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의 모든 아이가 어떻게 자라는지 안다
_ 파크리오맘
“이것으로 사람도 살 의미도 찾겠구나 싶더라고요.”
임유화 씨는 아파트 공동체 ‘파크리오맘http://cafe.naver.com/parkromom’에 대해 얘기하면서 그렇게 말했다. 임유화 씨는 서울 지하철 2호선 잠실나루역 부근의 ‘파크리오’라는 대단위 아파트 단지에 산다.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말도 있듯이 우리나라는 주거 유형의 60퍼센트를 아파트가 차지한다. 서울은 더 심하다. 따라서 아파트를 빼놓고 마을 공동체를 이야기할 수는 없다.
임유화 씨는 아파트가 한 칸 한 칸의 사적 재산물들이 모여 있는 단순한 집합체라기보다는 그것들이 모여 하나의 마을을 이루는 공동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어느 순간 한국에서 아파트는 삶이 담긴 공간이 아니라 재산을 증식하는 재테크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 아파트 단지, 어떤 브랜드의 아파트에 살고, 평수가 얼마인지가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버렸다.
‘파크리오맘’은 사는 이의 의식과 태도에 따라 이 같은 아파트에 대한 인식도 바뀔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곳의 많은 주민들은 아파트를 단순히 주거 공간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공간으로 여긴다. 생활 정보나 일상 등을 공유하면서 이것저것 함께하며 노는 재미를 이들은 잘 알고 있다. 이곳에서는 아파트가, 마을이 하나의 놀이터 같은 공간으로 작동하고, 삶의 활력과 기쁨이 되는 공동체로 작용한다.
아파트 공동체 ‘파크리오맘’의 함께하는 즐거움
‘미달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임유화 씨는 두 아이의 엄마이자, 인터넷 카페 ‘파크리오맘’을 개설한 사람이다. 2008년 6월에 개설한 카페는 현재 회원 수가 2천 명 안팎으로, 파크리오아파트 공동체의 중요한 온라인 거점이다. 회원으로는 파크리오 단지에 거주하는 기혼 여성만 받는다. 물론 활동은 가족 단위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회원들의 주연령층은 30~40대로, 이들의 공감대를 이룬 것은 “너도 어마, 나도 엄마”였다. 즉 모두 엄마라는 정체성을 공유한 것이 서로의 관계를 돈독하게 만든 시작이었다. 엄마들끼리 동네 친구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그는 파크리오맘을 열었다.
“제가 분당의 아파트 단지에 살던 2006년에 첫아이를 낳았는데, 주위에 친구가 없어서 굉장히 우울했어요. 그때 바로 주변에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죠.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예전 친구들과는 만나기가 어려워졌거든요.”
아파트에서는 옆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 채 ‘동과 호수’로 표현되는 공간에 묶여 살기가 예사이다. 그러다 보니 같은 동, 같은 층에 살아도 서로 인사를 나누는 행위가 어색한 것이 되었다. 사생활이 공동생활을 압도해 버린 것이다.
그래서 임유화 씨는 파크리오아파트에 입주하면서 인터넷 카페부터 개설했다. 이웃을 만들고 싶었다. 파크리오아파트 주민들이 들락거릴 만한 사이트나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 파크리오맘에 대해 적극 홍보하고 알렸다. 매일 두 시간 이상 관리하면서 회원을 모았다. 그렇게 고군분투한 결과, 원하던 이웃을 매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 둘 재밋거리와 놀잇거리를 함께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이웃들이 많아지자 2009년 봄, ‘새봄 초록 파티’라는 파크리오맘 제1회 정기 모임을 열었다. 그 후 4년 만인 2013년 제2회 정기 모임 겸 파티를 열었다. 회원 수가 많아지다 보니 정기 모임보다 다양한 소모임 위주로 활발한 활동들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동별 모임도 있고, 퀼트나 바느질 같은 취미 활동을 하는 모임, 재테크 공부 모임 등 30~40개의 동호회가 자발적으로 움직인다. 여러 모임을 통해 죽마고우 못지않은 친구들도 생겨났다.
매년 4월과 9월에는 오프라인 벼룩시장을 연다. 2009년 처음 열 때는 워낙 소규모라 자리를 구하는 것조차 힘들었는데 지금은 위상이 달라졌다. 10회 이상 하다 보니 이제는 관리사무소나 입주자대표회의에서도 파크리오 단지의 행사로 받아들이고 배려와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돗자리를 깔아 부스를 차리고, 단지 내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먹을거리를 나누며 시식 행사도 갖는다. 벼룩시장이 마을공동체의 작은 축제가 된 것이다. 이때는 파크리오맘 회원들의 남편과 아이들도 한몸처럼 돕고 즐긴다. 벼룩시장은 온라인에서는 상시적으로 열리고 있고, 회원들이 함께하는 공동 구매도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파크리오맘 주민들이 상가를 헤집고 다니는 ‘상가 점령’ 프로그램도 재미있는 놀이 중 하나이다. 가령 파크리오맘 온라인 카페에 누군가 “새로 생긴 떡집에서 떡을 사 먹었는데, 떡이 쫄깃쫄깃하네요” “그 옆의 빵집은 빵에 첨가물이 덜 들어가요. 맛있어요, 드셔보세요” 같은 이야기를 올리며, 그런 가게의 떡이나 빵은 그날로 품절될 정도다. 파크리오맘이 상가의 매출을 좌우할 만큼 영향력이 커졌다.
‘메뚜기 떼’라고 표현하는 파크리오맘의 커뮤니티 활동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엄마들이 한데 모이니 못할 것이 없다. 활발하고 다양한 활동으로 아파트 공동체의 새로운 풍경을 낳고 있는 파크리오맘이 주목을 받는 것은 기부 등의 활동을 통해 공동체를 잇기 때문이다.
“기부 릴레이 드림, 나눔 벼룩시장, 기부 벼룩, 오픈 마켓, 장보기 기부, 공동 구매 기부, 엄마 재능 기부, 나눔 음악회 같은 걸 진행해요. 꽃꽂이에 재능 있는 주민이 꽃바구니를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기도 하고요. ‘팍맘 아카데미’를 통해 자신이 가진 재능을 다른 주민들과 공유하는 거죠. 파크리오맘들의 재능 기부 덕분에 모든 것을 우리 스스로 만들 수 있게 되었어요. 나눔 음악회는 이 모든 것을 다 결집한 행사고요. 이 외에도 파크리오맘은 연 4천만 원가량 기부금을 모아 해외와 국내의 아이들에게 기부하고 있어요.”
기부 릴레이 드림의 구조는 이렇다. 한 회원이 “식탁을 새로 선물받아서 전에 쓰던 식탁을 버리려는데 혹시 필요하신 분 있나요?”라고 올린 글을 다른 회원이 보고 식탁을 받아가면, 파크리오맘의 기부 통장에는 두 사람 이름으로 1,000원이 기부금으로 적립된다. 식탁을 받은 회원은 한 달 안에 다른 누군가에게 자기 물건 중 무엇이든 기부를 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기부의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파크리오맘의 이런 다양한 활동은 입주자대표회의와 부녀회 등과도 협조 속에서 즐겁게 이루어지고 있다. 서로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우호적이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놀이터의 새 쓰임을 찾는 파크리오
파크리오아파트 단지에는 놀이터가 모두 열한 개 있다. 일부 아파트 단지들에서는 이용률이 낮다는 이유로 놀이터의 수를 줄이려는 움직임도 있으나, 파크리오에는 놀이터가 마을공동체를 확장하고 강화하는 공간으로 작동한다. 많은 아파트 단지의 놀이터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져가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다양한 테마로 꾸며진 이곳 놀이터에서는 아이들이 활기차게 뛰어놀거나 도란도란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풍경을 쉽게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파크리오 단지의 놀이터에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놀이터 공유 도서관’이 있다. 아파트 부녀회에서 시작한 이 도서관은 주민들이 아이들과 함께 많이 이용하는 곳이 되었는데, 이는 놀이터의 또 다른 가능성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놀다가 쉬고 싶거나 책을 읽고 싶은 아이들은 놀이터 도서관에 있는 책을 꺼내 읽기도 하고 친구들과 함께 책 속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도서관이라고 해서 큰 건물을 생각할 필요는 없다. 작은 목조 책장 정도면 충분히 그 기능을 할 수 있다. 아이를 데리고 나온 주민들도 아이가 노는 동안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다. 놀이터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주민들은 서로 얼굴을 익히고 말을 나누기 시작했다.
놀이터 공유 도서관을 만드는 과정에서 주민들의 참여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처음에는 관심과 공감을 얻기가 쉽지 않았으나 ‘주민 커뮤니티 활성화’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일부 주민들의 끈질긴 설득과 노력이 차츰 결실을 거두었다. 공유 도서관으로 쓰일 목조 책상 제작부터 각 가정에서 다양한 책을 기증받아 분류하는 작업까지 주민들은 자신들의 일인 양 발 벗고 나섰다. 노인정도 이 작업에 힘을 보탰다.
놀이터를 매개로 세대 간 교감이 이루어진 것도 놀이터 공유 도서관의 소득이다. 하루는 할머니가 함께 온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데, 놀이터에 있던 다른 아이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책 읽어주는 할머니도, 듣는 아이들도 재미있어하는 풍경이 자연스럽게 연출되었다. 그러면서 서로 어느 동에 사는 누구인지 알게 되고 얼굴을 익히게 되었다. 이 작고 놀라운 경험은 동화 구연과 독서 토론으로 이어졌고, 급기야 놀이터 도서관에서 읽은 책을 가지고 독후감 쓰는 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이 놀이터를 매개로 만들어진 것이다.
임유화 씨는 놀이터가 아파트 공동체에서 얼마나 소중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 깨닫게 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느 날 너무 피곤해서 집에서 둘째아이와 함께 깊은 잠이 들었단다. 학교에서 돌아온 첫째아이가 초인종을 누르고 전화를 걸기까지 했지만 그것도 모르고 잠에 빠져 있었다. 집에도 못 들어가고 엄마와도 연락이 안 되자 첫째아이는 울면서 놀이터로 갔다. 아이가 울면서 걸어오자 놀이터에 있던 다른 엄마들이 아이를 달래며 함께 있어주고 데려가서 저녁밥까지 먹여주었다. 뒤늦게 잠에서 깬 임유화 씨는 아이에게 자초지종을 듣고 아파트 단지가 공동체로 변화하면서 그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얼마나 소중하고 고마운 존재들이 되었는지 새삼 깨달았다고 한다.
임유화 씨 외에도 이런 경우는 많았다. 아파트 단지 내에서 잃어버린 반려견을 찾은 경우도 있고 물건을 찾아서 돌려주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서로 알고 지내는 이웃이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이처럼 놀이터는 관계가 맺어지는 중요한 공간으로 기능할 수 있다. 놀이터가 하나의 커뮤니티 공간으로 기능하면서 마을 전체가 놀이터처럼 작동한다. 놀이터가 단순히 아이들이 뛰노는 공간이 아니라 마을 전체가 소통하는 공적 공간이 된 것이다. 《도시를 보다》라는 책을 보면 놀이터가 사회적 관계를 발전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시간과 공간으로 제한될 수 없는 사회적 관계가 놀이터에서 발전한다. 놀이터에서 우연히 만난 학부모가 바비큐 파티에 다른 학부모를 초대하고 그들은 또 그 파티에 친구를 데려간다. 그 관계는 지역 전체로 확산될 수 있다. 우연한 친목이 그 지역의 지속적인 정체성과 안전을 위한 기본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사회적 네트워크가 밀접할수록 공적 공간의 의미는 더욱 중요해진다. 주민들 사이의 우연한 만남은 그들의 동선이 겹치는 모든 도시 공간에서 발생한다. 교차로, 상점 앞, 뒷마당은 물론 놀이터에서도 말이다.”
아파트에 핀 공동체라는 꽃
“마을이라는 곳은 내 아이뿐 아니라 다른 집아이가 어떻게 커가는지 관심을 두고, 아이들의 이름이 뭔지도 아는 곳이 아닌가 싶어요. 삭막한 아파트지만, 파크리오맘은 주민들이 서로에 대해서는 물론 누가 뉘 집 아이들인지 알고 같이 키워간다는 마음으로 재밌게 살고 있어요. 다른 곳에서도 이런 활동이 충분히 가능하리라 봅니다.”
이렇게 말하는 임유화 씨에게 누군가는 이런 공동체 활동이 이것저것 챙기고 보살필 게 많아 피곤하지 않느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활동으로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더 많다는 것이 임유화 씨의 생각이다. 주민들이 종종 그에게 “미달이 덕분에 좋은 친구를 많이 만났어,” 하고 건네는 말에서 그는 자신의 활동에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아파트 단지 위에서 주민들이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고 무언가를 하기 위해 모여 있는 모습을 볼 때도 뿌듯하다.
도시에 사는 많은 사람들, 특히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단지 안에 사람들이 아무리 많아도 다들 외롭다고 말한다. 친구를 얻는 것은 물론 말을 나눌 이웃 하나 만나기도 쉽지 않다. 임유화 씨도 그랬다. 하지만 파크리오맘의 경험을 통해 그녀는 아파트 단지 역시 사람이 사는 곳이고 얼마든지 이웃을 만나고 사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시작은 내가 먼저 마음을 열어 인사를 하고 말을 거는 것이었다.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거나 데려올 때도 아는 사람을 늘 만나고 인사를 해요. 그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 그렇게 얼굴을 맞대고 얘기를 나누고 나면 기분이 좋아져요. 둘째아이가 뜨거운 주전자에 데었는데, 다음날 ‘어떻게 됐니? 놀랐지?’ 하면서 가게에 데려가 커피 한잔 사주는데 뭉클했어요. 뭘 많이 해줘서가 아니라 간단한 안부로도 기분이 달라지더라고요. 엘리베이터에서 잠깐 안부를 주고받는 행위에서도 정감이 느껴지고요.”
적어도 안부를 묻는 관계, 얼굴을 맞대고 인사를 나누는 관계가 형성된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대화와 사뭇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이들 이야기부터 층간 소음이나 화장실 냄새 등에 대해 하소연하기도 하고, 시댁과의 갈등이나 이른바 ‘직장 맘’으로서의 어려운 점 등을 이야기하면서 공감을 나누고 위로를 받기도 한다. 주민들 사이에 갈등이 생겼을 때에도 서로의 입장을 들어주고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갈등이 풀리기도 한다. 상대로부터 배우게도 되고, 내 삶에 감사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다른 가족과 남의 삶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경험도 한다. 아파트라는 공간에서 공동체가 활짝 꽃피어났기에 가능한 일들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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