주 들락거리고, 방에 들어와서는 느긋하게 잡담만 했다. 이제껏 어떤 시험에도 실패한 적 없고 늘 우등을 차지했던 몽규였다. 그러나 동주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대범하지 못한 성격 탓만은 아니었다. 제국 대학 법문학부나 의학 전문학교처럼 장래가 보장되는 공부를 하라는 집안 어른들에 맞서, 고집을 피워 선택한 학교였다. 제대나 의전이 아닌 사립 전문학교 시험이라 해서 만만히 볼 수도 없었다. 경성만 해도 경기, 양정, 휘문 등 한다하는 고등 보통학교가 한둘이 아니었고, 조선 팔도를 둘러보자면 더욱 많을 것이다. 자신들처럼 상급 학교에 진학하려고 만주에서 온 중학 졸업생들도 꽤 될 터였다.
연희 전문의 입학시험은 국어, 영어, 조선어, 역사, 국사 및 서양사의 다섯 과목이었다. 서양에서 공부한 교수들이 많아 어렵게 출제한다는 영어도 걱정되었지만, 버젓이 ‘국어’니 ‘국사’로 불리는 일본어와 일본사는 중학 시절부터 도무지 머리와 가슴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나마 자신 있는 과목은 조선어였다. 연희 전문처럼 입학시험 과목에 조선어를 포함한 곳은 드물었고, 그래서 이 학교는 더욱 마음이 끌렸다.
그럭저럭 날짜가 다가왔고, 동주와 몽규는 문밖 교외 신촌정에 있는 연희 전문학교에 가서 시험을 치렀다. 오래전부터 그토록 한번 가 보고 싶어 했건만, 긴장한 탓에 학교 안팎을 제대로 둘러볼 여유는 없었다.
“동주, 합격이다! 몽규, 합격이야. 둘 다 합격이로군!”
시험을 치른 뒤 일주일째 되는 1938년 4월 3일 일요일. 예배를 마치고 잠깐 나갔다 오겠다던 라사행이 기숙사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손에는 『동아일보』가 들려 있었다. 갓 발행한 신문 특유의 휘발유 냄새가 진했다. 다음 주에나 합격자를 발표할 줄 알았는데, 신문에 먼저 실린 것이다. 걱정하지 말라며, 다 잘될 것이라며 동주와 몽규에게 큰소리치던 라사행도 내심 궁금했던 모양이다. 몽규는 싱긋 미소 지었고, 며칠간 잔뜩 곧추서 있던 동주의 긴장은 그제야 풀렸다.
몽규가 힐끗 보고 건네준 신문을 동주는 찬찬히 살펴보았다. 2면 하단, 입학시험 합격자 발표란에 연희 전문학교가 먼저 나왔고, 그중 문과 합격자 명단에 윤동주와 송몽규, 자신들의 이름이 있었다. 동주는 몇 번이고 다시 들여다보았다. 새 학기부터 함께 공부하게 될 벗들의 이름도 가만히 소리 내어 읽어 보았다.
“백인준, 김삼불, 강처중, 송몽규, 윤동주, 유영, 이경수, 이순복, 허웅, 엄달호…….”
발표를 기다리는 동안 조바심을 내는 한편으로, 시험 치르느라 너무 긴장해 학교의 모습을 제대로 새겨 두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 그런데 어느새 동주의 눈앞에는, 신촌 연희 전문학교 교정의 회갈색 석조 건물과 그 앞의 언더우드 동상과 돌계단, 백양나무 오솔길이 그림 그리듯 선명히 떠오르고 있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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